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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43화 (143/212)

제143화

#143.

각성한 루시푸르네의 힘은 마왕을 압도했다.

코앞까지 도달했던 어둠의 기운은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흩어졌다.

[이러언! 말도오- 안 되느으은!]

황당함과 경악이 마왕의 사념에 선명하다.

입맞춤 한 번으로 그 저주가 풀린다고?!

그 힘이 깨어난다고?!

[끼아아아아악!!]

11차원의 군주는 그저 이해할 수 없다는 고함만 내질렀다.

뒤이어.

아아아아아아!

마침내, 루시의 몸속에서 깨어난 미지의 힘! 무한한 추위가 마왕을 덮친다.

두 개의 힘, 무한한 추위와 광휘의 장막이 마왕의 어둠을 집어삼킨다.

[안 돼에!! 이대로 물러날 순 없다! 저걸 그대로 놔두면……!]

세피로스의 화신은 소멸 직전까지 갔지만, 화신에 붙어 있는 마왕의 혼은 아직 건재하다.

키아아아아악.

놈이 권능을 이용해 공간을 뒤튼다.

“맙소사……! 설원의 결계가 옅어지고 있어!”

좀 떨어진 곳에서 최후의 싸움을 지켜보던 로뮤의 표정이 굳는다.

루시와 로뮤, 루나가 펼친 설원의 결계가 무너지려 한다.

“로뮤 오라버니!”

루나가 옆에서 허공을 가리킨다.

마왕이 펼친 무수한 게이트 또한 마계의 몬스터를 그만 토해 내더니, 커다란 하나의 문으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하나로 합쳐진 거대한 게이트, 작은 도시 크기의 게이트 안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하위 차원의 존재는 인지조차 힘든 괴이한 형상.

오직 영혼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존재감.

‘마왕의 본체!’

모두가 저 안에서 꿈틀거리는 존재의 정체를 알았다.

“그런데…… 좀 지쳐 보인다?”

게이트 안에 있는 존재를 물끄러미 본 루나가 중얼거렸다.

상위 차원의 존재라서 외형은 인지하기 힘들지만, 저 존재의 상태가 어떤지는 느낄 수 있었다.

우우우웅.

루나의 목에 걸린 로사리오, 그 로사리오 안에 담긴 그림자 핵 덕분인 듯하다.

방금 마왕 세피로스가 사용하던 필멸자의 육신이 완전히 소멸했다. 그 육신에 일부 심어 놓았던 마왕의 혼 또한 소멸했다.

그으으으으.

그래서인지 마왕의 본신은 부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또렷한 피로를 필멸자들에게 뿌렸다.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겠군.’

게이트는 아직 완전히 열린 게 아니었고, 마왕의 본신 또한 지쳐 있었기에, 놈은 당장 움직일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빠, 준비 다 됐어!]

그때, 솔라의 머릿속으로 쥴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쥴리아의 말에 솔라는 이상하게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갈 때가 되었군.’

저 문을 닫아야 한다. 차원의 인과율을 무시하고 강제로 연 게이트다. 그걸 다시 강제로 닫으면 마왕은 엄청난 권능적 타격을 입겠지.

‘저걸 이용해서 지구로 가면 되겠어.’

게이트 닫는 일은 또 지구의 EX급 헌터 태광휘가 전문이다.

그는 쥴리아가 변신한 날개를 펼쳤다.

떠나기 전에, 품속에 안겨 있는 여인을 보았다.

입맞춤의 여운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청은발의 여왕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그런 루시푸르네의 얼굴을 볼수록.

“…….”

솔라시우스, 이제는 태광휘로 불려야 할 남자는 심장이 아려 왔다.

-루시, 루시를 부탁해요.

예나체리나의 목소리가 불현듯 들렸다.

품에 안긴 상태로,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루시가 마음에 걸렸다.

괜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아마 태광휘와 합쳐진 솔라시우스의 감정이겠지.

그렇다. 오직 솔라시우스의 감정이어야만 한다.

‘나는…… 이 세계에 있으면 안 돼.’

저주도 풀렸고 힘도 되찾았으니, 다른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길 축복하자.

“솔라시우스……?”

이쯤 되자, 루시도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 서서히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루시, 받아.”

그런 루시의 눈을 애써 피하며, 태광휘는 끼고 있던 두 개의 태양샘 반지를 뺐다. 그리고 루시의 손바닥에 올려 줬다.

“솔…… 솔라시우스!”

루시가 불안한 얼굴로 손에 올려진 태양샘 반지와 태광휘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안 돼……! 안 돼에!!’

그의 생각을 눈치챈 루시는 태광휘의 결심을 되돌리기 위해 발버둥 치려 했다.

‘힘이……!’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막 저주에서 풀리고. 각성한 힘을 처음부터 남발한 후유증이다.

“미안해.”

태광휘는 그런 루시를 향해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미안해, 엄마…….]

솔라의 등에 달려 있는 쥴리아도 울먹이며 말했다.

“…….”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루시는 잠시 말이 없었다.

“……이거, 하나는 당신 거야!”

태양샘 반지 중 하나를 솔라의 왼손 약지에 간신히 끼웠다.

“……다녀와!”

“……!”

“꼭! 꼭 다시…… 와야 해?”

그리고 애써 밝게 배웅한다.

“쭉 기다릴 테니까…… 흐윽, 꼭 돌아와……. 흐읍, 당신도, 쥴리아도!”

하지만 눈물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

애써 밝게 지은 미소 위로 눈물이 번진다.

[엄마아…… 히잉…….]

결국 참지 못하고 쥴리아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

솔라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희미한 미소를 살짝 지을 뿐.

태광휘는 루시를 조심스레 땅에 눕혔다.

루시는 엉엉 울면서 결국 그의 품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태광휘는 아이처럼 우는 루시에게서 애써 시선을 거둔 뒤, 빛의 날개를 펼치곤 마왕이 있는 게이트로 날아올랐다.

“솔라 오라버니? 어디 가는 거야, 오라버니!”

싸움의 여파 때문에 멀찍이 떨어져 있었던 루나가 뒤늦게 외쳤다.

“로안……!”

무슨 상황인지 대강 눈치챈 로뮤는 무거운 표정으로 혼란스러워하는 루나의 어깨를 토닥일 뿐이다.

솔라시우스가 게이트로 들어가고서 얼마 후.

--!

괴성인지 폭음인지 모를 소리와 함께 마계의 문이 사라졌다.

“솔라시우스…….”

루시는 공허한 눈으로 그가 사라진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 공허한 허공에서. 푸른색으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피이이, 쑥!

이윽고 루시 앞으로 떨어졌다.

솔라시우스가 늘 허리에 차고 다녔던 푸른색 마검, 윈테이라다.

“……!”

폐허 위에 쓸쓸히 박힌 국서의 검 윈테이라.

털썩.

그 마검을 본 여왕은 뒤늦게 밀려오는 충격과 상실감에 의식을 잃었다.

* * *

마왕과의 최후의 일전이 끝났다.

그날이 있은 후, 세상은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솔라시우스는 마치 자신의 미래를 예지라도 했는지 돌아오지 않았고, 생전 그의 지령을 받든 미나스트림을 비롯한 제국의 망명 귀족들은 무너진 제국을 재건하는 데 여념 없었다.

솔라의 유훈(?)에 따라, 1황녀 루나시르네는 제국의 무소불위 여대공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영지와 권력, 재화에 티끌만큼의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녀는 하이엘프 로뮤와 함께 요정 숲으로 무작정 들어갔고, 그 후로 소식이 끊겼다.

여왕 루시푸르네를 괴롭히던 설원의 저주는 완전히 풀렸고, 이제는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

남들처럼 숨을 쉬고, 숙면을 취하고, 음식을 먹는 그런 삶.

하지만 루시는 그 일상을 누리지 않았다.

설원의 저주가 풀리면 반드시 하려 했던 식사를 그녀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루한의 여왕은 절대 웃지 않았고 무표정했으며, 깊은 새벽의 침실에선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났다.

여왕의 하루 일과는 일정했다.

매일 아침마다 그녀는 무너진 순백궁의 공터에 서서 한 시간 정도 멍하니 있었고, 이후엔 예정된 군주의 일과를 보냈다.

일과가 끝난 후, 그녀는 다시 솔라와 헤어졌던 장소를 방문했다.

노을이 질 때부터 늦은 밤이 될 때까지, 매일매일 하염없이 공터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침실에 와서는 여왕의 공방에서 마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오직 차원 이동과 관련된 연구만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현재 루한의 국책 사업은 차원 이동과 관련된 마법이 0순위였다.

그렇게 1800여 일의 매일이, 300여 주의 매주가, 60번의 매달이, 다섯 번의 매년이 흘렀다.

루시푸르네는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솔라시우스가 사라진 공터에 나와 그를 기다렸다.

모두가 이제는 잊을 때가 되지 않았냐는 듯한 눈치였지만, 아무도 그 말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밤하늘 두 개의 달이 높게 떠 있다.

과거 두 달 사이를 아름답게 잇던 오로라는 ‘그날’ 이후 사라진 지 오래.

순백궁의 공터에서, 누구도 다시 짓자는 말을 결코 하지 못하는 텅 빈 폐허에서, 오늘도 루시푸르네는 누군가를 기다렸다.

텅 빈 공터에는 푸른색 마검이 그때, 그 순간 그대로 쓸쓸히 땅에 박혀 있었다.

“하아…….”

여왕의 입에서 나온 작은 한숨.

5년이 흘렀다. 하지만 변한 건 없다.

세상은 변했지만 정작 그녀는 그대로다.

설원의 저주가 풀리면 하려고 했던 모든 것들을 그녀는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기다리고 기다릴 뿐이다. 솔라시우스 혹은 태광휘, 그가 다시 돌아오면 그와 함께 처음부터 하나하나 해 보기로.

제일 먼저 같이 식사를 할 것이다. 직접 만든 요리를 그와 함께 먹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왕국 전역을 여행할 거다.

설원의 가호는 이제 굳건하고 설원의 저주는 씻은 듯 나았으니, 적어도 루한 정도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겠지.

오늘도 루시는 하염없이 솔라시우스를 기다렸다.

멍한 머릿속으로는 그가 돌아오면 그와 함께 어떤 것들을 할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툭, 툭, 툭, 툭.

그녀가 서 있는 땅 위로 물방울이 떨어진다.

루시푸르네는 어느덧 울고 있었다.

거의 매일 울어서, 하도 울어서,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눈물인데도, 어제도 오늘도 그 남자만 생각하면 계속 나온다.

‘그러니 제발…….’

이 슬픔을, 이 눈물을, 이 고통을 멈춰 줘.

털썩.

오늘도 여왕은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루시.”

이제는 환청마저 들린다.

“루시푸르네.”

너무나 그리운 남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하하…….

비탄에 잠긴 헛웃음이 입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울고 미련을 못 버리더니, 이제는 미쳐 버린 게 아닐까?

“루시푸르네.”

하지만 뒤에서 들리는 솔라의 목소리.

너무나 또렷해서, 너무나 크고 맑아서.

!!

그녀는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덜덜덜덜덜.

터질 것 같은 심장, 떨리는 어깨, 초점 없이 흔들리는 눈동자, 요동치는 설원의 마나.

루시는 천천히 뒤로 몸을 돌렸다.

“아…… 아…… 아아!!”

그곳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보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이어서 루시푸르네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반쯤 기어가다시피 솔라시우스가 있는 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

솔라시우스의 몸은 반투명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오열하는 루시푸르네를 보았다.

늘 무심했던 금색 눈동자에 유독 따스함이 빛났다.

그날 밤, 두 사람은 해가 뜰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날이 밝고, 솔라시우스는 모습을 감췄다.

어쩌면 이것은 루시가 만들어 낸 환상이자 망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이후 여왕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았으며, 공허했던 사파이어 눈동자에는 아무도 모를 결심이 서렸다.

며칠 후, 요정 숲으로 들어가 소식이 끊겼던 두 사람, 루나시르네와 로뮤 엘펜리트가 요정 숲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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