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화
#118.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부자 관계이면서 사제 관계였다.
흑마법사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스승으로 둔 아들,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제발 살육을 멈춰 주세요, 아버지!”
“이건 정당한 살육이다. 봐라! 설원의 가호 중심부에서도 나는 멀쩡하다!”
“편법을 이용한 살육을 정당화하시는 겁니까?!”
“편법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저 통나무들은 무고하지 않다. 이 나라에서 살육을 제외한 모든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다.”
“그걸 왜 아버지께서 심판하십니까?”
정당하지 못한 살육은 징벌받는다. 반대로 말하면 정당한 살육은 용서된다는 뜻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 허점을 이용했다.
범죄자들을 납치하거나 감옥에서 뒷돈을 줘서 사 왔다.
그렇게 구한 사람을 지하드는 ‘통나무’라고 불렀다. 그는 그들에게 약을 투여했다.
극도로 포악해진 범죄자는 마법사를 공격했다.
설원의 정당방위는 폭넓었고, 아버지는 그렇게 해서 제압한 범죄자를 실험으로 이용했다.
“하다못해 흉악범이면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 중에 흉악범이 얼마나 있습니까?”
저 철창 안에 퀭한 눈으로 앉아 있는 이들 중 대부분은 빵 하나 훔쳤다가 잡힌 사람들이었다.
시몬의 눈에 열 살도 안 돼 보이는 어린 소년이 걸렸다. 철창 안에서 생기 없는 취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 중인 아이, 소매치기를 하다가 붙잡혔던 아이.
오늘, 아버지는 이 아이를 사 와서 실험체로 쓰려 한다.
“적당히 하거라, 시몬! 오늘따라 유독 시끄럽구나.”
지하드는 아들의 외침에 미간을 구길 뿐이다.
“이건 이 나라의 재상이자 마녀회의 수장이 암묵적으로 허락한 거다! 우리 같은 흑마법사들이 이토록 안전하고 평화롭게 마도를 연구할 수 있는 땅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 제국도 이 정도는 아니야!”
흔히 제국을 흑마법의 천국으로 인식하지만 정작 흑마법사나 사령술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제국은 달콤한 향기로 유혹했다가 잡아먹는 파리지옥 같은 곳이었으니까.
“저는 관두겠습니다, 마도의 길을! 특히나 이 더러운 흑마법의 길을!”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지친 아들은 큰 결심한 눈으로 선언했다.
“평생 마법만을 수행한 네놈이? 하! 그래! 마법을 버린다면 뭐 해 먹고살 거냐?”
“사제가 되겠습니다. 교단으로 떠날 겁니다. 그래서 저와 아버지가 지금까지 했던 악행들을 평생 속죄하겠습니다!”
“흑마법사가 사제가 되겠다고?! 크하하하하핫!”
지하드는 광소했다.
“그래, 너는 예전부터 이상할 정도로 성당을 좋아했지. 마법서보다 경전을 더 즐겨 읽었고.”
아버지이자 스승의 눈에 실망과 분노가 담겼다.
“그래서 교단의 영향이 약한 루한에 온 것이거늘…….”
20초 정도 적막이 흘렀다.
“허락하지 않겠다! 근신하고 또 근신해!”
지하드는 작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따르지 않을 겁니다!”
“감히! 네놈이 매를 맞아야 정신 차리겠구나!”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거역했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폭력으로 대했다.
그리고 사달이 났다.
“안 돼에에에에!!”
두 사람은 언쟁에서 폭력으로, 폭력에서 마법으로 싸움을 키웠고,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아들은 마법을 전혀 쓰지 않고 아버지의 마법에 대항했다.
“흐어어어어엉!! 시몬아! 내 아들! 내 제자!!”
지하드는 자신의 마법에 심장이 뚫려 즉사한 시몬의 시체를 껴안고 아이처럼 울었다.
“살려야 해……. 살려야 해……. 흐으으으.”
아들의 무겁고 차가운 육신을 끌어안고 하루 종일 통곡한 아비의 눈에 또 다른 광기가 흘렀다고 한다.
* * *
“……그렇게 된 겁니다.”
별의 저주를 진정시키면서, 시몬이 쓸쓸함이 담긴 눈으로 자신의 과거사를 얘기했다.
‘그럼, 원작과 완성된 세계에서는 그림자 핵이 유리아의 역할을 대신한 것인가?’
시몬의 이야기를 들은 솔라는 서로 다른 세계선의 전개를 떠올렸다.
‘성자 시몬에 대한 소식이 유독 없던 이유가 이거였군.’
원작에서는 죽음의 대마녀가 왕도를 침략했었다. 동시에 시몬이라는 성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솔라는 시몬과 힘을 합쳐 죽음의 대마녀 리나 리버스를 척살했다.
그 세계선에서의 지하드는 끝내 유리아에게 알파를 심지 못했고, 결국 악황후 옥타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옥타나는 죽음의 대마녀 리나 리버스를 지하드에게 보내 시몬의 부활을 도왔을 테고.
하지만 그렇게 부활한 시몬은 모두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행동해 버렸다.
‘완성된 세계수 속에서는 이자벨과 루나 대신 지하드에게 바로 그림자 핵을 건넸겠군.’
이제야 앞뒤가 맞았다.
다른 세계선에서의 전개를 대강 추측한 솔라는 시몬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버지를 죽인 거…… 후회하나?”
“전혀요.”
솔라의 물음에 시몬은 찰나의 고민도 없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시몬의 손은 여전히 신성력을 펼쳐 솔라의 저주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죽음이야말로 아버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살아 계실수록 죄를 쌓을 테니까요.”
“교단의 경전에는 생전의 죗값을 죽어서 치른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둘은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마치 전부터 알고 지내 온 친구처럼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나눴다.
“이 정도면 활동하는 데 무리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가급적 몸속의 마나를 사용하지 마십시오. 다시 저주가 발동되면…… 그때는 저도 손을 쓰지 못합니다.”
대강 치료가 끝나자 시몬이 엄중한 어조로 경고한다.
과연 그게 될까? 솔라는 대답 대신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저택 바깥에 키메라로 이뤄진 정원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저지른 또 다른 죄악 말이군요.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버지가 숨을 거두면서 그 또한 무너졌으니까요.”
“다행이군.”
시몬의 말에 솔라는 안심했다.
‘그러고 보니…… 시몬 정도 되는 능력이면 마왕과 충분히 싸워 볼 만했을 텐데?’
그러다가 문득 원작에서의 시몬의 행적에 의문이 갔다.
‘원작에서 시몬은 죽음의 대마녀를 함께 무찌른 후 모습을 감췄어. 이에 대한 설명도 딱히 없었고.’
원작뿐만 아니라, 완성된 세계에서도 시몬의 행적은 비슷했다.
시몬은 끝내 마왕과의 싸움에서 활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악이 다가오는군요.”
시몬의 굳은 목소리가 솔라의 상념을 깨웠다.
* * *
저택 건물 바깥, 징그러운 생육으로 출렁거리던 정원이 문득 멈췄다.
그 정원의 총의이기도 한 키메라 거인 또한 몸을 멈췄다.
“……어?!”
그림자 방벽으로 키메라 거인을 상대하던 루나가 눈을 크게 떴다.
“로안이 해냈군.”
키메라 정원의 촉수와 뼈 창으로부터 루나의 측면을 경호하던 로뮤가 말했다.
쿠르르르륽, 쿠우우우, 철퍽, 퍼억.
저주받은 거인과 정원이 무너져 내렸다. 살덩어리가 땅에 처박힌다. 살집 터지는 거북한 소리가 사방에서 계속해서 들렸다.
핏물이 흥건한 저택 주위가 뼈와 내장, 근육과 살로 뒤범벅되었다.
분명 끔찍한 장면이다. 심약한 사람이라면 토악질을 하거나 기절했을 광경.
“후우우…….”
하지만 이를 본 루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슬아슬했어, 마력이.’
저 키메라는 매우 강력했다. 사령술 없는 음영술만으로 상대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주륵.
루나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로뮤가 볼까 싶어 급히 손으로 닦았다.
“위험했어. 조금만 늦었어도 뚫렸을 거야.”
로뮤 또한 가쁜 숨을 내쉬면서 안도를 표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무너지고 있는 시체들의 산에 있었다.
덜덜덜덜.
그도 루나가 볼까 봐 검을 든 팔의 경련을 숨겼다.
“응! 아까부터 저택이 무너질 것처럼 난리더니 무사히 잘 해결한 모양이야. 유리아 언니는 괜찮으려나? 무사해야 할 텐데…….”
“로안뿐만 아니라 쥴리아도 함께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두 사람의 표정이 밝다. 지쳤지만 뿌듯함이 동시에 솟았다.
히이이잉!
키에에에엑.
그런데 그때, 저택 정문 쪽에서 익숙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맨카?”
“시즈도 있어!”
위험할까 봐 저택 입구서 멀리 두었던 붉은색 드레이크와 검은색 말이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시즈와 맨카의 얼굴을 본 로뮤가 내려놓았던 검을 다시 들었다.
“어쩐지 쉽게 끝난다 했어!”
루나 또한 가라앉혔던 음영술을 준비했다.
‘다행히 이제 사령술도 펼칠 수 있어.’
여차하면 사령술까지 펼칠 각오도 마쳤다.
히이이잉!
키엥, 키에에에엑!!
두 사람을 향해 달려오는 두 영물의 얼굴에는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공포’가 묻어 있었다.
“엘 스르니아? 맨카, 시즈.”
로뮤가 겁먹고 달려온 두 영물을 요정어로 달래며 이유를 물었다.
“로뮤 오라버니!”
두 영물에게서 답을 들을 필요도 없이 루나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어서 솔라 오라버니를 불러와! 어서! 내가 최대한 버티고 있을 테니까!”
루나가 어깨를 떨면서 로뮤를 재촉한다.
로뮤는 루나의 시선이 향한 곳을 자연스레 보았고, 하이엘프의 높은 시력으로 정문 쪽에 누가 서 있는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암흑대공.”
검은 실루엣뿐이지만, 두 사람은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 * *
암흑대공 둠은 저택으로 천천히 걷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으음…….”
그의 닫힌 입에서 부정에 가까운 소리가 나왔다.
도살자 대공의 시선은 저택 깊숙한 곳에 꽂혀 있었다.
입구에 벌벌 떨고 있는 두 사람과 두 영물은 시선조차 가지 않는다. 오직 저택 깊숙이 있는 두 존재가 그의 신경을 잡았다.
하나는 자신의 숙적이었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숙적이었다.
“이상하군. 이 세계선에서도 저런단 말인가?”
둠 또한 악황제 세피로스로부터 사그라진 세계선의 이야기를 대강 들었다.
그리고 아주 강력한, 마왕과 맞먹는 존재에 대해서도 전해 들었다.
그는 악황제로부터 ‘시몬’이라는 존재를 새로운 사천왕으로 영입해 오라는 명을 받았다. 솔라에게 감화되어 포섭되기 전에 말이다.
하지만 늦은 모양이다. 애초에 일찍 왔었어도 과연 포섭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대공 각하, 보고드립니다.]
그의 머릿속으로 수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텔레파시가 온 하늘을 향해 둠의 시선이 움직였다.
쿠오오오!
하늘에는 무수한 제국군이 창공을 날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룡이라고 불리는 와이번을 타고 있었다.
족히 500은 되어 보이는 전력, 제국에서 황궁을 수호하는 정예 중에 최정예, 유일하게 암흑 군단의 암흑 기사단을 능가하는 드래곤나이트들이다.
[문라이트 후작령으로 저항군 무리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드래곤나이트 단장이 텔레파시로 적의 증원을 알렸다.
둠은 잠시 저택을 바라보았고 얼마 후 하늘을 향해 손짓했다.
쿠오오오오!
그러자 유독 거대한 검은색 와이번 한 마리가 둠 바로 앞에 착륙했다.
[기수를 돌려라. 작전을 변경한다.]
와이번에 오른 둠은 순식간에 고공으로 솟아오르며 텔레파시로 명했다.
[목적지는 루한의 왕궁이다. 여왕 루시푸르네의 목을 딴다.]
둠의 명령에 비룡을 탄 제국 기사들이 고개를 숙이며 존명을 따른다.
쿠오오오!
쿠오, 쿠욱!
설원의 가호가 사라진 루한의 창공으로 수백의 와이번 무리가 북쪽으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요즘 옥타나가 조용하군.”
왕궁으로 향하는 수하들을 보면서 둠은 요 근래 유독 조용한 옥타나를 떠올렸다.
듣기론 루한의 여왕과 일전을 벌이다가 큰 부상을 입어 요양 중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요양 중이라고 해도 너무 조용하다. 평소 그가 알던 거짓의 대마녀답지 않았다.
‘이번 임무가 끝나면 병문안이라도 가야겠군.’
둠과 옥타나의 관계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라이벌 이미지와 달리 실제론 우호에 가까웠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둠이 일방적으로 옥타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겠지만.
의도야 어떻든 옥타나가 이 가망 없던 도살자에게 제2의 삶을 선물한 셈이니까.
또 서로 비슷하게 망가진 영혼이 묘한 동질감을 일으키게 했다.
‘병문안 선물로는 여왕의 머리면 되겠지.’
둠은 피식 웃고는 루한의 왕궁이 있는 북쪽으로 비룡의 박차를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