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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12화 (112/212)

제112화

#112.

요정 숲과 루한이 연결된 마법 통신구는 조용했다. 아마도 세계수 정원에서 이뤄졌던 솔라와 루시의 만남 때문인 듯싶었다.

솔라 일행을 보내고 리리아는 세계수 정원에서 간만의 고요함을 즐겼다. 차를 음미하면서.

요정 숲과 수목 도시는 재건에 바빴지만 그건 장로들이 해결할 것이다. 그녀는 그저 외부와의 신경을 싹 끄고 한동안 쉴 생각이었다.

“……?”

하지만 그 평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설원의 가호가?!”

리리아는 차를 음미하기 위해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금색 세계수 나무를 보니 세계수에 달린 금색 나뭇잎 중 하나가 시들어 있었다.

‘세계수 팔찌도 시들었어?!’

루시가 찬 세계수 팔찌와 연결된 나뭇잎이었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루한과 연결된 마법 통신구를 보았다.

“설원의 마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야.”

저 통신구가 조용한 것에 다른 이유가 있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어서 시선을 세계수에게 돌렸다. 어떻게 된 걸까? 미래시에선 보지 못했던 사건이다.

‘옥타나와 관련된 일일까? 어쩌면 또 다른 분기점의 시작일지도 몰라. 유리아라는 아이처럼.’

상위 차원인 마계는 세계수의 영향력이 닿지 못한다. 그래서 마계에서 각성하고 온 존재들은 세계수의 미래시를 제한적이지만 피할 수 있었다.

옥타나와 암흑대공 그리고 악황제, 이들과 관련된 사건은 명확히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상황을 인지한 리리아는 자연스레 한 남자를 떠올렸다.

‘그는 지금 어디쯤 갔지?!’

솔라에게 말해야 하지만, 이미 그는 요정 숲 밖으로 나선 상황.

그녀는 급히 세계수 정원을 나왔다. 그리고 요정 숲에서 가장 높은 나무 위로 올랐다. 그곳에서 솔라 일행의 위치를 확인 후 바람의 정령을 보낼까 했다.

“…….”

리리아는 높다란 나무 위에 서서 요정 숲 밖을 응시했다.

하이엘프의 높은 시력과 정령의 도움으로 숲 바깥까지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점점 멀어지는 솔라 일행의 뒷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휘이이이.

“……?!”

잠시 말없이 그들의 뒷모습을 보던 리리아는 문득 자신에게 불어온 바람을 느꼈다.

“그래? 인간의 입소문은 바람의 정령보다 빠르다더니.”

바람으로부터 어떤 소식을 들은 리리아는 솔라에게 바람의 정령 보내는 것을 관뒀다.

솔라도 이미 알고 있거나 곧 알게 될 것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럼 다시 평화로운 티타임을…… 응?!”

리리아는 다시 정원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문뜩 멈칫했다.

‘미래시가……?!’

나무에서 내려가기 직전, 또 하나의 미래시가 리리아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

그녀는 나무에서 내려가는 것도 잊고는 멍하니 숲 바깥을 응시했다.

응시 중인 눈동자는 뭔가 이상했다. 몽롱함과 멍함이 반반씩 섞인 눈동자가 또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몽롱한 시선은 특히 로뮤의 뒷모습을 유심히 담았다. 늘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는 혈육의 모습. 이어서 로뮤 옆에서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흑발의 소녀도 보았다.

그렇게 멍하니 로뮤와 루나의 뒷모습을 보던 리리아는 얼마 후.

“하아……!”

깊게 숨을 뱉으면서 찰나의 환상에서 벗어났다.

“……이게 어머니의 결정이군요?”

환상에서 벗어나자마자, 리리아의 입에서 혼잣말이 나왔다. 정확히는 언제나 그녀와 함께인 세계수를 향한 물음이었다.

“다크엘프라, 그게 어머니의 결정이라면 어쩔 수 없지요.”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에이션트 엘프는…… 저와 로뮤가 마지막이겠군요?”

미소를 거두며 눈을 감은 리리아의 머릿속으로 이 세계의 어떤 미래가 짤막히 지나간다. 확정된 미래는 결코 아닌, 예정된 미래가.

에이션트 엘프이자 하이엘프인 로뮤. 옅긴 하지만 아낙시아의 피가 흐르며 그림자 핵을 품은 루나.

둘은 결국엔 서로의 마음을 인정하고 부부가 된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하프엘프도 아니었다. 새로운 엘프였다.

은발 또는 흑발, 금안 또는 적안이 특징인 엘프들. 피부는 달처럼 창백하고 푸른 기운을 띠었다. 귀는 엘프보단 작았지만 인간보단 크고 뾰족하다.

성격도 엘프보다 욕망에 충실하고 진취적이다. 수명은 엘프의 절반 정도지만 성욕은 더 강했다. 인간과 엘프 사이에 낀 종족.

사람들은 그 엘프들을 ‘다크엘프’라고 불렀다.

“저도 가능했었겠지요?”

리리아의 먼 시선이 솔라에게 옮겨졌다.

스스스스슷.

그런 딸을 어머니 세계수가 위로하듯 바람으로 쓰다듬는다.

“불만은 없어요. 제 업보인걸요.”

어머니가 불어 준 바람에 리리아는 눈을 감았다.

경멸의 무게를 회피한 대가가 이거라면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경멸의 무게를 짊어진 보상이 저거라면 충분히 축하해 줄 수 있다.

사랑 대신 일신의 안위를 선택한 셈 치자.

하아.

리리아는 오늘따라 유독 아린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 * *

루한, 정확히는 루시푸르네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확신한 건 생각보다 빨랐다.

가장 먼저 요정 숲의 영향권을 나와 변경백 외곽으로 오자마자 느꼈다.

“설원의 가호가?!”

제일 먼저 이를 인지한 사람은 로뮤였다. 하이엘프이기도 한 그는 대번에 대기 중의 마나의 이변을 느꼈다.

“여왕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뒤이어 루나도 안색을 굳혔다. (참고로 솔라를 제외한 세 사람은 아직 마검 루시가 루시푸르네라는 사실을 몰랐다.)

“…….”

솔라는 그저 말없이 허리춤의 푸른색 마검을 만질 뿐이다.

“로안, 방향을 바꿔야 하지 않겠어?”

사자 같은 말갈기가 인상적인 흑마, 맨해튼카페에 탄 로뮤가 솔라에게 물었다.

“하지만 로뮤 오라버니! 유리아 언니가…….”

그런 로뮤의 말에 모처럼 루나가 반대 의사를 보인다.

이들 중 제일 나이가 어린 쥴리아만이 걱정 가득한 눈으로 어른들을 번갈아 볼 뿐이다.

‘루시.’

이쯤 되니 후작령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던 솔라의 결심도 흔들렸다. 문라이트 후작과 유리아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루한의 여왕 루시푸르네보단 아니니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문득 하늘 위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삐이이이이.

태양을 등지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제법 익숙한 울음소리가 하늘에서 들린다.

“그리핀?”

로뮤가 급히 활과 화살을 꺼내 하늘을 조준했다. 그리핀은 영물이지만 어떨 때는 몬스터보다 흉폭하고 위험했다.

“로뮤, 적이 아니야.”

그런 로뮤의 활을 솔라가 손을 들어 만류한다.

햇빛에 가려진 그리핀이 점점 가까워진다. 그 위에 누군가가 타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그러게? 바빠 보이는 것도 여전하고.”

자신들을 향해 내려오는 이의 정체를 알고 있는 솔라와 루나는 묵묵히 그리핀이 착륙하길 기다렸다.

“광휘의 기사여! 여왕 폐하의 명입니다!”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선전관이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솔라 일행 앞에 나타났다.

그는 그리핀이 땅에 착지하자마자 안장에서 내렸다.

“……?!”

그런데 선전관의 안장 뒤에는 누군가가 추가로 타고 있었다.

심지어 아는 얼굴이다.

“프리드리히 공자?”

솔라가 대표로 선전관과 함께 온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아아! 로안 경! 드디어 만나게 되었군요. 여왕이시여, 감사합니다!”

프리드리히는 솔라를 보자마자 눈시울을 붉히며 하늘을 향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선전관과 함께 그리핀에서 내린 프리드리히의 몰골은 좋다고 볼 수 없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포로로 잡혔다가 급히 탈출한 기사의 몰골이었다.

“흠흠! 일단 폐하의 명부터 전하겠습니다!”

선전관은 프리츠와 솔라를 번갈아 보다가, 이내 품에 있던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그리고 여왕이 쓴 편지를 또렷한 발음으로 낭송했다.

“솔라, 그대가 이 서신을 받을 때면, 설원의 가호가 무너지고 루한에 혼란이 찾아왔을 것이다.”

앞에서 여왕의 서신이 낭송되고 있었지만, 솔라와 일행들은 무릎을 꿇거나 하진 않았다.

당장 솔라는 이미 루한의 차기 국서로(본인은 모르지만) 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최근에는 요정 숲에서의 일까지 알려졌다. 몰락했지만 제국의 적통이다. 이 배경은 루한의 여왕과 비교해 높으면 높았지, 아래는 아니었다.

그 외 솔라의 일행도 마찬가지.

로뮤는 일단 엘프였다. 그것도 하이엘프.

루나는 광휘의 기사 못지않게 이름을 높인 마녀였고, 최근엔 변장한 1황녀라는 소문이 기정사실처럼 되어 있었다.

“설원의 가호가 무너져 왕국 전체의 마나 배열이 꼬였다. 때문에 마법 통신으로 소식을 전하지 못함을 이해하라.”

선전관도 딱히 이를 지적하지 않고 루시의 편지를 낭송했다.

“하지만 나는 괜찮으니 우선 문라이트 후작령으로 가라. 그곳에 왕국의 오랜 충신이 어려움에 빠져 있다. 그들을 먼저 구원하고 왕궁으로 오길 바란다.”

선전관의 낭송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여왕이 쓴 서신치고는 짧았지만, 내용은 명확하다.

“크흐흐흐윽! 여왕 폐하, 만세!”

옆에서 이를 들은 프리츠가 감격했다는 투로 루시를 찬양하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안위보다 신하의 안위를 먼저 살피는 여왕의 자상함에 감동한 모양.

“크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왕이시여!”

프리츠의 눈물 섞인 찬양을 뒤로하고, 솔라는 선전관으로부터 루시의 서신을 건네받으며 답했다.

“바로 후작령으로 가겠다고 전해 드리도록.”

솔라의 입에서 나온 말투는 완전한 하대였다. 하지만 선전관은 감히 뭐라 따지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오히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그의 눈치를 낑낑 볼 뿐이다.

“그…… 앞으로 뭐라 불러야 할지……?”

“솔라시우스라고 부르도록.”

솔라는 이제 숨길 이유를 느끼지 못했기에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자신을 ‘로안’이라 부르는 존재는 로뮤와 리리아가 유일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솔라시우스, 빛의 적통이여.”

솔라의 대답에 선전관은 기다렸다는 듯 무릎을 꿇고는 공손히 예를 표했다.

“서둘러 당신의 대답을 폐하께 전하겠나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더니, 그리핀을 타고 급히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솔…… 솔, 솔라시우스라니?!”

선전관이 사라지고, 지상에 덩그라니 남은 프리드리히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솔라를 쳐다보았다.

그는 그동안 후작령에 갇혀 있었기에, 바깥소식을 잘 몰랐다.

“그렇게 되었소. 그나저나 어떻게 된 일이오?”

솔라는 프리츠의 반응을 무시하며 물었다.

“그, 그렇지!”

솔라의 물음에 프리츠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정신을 차렸다.

“어서, 문라이트 직할령으로 가야 하오! 아니, 가야 합니다!”

프리츠는 솔라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애원하듯 부탁했다. 솔라의 정체를 알게 되자 말투도 존대로 바뀌었다.

“빛의 적통이여, 제발 유리아를 죽여 주십시오. 그 아이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아이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흑마법사도 죽여야 합니다!”

부탁하는 프리츠의 어깨가 덜덜 떨렸다.

“시간이 없습니다! 이대로 조금만 있으면, 그 괴물이 깨어날 겁니다! ……그 흑마법사는 유리아와 영지의 모두를 제물로 바쳐 엄청난 괴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깨뿐만 아니라 눈동자와 목소리도 떨렸다.

“그 괴물이 풀려나게 되면…… 루한은 차라리 제국군과 싸우던 때를 그리워할 겁니다.”

일행 모두가 숨을 죽이며 그런 프리츠를 바라보았다.

“일단 가면서 얘기하지.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말해 주시오.”

일단 솔라는 프리츠를 부축해 드레이크 시즈 위에 태웠다.

시즈의 덩치는 아주 컸기 때문에 어른 둘과 아이 하나는 충분히 태우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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