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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65화 (165/212)

제165화

#165.

천하의 태광휘마저도 종종 곤혹스럽게 만드는 전설적인 여인, 지구의 성녀 아스카 레이나가 이토록 애를 먹는 사람이 존재할 줄이야.

‘대단하군.’

‘대단합니다.’

밖에서 엿듣고 있던 박태오와 시몬이 감탄과 경악이 섞인 시선을 교환했다.

“싫어어어! 싫다고오! 저 여자 정말 싫어어어!”

“네가 싫든 말든 알 바 아니다. 난 그 집에서 살 거야. 거기를 내 숙소로 줘.”

집무실에서는 아스카의 발악과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하는 루시의 대화가 이어졌다.

“광휘 오빠가 살아도 된다고 말한 증거 있어요? 있냐고요! 거짓말을 해도 정도가 있지!”

“그 집의 주소와 비밀번호를 나는 알고 있었어.”

“호에에엑!”

커플링도 모자라 집 주소와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사이라니!

아스카는 극심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어쨌든 안 돼요! 다른 집을 줄 테니 거기서 살아요! 이것은 최후의 통첩인 것이에요!”

성녀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끊어지려는 이성 줄을 간신히 붙잡으며 경고했다.

“네가 뭔데?”

하지만 루시가 그런 아스카의 자제력을 계속해서 시험한다.

“저는 세계각성자협회의 부협회장인 것이에요! 검룡 길드의 길드장이기도 하지요? 협회의 각성자가 되기로 마음먹으셨으면, 적어도 이건 따라 주셔야 해요.”

고오오오오.

성녀 주위의 공기가 움직인다. 대기 중의 마나가 끓기 시작한다.

이번에도 거절하면 정말로 힘을 쓰겠다는 엄중한 경고.

‘위험하다!’

‘……!’

문밖에서 이를 감지한 박태오와 시몬이 급히 난입할 준비를 했다.

“……으음, 그러지.”

하지만 천만 다행히도.

루시가 이번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째서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에요?”

이에, 오히려 아스카가 급당황한다.

들끓었던 대기 중의 마나가 잠시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상관없더라고. 어차피 그이가 돌아오면 신혼집을 새로 지을 생각이었으니까.”

“?!”

하지만 루시가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을 뿐.

“사실 그 집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그토록 좁고 누추한 집이라니. 신혼집으론 탈락이다, 탈락!”

“갸아아아악!! 죽여 버리겠어어!!”

결국 아스카는 폭발해 버렸다.

“말려!”

“성녀님!”

박태오와 시몬은 결국 문을 부수고 들어가야만 했다.

* * *

보통 헌터 매니저는 최하급 각성자나 비각성자가 한다.

하지만 최하급 각성자라도 각성만 하면 초상 설비를 조작할 수 있었고 짐꾼 헌터로 얻는 혜택이 더 많았기에, 사실상 매니저는 비각성자들이 거의 한다고 보면 됐다.

그리고 이 헌터 매니저 중 가장 탑으로 치는 것이 바로 A급 이상의 고위 헌터의 매니저가 되는 것.

머슴살이도 대감집에서 하라는 말처럼, 고위 헌터의 매니저가 딱 이 꼴이다.

오늘날 비각성자들이 가장 갈망하는 직업 0순위가 바로 고위 헌터의 매니저였다.

고위 헌터와의 인맥은 매니저에게 안위와 권력을 주었고, 고위 헌터가 주는 월급은 어지간한 대기업 부장의 월급보다 나았다.

늦은 밤, 협회 본부의 어느 텅 빈 회의실에 두 여자가 있었다.

유리아는 실내에서도 모자와 선글라스를 낀 상태로 회의실 스크린 앞에 서 있었고, 스크린에는 협회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아주 깔끔하고 고급진 PPT가 빔 프로젝트로 투영되어 있었다.

유리아는 이 스크린을 가리키면서 무언가를 연신 말하고 있었다.

구민주는 학생처럼 조신하게 앉아 유리아의 말을 경청 중이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주의 사항은 다 전한 거 같군요.”

유리아는 마치 학원 선생님처럼 구민주에게 이런저런 주의 사항들을 알려 주는 중이었다.

“민주 양은 똑똑하니까 금방 적응할 겁니다. 이미 잘하고 계시잖아요?”

심지어 매우 친절하고 자상한 어조로 말이다.

‘세상에! 집행관께서 직접 강의를 해 주시다니!’

당연하게도 구민주의 뇌는 초집중 모드.

수능 시험을 치를 때도 이 정도로 풀가동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집행관께서 직접 매니저 교육을 자신에게 해 주고 계셨기 때문이다.

매니저 교육을 집행관에게 받는 매니저가 있다?

그것도 1 대 1로?!

아무리 루시와의 친분 덕분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정말이지 세계 헌터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

저 옆옆옆 방에서 지구의 성녀와 자신의 고용주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보다 이게 더 믿어지지 않았다.

길지 않은 30분 내외의 교육.

구민주는 목숨을 걸고 수업을 들었다. 얼굴 곳곳에 붙인 반창고와 붕대는 찝찝했고, 낮에 있었던 일로 인해 피로와 졸음이 몰려왔지만 꾹 참았다.

“나머지는 방금 드린 책자와 USB를 참고하세요. 헌터 매니저들이 모인 커뮤니티도 있다고 하니까 거기서 정보 공유를 해도 될 테고요.”

그랬던 강의가 방금 막 끝났다. 가르치는 사람이 어려워서 그렇지 내용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매니저라는 직업이 딱히 전문성이 있는 직업도 아니다. 전문성보다는 순발력과 눈치, 꼼꼼함, 임기응변이 중요하다.

“교육받느라 수고했어요. 민주 양, 혹시 궁금한 게 있나요?”

수업을 끝낸 유리아가 민주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문유리 집행관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구민주는 집행관 업무뿐만 아니라 매니저 쪽 일도 빠삭한 유리아를 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별말씀을. 질문할 게 있으면 뭐든 말하세요, 민주 양. 부담 가지지 말고.”

“네! 그러면요…….”

수업이 끝나자, 긴장이 살짝 풀린 구민주는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문유리 집행관님은 어떻게 매니저 일에 대해서도 잘 아시는 건가요?”

저 바쁘신 집행관께서 왜 이런 부분까지 잘 아는지가 궁금했다.

“저와 김시오 집행관은 매니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니저가 해 줘야 할 일을 가끔 직접 처리하지요. 물론, 평소에는 협회에서 어지간한 건 다 해 주기 때문에 괜찮지만요. 매니저의 일을 하는 경우는 정말 가끔이에요, 가끔.”

“?!”

구민주는 유리아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왜 매니저를 안 두시나요?”

그러고 보니 두 사람에게 매니저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아파트에 얹혀살 때도 본 기억이 없었다.

“그게…… 이것 때문입니다.”

구민주의 질문에 유리아는 조심스레 선글라스를 반쯤 벗었다.

번쩍.

선글라스 안에 잠들어 있던 유리아의 분홍색 눈동자가 살짝 빛났다.

“!!”

유리아의 눈동자를 본 구민주는 피가 뜨거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같은 여자를 보는 것임에도 욕정이 치밀었다. 당장이라도 성행위를 하고 싶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아마 비각성자라서 더욱 강한 충동을 느꼈을 겁니다.”

구민주의 반응을 본 유리아는 급히 선글라스를 다시 썼다.

“허억, 허억, 헉.”

구민주는 숨을 거칠게 몰아 쉬면서 몸을 베베 꼬면서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단지 눈동자를 보았음에도 민주는 왜 두 사람이 매니저를 쓰지 않는지 이해했다. 항상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는 이유도.

둘이 어째서 대중들에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지도.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인 점도 있었다.

“그…… 그…… 아파트에서 보았을 때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구민주는 애써 충동을 억제하면서 물었다. 그때 아파트 안에서는 김시오도, 문유리도, 모두 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루시 님이 옆에 계셔서 그렇습니다.”

“루시 님이요?”

“네, 그때 루시 님이 민주양에게 몰래 정신 보호 마법을 걸어 주는 것을 봤거든요.”

“……!”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인물에게서 고용주의 배려를 알게 되었다.

구민주는 괜히 가슴이 따듯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괜히 고용주를 향한 애정과 충성심이 차오르는 것 같다.

“히잉, 루시 님.”

저 진짜로 충성을 다 할게요, 루시 님!

민주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굳게 다짐했다.

눈앞에서 구민주가 눈물을 글썽이자, 괜히 뻘쭘해진 유리아는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두 사람은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그녀는 혼잣말을 하면서 아스카와 루시가 있는 집무실 쪽을 보았다.

성녀가 루시와 단둘이 있고 싶다고 했을 때 당연히 유리아 또한 걱정은 됐었다. 그랬기에 최대한 가까운 방에서 구민주를 강의한 것이기도 하다.

‘아직까진 별일이 없으니 다행이야. 하긴, 두 사람 모두 어른일 텐데 애처럼 싸우겠어?’

그래도 혹시 몰라 시몬에게 이 사실을 알리긴 했었다.

‘시몬 님과 협회장님이 도착한 것까지는 감지했는데…….’

그리고 얼마 후 시몬과 박태오가 본부로 공간 이동을 했다.

그래서 더욱 안심하고 강의를 진행했다.

‘루시 님은 그럼 헌터로 활동하실까? 같이 집행관 일을 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한데. 그래야 차원 코어인지 뭔지 하는 것을 더 빨리 찾을 것 같고.’

유리아는 이런저런 바람을 담아 생각을 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문답마저도 시시하게 끝난 회의실 안은 극도록 조용하다.

사색을 하기엔 지금만 한 때도 없다.

하지만 그녀의 사색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콰아아아아앙!

옆옆옆 방에서 터진 폭발음이 사색도, 조용함도, 구민주의 훌쩍임도 모두 끊었다.

폭발의 진원지.

부협회장 아스카의 집무실은 폭탄 테러라도 맞은 것처럼 초토화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엉망진창을 집무실의 주인 아스카 본인이 냈다는 점이다.

“아스카! 참아! 참으라고!”

강화계 각성자인 박태오가 신성 폭발을 연이어 일으키려는 아스카를 뒤에서 붙잡았다.

우우웅, 구웅, 구웅, 우웅!

박태오의 강화된 몸이 계속해서 사방으로 터지려 하는 아스카의 신성 폭발을 연신 흡수 중이다.

“루시 님! 도대체 무슨 짓을……. 그보다 어서 사과라도 해 주세요!”

시몬은 반대로 루시 앞에 서서 반쯤 애원하듯 부탁했다.

“내가 뭘 사과해? 난 사실만 말했을 뿐인데?”

“꺄아아아아악! 놔아아! 태오 오빠, 놓으라고오오! 저 여자는 혼나야 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두 여자의 대립은 전혀 해소될 길이 없어 보였다.

그러는 중에도.

위이이이이잉.

협회 본부에서 일어난 폭발로 건물 전체에 사이렌이 울렸다.

“코드 레드! 코드 레드!”

“등불이 공격받았다! 다시 한번 말한다. 등불이 공격받았다!”

“소방청에 지원 요청해!”

야간 당직을 서던 보안팀과 협회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밖에서도 이 폭발이 감지되었으니 얼마 후 기자들도 우르르 몰려올 터.

“아스카, 진정해, 진정! 그 루시라고 했나? 당신도 좀 자제하고!”

아스카를 꼭 붙잡고 있던 박태오는 벌써부터 골이 썩는 느낌을 받았다.

우르르.

“성녀님!”

“협회장님, 무슨 일입니까?”

“지금 기자들이 본부 정문에…….”

곧이어 헌터들과 협회 직원들이 아스카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허억!”

“성녀님?”

“성녀님이 저런 표정을 짓다니?!”

도착한 헌터들과 협회 직원들이 너도나도 경악한 눈으로 폭주 중인 아스카를 보았다.

사실상 처음 보는 모습이다. 지구의 성녀가 저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것은.

“……!”

“…….”

다들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함부로 개입할 엄두조차 못 냈다.

그저 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리고 그때.

“별일 아니니 잊으세요.”

이들의 뒤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유리 집행관님?”

이 목소리를 아는 협회 직원 몇몇이 급히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

“어……?”

털썩, 쿠웅, 쿵.

어느새 주위를 맴도는 혈향에 하나둘씩 잠들기 시작했다.

비각성자는 물론 중하급의 헌터들까지.

“……!”

몇몇 중상급 헌터들만이 잠들지 않았다.

쉿!

유리아는 끝내 잠들지 않은 중상급 헌터들에게 침묵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

그들은 말없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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