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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55화 (155/212)

제155화

#155.

시몬과 유리아를 향해 사람들이 계속해서 몰려오고 있다.

“생긴 게 깔끔한 것이 외국에서 오셨소?”

“색목인이니까 로씨아? 그런데 조선말을 잘하는군?”

“그 초상 전사가 되면 머리랑 눈 색도 바뀌니끼니 남조선일 수도 있다야.”

“기럼, 남조선의 헌터인지 뭔지 하는 동무라는 검메?”

“딱 보면 허리에 칼 찬 게 맞지비!”

유리아와 시몬을 향한 북한 사람들의 목적은 단순했다.

“초상 전사 동지, 혹시 요기할 것 좀 얻을 수 있겠습네까?”

“아는 바깥소식이라도 있으면…….”

구걸이었다. 음식과 금품, 정보 등등.

어쩌면 그 외의 것도.

“그나저나 왜 이리 피가 뜨거운 것 같지?”

“요즘 욕정을 못 풀어서 그런가? 아닌데. 분명 아까 하고 왔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답답하다야.”

“괜히 괜히 화가 납네다. 이거 왜 이러지?”

더구나 여기 모인 사람들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정확히는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고 봐야 했다.

가뜩이나 불량스러워 보이는 이들의 눈동자가 서서히 붉어진다.

눈동자뿐만 아니라 귀와 볼도 붉다. 분위기가 딱 봐도 심상치 않다.

철컥.

그들은 결국 참지 못하고 하나둘씩 대놓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손에 쥔 무기를 시몬과 유리아에게 겨눴다.

상당수는 옛 인민군이 사용하던 88식 보총을 들었고, 총이 없는 자들도 창이나 칼 같은 연장을 들었다.

폐허 된 도시의 버려진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두 사람의 머리 색과 복장을 보고 조심스러웠을 뿐, 점점 흐려지는 이성과 진해지는 충동은 티끌만 한 조심성마저도 희미하게 만들었다.

“유리아, 조심하세요. 저들 눈빛이 심상치 않습니다.”

“네.”

이곳 사람들이 들고 있는 특이하게 생긴 막대기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무기와 비슷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시몬은 추측했다.

그는 후유증을 각오하고서 마법을 준비했고 동시에 유리아에게 주의를 주었다. 유리아는 허리에 찬 검을 여차하면 뽑아 들 준비를 마쳤다.

“초능력 쓴다고 총알이 안 들어가지는 않디?”

“안 들어가는 군단 동무를 본 적 있긴 한데, 흔하지는 않았슴메.”

“저들은 어떨 거 같소?”

“모르지. 반항하면 일단 한 발 먹여 보자우.”

저 무덤처럼 생긴 도시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숨어 있었던 건지 신기할 정도로, 두 사람을 포위한 인파는 어느새 몇 겹의 둥근 벽을 형성했다.

당장이라도 좀비 떼처럼 달려들 기세.

‘좋지 않아…….’

시몬은 인상을 구겼다.

저들을 상대하게 되면 필히 사상자가 발생한다.

비록 나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이들이지만, 가능한 한 살인을 피하고 싶었다.

“유리아, 꽉 잡으세요.”

시몬은 유리아의 손을 잡고 공간 이동 마법을 발동하려 했다.

“다시 한번 공간 이동을…… 음?!”

하지만 그때, 하늘에서 감지된 매우 친숙하면서도 불쾌한 기운이 시몬의 캐스팅을 멈칫하게 했다.

“도…… 도망쳐라! 검은 문, 검은 문이다!”

“으아아아악!”

“살려, 살려 줘어어어!”

두 사람을 포위했던 인파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 도망치기 시작했다.

쿠웅, 쿵, 쿠웅.

쿠오오오오!

대신 하늘에서 무언가가 내려오더니, 인파가 사라진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저건?!”

상당히 익숙한 몰골의 괴물들이 유리아와 시몬을 반겼다.

“오거에 트롤에 웨어 울프까지. 몬스터 테이머라도 있는 걸까요?”

하늘에서 다양한 종의 몬스터들이 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두.

콰앙, 퍼엉.

무너진 도시 곳곳에서 총성과 포성이 울린다.

시선을 돌려 뒤편을 보니, 도시의 부랑자들과 몬스터들이 싸우고 있었다.

아까 시몬과 유리아를 겨눴던 막대기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쇠로 된 볼트가 엄청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석궁을 맞아도 끄떡 않는 중대형 몬스터들이 저 천둥 막대에 맞아 주춤거리거나 쓰러졌다.

꿀꺽.

이를 본 시몬과 유리아는 침을 삼켰다.

‘역시 저 막대기는 무기였군. 하지만 무슨 원리지? 마나가 안 느껴지는 것을 보아선 마도구는 아닌데.’

‘적어도 중급 마도구 위력이야. 보기와 다르게 기술이 꽤 발전한 왕국인가?’

만약 아무것도 모른 채 저걸 맞았다면, 최소 중상을 입었을 거라고 유리아는 생각했다.

하지만 저들이 든 무기는 활처럼 화살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괴물의 숫자는 굉장히 많았다. 족히 수천은 되어 보였다.

“아아아악! 살려 줘어!”

“오마니이!”

“총알, 누가 총알 좀!”

애처롭게 싸우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몬스터들에게 짓밟혔고, 시몬과 유리아는 이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다.

“유리아, 우리도 일단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시몬.”

이유가 어찌 되었든 지금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눈앞의 몬스터를 박멸하는 것이었다.

둘은 늘 그랬던 것처럼 몸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시몬은 신성력과 어쩌다 하급 마법만을 사용했고 유리아는 검술만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렇게 힘을 아끼기에는 몬스터의 수가 너무 많았고 강했다.

몬스터 하나하나가 둘이 온 세계에선 재앙 수준의 몬스터.

두 사람의 몸이 아무리 튼튼하고 힘이 세다지만 한계는 빠르게 찾아왔다.

[으아아아아!]

“유리아!!”

제일 먼저 스타트를 끊은 것은 유리아였다.

밀리고 밀려 압사당할 것만 같은 몬스터의 파고 속에서 결국 써서는 안 될 힘을 쓰고 만 것.

밀려오는 몬스터 홍수 속에서 휩쓸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화아아악!

진한 혈향이 대기를 적셨다.

“……이런!”

유리아와 연결된 시몬 또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크으으으윽!]

결코 쓰지 않기로 맹세했던 ‘키메라 마법’이 시몬의 몸속에서 기지개를 켰다.

촤아악!

키메라 성자의 몸이 생체 병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유리아 속에 숨죽여 있던 알파가.

-!

시몬 속에 고여 있던 응축된 원혼과 살점이.

파아아아앗!

움직이기 시작했고 압도적으로 밀리던 전세가 순식간에 역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역전과 동시에.

피슈우우웅.

콰아아앙!

도시에 대규모 포격이 가해졌다.

도시 외곽에서 시작된 포격은 약 20분가량 이어졌다.

포격은 군에서 준비한 포탄이 다 떨어질 때까지 이어졌고, 폐허가 되었던 도시는 이제 터만 알아볼 수 있게 평평해졌다.

뜨거운 열기가 사라지고, 자욱했던 연기가 흐려지고, 강렬한 화약 냄새만이 구름처럼 떠다니자, 군대는 진군했다.

“진격! 마석 채굴을 최우선으로 한다!”

“설령 생존자가 있어도 돕지 마라. 그들은 반동들이다!”

“마석 빼돌리다 걸리면 총살이니 명심하라우!”

도심 중심부로 이동하는 군대는 어딘가 엉성했다.

복장과 무기 대부분이 통일되지 않은 각양각색이었고, 그나마 제일 많이 보이는 복장은 암갈색의 낡은 인민군복과 88식 보총이다.

“피 냄새?”

그들이 도시로 진입하자마자 맡은 냄새는 피 냄새였다.

화약 냄새와 함께 어우러진 혈향이 역했고, 자욱한 연기 속에 얼핏 보이는 붉은 안개는 보는 이로 하여금 현기증을 일게 만들었다.

그리고 불그스름한 연기 속. 멀쩡히 서 있는 두 인영이 시야에 잡힌다.

“저거, 생존자임메?”

이를 가장 먼저 발견한 어느 인민군이 목소리를 떨었다.

“나, 날래 초상 전사들을 부르라! 어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군관이 군벌 소속의 각성자를 급히 호출했고. 짙게 남아 있는 마력장으로 무전조차 되지 않기에 이들 중 제일 발이 빠른 어린 병사가 급히 도시 외곽으로 달렸다.

“거기! 신원을 말하라!”

“두 손 들고 무릎 꿇어! 조금이라도 딴짓하면 쏘겠다!”

초상 전사들이 올 때까지는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해야 했던 인민군 잔당들은 포위를 풀지 않았다.

그들은 50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서 목표를 겹겹이 둘러쌌다. 족히 300은 넘어 보이는 총구가 두 사람의 머리, 몸통에 집중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연기가 완전히 가시고 붉은 아지랑이 정도만 은은하게 흐르게 되었을 때, 옛 인민군 잔당이자 현 북한 동북 군벌의 병사들은 극악의 포격에서 살아남은 두 사람을 명확히 볼 수 있었다.

“……!?”

그들은 이국적으로 생겼으며, 주황색과 진분홍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지녔다.

평범함을 넘어 초라하기까지 한 망국의 병사들.

이계에서 지구, 그것도 북한으로 불시착한 남녀.

두 세계의 시선이 교차했다.

번쩍.

시몬과 유리아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에서 빛이 번뜩이자.

“……어어!”

“으으으…….”

이를 목도한 사람은 갑자기 몸속의 피가 끓는 느낌을 받았다.

머릿속이 붉다 못해 터질 것 같았고, 체념하듯 꺼졌던 심장 속 심지가 재점화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이 감정은 빠른 속도로 전염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아아아아악!!”

“전부- 죽여 버리갔어!”

투두두두두!

타앙, 타앙, 타앙.

포격으로 조용하던 옛 도시의 터에서 하늘 위로 총성과 괴성이 오갔고, 분노, 짜증, 갈증, 욕망, 성욕, 식욕, 갈망 등등 인간의 응축된 본성이 동시에 터져나갔다.

함경북도에 터를 잡은 옛 인민군 군벌이 와해되기까지 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 * *

평택지제역 인근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

50평 정도 되는 아파트에는 지금까지 시몬과 유리아만이 살고 있었는데, 이번에 두 사람이 추가되었다.

바로 루시와 구민주였다.

“……그렇게 된 겁니다.”

“이 모자와 안경을 쓰는 이유도 그때 있었던 일 때문이고요.”

시몬과 유리아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루시에게 간략히 전했다.

“그대들 몸속에 있던 힘은? 솔라에게 듣기론 충동을 억제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지구로 오면서 충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정확히는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통해 밖으로 분출되었다, 가 맞는 말일 겁니다.”

“이유는 파악했고?”

“원인은 아직 정확히 모릅니다. 그저 마왕과 마계의 힘이 크게 약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정도로 추정 중입니다.”

“그래서 그 힘으로 마인 잡는 일을 하는 건가?”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왜지? 그대들은…….”

“이 지구라는 세계는 좀 특이합니다. 몬스터 사냥은 길드라는 용병대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실제로 몬스터에게 죽는 사람의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같은 인간, 그것도 마인에게 죽는 무고한 사람의 숫자가 더 많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 루시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성녀가…… 그대들을 받아 줬다고?”

한편으론 두 사람을 어떤 의심도 없이 받아 줬다는 지구의 성녀가 신경 쓰인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이곳에 오자마자 본의 아니게 이 나라의 반란군을 와해시켜 버린 처지였지요. 지금이야 웃어넘기는 거지, 그땐 정말 난감했습니다.”

“그때, 지구의 성녀님이 나타나서 저희의 폭주를 진정시켜 줬습니다. 비록 모시는 신앙은 다르더라도 천계의 신성함은 분명히 느꼈습니다.”

“성녀님은 저희에 대해 아는 눈치였습니다. 정확히는 저희가 온 세계에 대해서요. 덕분에 이후에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이렇게 협회라는 곳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한반도 동북부에 대규모 게이트가 열리고, 이를 북한 군벌이 진압하다가 와해되었다는 소식은 한국을 뒤흔들기 충분했다.

한국 정부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파악해야 했고, 휴민트마저 전멸했기에 일단 정찰대를 보내기로 했다.

그 정찰대 편성을 위해 정부는 협회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협회의 부협회장이자 지구의 성녀 아스카 레이나가 친히 원정에 참여했다.

“지구의 성녀께서는 저희의 신원을 잘 은폐해 주셨습니다. 대외적으론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것으로 되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사태의 원인이었던 시몬과 유리아를 잘 싸매고 와서 협회의 집행관으로 앉혔다. 북쪽에 있었던 일도 군벌 내부에서 일어난 분열로 적당히 포장했고.

그래서인지 시몬과 유리아가 성녀에게 가지는 감정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

루시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가 찝찝해. 뭔가…….’

그녀가 성녀를 향해 가지는 감정은 단순한 질투나 유치한 경계심 같은 게 아니다. 물론 그런 감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 봤자 30퍼센트, 어쩌면 50퍼센트 정도?

나머지 거부감의 근원은 따로 있었다.

바로 ‘대마녀’의 감이다.

여자이자 여왕이자 대마녀의 쎄한 느낌이 경고하고 있었다.

조심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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