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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13화 (113/212)

제113화

#113.

변경백 지크문트와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는 유리아보다 보름 정도 늦게 영지로 귀환했었다.

그리고 영지로 들어오자마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애초에 영지로 향하면서 들은 소문부터가 심상치 않기도 했다.

후작령의 가축과 사람들이 실종되는 일이 잦았고, 가솔들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등의 불길한 소문이 들리긴 했다. 그랬기에 볼카 요새에서 더더욱 서두른 것이기도 했고.

그렇게 도착한 후작령은 수상했다. 이미 외부와의 교류가 급격히 줄어든 상태였고, 직할령의 자유민들은 너도나도 짐을 싸고 여차하면 고향을 떠날 기색을 내비쳤다.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짙은 안개가 하루에도 몇 번씩 생성됐다가 사라졌다.

“프리츠, 긴장을 늦추지 마라!”

변경백 지크문트는 자신의 영지를 보면서 자신의 장남에게 주의를 주었다.

“예, 각하! 기사단, 경계 태세를 최고로 높인다!”

프리드리히 또한 여차하면 검을 뽑을 준비를 했다.

영지 초입을 지나 성과 저택 인근에 도착하니, 해가 막 지기 시작했다.

분명 마법 통신으로 오늘쯤 도착한다고 알렸음에도 직할령에는 어떤 환영 인파도 없었다.

그저 저택 앞에 조촐한 마중만이 있을 뿐이다.

“어서 오세요…… 여보.”

마중 나온 제일 선두에는 지크문트의 아내이자 변경백의 후작 부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평소와 달랐다. 붉은 안광이 은은한 눈동자는 술에 취한 듯 몽롱한 상태다.

“오셨습니까? 아버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마찬가지로 둘째 알버트와 셋째 아돌프 또한 비슷한 몰골로 인사를 했다.

“…….”

그런 어머니와 동생들의 모습에 프리츠는 할 말을 잃었다.

“……유리아는 어디에 있지?”

지크문트는 피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며 아내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모든 원흉이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딸에게 있음을 직감했다.

“유리아는…… 저택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오시지요.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만찬이…… 만찬을 차려 놨어요……. 만찬을…….”

마중 나온 세 사람은 반쯤 정신이 나간 언행으로 지크문트와 프리츠를 안내했다.

“…….”

그런 가족들의 뒷모습에 지크문트는 심장에서 차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

프리츠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막막함으로 활짝 열린 저택 문을 응시했다.

“프리츠.”

“알겠습니다. 기사단 전투 준비. 병사들은 저택 주위를 포위하라.”

두 사람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저택 안으로 향했다. 뒤에는 기사들이 우르르 따랐다. 그것도 모자라 함께 온 병사들이 저택 주위를 포위했다.

무슨 자신감인지, 저들은 이를 막지 않았다.

저택 안은 어둡고 커다란 커튼으로 모든 창문이 가려져 있었다.

창문이 가려져 막 저물기 시작한 노을빛마저 가렸지만 어둡지는 않았다.

각종 촛불과 마법 등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솔들의 안내를 받아 향한 곳은 지크문트와 프리츠가 익히 알던 저택의 만찬장이었다.

“저게…… 뭐지……?”

“…….”

하지만 만찬장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진수성찬 같은 게 아니었다.

거대한 식탁이 있던 곳에는 테이블과 의자 대신 하얀색 관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다.

후작과 프리츠가 멍하니 새하얀 관을 보고 있는데, 또각또각 발소리와 함께 관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유리아!”

“……!”

바로 유리아였다. 하지만 유리아의 모습은 잠깐 못 본 사이에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유리아는 기사 제복을 입지 않았다. 평소 질색하던 귀족 영애들이나 입는 드레스를 입었고, 그 드레스의 색은 기분 나쁠 정도로 피를 연상케 하는 붉은색이었다.

“아버지, 오라버니, 환영합니다. 낙원에 오신 것을.”

그녀는 기사식 경례가 아닌, 치마 양쪽을 잡고 무릎과 고개를 살짝 숙이는 영애들의 인사를 두 사람에게 했다.

평소였다면 신기함과 감격에 젖었을 유리아의 모습.

하지만 지금의 후작과 프리츠는 표정을 더더욱 굳힐 뿐이었다.

“클클클, 변경백 각하를 뵙습니다. 저는 왕도에서 부름을 받고 온 마도사 지하드라고 합니다.”

인사를 하는 유리아에 이어서 기분 나쁜 남성의 인사도 들렸다.

유리아가 나타난 방향에서 중년 마법사가 이어서 등장했다.

“……!”

지크문트와 프리츠는 저 마법사가 누군지 알았다. 영지를 대신 관리했던 둘째가 왕도에서 초빙했다는 마법사였지. 하지만 잘못 초빙해도 한참 잘못 초빙한 것 같다.

“네 이놈! 유리아와 가솔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저 관은 또 무엇이고?!”

제일 먼저 프리츠가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스릉, 스릉!

함께 저택으로 들어온 기사들 또한 기다렸다는 듯 검을 뽑았다.

“…….”

오직 지크문트 후작만이 말없이 발도 자세를 취할 뿐이다.

“지하드 님을 적대하지 마십시오.”

이에, 유리아가 지하드 대신 입을 열었다.

“아버지, 마도사 지하드는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사해 줬습니다.”

그리고 유리아를 시작으로 가솔들 또한 지하드는 변호하기 시작한다.

“약해 빠진 설원의 가호는 이제 필요 없습니다.”

둘째와 셋째 아들이 지하드를 경호하듯 막으며 말했다.

“여보, 이제 더 이상 가증스럽고 위선적인 여왕에게 충성할 필요 없어요.”

후작 부인 또한 양손을 양옆으로 들어 남편과 기사들을 제지했다.

“루한은 이제 끝입니다! 아버지.”

“우리 문라이트 가문이 진정한 낙원의 왕국을 세우는 겁니다.”

“여보, 당신도 지하드 님이 펼칠 세상에 동참하세요.”

가솔들의 입에서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불충한 발언이 연이어 나왔다.

“……유리아, 그 관은 뭐지?”

듣다 못한 지크문트가 그들의 말을 끊고서 물었다.

소드 마스터인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정신이 나간 가솔들보다, 저 역겨운 흑마법사보다, 저 하얀색 관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을.

“이 관 말씀이십니까?”

아버지의 물음에 딸은 흥분한 진분홍빛 눈동자로 순백의 관을 쓰다듬었다.

“참으로 아름답지요?”

유리아는 순백의 관을 사랑에 빠진 눈으로 쓰다듬다가 갑자기 단검을 뽑았다.

스윽.

그리곤 어떤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손바닥을 그었다.

주우우욱.

그녀의 손에서 나온 피가 하얀 관 뚜껑 틈 사이로 스며든다.

쪼옥, 쪼옥, 쪼옥.

하얀 관에서 아기가 어미 젖을 빠는 듯한 소리가 나왔다.

“이 관은.”

유리아는 그런 관을 사랑스럽다는 듯 쳐다보며 마저 말을 이었다.

“낙원입니다.”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손에 났던 자상이 순식간에 나았다.

피가 멈췄고, 젖을 빠는 듯한 소리도 사라졌다.

덜컹, 덜컹, 덜컹.

대신 하얀 관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아는 덜컹거리는 관을 쓰다듬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지크문트와 기사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여러분은 만찬이지요.”

딸은 아버지와 오라버니 그리고 기사들을 향해 만찬이라고 지칭했다.

끼이이익.

그녀의 말이 끝나자, 오래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관 뚜껑이 열렸다.

번쩍.

관 속의 어둠 안에서 붉은 안광이 빛났다.

* * *

“그 존재는…… 정말이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존재였습니다.”

문라이트 후작령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프리츠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다.

“전신이 피막으로 이뤄진 인간이었습니다. 너무 빨랐고, 너무 강했습니다. 놈의 괴력과 속도에 아버지도 결국엔 제압당했습니다. 기사들과 병사들도 마찬가지였고요.”

“…….”

솔라와 일행들은 쉬지 않고 걸으면서 프리츠의 증언에 집중했다.

“문제는 그 괴물이 완성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유리아의 몸을 차지한 악마가 온전히 성장하면…… 그때 그 괴물과 유리아를 합친다고 했습니다!”

프리츠의 말이 대강 끝나자, 솔라는 미간을 구겼다.

‘피막으로 된 인간형 괴물? 뭐지? 원작에선 본 적도 없는 존재야. 애초에 흡혈귀 타입의 악마는 처음이군. 완성된 세계수 묘목에서는 키메라와 관련된 사건이 왕도에서 벌어진다고 했었지. 그것이 지금 세계에서 이렇게 변한 것인가?’

솔라의 생각이 깊어졌다.

“그런데…… 왜 그대는 멀쩡하지, 프리드리히 공자?”

한편으론 풀리지 않은 의문이 하나 있었다.

“지크문트 후작은 물론, 영지의 모두가 괴물이 되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왜 그대는 멀쩡하지?”

솔라는 여차하면 프리츠도 벨 준비를 하면서 물었고.

“……그 흑마법사가 저는 일부러 타락시키지 않고 포로로 가뒀었습니다. 마나를 다룰 줄 아는 멀쩡한 기사 하나가 공정 중에 필요하다는 이유였습니다.”

프리츠는 치욕스럽다는 듯 답했다.

“그렇게 제물이 되길 기다리면서 절망에 빠졌을 때, 아버지께서 나타나 저를 탈출시켜 주셨습니다.”

치욕을 애써 삼키는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서둘러야겠어.”

이야기를 대강 들은 로뮤가 심각한 어조로 솔라에게 말했다.

“아마 우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솔라는 후작령 방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체력을 소모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후작령에 도착했다.

“뭐야, 이 불쾌한 마나는?! 사령술도 이 정도는 아닌데…….”

도착하자마자 루나가 창백한 표정을 지었다.

“우욱……!”

더욱 예민한 엘프 로뮤는 인상을 쓰면서 소리 없이 헛구역질을 할 정도다.

후작령과 변경백 내곽을 가르는 경계지만 새 한 마리 주위에 보이지 않았다. 짐승과 몬스터는 물론 사람들까지, 저 영지에서 풍기는 불길함에 발걸음을 돌렸기 때문이다.

“뭔가 무서워요!”

쥴리아가 솔라의 품에 안기다시피 하면서 벌벌 떨었다.

덜덜덜덜덜.

프리츠는 쥴리아보다 더 두려움에 질렸다. 그는 트라우마라도 재발했는지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몸을 더욱 심하게 떨었다.

“…….”

오직 솔라만이 붉은 기운이 은은한 안개 낀 후작령을 말없이 바라볼 뿐이다.

후작령에 진입했지만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기를 든 병사는커녕, 쟁기를 든 농부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생기도 느껴지지가 않아.”

로뮤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주위를 살피며 중얼거린다.

영지 전체에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부리는 정령들 또한 겁을 먹은 듯 잘 응하려 들지 않았다.

실제로 영지에는 사람은 물론 들짐승조차 보이지 않았다.

개미를 비롯한 벌레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인공적으로 조성한 세상 같았다.

붉은 기운의 안개가 점점 짙어졌고, 안개 때문인지 사방이 너무나 습했다. 어찌나 습한지 이 늦가을의 루한 땅에서 더위를 느낄 정도였다.

이 안개를 제외하면 솔라 일행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걸을수록 느껴지는 불길함과 찝찝함만이 일행의 발을 주춤하게 만들 뿐이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저택에 가까워질수록 붉은 기운의 안개는 점점 짙어졌고, 이제는 가까이 있는 일행의 모습 정도만 간신히 볼 수 있는 지경이 되었다.

공기가 너무 습해 대기를 헤엄치는 기분이 들었다.

히이잉!

안개가 이렇게까지 짙어지자, 제일 먼저 흑마 맨카가 겁을 집어먹으며 멈춰 섰다.

“워워~ 엘시니에!”

로뮤가 요정어까지 써 가며 달랬지만, 녀석은 투레질만 할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용감한 말의 눈동자에 겁이라는 본능이 서렸다.

장창을 쭉 빼 든 제국군 보병진에게도 겁 없이 돌진하던 녀석이 처음으로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크르를.

뒤이어 솔라가 탄 드레이크 시즈 또한 발을 멈췄다.

쿠욱! 쿡!

시즈는 맨카처럼 겁을 집어먹진 않았으나 더 이상 가기 싫다는 뜻을 분명히 보였다.

“내리지.”

상황을 본 솔라는 시즈에게서 내렸다.

로뮤도 말에서 내렸고, 오직 루나만이 빗자루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 상태였다.

“루나!”

솔라는 하늘 높이 ‘레이더’ 역할을 위해 날아오른 동생을 불렀다.

그러는 중에도 붉은빛의 안개가 점점 짙어졌다.

“하나도 안 보여!”

잠시 후 루나가 빗자루를 타고 내려오며 보고한다.

“빗자루는 더 이상 타지 않아도 돼. 지금은 최대한 주위를 밝혀.”

화아앗.

솔라는 회색 마검 제노사이드를 빼 들고는 태양 이능을 펼쳤다.

새벽의 등불이 회색 검신을 통해 밝게 빛을 냈고, 짙은 안개를 밀어냈다.

파아앗!

파앗!

로뮤와 루나 또한 각자의 정령술과 마법을 펼쳐 사방으로 빛을 쏘았다.

“저도 할 수 있어요!”

어른들이 나서자, 쥴리아가 고사리 같은 손을 만세하듯 펼치며 불의 정령을 소환했다.

화르르륵!

그녀를 수호하는 불의 정령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더니 불쾌할 정도로 습한 대기를 말린다.

마법을 모르는 프리츠만이 검을 든 양팔을 잘게 떨 뿐이다.

네 사람의 노력으로 사방을 에워싼 안개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개가 옅어짐과 동시에 일행 앞에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꺄아아아악!!”

쥴리아가 제일 먼저 아이다운 비명을 질렀다.

“……맙소사.”

“이게 대체 뭐야……?”

뒤이어 어른들도 탄식을 내뱉었다.

“끔찍하군.”

“…….”

매우 충격적인 저택의 모습에 솔라와 일행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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