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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15화 (115/212)

제115화

#115.

지구를 침공한 11차원의 괴수들은 단순히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마계의 피조물 아니랄까 봐 교활하고 비겁했다.

이 중에는 당연히 가족이나 형제를 납치해 인형처럼 조종하는 경우도 있었다. 방금 전까지 등을 맞대고 싸우던 아군이 순식간에 타락해 적으로 돌변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바로 지금 문라이트 후작가처럼 말이다.

그럴 때마다 솔라는 바쁘게 검을 휘둘러야 했다.

모든 사악한 것을 정화시키는 성검, 그러면서 무고한 이의 목숨을 해하지 않는 불살의 검.

사람들은 그의 성검을 ‘세인트 아스트라’라고 불렀다.

솔라는 말없이 오른손에 쥔 빛과 불의 검을 보았다.

쥴리아, 전생의 이름은 ‘아스트라’로 지구에서 태광휘가 직접 지어 준 이름이었다.

처음 만났던 때는 그가 각성하고 네 번째 전투를 치렀을 때였다. 숫자를 세는 것조차 잃어버렸을 정도로 많은 전투를 치렀던 대전쟁이지, 쥴리아의 전생 아스트라를 얻었던 순간은 똑똑히 기억한다.

이 아이의 전생은 정령이었다. 당시 마왕군에게 사로잡혀 고문받고 있던 불의 정령을 구했었다. 처음에는 작은 불 모양의 도마뱀처럼 생겼던 것이, 유독 태광휘를 잘 따라서 결국 반려 정령 삼아 데리고 다녔었다.

그렇게 몇 년을 함께 전투를 치렀고, 태광휘가 성장하듯이 녀석도 성장했었다. 불의 정령이었던 녀석은 태광휘의 영향을 받아 빛의 속성도 겸하게 되었다.

최상급 정령이 되었을 때에는 붉은 머리에 금색 눈을 한 중성적인 아이의 모습으로 그와 함께 지냈었다.

하지만 끝까지 함께하진 못했다.

곧 정령왕이 될지 모른다고 자신에게 자랑하듯 고백한 바로 다음 날, 아스트라는 마왕의 마지막 사천왕인 ‘빙하의 여제’와 싸우다가 결국 부러져 버렸다.

당시 태광휘는 그 아이의 죽음에 큰 상실감과 충격을 받았었다.

‘이렇게 재회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영영 이별이었을 줄 알았던 아이는 이렇게 다른 세상에서 태어났고,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다.

익숙한 그립감, 반가운 온기와 냄새.

괜히 그의 얼굴에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가 그려졌다.

미소가 그려짐과 동시에 들고 있던 성검의 궤적도 그려졌다.

번쩍!

피로 깊게 물든 저택 안에서 광휘가 터졌다.

빛과 불이 고르게 섞인 검이, 솔라의 손에 들려 정화의 열을 내뿜는다.

신기했다.

그가 검을 횡으로 쭉 저을 때마다 번쩍하는 빛의 줄기가 레이저처럼 그어졌다. 세게 검을 휘두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빛의 레이저에 어떻게든 몸이 닿은 적들은 인체 자연발화라도 한 것처럼 전신이 불에 휩싸였다.

“크윽…… 끄아아악!”

“꺄아아아악!!”

불길에 휩싸이면 당연하게도 비명을 지른다.

고통의 비명일까? 두려움의 비명일까? 경악의 비명일까?

“여왕이시여……!”

바로 옆에서 이를 목도하는 프리츠는 셋 다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다.

빛과 불에 휩싸인 사람들은 비명만 지를 뿐 죽지 않았다.

저 정도 불길이면 금방 재가 되어 무너져야 했음에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저 발을 동동 구르며 고통스러워할 뿐이다.

“막아라!”

“크하아아압!”

선두가 전투 불능이 되자 뒤쪽의 적들이 주춤거리며 달려든다.

번쩍!

이에, 다시 한번 솔라의 팔이 움직인다.

검에서 정화의 빛줄기가 그어진다.

“꺄아아아아악!!”

마찬가지로 불길과 비명이 번졌다.

이제 저택은 어둡지 않았다. 대낮보다 더 밝았다.

[--!!]

뒤이어 불이 붙은 사람들의 몸에서 인간의 발성으로 표현할 수 없는 비명이 터졌다.

바로 그들의 몸속에 기생하는 악마의 비명이다.

솔라는 간만에 들어 본 정겨운 소리에 “오랜만이군”이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또각.

그가 신은 부츠가 저택의 바닥을 노크한다. 전투 개시 후 첫 전진이다.

걸으면서 주위를 살폈다.

저택 안의 모두의 몸에는 불이 붙었고, 정화되는 고통으로 감히 싸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는 후작 부인과 지크문트의 두 아들도 마찬가지였고, 문라이트가의 하인, 하녀, 가신, 병사, 기사에게도 평등하게 다가온 구원이다.

하지만 솔라는 불살검을 거두지 않았다.

“쥴리아.”

[힘…… 힘들어…….]

“조금만 더.”

[응…… 아빠……!]

오히려 쥴리아에게 좀 더 버틸 것을 요구했다.

왜냐하면…….

부우우웅, 콰아아앙!

강렬한 검격이 솔라를 덮쳤다. 이어서 한 중년 남성의 고함이 더해졌다.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지크문트 폰 문라이트 후작이 마검 스누마누스를 휘두르며 솔라에게 달려들었다.

저택 안에 있는 이들 중 유일하게 정화에 버티는 존재.

스릉, 콰앙!

솔라는 등에 차고 있던 회색 마검 제노사이드를 급히 뽑아 스누마누스를 받아쳤다.

그의 양손에 검이 각각 들렸다. 회색 마검의 회색 검신은 슬슬 일출로 물들고 있었고, 반대편 손에 들린 성검은 아까보단 지친 불길과 빛을 뿜었다.

‘서둘러야겠어.’

솔라는 쥴리아이자 성검인 ‘세인트 아스트라’의 상태를 잘 알았다.

지금 이 아이는 지구에서처럼 몇 날 며칠을 주야장천 함께 싸울 정도로 성장하지 않았다.

처커거거걱, 기기기긱!

검신과 검신이 비벼 대는 쇳소리가 오랜만에 들렸다.

“아아아아악!!”

후작 지크문트의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목소리가 음표를 추가했다.

처억, 화아악!

솔라는 왼손의 회색 마검으로 후작의 마검을 상대하는 한편, 오른손에 쥔 정화의 성검을 움직였다.

지크문트의 몸은 불타지 않았다.

파아아아앗.

소드 마스터에 흡혈화까지 되어서 그런지 정화의 불길에 면역이 강하다.

퍼억.

솔라가 지크문트의 옆구리에 세인트 아스트라를 찔러넣었지만, 쥴리아의 검신은 마치 고무로 된 장난감 검이라도 된 것처럼 후작의 몸을 뚫지 못했다.

‘으음…….’

태양샘 반지를 꼈어야 했나?

솔라는 고심했다.

불살의 검에 자신의 태양 이능까지 전부 써야 하는 상황. 여기서 태양샘 반지를 끼면 마검 윈테이라의 냉기가 급격히 소모된다.

당장 지금만 봐도 그렇다. 불살검과 태양검 그리고 새벽의 등불을 풀로 사용했을 뿐인데도 윈테이라의 냉기가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궁극기 ‘태양의 후예’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다.

그래서 일부러 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냉기의 재충전을 도와줄 루시푸르네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설원의 가호가 무너진 작금에 윈테이라의 냉기는 솔라에겐 생명력 그 자체였다.

하지만 눈앞의 지크문트를 보니 살짝 후회가 된다.

그렇다고 지금 태양샘 반지를 끼자니 그의 양손이 바쁘다.

“…….”

솔라의 금색 눈동자가 지크문트 후작의 푸른 눈동자를 응시했다.

후작의 눈은 울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하지만 그의 입과 미간은 흉포하게 일그러져 있다. 짙은 증오와 살의를 담았다.

바스스스슷.

오른손에 들고 있던 성검의 빛이 점점 옅어진다. 시간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뭔가 틈을 만들면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솔라가 고민하고 있을 때.

“아버지! 저 프리츠입니다, 아버지!!”

옆에서 줄곧 멍하니 있던 프리츠가 아버지를 부른다. 애타게.

“제발…… 제발…… 정신 차리세요! 아버지!”

“……!”

아들의 애원 섞인 외침.

“후작, 정신 차리시오.”

솔라시우스도 가세했다. 후작을 향한 솔라의 말투는 과거와 달리 존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유리아를…… 구해야 하지 않겠소?”

솔라는 지크문트의 울고 있는 눈동자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

그 말이 결정적이었는지, 지크문트의 방벽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크흑…… 크흐으윽…….”

후작의 울고 있던 눈동자는 번지고 번져, 그의 얼굴로 온통 울음이 번졌고 틈을 만들었다.

파아앗!

솔라시우스는 이 찰나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아끼고 아껴 뒀던 궁극기 ‘태양의 후예’가 발현되었고, 윈테이라의 냉기가 급격히 감소됨을 느꼈다.

하지만.

[!!]

덕분에 쥴리아는 처음과 같은 정화의 빛을 낼 수 있었다.

푸우욱!

불살의 성검이 그대로 후작의 심장을 찔렀다.

화아아아악.

그리하여 후작의 몸 또한 다른 가솔들이 그랬던 것처럼 불이 번졌다.

[--!!]

그의 몸에서 악마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투가 끝났다.

모든 전투가 끝난 건 아니다. 페이즈로 치면 중간 정도.

저택 안을 환하게 밝혔던 불길은 사그라진 지 오래.

사방에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후작가의 가솔들이 가득하다.

솔라는 자신의 품에 안겨 잠든 쥴리아를 보았다.

“으음…… 음”

아이는 이번 전투에서 무리를 많이 했는지, 깊게 잠든 상태임에도 신음을 흘렸다.

‘수인족과 가오이도 이렇게 정화했으면 좋았을 텐데.’

요정 숲에서 멸했던 수인족 전사들과 파괴왕 가오이가 생각났다. 그들 중 상당수는 어떻게 보면 무고하게 타락한 존재들이었다.

즉, 품에 안은 쥴리아를 이용해 지금처럼 정화와 구원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때의 쥴리아는 지금처럼 깊게 잠들어 있었지.

지구에서의 기억 중 일부를 각성해 소화시키는 중이었기에, 깨울 수도 없었다.

‘이들이라도 구했으니 다행이지.’

솔라는 아쉬움과 미련을 금방 접었다.

“크윽…… 으윽…….”

아래쪽에서 신음 소리가 났다. 지크문트 후작이 간절한 눈으로 솔라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말하시오, 후작.”

솔라는 그런 변경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광휘의 기사여, 고맙소.”

하대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후작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부디…… 부디…… 유리아를…….”

수척해진 귀족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런 지크문트를 프리드리히가 옆에서 간호 중이다.

프리츠는 아버지를 간호하다 멈추고는 솔라를 향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와 부탁을 동시에 지닌 인사다.

“쥴리아를 부탁하지.”

솔라는 대답 대신 품에 안은 쥴리아를 두 사람에게 건넸다.

프리츠가 가리킨 만찬장 방향으로 향하는 솔라의 표정은 무거웠다.

유리아를 구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장담은 못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방금의 전투에서 쥴리아가 전투 불능이 되었기 때문이다.

불살검이 없으면 유리아의 몸에 있는 고대의 악마를 깨끗하게 제거하지 못한다.

‘제압해야 해.’

차선의 방법은 최대한 안전하게 유리아를 제압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능할까?

그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그의 다리는 거의 날듯이 저택 복도를 질주했다.

저 앞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감돈다. 마왕에 근접한 존재가 깨어나려고 한다.

그의 모든 감각이 경고한다. 곧 괴물이 깨어날 것이다.

완성된 세계에서도, 사그라진 세계에서도 보지 못했던 존재.

대강 느껴지는 기운이 마왕과 필적했다.

거대한 나비의 날갯짓으로 인해 상상도 못 할 괴물이 탄생할 것이다.

“어쩔 수 없지.”

한숨을 내쉰 솔라는 결국 태양샘 반지를 꺼냈다.

‘상황을 봐서 하나만 끼자. 하나만.’

여차하면 한 손으로도 낄 수 있게 손바닥 안에 꽉 쥐었다.

콰아앙.

그는 몸통 박치기를 하듯 만찬장의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문이 부서지면서 열렸다.

그렇게 만찬장에 입장하자, 순백의 관이 바로 보였다.

관의 뚜껑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덜컹거렸다.

“왔구려.”

그 관의 옆에는 지하드라는 이름의 흑마법사가 비릿한 미소를 띠며 서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지.”

이윽고 자랑이라도 하듯 하얀 관을 가리킨다. 정확히는 관의 뒤쪽을.

지하드가 가리킨 관 뒤에는 핏빛 드레스를 입은 유리아가 있었다. 그녀는 사뿐사뿐 걸어 나와 솔라 앞에 섰다.

‘줄?’

유리아의 심장이 있는 가슴과 하얀 관이 핏줄처럼 생긴 붉은 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만찬장 사방에서 거대한 심장 박동 소리가 공명이라도 하듯 울렸다. 박동의 근원지는 붉은 핏줄이 박힌 유리아의 심장이다.

“……유리아.”

솔라는 깊은 금색 눈동자로 분홍 머리의 여인을 불렀다.

씨익.

유리아는 그런 솔라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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