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41화 (141/212)

제141화

#141.

루시푸르네는 자신의 요리를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도 언젠간 저 자리에 앉아 함께 식사할 수 있겠지?’

뿌듯함과 함께 설렘을 품었다.

다들 몸을 부르르 떨면서 눈물을 찔끔 흘리는 것이 그녀가 한 요리지만 굉장히 맛있나 보다. 어떤 맛인지 궁금해 맛을 보고 싶을 정도.

‘맛 정도는 봐도 되지 않을까?’

저렇게 맛있게(?) 먹는 모습들을 보니 메마른 식욕을 가진 그녀도 괜히 호기심이 동했다.

‘안 돼……. 입맛을 깨웠다간 더 괴로워져.’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설원의 저주가 몸속에 활발하다지만 맛 정도는 봐도 된다. 눈물이나 피, 침 같은 것은 저주 속에서도 몸속을 순환하고 있기 때문.

살짝 맛을 보는 정도는 충분히 중화된다.

하지만 그러다가 입맛을 되찾아 버리면, 잠든 식욕마저 깨워 버릴 위험이 있다.

그랬기에 루시는 꾹 참았다.

솔라는 루시를 슬쩍 보았다. 그녀는 멍하니 서서 자신의 요리를 먹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불살검으로도 설원의 저주는 풀리지 않았어.’

의식을 차리고 루시와 가까이 마주하고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그녀의 몸속에 있는 설원의 저주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불살검으로 심장을 찔러 설원의 통로를 닫았음에도 설원의 저주는 여전했다.

‘그때 그 힘을 컨트롤만 할 수 있다면…….’

한편으론 욕심이 생겼다. 직접 목도한 루시푸르네의 진짜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녀가 설원의 저주를 풀고, 미지의 힘을 온전히 각성한다면…… 최초의 설원의 대마녀 베아트리체를 능가하는 대마녀가 된다.

‘원작 게임의 제목이 왜 루한의 국서였는지 알 것 같군.’

이런 설정이었기에, 그가 플레이했던 캐릭터 솔라시우스가 그토록 모진 수모를 참아 가며 여왕의 저주를 풀기 위해 굴렀던 것이었다.

반대로 마왕 입장에선 그런 루시푸르네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고 말이다.

‘그 힘만 있으면 수월하게 마왕을…….’

루시가 품은 힘에 대해 고민하는 솔라시우스, 그의 시선이 서서히 루시의 입술과 몸에 집중된다.

‘로뮤의 말대로 해야 하나?’

정조 관념이 귀족일수록 보수적인 세계다. 하룻밤 불장난으로 평생 씻을 수 없는 흔적을 남기기가 두려웠다. 그랬기에 애써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마왕과의 전투를 통해서 솔라는 자신의 생각을 수정해야만 했다.

아직 11차원의 모든 권능을 가져오지 않았음에도 자신을 압도하는 마왕의 존재와 그런 마왕을 압도하는 루시의 진정한 힘.

그렇게 루시의 입술과 몸을 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솔라시우스?”

문득 루시가 그런 솔라의 시선을 느낀 모양.

‘이런, 실수했군.’

솔라는 괜히 뜨끔했다. 급히 시선을 다 비워 가는 그릇에 집중했다.

또각, 또각, 또각.

그런 솔라를 향해 루시푸르네가 천천히 다가온다.

괜히 그릇에 집중 중인 솔라의 심장이 쫄깃해진다.

“부족하면 말을 하지! 여기 더 있다. 더 먹어라, 어서!”

그런 솔라의 그릇에 루시가 스튜를 가득 따라 준다.

우욱…….

이를 본 몇몇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헛구역질을 참는다.

“아…… 고마워.”

배가 불렀지만 켕기는 게 있던 솔라는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그나저나 요리 실력이 제법이군. 맛도 안 보면서 이렇게 하긴 쉽지 않을 텐데.’

배는 불렀지만 맛은 있었기에 꾸역꾸역 루시의 요리를 먹었다.

솔라가 자신의 요리를 이토록 잘 먹자, 루시는 어느덧 솔라 옆에 붙어서 거의 전담 요리사라도 된 것처럼 그릇이 빌 때마다 리필에 임했다.

솔라는 꾸역꾸역 정말로 먹을 만하다는 듯이 잘만 먹는다.

모두가 그런 두 사람을 질렸다는 듯 보았다.

다사다난한, 누군가에게는 꽤 만족스러웠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문 그 자체였던 식사가 끝났다.

다행히도 후식은 시녀들이 준비했기에, 후식으로 나온 다과를 모두가 허겁지겁 먹었다. 입가심이라도 하듯이.

그렇게 입 안에 난 불을 끄고 심신의 여유가 생기자, 꽤나 진중한 이야기가 오고 가기 시작했다.

“다들 소식 들으셨을 겁니다. 황도가 사라졌다고…….”

“악황제는 곧 다시 쳐들어올 겁니다. 대비를 해야 합니다.”

모두가 무거운 표정으로 앞날을 논의한다.

이 논의를 이끄는 루한의 여왕과 옛 제국의 1황자는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더 강해진 마왕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역시 루시의 도움이 필요해. 이를 위해선 나와 그녀의 저주를 해주해야 해. 그리고 추가로, 설원의 결계가 문젠데…….’

‘그땐 결계를 유지하느라 솔라를 돕지 못했어. 결계를 유지하면서 함께 싸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무엇보다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을까?’

두 사람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리리아에게 물어보자. 좀 더 정확하고 확실한 방법을.’

‘요정 여왕이 답을 알고 있을 거야. 부디 하이엘프 로뮤가 말한 방법이 맞았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두 사람은 해결 방향을 알고 있었다.

“로뮤.”

제일 먼저 생각에서 벗어난 사람은 솔라였다. 그는 맞은편의 검은 머리 엘프를 부른다.

솔라의 부름에 로뮤는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설원의 결계라고 있어. 아주 고차원 결계지. 이거를 펼치고서도…….”

그는 자신의 고민을 로뮤에게 얘기했다.

이런 부분에서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하이엘프 로뮤의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솔라의 설명을 들은 로뮤는 이해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야. 마법진과 토템이 좀 필요하겠지만.”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과 지혜를 융합해 해결책이 있음을 알렸다.

“그런데 문제는 고정식이라는 거지. 마왕을 그곳까지 유인하든가, 아니면 마왕이 도착할 장소를 미리 예지하고 있어야 해.”

그러면서도 분명한 제약이 있다는 것도 말했다.

“유인은 힘들어. 설령 유인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거야.”

일단 유인책은 기각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예지, 하면 또 내 누이가 전문이지.”

마왕이 도착할 장소를 예측하며 미리 결계를 준비하는 것이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남매간의 연락은 예외니까.”

로뮤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솔라를 보았다.

“그래.”

솔라 또한 모처럼 작게 미소를 지었다.

* * *

태광휘가 그 아이와 함께 있더군.

세계수여, 그리고 12차원의 천사들아, 애써 저울질해도 무게추를 더 올린 건 너희 쪽이다.

너희는 오래전부터 우리의 진출을 막으려 했고, 우리의 유희를 방해하려 들었지.

나는 이번 싸움에서 목도하였도다.

그가 성검을 사용하는 것을, 천상의 불살검으로 무한의 추위를 막는 것을.

설령 그것이 네가 의도하지 않은 우연의 일치여도, 설령 그것이 천계의 안배라 하더라도.

덕분에 나의 화신은 본신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앞으로는 천계의 눈치도 볼 필요 없겠지.

그래! 이제 이것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다.

설원의 여왕, 광휘의 용사, 별의 아이, 너희들의 안배.

이대로 놔두면 쑥쑥 자라 우리의 진출을 방해할 잡것들.

이는 한낱 유희가 아닌 마계와 천계의 대리전이니, 나 또한 진심으로 임하겠다.

지고한 나의 권능과 자존심을 걸고!

* * *

두 개의 달과 오로라 줄기가 밝게 빛나는 저녁.

루한의 왕도, 무너진 순백궁의 잔해 위.

우우우웅, 파앗.

마법진이 갑자기 생성되더니 섬광과 함께 그 안에서 두 사람이 튀어나왔다.

“허억…… 끄으윽…….”

주황색 머리카락에 실눈이 인상적인 남성.

“쿨럭…… 흐으으…….”

분홍 머리카락에 분홍색 눈동자가 매력적인 여기사.

시몬과 유리아는 창백해진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설원의 가호, 설원의 중심부.

벌써 숨이 막히고 몸이 얼어 굳어지는 것 같다.

두 사람이 각각 품고 있는 원죄의 업보가 설원의 순수함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왜…… 왜 여기로?!”

사용하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었던 마법까지 펼쳤다.

뒤이어 밀려올 강렬한 부작용까지 각오하고서.

그리하여 공간 이동에 성공했지만 시몬의 얼굴에는 의문만이 가득하다.

만약을 대비해 준비한 비장의 공간 이동 마법이었다.

잠시 이 세계에서 사라지는 마법, 차원과 차원의 틈, 아공간에서 숨어 있으려 했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로 오게 된 것일까?

고오오오오.

설원의 가호가 시몬과 유리아의 숨을 조여 온다. 두 사람의 몸속에는 무수한 원한과 살의가 담겨 있었고, 이는 설원의 가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유리아, 괜찮나요?”

“아직 견딜 만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고통을 참아 가면서 시몬과 유리아는 서로를 보았다.

둘 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혼란스러운 상태.

“왜긴? 내가 의도했으니까.”

그때, 뒤에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시몬과 유리아는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처억.

세피로스는 두 사람이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양손을 펼쳤다.

가라앉은 황도에서 섭취한 것들이 있지만 모자랐다. 전에 이 도시에서 소비한 힘이 그만큼 컸다.

눈앞, 가장 먹음직스러운 두 먹이를 노렸다. 탐스럽지만 그만큼 위험한 복어 요리 같은 것들.

쫘아아아악.

곧게 편 양손에서 검은 촉수가 튀어나왔다.

푸욱.

“꺄악!”

“크억!”

두 촉수가 애써 달아나려던 시몬과 유리아의 등에 박힌다.

이전처럼 불편하고 게걸스럽게 식인할 필요가 없다.

식물 뿌리처럼 땅속의 물과 영양분을 흡수하듯이, 촉수를 둘의 등에 박고서 쪼옥쪼옥 빨아 마시면 된다.

‘그래! 이 힘! 참으로 오랜만이군!’

세피로스는 권능이 좀 더 개화되는 것을 느꼈다.

마계에 누워 있던 본체가 오랜만에 만족을 누렸다.

“…….”

“……!”

힘을 강탈당하는 두 사람은 비명도 제대로 못 지르고 힘없이 허우적거린다.

‘생각보다 신성력이 적군. 덕분에 부담이 적어.’

마왕은 바닥에 쓰러져 발버둥 치는 두 사람을 지긋이 관찰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에 뭐 먹을지 생각하는 것처럼.

‘섭취가 끝나면 그림자 핵도 노려봐야겠어.’

두 눈을 어지럽게 돌리며 다음 먹잇감을 생각했다.

바로 그림자 핵, 루나시르네가 소유한 그림자 핵은 다른 의미로 섭취하지 못했다.

‘하필이면 그 빌어먹을 로사리오에 숨어 있어서…….’

바로 그림자 핵이 봉인된 ‘로사리오’ 때문이다. 그 로사리오는 보통의 유물이 아니다.

지금은 이 세계에서 모습을 감춘, 신화시대의 드래곤이 12차원의 권능까지 추가해 만든 유물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세피로스는 지금까지 그림자 핵을 노릴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두 존재를 흡수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때는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 본신은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된다!’

어쩌면 처음으로 천계를 침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야욕을 품으며, 두 사람에게서 대략 절반 정도의 에너지를 흡수했을 때였다.

“……음?”

문득, 마왕 세피로스는 이상함을 느꼈다.

계속해서 힘을 흡수 중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신성력이 적었다.

뭔가 이상하다. 좋은 현상은 맞지만 그만큼 의문이다.

그렇게 의문이 쌓이고 쌓여, 잠시 흡수를 멈춰야 하나 망설이던 때.

퍼어어엉.

“!!”

강렬한 섬광이 유리아와 시몬에게서 터졌고, 그 섬광과 함께 날카로운 신성력이 마왕의 심장을 강타했다.

“카아아아악!!”

세피로스는 상처 입은 맹수처럼 처절한 고통을 느끼며 울부짖었다.

[감히이!]

흡수를 중단한 그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전에 솔라와 싸울 때처럼 검게 물든다.

뿔과 날개, 촉수, 손톱 등이 사정없이 돋아났고, 인간의 형상이되 인간과는 거리가 먼 존재로 변신한다.

[끄아아아아!! 감히이!]

그렇게 힘을 끌어올렸음에도 세피로스는 괴로움에 허우적거렸다. 마계에 누워 있던 본신도 충격과 고통에 몸을 뒤틀었다.

‘오염된 신성력을 따로 모아서 한 번에 터트릴 줄이야!’

권능이 뒤섞인 것 같았다. 마나와 피가 뒤틀리는 것 같고, 화신에 담긴 영혼 또한 찢어지는 것 같다.

지구식 표현을 쓰자면 주화입마에 가깝다.

[빨리 배출해야 해……. 사용…… 최대한…….]

이를 해결할 방법은 흡수한 힘을 사용하는 것!

[카아아아아아아!]

세피로스는 거대한 고함을 질렀고, 그동안 모은 권능과 마력을 아낌없이 뿜어냈다.

파츠츠츠측!!

그러자, 밤하늘 두 개의 달 사이에 있던 오로라가 크게 빛나더니 소멸되었고, 왕도 윈테라 허공에 차원 균열이 열리기 시작했다.

지구식 표현으론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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