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54화 (154/212)

제154화

#154.

어젯밤, 2년 가까이 빈집이었던 태광휘의 집에서 불이 켜지고 인기척이 발생했다는 보고.

그 보고가 협회와 국정원, 경찰, 국방부를 잇달아 강타했다.

“집 안에 분명 누군가가 지냈던 흔적이 있습니다. 태광휘 헌터의 침대에서 잠을 잔 것도…….”

“도대체 누가?! 이 집의 보안 시스템은 A급 헌터도 뚫기 힘들거늘!”

“이거 보고한 새끼는 뭐 하는 놈이야?! 왜 바로 말 안 하고 이제 보고한 거야!”

협회의 대응이 늦은 이유는 보고한 이웃(이웃이라고 쓰고 국정원 요원이라고 읽는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였다.

처음엔 그저 협회 직원이 태광휘의 빈집을 점검하러 온 것으로 추정했고, 다음 날 종합 보고서에 두 줄 정도 끼워서 올렸기 때문.

“CCTV는? 집 인근 CCTV들 말이야!”

“지금 확보 중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태광휘 헌터의 일이다! 대한민국, 아니, 세계의 존망이 걸린 일이야!!”

“CCTV 감식 결과 나왔습니다! 그 미등록 S급 수배자! 청은발의 냉기 원소술사입니다! 그 여자가 또 다른 여자와 함께 태광휘 헌터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찍혔습니다!”

“맙소사.”

“당장 신원 확보해! 수배자랑 같이 있었다는 여자 말이야!”

“기자들이 냄새를 맡았습니다.”

“막아! 엠바고 깨는 새끼 있으면, 가족과 동반 살자시킬 거라고 해!”

동네 전체가 혼란스럽다.

다른 사람 집도 아닌 태광휘의 집이 털렸다! 그것도 마인일지도 모를 존재에게!

“시 외곽에서 냉기 이능으로 인한 전투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망자 신원은 현재 확인 중입니다.”

“인근에서 진한 마력 파동이 감지됐습니다! 파동 유형이 수배자의 것과 일치합니다.”

그러는 중에도 포위가 점점 조여 오고 있었다.

“상대는 S급 마인이다! 절대 먼저 나서지 마! 협회의 헌터들은?!”

“문유리 집행관과 김시오 집행관이 출동했습니다!”

올가미처럼.

‘……어쩌지?’

루시는 바람의 정령이 가져오는 대화 소리를 들으며 볼을 긁었다.

“?!”

그러다가 불현듯 고개를 미어캣처럼 번쩍 치켜들었다.

‘이런 강자가 존재한다고?!’

지구에 와서 처음으로 느껴 보는 강자의 기운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사특한 기운은…….’

여왕의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지구에 와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강자, 그것도 둘씩이나 된다.

처음 루시푸르네는 도망치려고 했었다.

‘아니.’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언제까지 도망만 칠 순 없어. 특히나 저 아이까지 데리고.’

자신 옆에 불안한 눈초리로 서 있는 현지 시녀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왜 도망쳐야 하지?’

작은 의문이 그녀의 마음속에 물결을 만들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지구에 온 지 며칠, 그 잠깐 사이에 쌓이고 쌓였던 답답함과 짜증, 스트레스이기도 했다.

‘나는 루시푸르네! 루한의 여왕이자, 솔라의 반려!’

아무리 협회라는 곳에 방문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 세계의 엄중한 질서에 따르지 않았다고 해도, 맹세컨대 결코 내가 먼저 물의를 일으킨 적은 없다.

‘시비는 너희가 먼저 걸었어! 감히, 여왕인 나에게!’

정당방위였고 정의를 집행했다.

맹세컨대, 그녀가 지구에서 내린 설원의 징벌은 이 세상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괴수를 처단하고 범죄자를 척살하고 부패한 자들을 청소했으니까.

그런 내가 왜 피해야 하나?

고작 너희가 만든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인가?

‘내가 더럽고 치사해서! 상대해 준다!’

여왕은 결심했고, 자신을 향해 접근해 오는 두 존재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민주야, 저기 구석에 숨어 있거라.”

“넵! 저기보다 좀 더 멀리 있어도 되지요?”

“……그렇게 하렴. 괜히 붙잡히지만 말아.”

“물론이지요! 제가 또 해병대 출신입니다. 위장이랑 엄폐는 아주 잘했습죠!”

루시의 당부에 구민주는 경례를 올리면서 냅다 뛰기 시작했다.

“…….”

정말이지, 눈앞의 시녀는 참으로 신선한 성격을 지닌 아이다. ‘아니 되옵니다! 여왕님을 두고 어찌 갑니까?’와 같은 신파는 안 해서 좋았지만, 어째 시원섭섭한 느낌이 드는 루시였다.

빠르게 준비를 마쳤다.

설원의 결계를 펼쳤다.

시공간과 물리법칙의 괴리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저벅, 저벅, 저벅.

결계 안으로 들어온 두 존재 또한 이상함을 눈치챈 모양. 발걸음 소리에 길고양이와 같은 경계와 조심성이 있다.

이윽고 이계에서 온 여왕과 지구의 헌터가 조우했다.

늦은 밤이지만 선글라스와 챙 있는 모자를 깊게 쓴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고, 검푸른 코트가 결계의 바람에 휘날린다.

“……?!”

“!!”

협회 소속의 두 집행관은 루시를 보더니 멈칫한다. 모자와 선글라스로 가린 얼굴에는 결코 숨길 수 없는 경악이 보였다.

눈동자는 검은 안경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유독 루시가 손에 든 윈테이라를 시선에 두고 있는 느낌을 대놓고 받았다.

파아아아앗!!

잠깐의 대치. 먼저 공격한 것은 여왕이었다.

상대편은 만만치 않은 실력자들. 심지어 두 명, 2 대 1의 상황. 선공 정도는 가져도 된다고 생각되었다.

“자, 잠깐……!”

루시의 기습에 둘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얼어라!]

설원의 대마녀 입에서 언령이 읊어졌고, 설원의 영창(aria)이 폭풍이 되어 적을 덮쳤다. 집중적으로.

결계가 펼쳐진 공간이기에 루시는 간만에 전력을 쏟을 수 있었다.

‘초반에 압도한다!’

설원의 권능은 물론, 아직 사용이 서툰 무한의 추위도 꺼냈다.

그녀 안에 똬리를 틀고 있던 두 힘이 간만에 기지개를 켠다.

그러나 설원의 대마녀를 상대하는 지구의 두 헌터도 만만치 않았으니.

촤아아아악.

비슷한 복장을 입었지만.

파아아아앗,

둘의 이능은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달랐다.

“키메라……?!”

스태프를 든 남자는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양손이 징그러운 촉수 같은 것이 되어 움직였고, 스태프는 그대로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빛을 내기 시작한다.

“신성력이랑 키메라 마법을 동시에 쓴다고?!”

남자의 기괴함을 본 루시는 당황했다. 하지만 아직 놀랄 것은 더 남았다.

“그리고 저건 혈마법?”

검을 사용하는 여자 헌터 주위에 짙은 혈향이 뿌려지더니, 순식간에 주위를 불그스름하게 만들었다.

진홍빛 안개가 설원의 결계와 대적하기 시작한다.

“잠시! 대화를…….”

“설마 당신이……?!”

둘은 각자의 이능을 펼치면서 루시와 대화를 시도하려 했다.

“어림없다!”

파아아앗!

둘의 기괴한 이능에 경계심이 맥스로 오른 루시는 설원의 징벌을 더욱 세게 펼쳤다.

“크으윽!”

지구에서 변형계 타입으로 불리는 김시오는 상상을 초월한 재생력으로 몸이 얼어붙는 것을 막았다.

“엄청나군!”

혈기사라고 불리는 근접계의 여성 헌터 문유리는 혈마법을 펼쳐 루시가 뿌리는 무한한 추위를 최대한 희석시켰다.

둘 다 공격보다는 방어에 집중한 모양새.

“?!”

이쯤 되니, 루시 또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저 둘에게선 어떤 살의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

“너희는 누구냐!”

비록 사용하는 능력은 흑마법과 맞먹는 사특한 힘이었으나, 일단 대화를 나눌 가치는 있어 보였다.

“나는 루한의 여왕이자 설원의 대마녀! 그리고 솔라시우스의 반려! ‘루시푸르네 디 예나체리 룬 루한’이니라.”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기에. 솔라의 성인 ‘마하’나 태광휘의 성인 ‘태’를 이름에 넣지 못한다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며, 여왕은 이세계의 기사들에게 외쳤다.

동시에 약간의 자비를 보여 열심히 펼쳤던 설원의 권능과 무한의 추위를 일부 거뒀다.

그리하여 결계 안은 소강 상태로 들어섰다.

“청은발에 푸른색 마검이라고 해서 혹시나 싶었지만, 진짜였을 줄이야.”

“믿어지지 않는군요. 다른 차원에서 이렇게 뵙게 되다니.”

여왕을 상대하던 두 사람, 문유리와 김시오는 허탈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여성 헌터였던 문유리는 루시의 입에서 ‘솔라시우스의 반려’라는 말이 나왔을 때 눈에 띄게 움찔거리기도 하였다.

“설원의 대마녀이자 설원의 여왕을 뵙습니다.”

“혹한의 딸이자 루한의 주인을 뵙습니다.”

루시가 자신을 먼저 소개하자, 두 헌터는 당연하다는 듯 그녀를 향해 정중히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루한의 예법이었다.

“어……엉?”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제는 반대로 루시가 당황한다.

당황하는 루시를 위해 두 헌터는 쓰고 있던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었다.

“폐하, 이렇게 이계에서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제 이름은 문유리, 본명은 유리아 폰 문라이트. 루한의 변경백인 문라이트 후작가의 장녀이자 여기사입니다.”

제일 먼저 쇼트커트한 여기사가 루시에게 경례를 올렸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진분홍 머리와 눈동자가 매력적인 여인.

“……!”

루시는 저 여인을 본 적 있었다. 과거 윈테이라에 동기화되었을 적에.

“설원의 옥좌에 축복이 있기를. 제 이름은 김시오, 본명은 시몬 아케인이라고 합니다. 문유리 헌터와 마찬가지로 루한에서 왔습니다. 루한의 순백궁 폐허 먼발치에서 저희 둘을 잠깐 보셨을 겁니다. 기억나시는지?”

뒤이어 주황색 머리에 실눈이 인상적인 남성이 공손히 자신을 소개했다.

* * *

루한 시간으론 5년 전, 마왕과의 전투 직후.

지구 시간으론 약 2년 전, 태평양 게이트로 태광휘가 진입한 직후.

“확실한 것은 이번에도 아공간은 아니라는 겁니다.”

공간 도약을 마친 시몬이 착잡한 어조로 말했다.

“예, 그건 저도 압니다. 시력은 멀쩡하니까요.”

이에, 유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는 의기소침하지만, 대화를 나누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

두 번째 공간 이동마저 실패하자, 시몬은 무안한지 뒷머리를 긁을 뿐이다.

“그나저나 뭔가 굉장히 이국적인 풍경입니다. 딱히 아름답진 않지만 이런 건축물이 대륙에 존재했던가요?”

유리아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곳곳에 무너진 건물이 즐비했고 조용하다. 버려진 도시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설원의 가호가 있는 곳에선 벗어난 모양입니다.”

시몬과 유리아는 서로의 몸 상태를 살폈다.

“……?”

“……!”

그러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전부터 두 사람을 괴롭히던 충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후는 쌀쌀하지만 그리 춥지 않은 것이 북부는 아닌 것 같아요. 중부인가? 가만. 대륙 중부면 제국?!”

그러다가, 떨어진 곳이 제국 한복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제국 한복판이라고 해도 이 퀴퀴한 공기는 도대체 뭔지. 애초에 제국에 이런 건축물을 가진 도시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어 봤어요.”

“마나의 분포도도 낮은 편이고요. 마치…….”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다고 두 사람은 동시에 생각했다.

두 사람이 어리둥절 주위를 살피고 있을 때였다.

부스럭, 부스럭.

주위에서 인기척이 점점 감지되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초라한 몰골과 별개로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입고 있는 복식도 두 사람이 알던 것과 확연히 달랐다.

“둘 중 하나입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먼 대륙에 떨어졌거나, 아니면 다른 차원에 떨어졌거나.”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을 보면서 시몬이 말했다.

사람들이 두 사람을 보면서 뭐라 중얼거렸지만 역시나 처음 듣는 언어.

“통역 마법을 사용하겠습니다.”

시몬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과 유리아를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실례합니다.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겠습니까?”

통역 마법이 통하는 것을 확인한 시몬은 이어서 사람들을 향해 말을 건넸다.

“여, 여기 말임메? 여긴 함경북도 옛 청진시오만?”

“함경북도 청진시? 혹시 지금이 몇 년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올해가 주체 136년이었지비, 아마?”

전혀 모르는 지역과 연호다.

“어느 나라에 속한 도시인지?”

시몬은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물었고, 그의 질문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친근하게 대답을 해 줬다.

“나라? 없어. 괴물들한테 공화국이 망한 게 언젠데.”

“지금은 남조선 놈들이 대한연방이라는 괴뢰 정부를 설립해서 통치한다고 하지 않았슴둥?”

“그래서 옛 공화국 군단들이 연대해서 남조선과 대치 중인 상황이지비.”

순순히 대답을 해 주는 것은 좋았지만.

“……?”

문제는 그 대답을 들어도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