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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11화 (111/212)

제111화

#111.

보상을 모두 챙긴 솔라 일행은 서둘러 요정들의 수목 도시를 떠났다.

도시의 입구, 일부 엘프들이 조촐한 배웅을 나왔다. 장로들을 비롯한 엘프들이 나와 있었고, 제일 앞에는 요정 여왕 리리아가 서 있었다.

“언제든 방문해도 돼. 그대들은 우리 가족과 다름없으니까.”

리리아가 은은한 미소와 함께 작별 인사를 했다.

“크흠!”

“흠흠.”

그녀의 말에 뒤에 있던 아이지를 비롯한 장로들이 괜히 흠칫한다.

“물론~ 다음에 올 때는 적당히 챙겨 가야 해?”

리리아는 장로들이 왜 흠칫했는지 아는 모양.

“알았지?”

그녀는 장난 섞인 미소로 루나를 유독 보면서 말을 더했다.

“헤헤헤.”

여왕의 말에 루나는 괜히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인다.

“엄청 털었나 보군.”

그런 리리아와 장로들의 반응을 본 솔라가 질렸다는 듯 루나와 로뮤를 보았다.

솔라의 시선까지 더해지자, 둘은 애써 모른 척 하늘을 볼 뿐이다.

“로뮤.”

리리아는 루나에게서 로뮤에게로 시선을 옮기고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늘로 애써 시선을 돌렸던 로뮤가 자신의 누이와 눈을 맞췄다.

“후회는 안 돼? 영영 요정 숲을 떠나는 거 말이야.”

“……생각은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어. 그저 이번에 결심이 섰을 뿐이고.”

누이의 물음에 로뮤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씨익 웃으며 답한다.

“우리 장로님께서 책임을 지라고 하셨으니, 겸사겸사.”

그리고 이어서 리리아 뒤에 있는 장로 아이지를 응시한다.

“크흠!”

아이지를 비롯한 장로들이 불편하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공은 공이고, 과는 과네. 요정 숲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공은 인정하나, 자네가 데려온 인간들로 우리들의 도시가 피해를 입은 것도 참이네.”

그러면서도 할 말은 꿋꿋이 한다.

“그래, 고마워. 내 결심을 확고하게 만들어 줘서.”

그런 장로들을 본 로뮤는 오히려 개운하다는 반응이었다.

이번 요정 숲에서의 일로 로뮤는 모종의 결심이 선 모양이었다.

그는 어떤 미련도 없다는 듯 요정 숲을 떠나기로 했다. 장로들은 제2의 아낙시아가 될지도 모른다며 염려하면서도 딱히 반대하지도 않았다.

“…….”

오직 리리아만이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어머니께서 널 축복한다고 전해 달래. 그리고 종종 놀러 와도 뭐라 하지 않는다고도 하시네? 나도 마찬가지야.”

리리아 또한 씁쓸해 하면서도 로뮤의 결정을 막지 않았다. 세계수도 자식의 결정을 축복했다.

“고마워.”

“하지만 로뮤, 아무리 너라도…….”

그러다가 리리아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그늘진 얼굴로 로뮤를 보았다.

리리아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눈치챈 로뮤가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맹세해. 그 여자와 난 달라.”

그는 자신의 누이에게 작게 속삭였다.

“세계수 열매를 받지 말자고 루나를 설득한 것도 이 때문이고.”

로뮤의 속삭임에 리리아는 안도를 느꼈다.

“응, 고마워. 덕분에 우리 세계의 시간선은 평화롭더라고.”

그리고 미안함과 고마움을 강하게 느끼며 로뮤의 손을 잡았다.

짧지만 깊은 작별 인사가 하이엘프 남매 사이에 오갔다.

‘응?’

그렇게 짧게 인사를 나누며, 리리아는 자신을 유독 응시 중인 시선을 느꼈다.

‘쥴리아?’

솔라 옆에 선 꼬마 아가씨 쥴리아가 그녀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

쥴리아는 요정 여왕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 약간의 서운함과 아쉬움이 어린 소녀의 금색 눈동자에 담겼다.

“참!”

리리아는 그런 쥴리아의 표정을 보곤 자신이 뭘 빠트렸는지 알아챘다.

“솔라시우스, 잠시 귀 좀.”

그녀는 급히 솔라를 부르곤 그의 귀에 입을 가까이했다.

소곤, 소곤, 소곤.

몇 번의 작은 대화가 둘 사이에 오갔다.

“……!”

쥴리아가 눈을 빛내며 두 어른을 번갈아 본다.

짧은 소곤거림을 마치고, 솔라가 무심한 금빛 눈으로 작고 어린 소녀를 눈에 담았다.

“…….”

“…….”

아이와 어른, 둘 사이에 약간의 어색함과 적막이 흘렀고, 몇 초 후 솔라가 몸을 숙이고는 쥴리아를 안아 들었다.

“쥴리아,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다고?”

그리고 무심한 시선에서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꾸곤 아이에게 물었다.

“…….”

끄덕끄덕.

솔라의 물음에 쥴리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아이는 어찌나 긴장했는지, 바로 옆에서도 심장 뛰는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그 아버지 말고…… 마스터나 스승님은 어떠니?”

그런 쥴리아를 보면서 솔라가 조심히 물었다. 지구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

솔라의 제안에 쥴리아의 끄덕이던 고개가 멈췄다.

“……!”

아이는 떨리는 눈으로 솔라를 바라보았다.

* * *

“오셨다!”

요정 숲 밖으로 나오자, 무수한 인파가 솔라시우스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하의 적통을 뵙습니다!”

“솔라시우스 폐하, 만세!”

“광휘여, 영원하라!”

사방에서 그를 찬양하는 함성과 구호가 몰아쳤다.

“…….”

솔라는 미간을 구기곤 무심한 금색 눈으로 자신의 이복동생을 찾았다.

“형님!”

자신을 찾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챘는지 솔라와 비슷한 용모의 청년이 금세 다가온다.

“이동 준비는?”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습니다.”

“……가지.”

“넵! 형님.”

미나스트림은 간신인지 충신인지 모를 태도로 솔라의 지시에 허리를 깊게 숙이고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만약 그가 수인족이었다면 꼬리도 프로펠러처럼 정신없이 흔들었을 것이다.

‘우와!’

그런 미나스와 숲 밖의 인파를 본 쥴리아는 솔라가 자랑스러웠다.

“저분들이 모두 아빠의 부하예요?”

아이는 상기된 얼굴로 솔라에게 물었다.

“……아, 아빠?!”

바로 옆에서 이를 들은 미나스가 쥴리아의 말에 기겁했다.

“뭐, 그런 셈이지.”

솔라는 기겁하는 미나스를 무시하곤 쥴리아를 향해 부드러운 눈으로 대답했다.

“딸?! 형님 폐하께 딸이 있었다니!”

그런 솔라와 쥴리아를 보는 미나스는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다.

‘딸이라니?! 그러고 보니 눈동자 색이……! 벌써 엘프와 거사를 치르신 건가? 나이를 보니 엄청 빠르군. 그럼 황후 되시는 분은 어디 계시지? 붉은 머리카락의 엘프가 존재했나? 금발은 아니라서 적통은 피한 거 같긴 한데…….’

그의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과 계산이 오간다.

“에휴!”

보다 못한 루나가 그런 미나스의 옆으로 다가와 한마디 했다.

“양녀야, 이 바보야.”

“양…… 양녀! 아아, 그랬군, 그랬어! 고맙습니다, 1황녀 전하.”

루나의 말에 그제야 진정하는 미나스.

“아! 그러고 보니 폐하께 그 소식을 전해 드려야 하는데?!”

정신을 차린 미나스는 급히 고개를 돌려 솔라를 찾았다.

“저…… 형님 폐하!”

그사이 솔라는 제법 앞서가는 중이었다.

쿠웅, 쿠웅, 쿠웅.

앞서가는 솔라는 붉은색 드레이크를 타고 있었다. 쥴리아와 함께 앉아 가고 있었는데, 인지 저하 마법이라도 건 모양인지 저 크고 붉은 드레이크가 이상하게 유별나게 느껴지지 않았다.

“폐하! 형님 폐하!”

미나스는 멀리서부터 애타게 솔라를 부르며 그에게 달려갔다.

“루한에서 최근 중요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어떤 소식이지?”

미나스의 입에서 루한에 대한 얘기가 들리자 솔라가 모처럼 관심을 보였다.

“데스모 공작령과 문라이트 변경백에서의 변고는 들으셨지요? 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형님이 관심을 보이자, 미나스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말을 이었다.

“데스모 공작이 설원의 가호 안에서 부정한 살육을 벌일 수 있는 주술을 만들어 낸 모양입니다. 그래서 토벌군이 패했고, 결국 설원의 여왕이 직접 나섰다고 합니다.”

솔라는 미나스에게 계속 말해 보라는 듯 턱을 까딱였다.

“그리하여 루한의 여왕과 데스모 공작이 결투를 벌였고, 여왕의 승리로 끝났다고 합니다. 데스모 공작은 큰 부상을 입어 도망쳤고. 공작이 무너지자, 데스모의 반란군 또한 무너졌다고 들었습니다.”

“…….”

미나스가 전해 준 소식에 솔라는 미간을 좁혔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미나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루시는 무사한가?”

“루…… 누구요?”

“루시푸르네, 루한의 여왕 말이다.”

“그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별 소식이 없는 거 보니까 무사하지 않겠습니까?”

미나스는 솔라가 루한의 여왕을 지나치게 친근하게 부르는 것에 이상함을 느꼈으나, 이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몇 년 내로 대륙의 지존이 되실 분인데 그깟 소국의 여왕 정도야, 뭐.

“…….”

한편, 솔라는 허리춤의 푸른색 마검을 쓰다듬으며 인상을 굳혔다. 옆에 앉은 쥴리아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런 양아버지를 보았다.

‘루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이상하게 찝찝하고 불안하다.

-꼭! 왕궁으로 와 줘! 그때와는 다르게, 웃으면서 그 누구보다 너를 환영할 테니!

세계수 정원에서 조우했던 루시푸르네의 모습이 떠오른다. 회귀한 것이 분명했던 그녀의 언행이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만들지 않을까 염려됐다.

‘공간 이동이라도 해서 왕궁으로 바로 갔으면 좋을 텐데…….’

공간 이동 마법이 아무리 고위 마법이라고 해도 솔라 한 명을 왕궁이나 후작령으로 보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리리아와 세계수는 그러지 못했다. 지구에서 온 태광휘의 존재 때문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차원의 미아가 될 수 있다고 했지. 태양샘 반지의 존재도 문제였고.’

솔라는 무심한 눈으로 미나스와 저항군을 보았다.

당장은 자신의 부하들이지만 딱히 정을 주거나 이끌 생각은 없었다.

나중에 모든 일이 끝나면 미련 없이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눈앞의 미나스에게 섭정이든 황제든 물려주고 떠날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 이를 공표하면 혼란이 일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비밀로 해야겠지만.

솔라는 시선을 요정 숲 밖으로 돌렸다. 루한의 변경백에 돌아가게 되면 갈림길을 선택해야 한다.

왕궁으로 갈지, 후작령으로 갈지.

“…….”

그는 몇 초 정도 생각에 잠겼고 시급함의 무게를 재 보았다.

‘일단 루시를 믿어 보자. 당장 급한 건 문라이트 후작령이니까.’

그리고 결론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왔다.

리리아는 루한에서 온 소식을 전해 주면서 세계수를 통해 본 미래시도 전해 줬다.

‘유리아와 문라이트 후작의 상태가 위독하다고 했어. 다른 세계선에서 크게 활약하지 못했던 존재가 날뛸 거라고 했지.’

그래서 솔라는 지금 문라이트 후작령의 급박함의 무게를 대강이나마 인지하고 있었다.

‘고대의 악마 알파라. 흡혈귀와 비슷하다고 그랬지? 그게 루한 전역으로 퍼져선 안 돼!’

생각을 빠르게 정리하자마자 시즈의 고삐를 조율했다.

키르르르르.

요정 숲에 있는 동안 덩치가 좀 더 커진 시즈가 기분 좋은 그르릉 소리와 함께 방향을 튼다.

“미나스, 나는 먼저 루한으로 가겠다. 너희는 대열을 유지하고서 천천히 이동하라. 집결지는 변경백의 직할령이다.”

“하지만…….”

“명령이야.”

“알겠습니다.”

솔라의 지시에 미나스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 마라.”

그는 자신의 이복동생이 왜 저런 반응인지 눈치챘다.

“충성스러운 광휘의 군단이여! 이제부터 내 동생 미나스트림이 너희를 지휘한다!”

그랬기에 곧바로 목에 마나를 담아 저항군의 기사와 귀족들에게 외쳤다.

“그의 명령이 곧 나의 명령이다! 거부하는 자는 태양검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감히 거절할 수 없는 엄숙한 지시가 인파를 압도했고 솔라의 말을 들은 어느 누구도 반론은커녕 의구심도 보이지 않았다.

“……!”

역시 진정한 적통은 달라도 다르구나! 옆에 서 있던 미나스는 속으로 감탄하면서 그런 형님을 우러러보았다.

“이 정도면 됐을 거다. 그럼 먼저 간다.”

짧고 굵은 선포를 마친 솔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요정 숲에서 멀어졌다. 그의 뒤를 루나와 로뮤가 바싹 붙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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