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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30화 (130/212)

제130화

#130.

특히나, 솔라시우스가 여왕 루시푸르네에게 반지를 건네며 청혼했다는 소식.

“……!”

그 소식을 들은 유리아의 머릿속은 멍해졌다.

검을 들었던 팔에서 힘이 빠졌다.

하아.

하지만 애써 다시 힘을 냈고, 깊고 긴 숨을 내쉬는 것으로 떨쳐 냈다.

“유리! 괜찮은가요?”

유리아의 심경 변화를 느낀 시몬이 하던 치유도 관두고는 급히 다가와 물었다.

끄덕.

유리아는 목소리조차 내뱉기 힘들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몬은 그런 유리아를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담아 살필 뿐이다.

그녀가 느끼는 씁쓸함, 아련함이 시몬에게 똑같이 공유된다.

고오오오.

이와 동시에 유리아의 심장 속에 남아 있던 저주받은 힘이 꿈틀거린다.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저 버러지들을 위해 왜 땀을 흘리는 거야?

-어서 저것들의 피를 마셔!

-배고프지 않아? 갈증 나지 않아?

-빼앗긴 게 있다면 다시 빼앗으면 돼!

-힘을 받아들여! 타락을 받아들여! 그러면 너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어.

심장에서 머릿속에서 속삭임이 들려온다. 치명적인 유혹.

갈증에 허덕이던 순간 눈앞에 나타난 시원한 물 한 컵 같았다.

꿀꺽.

유리아의 침이 크게 삼켜졌다. 입안에 군침이 돈다. 주위에 탐스러운 먹잇감이 가득하다.

우드득.

검을 쥔 그녀의 손끝이 송곳처럼 뾰족해진다.

“유리!!”

시몬이 그런 유리아의 심신의 변화를 눈치채곤 단호히 외쳤다.

짜악!

그것도 모자라 유리아의 뺨을 급히 때렸다. 신성력으론 심장에서 꿈틀거리는 사악한 근원을 제압했다.

“!!”

그제야 유리아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내가…… 무슨?”

“후우.”

제정신으로 돌아온 유리아를 본 시몬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이만 쉽시다. 너무 무리했어요, 우리.”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를 시몬이 달랜다.

“배고프죠? 당신이 잡은 짐승이랑 제가 가진 향신료로 마을 사람들이 스튜를 만들고 있어요. 축제라면 축제죠.”

그러고 보니, 마을 중심부에서 구수한 냄새가 났다.

“예, 맛있겠네요.”

냄새를 맡은 유리아의 멍한 얼굴에 작게 미소가 그려졌다.

혈향보단 덜하지만 분명 침이 고이는 냄새였다.

늦은 밤.

화전민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은 촌장의 집이다. 시몬과 유리아는 당연하게도 촌장의 집에서 잠을 잤다. 하지만 다른 집과 비교해서 좀 클 뿐이지, 아늑하거나 청결함과는 거리가 멀다.

솔직히 말해 그나마 깨끗하고 커다란 가축 우리라고 봐야 한다.

하늘을 막는 천장 군데군데 뚫린 방 안, 불어오는 찬 바람과 쏟아지는 별빛을 맞으며 시몬은 식은땀을 흘렸다.

“흐으윽, 끄으…….”

마치 몸살을 앓는 듯한 신음, 식은땀으로 범벅된 창백한 안색.

그의 몸속은 미약이라도 먹은 20대 청년의 끓는 성욕처럼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탐욕, 나태, 질시, 식욕, 음욕 그리고 폭력과 살육에 대한 욕구까지, 그의 마음속, 머릿속에서 온갖 욕망과 충동이 타오르고 있었고, 시몬은 자신의 신성력만으로 이를 진화 중에 있었다.

‘유리아는…….’

간신히 뜬 눈으로 옆 건초 침대서 자고 있을 유리아를 보았다.

다행히도 유리아는 평화로이 잠들어 있었다. 서로 감정과 고통을 공유하는 관계임에도 평온하다.

‘다행이군.’

이를 본 시몬은 안도했다.

‘고생이 헛되지 않아서…….’

지금 시몬은 낮에 유리아가 겪었던 충동과 욕망을 대신 견뎌 내는 중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몸속에 있는 추악한 힘의 폭동도 견디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독 심하군!’

평소에도 자잘하게 느꼈던 충동이지만, 오늘따라 이상할 정도로 강렬하다. 아찔할 정도로.

하지만 시몬은 초인적인 의지로 이를 이겨 냈다. 속죄에 대한 죄책감이, 아버지와 다르게 살 거라는 결의가, 이를 가능케 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곧 동이 틀 아침, 새벽의 끝이 되어서야 시몬은 안색을 되찾았다. 일그러졌던 표정도 펴졌다. 땀범벅이 된 나그네의 옷만이 밤사이의 고전을 보여 줄 뿐이다.

“……!”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났음에도 시몬의 심장은 진정되지 않았다.

쿵쿵쿵쿵쿵.

오히려 더욱 다급하게 뛰었다.

그의 양손 끝이 덜덜 떨렸다.

실눈이 인상적이었던 그의 눈에 구멍 뚫린 천장 사이로 비치는 두 개의 달이 보였고, 달 사이를 은은하게 잇고 있는 아름다운 오로라를 목도했다.

“저 흉악한 것은 뭐지……?!”

꼬끼오~!

적막 어린 방 안에서 경악에 찬 시몬의 한마디가 새벽닭 울음소리와 함께 터졌다.

* * *

여왕 루시푸르네와 1황자 솔라시우스의 약혼에 대한 이야기는 금세 꺼졌다.

그 당사자 중 하나인 솔라가 단호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아직 악황제도, 암흑제국도 무찌르긴커녕 세가 꺾이지도 않았다는 이유였다.

두 사람의 결합은 무수한 정치적 이해관계도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어수선할 때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부가적인 주장도 있었다.

입맞춤과 잠자리라는 하이엘프 로뮤의 제안도 다른 방법을 연구해 보고서 하자는 식으로 미뤄졌다.

“1황자 전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설마 우리 여왕 폐하가 마음에 안 드신 건 아니겠지?”

이쯤 되자, 솔라의 언행에 의문을 품는 시선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급히 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루시푸르네였다.

“악황제와 싸워야 하는 그의 어깨가 무겁다. 지금 솔라시우스는 오직 적을 무찌르는 데 집중하려 한다.”

루시는 비록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애써 솔라의 행동을 해석하고 변호했다.

“악황제와의 결전은 그의 목숨은 물론 대륙의 운명을 건 싸움이다! 약혼이니 결혼 같은 문제로 1황자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그대들이 책임질 것인가!”

당사자 중 또 다른 한 명인 루시푸르네마저 그리 말하자, 루한의 대신들은 그제야 완전히 수긍했다.

사람들은 곧 운명의 결전을 치를 솔라시우스의 신경이 날카로워서 그런 것으로 이해했고, 이후론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솔라시우스, 지금까지 그대에게 실례가 많았다. 나와 대신들이 너무 성급했던 것 같아. 저주의 완전한 해주는…… 마탑과 마녀회와 함께 다른 방법을 연구해 보도록 하겠다.”

더불어 그날 이후, 루시 또한 솔라와 거리를 두었다.

옛 데스모 대저택의 깊은 곳.

두 개의 달 아래에 서 있던 솔라는 야심한 시각 자신을 찾아온 누군가를 맞이했다.

“솔라 오라버니.”

“……루나.”

그의 여동생이자 제국의 1황녀인 루나시르네였다.

“무슨 일 있어? 왕궁에서 유독 이상했던 거 알지?”

루나는 솔라와 단둘이 있게 되자마자, 제일 먼저 그것부터 물었다.

“없어.”

그녀의 걱정 어린 물음에 솔라는 바로 답했다.

“거짓말.”

하지만 루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그래. 아직 다른 생각을 하기엔 일러.”

“그건 그렇지만…… 너무……!”

거리를 두는 거 아니야? 루나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하아.

그런 루나를 본 솔라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설령 악황제를 죽인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내게 문제가 생기면, 루시푸르네는 과부가 돼.”

자신이 생각해도 참으로 한심한 설명을 내놓는다.

애초에 과부니 뭐니를 떠나서, 자신의 진심부터가 의문이다.

‘나는 과연 루시에게 호감 이상의 마음이 있는 걸까?’

사그라진 세계이자 원작 플레이에서 가졌던 루시에 대한 거북한 감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자신을 옆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운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그가 그녀에게 느끼는 호감은 사람 대 사람의 호감에 가깝다.

사랑이라고 치부하기엔 애매했다.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그가 살면서 느낀 사랑이라는 감정은 과거 지구에서 딱 한 번 느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때와 비슷한 강렬한 감정은…… 아직이다.

‘오히려 확신하지 못하는 게 나아.’

그리고 솔라는 지금처럼 명확하지 못한 상황을 반겼다.

‘나는 돌아가야 하니까.’

설령 지금 루시에게 품고 있는 이 감정이 사랑이라고 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

“과부……? 과아부우?!”

오라버니의 설명에 루나시르네는 미간을 구겼다. 이해는 가지만 한편으론 납득이 되지 않았다.

“왜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하는데! 낙마할 게 무서워서 말을 못 탄다는 것과 같아, 지금 오라버니의 말은!”

루나는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두들기며 말했다.

“조심할수록 나쁠 것은 없어. 그리고 혹여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해야 해. 루시푸르네를 평생 혼자 살게 둘 수 없어.”

“그럴수록 어서 후계를 만들어야지!”

지구의 가치관과 중세 판타지 세계의 가치관이 출동한다.

“미나스트림이 있잖아.”

루나의 말에 솔라는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고요한 방 안에 루나의 외침이 울려 퍼진다.

“아니, 말이 돼.”

솔라는 그런 루나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

그제야 루나는 반발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안 것이다. 눈앞의 오라버니는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고, 그 각오만큼 고집도 단단하다는 것을.

“절대, 절대 죽지 마……. 다치지 마. 실패하지 마. 절대…… 떠나지 마!”

루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유일한 혈육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런 이세계의 동생을 보면서 솔라는 문득 지구에서의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지구의 성녀가 생각나는군.’

돌아갈 때가 다가와서 그런가 보다. 처음으로 마음을 줬던 ‘그녀’도 그렇고, 지금 떠오르는 지구의 성녀도 그렇고.

점점 지구에서의 생각이 자주 난다.

지구에서 마왕을 잡을 때 옆에서 태광휘를 도왔던 여인이 있었다.

지구의 성녀라 불리는 S급 치료계 각성자였다.

그 아이가 자신을 연모하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태광휘는 마음을 주지 않았다. 그 아이는 여자로 느껴지기보단, 루나와 같은 동생에 가까운 감정이었으니까.

‘만약 루나와 그 아이가 만나면 꽤 잘 어울리겠어.’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 같은 가정을 잠시 떠올린 솔라는 피식 웃고는 잠깐의 망상을 떨쳐 냈다.

그리고 깊은 새벽의 밤하늘을 보았다.

“……!!”

밤하늘, 유독 빛나는 두 개의 달.

이를 보는 그의 금색 눈동자가 오늘따라 더 차갑다.

서서히 느껴지는 마계의 균열, 너무나 역겹지만 너무나 익숙한 밤하늘의 오로라, 지구식 명칭으론 게이트의 전조.

지구는 달이 하나라서 오로라가 달을 고리처럼 둘렀었지.

‘곧 시작되겠군, 여기도.’

다가올 대재앙의 전조 아래서 솔라의 감상은 무심하고 차가울 뿐이었다.

* * *

루시는 침실에 있었다. 침대 위에 얼굴을 파묻고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설원의 저주가 많이 약해진 덕분에 지금 그녀가 누운 침대는 고급스럽고 푹신했다.

‘그랬구나! 그래서 솔라가 나와 거리를 둔 거였어!’

각자가 품은 저주 때문에 솔라와 루시는 가능한 한 붙어 다녀야만 했다.

그래서 솔라의 침실은 여왕의 침실 바로 옆에 있었다.

그래야 설원의 저주가 날뛰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 말인즉, 방금 솔라와 루나가 나눈 대화를 루시푸르네가 엿들었다는 뜻도 되었다.

‘루시푸르네를 평생 혼자 살게 둘 수 없어.’

방금 솔라가 했던 말이 메아리처럼 루시의 귓속을 울린다.

무심한 금색 눈동자에서 나온 배려심 있는 그의 마음이 그녀의 차가운 심장에 따듯한 여운을 남겼다.

‘나는 괜찮은데…… 솔라, 당신 외에는 어떤 남자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설령 그가 잘못된다고 하더라도 루시는 결코 다른 남자를 국서로 둘 생각이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아는 당신은 결코 실패할 사람이 아니야! 결코!’

괜한 감정의 기복이 루시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당신을 결코 잃지 않겠어!”

두 손을 불끈 쥐고는 각오를 다졌다.

두 눈을 감고 명상을 하듯이 자신의 몸과 영혼을 살폈다.

‘이 힘, 이 힘만 있으면 마왕 따윈 쉽게 무찌를 수 있을 텐데!’

루시는 답답했다.

자신에게는 거대한 잠재력이 있었다.

역대 모든 설원의 대마녀들이 대를 이어 구축한 무한한 차가움이 잠들어 있었다.

설원의 권능은 이 미지의 힘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랬기에 마왕이 그토록 루한의 왕실을 집요하게 노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상 없는 힘이라고 봐야지…….’

명상을 하던 루시는 얼마 안 가 작은 한숨과 함께 눈을 떴다.

분명 존재하는 것 같았지만, 경망스럽게 날뛰는 설원의 권능과 달리 이 미지의 힘은 거대한 바위산처럼 어떤 미동도 없었다.

“어쩌면 설원의 저주 때문일지도 몰라.”

그 이유는 대강 짐작이 됐다.

‘둘이 지닌 가장 깊은 기운을 나누는 것이지.’

그랬기에 더더욱 하이엘프 로뮤가 한 말이 번뇌처럼 떠오른다.

‘오히려 당신의 흔적을 남겼으면 해, 나에게!’

설령 만에 하나라도 솔라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루시는 그의 흔적 하나 없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았다.

“…….”

그녀의 시선이 말없이 벽 너머의 옆 침실로 향했다.

‘당연히 깊은 입맞춤이지. 만약 그것도 안 통하면 잠자리를 가지거나.’

다시 한번 로뮤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꿀꺽.

침이 절로 삼켜지고, 가슴이 세차게 뛰며, 괜히 얼굴이 목 아래부터 귀 끝까지 붉어진다.

‘차라리 내가 먼저!’

매우 망측한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고, 어느 때보다 담대한 결심이 여왕의 가슴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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