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56화 (156/212)

제156화

#156.

루시와 시몬 그리고 유리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나 버렸다.

서로 이렇게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것은 처음이다.

유리아야 루시가 윈테이라에 동기화했을 적에 대화를 나눈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그때와 지금은 엄연히 달랐다.

그랬기에 루시는 뭔가 새로운 기분을 느끼면서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2년 전에 여기에 왔다고? 솔라와 그대들의 시간이 많이 어긋나는군. 대략 3년 정도 말이야.”

태광휘가 지구로 복귀한 것은 5년 전 일이다.

하지만 시몬과 유리아가 지구에 불시착한 것은 2년 전.

태평양 게이트가 막 열리고 태광휘가 그 안으로 진입한 직후였다.

“예, 저희도 처음엔 많이 놀랐습니다. 애초에 그 사실을 명확하게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요.”

세 사람의 대화는 아침이 될 때야 끝을 보였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이계에서 동향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 참으로 반갑구나.”

“저희도 그렇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시지요.”

반가움과 설렘이 가득한 화기애애한 분위기.

그 분위기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동떨어져 있었으니.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이야?!’

바로 구민주였다.

루시와 시몬, 유리아는 통역 마법을 풀고서 다른 세계의 언어로 대화를 나눴다.

높은 제국어 억양이 그 세계 언어를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참으로 감미롭게 들렸지만, 그렇다고 소외감을 느끼는 않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어가 아닌 거 같은데? 러시아 내 소수민족 언어인가? 문유리 집행관과 김시오 집행관의 출신이 동(東)러시아로 알려져 있긴 한데. 루시 님도 그럼 그쪽 출신?’

개문사태와 대전쟁으로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잃었다. 지금 그곳은 몬스터 랜드가 되어 인간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의 러시아는 유럽 쪽의 서러시아와 연해주의 동러시아로 분단된 상황. 정부도 둘로 나뉘어 있어서 사실상 다른 국가라 봐야 했다.

‘루한이라는 나라가 동러시아에 있는 자치 공화국? 인터넷에는 아직 없는데. 건국된 지 얼마 안 된 건가?’

구민주는 자신이 아는 상식 내에서 최대한 지금의 상황을 해석하려 애썼다.

‘어쨌든 죽으란 법은 없구나.’

한편으론 자신의 고용주가 협회의 떠오르는 두 집행관과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는 사실에 큰 안도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렴 어때? 좋은 게 좋은 거지!’

이히히히.

구민주는 옆에서 영업용 미소를 애써 띠었다.

저들이 자기네 나라 언어로 한국을 욕하든, 자신의 앞담화를 까든, 반란을 모의하든, 구민주는 개의치 않았다.

그러는 중에도 세 사람의 대화는 이어졌다.

“그나저나 여긴 왜 오신 겁니까?”

“여기에 온 이유? 당연히 솔라를 만나러지.”

“태광휘 님을 만나러 온 이유 외에도 뭔가 다른 목적이 있으신 거 같아서 말입니다.”

“다른 목적?”

시몬의 질문에 루시는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해 보니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을 잊은 것 같았다.

‘목적이라……. 그러고 보니 나 지구에 온 이유가…….’

루시는 생각했다.

“아! 맞다! 차원 코어!!”

얼마 뒤, 자신이 지구로 온,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협회의 집행관이면 움직이는 재판소다.

집행관은 헌법을 초월한 존재였고, 봉급은 길드의 헌터에 비해선 박봉이지만 휘두르는 권력은 대통령을 능가했다.

그런 집행관 둘이 움직였다.

태광휘의 집에서 일어난 침입, 평택시에서 일어난 테러(?) 등등. 그날 있었던 모든 일이 순식간에 묻혔다.

대외적으론 두 집행관이 미등록 각성자와 싸워서 격퇴한 것으로 포장되었다. 물론, 이를 진심으로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협회도 정부도, 뭐라 하지 않았다.

두 집행관이 이렇게 처리했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실제로 박태오 협회장과 아스카 레이나 부협회장은 침묵을 지켰다.

이런 이유로 루시와 구민주 두 사람은 편한 마음으로 신세를 질 수 있게 되었다.

아침이 밝았고 두 집행관은 출근 준비를 마쳤다.

한숨도 자지 않았지만 애초에 그들은 초인. 하루 못 잤다고 피로를 느낄 사람은 아니다.

[어제저녁, 적풍 길드가 개마고원에서 발생한 중형 게이트 공략을 시작했습니다. 해당 게이트는 8차원 등급으로 판명되었고 B급의 드래곤 타입 몬스터가…….]

아침 뉴스가 거실 TV에서 방영 중이었고 어제 있었던 일들은 하나도 다뤄지지 않았다.

루시가 앞서 일으킨 김명찬 일행과 경찰을 척살한 것도 마치 없었던 일처럼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 거실 TV를 뒤로하고, 루시는 아침부터 소파에 앉아서 자신의 아공간 인벤토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거 지구에서는 수리가 힘들지도?’

마도구를 만지작거리던 루시는 마침내 결론에 도달했다.

“아공간 인벤토리군요? 그거 저와 시몬 경의 것도 여기 와서 완전히 먹통이 되었습니다. 시몬 경의 말로는 차원 이동의 후유증이라고.”

그리고 출근 준비를 마치고 방에서 나온 유리아가 그런 루시를 보며 말했다.

“역시 그랬군. 수리를 하려면 루한의 차원 축에서 할 수밖에 없겠어.”

“네, 시몬 경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

루시는 아공간 인벤토리 수리를 완전히 접고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일터로 나가려고?”

“그렇습니다, 폐하.”

그리고 곧 집을 나서려는 유리아를 배웅했다.

참고로 시몬은 보고서 문제 때문에 먼저 출근을 한 상태였다.

“그…… 당분간은 저희 집에서 머무셔도 됩니다. 저기 현지 시녀도 같이요.”

여왕이 직접 배웅을 나오자, 유리아는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차원 코어라는 것에 대해서는 저희도 한번 협회 쪽의 자료를 뒤져 보겠습니다. 인지 저하 기능을 하는 초상 장비가 있는지도요.”

“고마워, 유리아 경. 이 호의는 결코 잊지 않겠어.”

“기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 그대와 문라이트 후작가는 루한 제일의 충신이지. 기사도는 대륙 제일이고!”

“……감사합니다.”

루시가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자, 유리아는 다소 복잡한 심경으로 여왕의 감사를 받았다.

연적이라고 표현하기도 민망한 자신의 처지지만, 한때, 어쩌면 지금도 마음이 있는 남자의 여인을 주군으로 모시는 기분은 뭐라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나저나 폐하, 정말 협회에 안 가실 겁니까?”

유리아는 심란한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써 담담한 척 다른 주제를 꺼냈다.

밤새 대화를 나누면서 루시가 협회에 가지 않으려는 이유를 듣긴 했다. 성녀가 싫어서 가기 싫다는 이유라니. 아무리 유리아가 여왕에게 충성한다고 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이유였다.

“폐하라 부르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선 루시라고 불러 줘. 그리고 나는 협회에 갈 생각이 없다.”

“알겠습니다, 폐…… 루시 님. 협회와 길드에 등록하시면 지금보다 활동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겁니다. 지구의 성녀가 루한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루시 님의 처지를 이해…… 음?”

그렇게 질문을 잇던 유리아는 루시의 시선이 유독 TV에 꽂혔다는 것을 알고는 말을 멈췄다.

유리아도 여왕을 따라 무심코 거실 TV를 보았다.

“아!”

그리고 루시를 협회에 오도록 설득하는 것은 완전히 접었다.

[저는, 저는 믿어요! 태평양 게이트로 원정을 떠난 영웅들이 반드시 승리해 개선할 거라는 것을!]

-속보! 부협회장 아스카 레이나, 태평양 게이트 관련하여 성명을 발표.

[저와 태광휘 헌터는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이와 대화는 못 나누지만 깊은 감정을 언제나 교류하지요! 그와 협회의 영웅들은 살아 있어요!]

-충격! 지구의 성녀, 태광휘 헌터와 매우 깊은 관계임을 공식적으로 인정. 세기의 커플 탄생?!

TV 뉴스에서는 속보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

유리아는 진심으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연신 뉴스와 여왕을 번갈아 힐끔거렸다.

‘깼나 보군.’

그러다가 부스스한 몰골로 소파에 앉아 있는 작은 체구의 여자를 보았다.

어제 밤새 대륙 공용어로 대화를 하던 중에 소외되어 소파에 잠들었던 구민주였다.

‘저 똥고집이 협회에 들어가는 건 이번에도 글렀군. 뭐, 이제 상관없나? 그나저나 월급은 어떻게 받지?’

산발된 머리와 부스스하게 부은 얼굴을 한 구민주는 반쯤 해탈한 심경으로 뉴스를 보았다.

* * *

경기도 평택.

대한민국에서 평택은 군사 수도이자, 초상 수도였다.

대전쟁 당시 서울이 초토화되고 대한민국의 수도 기능은 철저히 분산되었다.

행정 수도는 세종시, 금융 수도는 제주, 공업 수도는 부산, 농업 수도는 광주, 그리고 군사와 초상 수도는 평택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평택에는 아시아 최강 전력인 주한 미군 2사단이 주둔 중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서울이 무너지면서 남쪽으로 후퇴한 국군 수방사와 제7기동군단이 집결했던 도시도 평택이었다.

경기도 평택은 대전쟁 당시 대한민국 최전방이었던 셈.

대전쟁 중반쯤에 서울이 수복되고 이후에는 북한 압록강을 넘어, 한때 만주 흑룡강까지 국군의 군홧발이 닿았고, 승전 후에는 빠르게 서울을 재건했지만 이 기조는 쭉 유지됐다.

현재 서울은 입법과 사법부만 그곳으로 이동했을 뿐, 수도라고 부르기에는 규모나 인프라가 애매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대전쟁 이전의 신도시 수준?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이 발악했던 지방 분산이 괴수로 인해 해결된 셈이다.

평택의 드높은 마천루.

세계 각성자 협회 본부이자 각성자 협회 한국 지부가 있는 건물 꼭대기 층.

“4차원, 루한에서 온 여왕이라…….”

통유리 벽 너머, 평택항과 서해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전망 앞에 한 여인이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루시, 광휘 오빠와 각별한 사이라고 했지?”

태블릿에 떠 있는 보고서를 읽은 여인은 고운 미간을 좁혔다.

고오오오.

감정적 기복이 있는지 눈부신 금발이 살짝 떠오른다.

끼이! 끼이이이!

그러자 그녀 어깨에 있던 검은색 생명체가 놀라 벌벌 떨었다.

“어머, 미안해, 피스!”

여인, 지구의 성녀 아스카 레이나는 금방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힘을 거뒀다. 그리곤 어깨에 있는 생명체를 쓰다듬었다.

검은색 생명체는 성인 남성 주먹만 했고 생김새는 마리모와 흡사했다.

[저들을 그냥 두고 볼 셈인가?]

그때, 성녀가 들고 있던 태블릿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보고서 화면의 오른쪽 아래에 작게 영상 통화가 떠 있다.

“저들이라면 김시오와 문유리 집행관 말인가요? 협회장님.”

[루시라는 여자도 포함해서. 다른 차원에서 온 것들은 믿을 수가 있어야지.]

말을 하는 박태오 협회장의 시선이 성녀의 어깨로 향했다.

[그리고 저놈도.]

뭔가 강력하게 탓하는 듯한 시선이 따갑다.

“어머! 그런 차별적인 발언을 하시다니. 우리 피스가 얼마나 착하고 귀여운데요!”

이에, 아스카는 어깨에 앉은 검은 마리모처럼 생긴 생명체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대꾸했다.

[11차원에서 온 그 괴물이? 성녀의 신성력 때문에 조용한 거겠지. 마치 우리 개는 안 물어요, 라는 소리와 동급 같군.]

그런 성녀를 보는 박태오의 눈은 불신으로 짜게 식었다.

“아무튼! 처음으로 교류를 하게 된 이계의 문명이에요. 굳이 적을 만들어 봤자 좋을 게 전혀 없어요! 그건 우리 피스도 마찬가지고요.”

[아! 그러셔? 예전에 쥴리아에게 듣기론 그 4차원 세계서 온 여자가 광휘 형님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던데? 우리 성녀님께선 참으로 속도 좋…….]

콰직!

협회장 박태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스카가 쥐고 있던 태블릿 화면에 금이 갔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영상 통화 중이던 박태오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워워, 진정해. 일단은 지켜 보자는 부협회장의 말에 동의하지. 김시오와 문유리와 달리, 이번에 온 이계인은 경계심이 많은 모양이니까. 자세한 얘기는 이따 본부로 도착해서 하자고.]

“됐네요! 잘 거거든요?!”

[아! 그리고, 연적을 대놓고 의식한 듯한 성명문은 잘 봤어. 덕분에 주가가…….]

“이익!!”

콰직!

결국 그녀가 들고 있던 태블릿은 완전히 박살 나 버렸다. 협회장 박태오와 연결 중이던 통화 또한 당연히 끊어졌다.

후우, 후우, 후우, 후.

아스카 레이나는 애써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열을 식혔다.

아무도 없는 넓고 텅 빈 부협회장의 사무실.

“뭐, 좋아요. 정실 자리를 위한 그 도전! 나, 아스카 레이나가 기꺼이 받아 주죠!”

그녀는 어깨와 가슴을 쭉 펴면서 혼잣말로 외쳤다.

“우리 피스도 응원해 주는 것이에요!”

그리고 태블릿을 박살 낸 손으로 어깨에 앉은 애완 괴수를 쓰다듬었다.

끼이이이…….

11차원의 괴수 피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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