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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14화 (114/212)

제114화

#114.

문라이트 후작가의 저택은 온통 붉었다. 벽부터 지붕, 정원까지 전부 붉었는데 자세히 보니 굳은 피로 덕지덕지 칠해진 상태였다.

저택 주위의 땅은 발목이 완전히 잠길 정도로 피가 고여 있었고, 네 사람이 펼친 불과 빛의 마법으로도 저택에서 나는 혈향 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아까의 분홍빛 안개가 무지개 동산처럼 느껴질 정도로, 피에 젖은 저택은 기괴했다.

저택 정문에서 좀 떨어진 한적한 곳에 시즈와 맨카를 뒀다. 굳이 묶거나 하진 않았다. 둘 다 똑똑한 영물들이기 때문이다. 정 사라져도 하이엘프인 로뮤가 있다.

그렇게 탈것들을 안전한 곳에 두고서 일행은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누구보다 저택에 대해 잘 아는 프리츠가 안내를 맡았다.

“이건……?!”

일행은 저택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저택은 단순히 피로 범벅된 것이 아니었다.

정문을 열고 들어서니 정원의 붉은 수목들 또한 하나같이 기괴했다. 단순히 피로 물든 수풀이 아니다.

사람과 가축, 몬스터 등등 온갖 다양한 생명체들의 잔해가 그곳 정원에 있었다. 뼈와 살과 가죽과 근육, 내장 등등, 온갖 역겨운 것들로 구성된 고기 정원이었다.

아마 영지의 실종된 사람들과 동물들일 것이다. 높은 확률로.

그리고 그렇게 조성된 생체 덩어리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무엇보다.

끄으으으으.

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흐어어어엉.

온갖 흐느낌과 비명 소리가 저 꿈틀거리는 정원에서 흘러나왔다. 남자, 여자, 아기, 노인, 동물 할 것 없이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의 신음이 은은하게 울렸다.

눈앞의 모든 것이 믿기 힘들 정도로 역했다.

“키메라……?”

“맞아……. 마나 배열이 볼카에서 본 거랑 같아.”

솔라와 루나는 볼카에서 보았던 그 키메라 부대가 떠올랐다.

그는 뒤이어 쥴리아가 걱정됐다.

‘저택 밖에 두고 왔어야 했나?’

전생의 유무를 떠나서 아직 어린아이에게 보여 줄 장면이 아니다.

“쥴리아?”

그는 시선을 아래로 돌리며 쥴리아를 찾았다.

“네! 전 괜찮아요, 아빠!”

걱정과 달리 쥴리아는 생각했던 것처럼 경기를 일으키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잔뜩 겁먹고 긴장한 눈치로 솔라의 바지춤을 꽉 잡고 있을 뿐이다.

솔라는 쥴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저택을 응시했다.

변경백의 저택치고는 검소하다. 하지만 검소하다는 것이지, 작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명색이 대저택이다. 정원에서 저택 본건물로 가는 데에만 빠른 걸음으로도 제법 거리가 되었다.

‘서둘러야겠군.’

하지만 단순한 걸음으로 갈 정도로 상황이 여유롭진 않았다.

고오오오오오.

저택 본건물의 깊은 중심부에서 엄청나게 거대한 에너지가 응축되고 있었다.

“쥴리아, 꽉 잡으렴.”

솔라는 바지춤을 잡고 있던 아이를 들어 품에 안았다.

“다들 뛸 준비해.”

이어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솔라의 지시에 루나와 로뮤, 프리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도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아마도 그 괴물이 거의 완성된 모양입니다.”

저택 중심부로 고이고 있는 에너지는 엄청났다. 마치 폭풍의 눈처럼 고요하지만 무겁고 깊고 강렬하다. 어찌나 강력한지 제법 거리가 있는 정원에서도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이대로 멍하니 있다간 뭔가 엄청난 것이 태어날 것만 같았다.

솔라와 일행은 서두르기로 했다.

루나는 빗자루에 다시 올라탔고, 로뮤와 솔라, 프리츠는 각자의 다리에 마나를 집중했다.

“그나저나 저것들은 어쩌지?”

그렇게 막 본건물로 질주하려는데 루나가 불쑥 정원을 가리키며 물었다.

키메라로 이뤄진 생체정원은 당장이라도 솔라와 일행을 덮칠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정원이 너무 넓어. 한번 싸우기 시작하면 꽤 오래 발목을 잡을 거야.”

솔라는 찝찝함을 뒤로하며 말했다.

“무시해.”

뒤가 불안하긴 하지만 곧 태어날 저택의 괴물보단 덜 불길했다.

꿈틀!

촤아아아악.

키아아아악!!

하지만 이러한 솔라의 결정을 듣기라도 했는지, 생육의 정원이 꿈틀거리는 걸 넘어서 크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출렁이던 덩어리들은 무수한 뼈 창과 근육 촉수가 되어 살의를 가지고 움직였다.

휘이이익!! 촤아아앗!!

어찌나 많은지 해일처럼 솔라와 일행을 포위한다.

“어쩐지 이럴 거 같았어!”

솔라와 로뮤보다 루나가 먼저 움직였다.

[가련한 육신의 잔해들아, 죽어서도 변형되어서도 본질은 잊지 말거라!]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문을 외우더니 마법을 펼쳤다.

“사령술사 앞에서 시체로 장난질을 쳐?!”

사령술사의 호통.

파드드득!!

덮쳐 오는 뼈와 육질로 된 파도가 멈칫한다.

“게다가 슬슬 해도 지고 있는데?”

파스스스슷.

조소를 짓는 루나의 주위로 음영술이 스산히 꿈틀댄다.

스릉.

로뮤가 검을 뽑으면서 루나 곁에 붙는다. 그녀가 마법을 펼치는 동안 호위를 할 각오다.

퐈아아악!!

루나의 사령술에 멈칫하던 붉은 생체 파도가 잘게 갈라졌다.

꾸욱, 꾸익, 꾸익.

잘게 갈라지더니 다시 꾸역꾸역거리면서 순식간에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로 뭉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사람의 형상이다. 골반을 시작으로 거대한 상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놈의 하체는 넓은 정원이었다. 생육의 정원이 녀석의 하체이자 피통인 셈이다.

“그 잘난 키메라의 끝이 겨우 플레시 골렘이야?”

이를 본 루나가 코웃음을 친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령술의 시체 골렘과는 많이 다른 것 같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의 말에 반박할 마법 지식을 지닌 자는 없었다.

루나는 이 정원에 있는 시체들을 사령술로 다루는 것을 깔끔히 포기했다. 더 이상 그녀의 사령술에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로사리오의 보주를 손에 쥐고는 음영술을 펼쳤다.

우우우웅.

흑발 흑안이 금발 금안으로 바뀌고, 저녁을 맞이한 대지에서 거대한 그림자 장벽이 세워진다.

스사아아아앗!

이를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는지, 중간중간 정원 곳곳에서 뼈로 된 창과 힘줄로 된 촉수가 루나를 노린다.

“어딜!”

서거걱, 푸욱!

하지만 루나에게 가까이 오기도 전에 하이엘프의 민첩하고 예리한 검격에 차단될 뿐이다.

“어서 가, 로안! 여긴 나와 루나가 맡지.”

로뮤가 루나를 호위하며 솔라에게 외쳤다.

“금방 오지.”

솔라는 둘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쥴리아와 프리츠를 데리고 저택 안으로 달렸다.

솔라와 프리츠는 전력 질주하여 저택 건물 안에 들어섰다.

다행히도 저택 건물 내부는 프리츠의 기억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정원처럼 끔찍한 생체 덩어리가 벽과 천장, 바닥을 장식하지도 않았다. 그저 소름 끼치도록 적막할 뿐이다.

“관이 있는 만찬장은 저깁니다!”

프리츠의 안내를 받으며 솔라시우스는 저택 내부를 질주했다.

저택 안은 어두웠다. 하지만 새벽의 등불을 펼친 솔라의 이능으로 복도 끝까지 선명히 볼 수 있었다.

“?!”

“!!”

그렇게 질주하던 복도 끝, 일행의 시야에 분홍 머리에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얼핏 보였다.

“유리아!”

이를 본 프리츠가 제일 먼저 여인의 이름을 불렀다.

“유리아.”

솔라 또한 그녀를 불렀다.

유리아는 프리츠가 부를 때는 반응도 안 하다가, 솔라가 자신을 부르니까 그제야 멈칫한다.

멈칫했던 유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솔라를 응시했다.

무표정했던 그녀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깊게 그어졌다.

“역시…… 늦은 건가.”

동생의 조소를 본 프리츠가 비탄에 잠긴다.

“……?”

반면 솔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보기에 유리아는 마냥 웃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진한 조소를 머금은 그녀의 입가와 달리, 진분홍색으로 변한 유리아의 두 눈은 울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유리아, 멈춰!”

“유리아! 로안 경이 왔다! 네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로안 경이!”

솔라와 프리츠가 그런 유리아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유리아는 닿을 듯 말 듯 거리를 벌리더니, 어느 순간 유령처럼 스윽 하고 사라졌다.

그렇게 유리아가 사라지자마자, 갑자기 저택 안의 모든 문이 한 번에 벌컥! 하고 부서지듯 열렸다.

크으으으으.

부서지듯 열린 문에서 붉은 안광에 송곳니가 인상적인 사람들이 유리아 대신 모습을 드러냈다.

“목이 말라. 목이…….”

“마실 게 필요해……. 마실 것이!”

그들은 갈증으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솔라와 쥴리아, 프리츠를 포위했다.

“…….”

저들 중 유독 강렬한 기운을 풍기는 중년 남성이 중심에 서서 일행을 묵묵히 응시 중이다.

붉은 안광이 누구보다도 빛났고 몸에서 나는 기백 또한 다른 흡혈귀를 압도했다. 하지만 표정은 갈증에 반쯤 미쳐 있는 이들과 달리 무표정 그 자체였다.

‘지크문트 후작.’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다. 후작을 본 솔라시우스는 안색을 굳혔다.

“어머니! 아돌프! 알버트! ……아버지!”

포위한 이들 중에서 부디 없었으면 했던 이들이 모두 보이자, 프리드리히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크흐으윽……!”

프리츠는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어쩌다가 우리 영광스러운 문라이트가 이렇게 되었나! 어쩌다가!

“죽이셔도 됩니다, 황자 전하…….”

흐느끼며 통곡하던 그가 힘없이 솔라에게 말했다.

“부디…… 편안한 안식을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저들 중 한 명도 제대로 죽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옆에 있는 남자는 다르다. 부디 저들에게 편안한 안식을 주길, 복수를 해 주길.

“부탁드립니다. 빛의 적통이여!”

프리츠는 솔라에게 빌듯이 부탁했다.

처억.

그런 프리츠의 어깨에 솔라가 손을 올렸다.

“포기하지 마.”

그리고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

프리츠가 울던 것도 멈추고는 멍하니 금발 금안의 방랑 기사를 응시한다.

저벅, 저벅, 저벅.

그러는 중에도 포위망이 좁혀 온다. 넓은 저택이었지만 옛 기사와 병사, 하인, 하녀들이 총출동하니 비좁게 느껴졌다.

그들은 무기를 들지 않았다. 지나치게 길고 뾰족해진 손톱과 송곳니가 저들의 무기일 뿐이다.

오직 지크문트만이 줄곧 사용해 왔던 마검 스누마누스를 말없이 들고 있을 뿐이다.

“쥴리아.”

솔라는 품에 안고 있던 어린 소녀를 불렀다.

“네, 아빠!”

부름에 쥴리아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고, 곧바로 몸속에서 마나를 이끌었다.

화르르릇!

어린아이의 전신에 갑자기 불이 일기 시작했고, 쥴리아는 순식간에 불의 형상을 한 소녀가 되었다.

“!!”

여기까지 오면서 쥴리아에 대해 들은 게 있는 프리츠는 얼떨떨한 눈으로 거리를 조금 벌렸다.

거리를 벌리지 않으면 쥴리아가 뿜어내는 화염에 화상을 입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뜨겁지 않아……?’

하지만 거리를 벌리면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솔라는 불덩어리가 된 쥴리아를 여전히 품에 안고 있었다. 전혀 뜨겁지 않다는 듯이.

“여기까지 오면서 연습했던 거, 할 수 있겠니?”

그는 품에 안은 쥴리아를 향해 속삭이듯 물었다.

[응!]

불의 정령과 하나가 된 아이는 정신파로 답했다.

“그래.”

솔라는 쥴리아의 말을 듣고는 손을 뻗었다.

파아아아아앗.

그러자 쥴리아의 몸이 기다란 검 모양으로 변했고, 솔라가 뻗은 손바닥에 안착했다.

그는 빛과 불이 골고루 섞인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오랜만이군. 기억나니?”

솔라가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으로 쥴리아에게 물었다.

[그게…… 기억이 날 듯 말 듯해, 아빠.]

쥴리아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런가?”

솔라는 살짝 아쉽다는 눈을 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그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무수한 붉은 안광이 솔라와 쥴리아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하지만 분명한 두려움도 담겨 있었다.

“정화하자. 타락하고 오염된 모든 것을.”

지구에서처럼!

[응!]

둘은 적을 향해 돌진했고, 어떤 망설임 없이 빛과 불로 이뤄진 검을 휘둘렀다. 채찍처럼.

지구에서 무수한 이를 구원한 정화의 성검, 불살검 ‘세인트 아스트라’가 재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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