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146.
애써 연습한 대사였는데 참으로 부끄러운 실수를 하고 말았다.
“여기로? 아앗! 그…… 그러니까, 경기도 평택이라는 곳에 있는 집인데…….”
얼굴이 뜨겁다. 부끄러웠다. 그러나 태연히 표정을 숨긴다. 그녀는 루한의 얼굴이자 군주니까. 애써 태연한 척, 솔라의 집이 있는 주소를 설명했다.
“거기는……?”
“엄청 부자 동네 아녀?”
집 주소를 들은 두 남자가 눈을 크게 뜬다. 동시에 다시 한번 아까의 은밀한 시선을 서로 주고받는다.
“아이고~ 외국에서 오셨구나!”
“한국말 잘하시네? 아, 초상 통역기를 쓰시나 보구나?”
그러더니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살가운 반응을 보인다.
“외국에서 파견 온 헌터님이신가? 어느 나라?”
“루한.”
루시는 어깨를 쭉 펴고서 당당히 말했다.
“루한? 그런 나라도 있었나?”
“뭐, 유럽 어딘가에 있나 보지. 요즘 망하고 새로 생기는 나라가 한둘도 아니고.”
그녀의 대답에 둘은 대수롭지 않은 반응. 하지만 애써 대수롭지 않은 척하는 것일 뿐, 그들의 눈은 연신 루시를 힐끔힐끔 스캔 중이다.
“평택이면 여기서 좀 멀지?”
“그렇지, 차로 한 시간은 가야지?”
서로 수군거리더니 은근한 눈으로 루시를 바라본다.
“지금은 밤이 깊었으니까, 내일 날이 밝으면 안내해 줄게요.”
“일단 저 건물에서 아침까지 있다 가시죠?”
말이 권유지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뉘앙스. 애써 힘을 준 억양에는 주체하지 못할 흥분이 대놓고 보였다.
“괜찮다. 방향과 거리 정도만 말해 다오.”
그런 둘을 향해 루시는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하대했다.
자연스러운 하대, 자연스레 풍기는 여왕의 기품. 그 자연스러운 장악감 때문인지 두 남자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모양.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더욱 공손히 존대한다.
“하하하하…… 그, 그게…… 저희도 자세한 거리나 위치를 알려면 검색을 해 봐야 하거든요?”
“일단 잠깐이라도, 아주 잠깐만이라도! 안으로 오셔서 기다리시겠습니까?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서…….”
공손을 첨가했다고 해도 본래의 삿됨은 변하지 않는 법. 어떻게든 그녀를 건물 안으로 유인하려는 수작이 대놓고 보인다. 만약 루시가 헌터로 보이지 않았다면 진즉에 납치하려 들었을 터.
“……안내하거라.”
뻔한 수작을 뻔히 알면서도 루시는 두 남자의 안내에 따랐다.
바람의 정령이 들고 온 소리 때문이었다.
흐으윽.
살려 주세요!
엄마아!
그녀의 귀로 평범한 사람은 들을 수 없는 간절한 흐느낌이 들렸다.
‘전혀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외면할 순 없어.’
여왕의 싸늘한 시선이 자신을 안내하는 두 남자와 불길한 건물을 훑었다.
조용히 움직이려 마음먹었음에도 계속되는 상황이 그녀를 가만히 못 있게 한다.
‘안은 생각보다 깨끗하군.’
허름한 건물 외관과 달리, 의외로 건물 내부는 멀쩡했다. 당연히 있을 것 같았던 담배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졸부의 저택을 보는 느낌. 살짝 퇴폐적인 분위기도 느껴졌다. 고급 창관과 유사하다.
물론 태어나서 그런 곳에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루시는 그냥저냥 깨끗하다고 여겼을 뿐이다.
‘저쪽 지하인가?’
아래층, 두껍고 깊게 닫힌 지하에서 흐느낌과 절규가 흐른다.
“하하하, 누추하지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여기, 커피! 이게 한국의 인스턴트커피라고, 아주 맛도 좋고 유명하지요.”
나름 대접한다고 고급 자기에 비스킷과 믹스 커피를 담은 쟁반이 그녀가 앉은 테이블 위에 올랐다.
지구에 와서 처음 보는 먹을 것. 루시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앞에 놓인 다과를 보았다.
‘보나 마나 약을 탔겠지.’
구정물처럼 생긴 음료와 하급 귀족들이나 먹을 것 같은 사각형의 얇은 비스킷. 구정물처럼 생긴 음료는 시각적으로는 별로지만 냄새는 달달하다.
‘어차피 먹지 않을 거지만.’
솔라와 함께 첫 끼를 먹기 전까진 어떤 음식도 음료도 입에 대지 않기로 맹세한 몸.
“어서, 어서……! 드시지요?”
그녀를 안내 한 두 사내 중 중년 남성이 집요하게 권유한다.
루시는 남자의 집요한 권유를 무시하며 건물 내부를 살폈다.
그녀가 있는 층에는 거친 인상을 한 십수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
여성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남자로 구성되어 있었고, 대부분은 조폭처럼 검은 정장을 입었지만 일부는 운동이라도 하다 왔는지 트레이닝과 헬스 복장을 했다.
그런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하나같이 루시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는 것.
‘스무 명, 스물셋, 스물다섯…….’
연락을 받은 모양인지 그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중이다.
‘소드 익스퍼트 하급 수준의 전사가 다섯. 중하급 위계의 배틀 메이지가 둘. 그 외에는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이가 없군. 마나가 없는 이들은 루한의 말단 병사보다도 약한 거 같아.’
자신을 노려보는 사내들과 마찬가지로 루시 또한 빠르게 저들의 전력을 분석했다.
‘지하에 갇힌 사람들은 몇 명이지?’
시야에 안 보이는 쪽은 바람의 정령을 통해 알아낸다.
‘열 명? 전부 젊은 여자? ……뻔하군.’
대충 저들이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루한의 군주였기에 직접 본 것은 적어도, 신하들의 보고를 통해 들은 것은 많았다.
“저기, 아가씨? 아니, 헌터님? 커피랑 과자 좀 드시지요?”
그녀를 건물 안으로 안내했던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루시의 귀를 거슬리게 한다.
“…….”
루시는 차갑고 무심한 사파이어 눈동자로 눈앞의 중년인을 지긋이 보았고.
“그…… 루한이라는 나라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대접한 음식을 멀뚱히 보기만 하고 먹지 않으면 굉장히 무례한 것으로 여깁니다.”
루시가 말없이 바라만 보자, 남자는 슬슬 답답한지 짜증이 서린 어조로 재촉한다.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남자는 주위에 서 있는 일행들에게 은밀히 손짓했다.
처억, 척, 철컥.
마나를 다룰 줄 아는 각성자들은 각자의 이능을 준비했고, 마나가 없는 이들은 총기류를 꺼냈다.
“보아하니 다 알고 온 모양이야? 그래,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맙시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아직 모르네? 뭐, 몰라도 상관없겠지만.”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이제는 대놓고 험악한 분위기를 휘두르는 두 남자. 약을 탄 커피와 과자를 먹이려는 짓은 포기한 모양이다.
둘을 시작으로. 주위에서 루시를 응시하던 31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그녀를 포위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추워?”
“누가 에어컨 터보로 틀었어!”
“이 새끼들이 요즘 전기료가 얼마나 비싼데, 지들 돈 아니라고 아주!”
갑자기 내부가 한겨울처럼 추워진 것이 이상했지만, 에어컨 문제로 여길 뿐이다. 도망치려면 그때가 마지막 기회였는 줄도 모르고.
“눈치챈 것 같지만 이미 늦었어. 그래도 걱정 마시라고. 너 같은 최상급은 저 아래에 있는 애들과 달리 엄청 귀하게 다뤄질 테니까.”
“꽤 높은 수준의 각성자다! 다들 긴장 단단히 해!”
“그렇다고 너무 쫄지들 마! 이럴 때를 대비해 그걸 준비했으니까.”
“어서 그걸 작동시켜!”
위우우웅.
루시가 앉은 자리 바닥에서 마법진과 유사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생김새는 마법진보다는 반도체 회로를 동그랗게 그린 것에 가까웠다.
‘이건?!’
바닥에서 빛나는 구속진을 본 루시는 건물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경악했다.
단순히 이 유사 마법진 때문은 아니다. 그녀에게 이딴 허접한 수작은 길을 걷다 마주하는 작은 물웅덩이만도 못하다.
‘이 배열은……! 이 수식은?!’
중요한 것은 이 구속진에 묻어 있는 잊지 못할 냄새다.
그녀의 설원과 비슷한 냄새. 어쩌면 이보다 더 깊은, 심연 속 ‘그 힘’과 유사한 기운.
‘도대체…… 어떻게?!’
같은 뿌리에서 나온 친척 같은 친숙함. 너무나 비슷하여 소름마저 돋는 배열, 수식, 냄새, 밀본.
‘이노센티아!!’
바로 대머법진 이노센티아. 회귀 전 루시푸르네를 절망에 빠트렸던 끔찍했던 구속구!
고오오오오.
물론 지금 그녀 아래에서 빛나는 마법진의 위력은 오리지널 이노센티아의 1천 분의, 1만 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 구속구에서 나는 역겨운 근본!
문제의 그것이 여왕의 역린을 건드렸다.
“감히!!”
그녀의 트라우마가, PTSD가 발작 버튼이 눌린 것처럼 깨어났고, 반쯤 벗어난 이성에, 설원의 권능이 기다렸다는 듯 통제를 벗어났다.
!!
거대한 마력 폭풍이 휘몰아쳤다.
취업 알선을 빙자해서 인신매매하는 그들이라고 매뉴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매뉴얼대로라면 야심한 시각에 제 발로 여길 온 저 여인은 분명 수상하고 위험하다.
허리춤에 찬 검뿐만 아니라 달빛에 빛나는 청은발을 보았을 때부터 각성자임은 알았다.
외국인인 척하면서 물어본 집 주소부터가 평범한 사람은 출입조차 할 수 없는 부자 동네다.
어쩌면 협회에서 파견한 집행관일 수도 있다.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지금까지 몰랐다는 것은, 눈앞의 여인이 협회에서 비밀리에 키운 요원일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매우 조심해야 하고 참아야 하며 아무 짓도 하지 말아야 한다. 되도록 건물 안으로 데려와선 안 된다.
그러나 살다 보면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는 경우가 왕왕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 대표적이다.
함정을 각오하고서, 강자일 거라는 확신을 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여인이 나타났다.
이 세상 미모가 아닌 것 같은 청은발에 사파이어를 눈에 담은 여인.
여신이 존재한다면 저렇지 않을까 싶은 아우라와 기품. 외모부터 분위기 등 모든 것이 미디어를 통해 본 지구의 성녀와 맞먹거나 혹은 뛰어넘는다.
분명 독을 품은 꽃임을 알면서도 이성을 마비시키는 아름다움에 그들은 매뉴얼을 잊었다.
본능이 들끓었다.
수컷의 번식 욕구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아름다움을 탐하는 지성체의 결핍이, 이성이 아닌 본성이 이들을 움직였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저 여자는 무조건 가지리!’
아이러니하게도 목숨을 지켜 줄 생존 본능은 철저히 외면했다.
급히 연락을 받고 집결한 조직원 전체가 건물 안으로 집결했다. 비번이라서 다른 층에서 쉬고 있던 녀석들까지 전부.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저 청은발의 여인을 본 순간 납득하고 말았다.
정성스럽게 건넨 커피와 과자에는 치사량에 가까운 수면제를 탔다. 각성자니까 죽지는 않겠지. 설령 마시고 잠들지 않는다 해도 힘은 약해질 것이다.
그러나 초인적인 인내로 마시라 권했음에도 그녀는 마시지 않았다. 역시 다 알고 온 모양.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 건물에 들어온 이상 너는 독 안에 든 쥐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우리에겐 이게 있다.
여자가 먹지 않자, 곧바로 이능을 발화하고 총기를 꺼냈다. 아끼고 아꼈던 고위 헌터용 구속진까지 동원했다.
그리하여,
!
거대한 냉기 폭풍이 그들을 덮쳤다, 순식간에.
슬슬 추워졌던 공기가 급격히 매서워진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건 초상능력에 의한 현상이라는 것을.
눈앞의 아름다운 여인은 빙결 계열의 원소술사였다.
허리춤의 푸른색 검 때문에 근접계로 여겼는데 아니었다.
철컥, 척.
여인을 조준 중이던 저격수가 급히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기의 기관이 얼었는지 격발되지 않는다.
각성자들의 이능 또한 마찬가지.
대기 중의 마나가 저 청은발 여인이 뿜어내는 차가운 기운에 제압되었다.
차원의 축복을 받은 각성자의 초상능력이 발현되지 않는다.
이것은 경악스럽지만 처음 보는 현상은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를 연상케 한다.
대전쟁 시절, 마왕군 사천왕 중에 가장 강하고 두려웠던 존재, 인간을 배신했던 인류의 공적, 빙하의 여제의 재림 같았다.
그랬기에 그들은 오히려 더 경악을 금치 못했다.
“……!”
누군가가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 했다. 어쩌면 이곳에 있는 모두가 비명을 지르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목구멍부터 폐까지 순식간에 얼었다.
숨도 쉬어지지 않았고, 심장도 얼었고, 몸속을 돌던 피도 얼어 순환을 멈췄다.
세포 하나하나가 얼었다. 의식 또한 얼어 간다. 영혼이 있다면 이 또한 얼어붙었을 것이다.
깊은 안식이 다가온다.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지금 무엇을 하려 했는지, 내가 누구였는지를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