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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66화 (166/212)

제166화

#166.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일부러 크게 내며 유리아는 파괴된 집무실로 들어섰다.

집무실에 들어선 그녀를 반기고 있는 것은 아스카를 백허그하듯이 붙잡고 있는 박태오와 루시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는 시몬이었다.

더불어 이 사태의 모든 원흉인 아스카와 루시는 서로를 무슨 괴수 보듯이 노려보는 중이다.

정말로 애들처럼 이렇게 싸울 줄이야.

“으음.”

이 다툼의 원인은 안 봐도 뻔하다. 보다마나 태광휘, 솔라시우스 때문이겠지.

팽팽한 대치 속, 시간을 끌면 더더욱 일이 꼬인다. 벌써 기자들이 탄 헬기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유리아는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말리지?’

둘의 관심을 완전히 돌려놓을 따끈따끈한 떡밥이 필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떡밥은 솔라시우스 님이군.’

유리아는 씁쓸한 미소를 애써 짓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둘 다 이렇게 다툴 여유가 없을 텐데요?”

들이쉰 숨을 다시 내뱉으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태광휘 님이 부탁한 것부터 해결하고서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

“!?”

유리아가 뱉은 말에 루시와 아스카의 시선이 처음으로 유리아를 향했다.

“솔라의 부탁?!”

“광휘 오빠가 뭘 부탁했는데?”

어그로 효과는 탁월했다.

“광휘가……?”

“솔라시우스 전하가요?”

뿐만 아니라 박태오와 시몬 또한 유리아를 바라본다.

모두가 바로 떠올리지 못하는 눈치.

유리아는 답답하다는 듯 팔짱을 꼈다.

“차원 코어 말입니다! 차원 코어!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 하거늘, 다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그게 마족이나 드래고니안 혹은 마인의 손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팔짱을 낀 그녀는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태광휘 님이 돌아오셨는데, 두 분이 이렇게 싸우느라 차원 코어를 놓쳤으면? 혹은 행방조차 모르면?! 저는 실망으로 가득 찰 그분의 얼굴이 벌써 그려지는군요.”

“?!”

“……!”

유리아의 말에 루시와 아스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둘 다 태광휘의 실망 가득한 표정을 떠올린 모양.

대기 중에 가득했던 두 여자의 기운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루한의 여왕과 지구의 성녀, 두 여인의 차원 일기토는 유리아의 중재로 큰 피해 없이 끝났다.

* * *

아스카의 집무실 폭발은 그녀가 집무실에서 이능을 시험하다가 벌어진 해프닝으로 소개되었다.

어쨌든 파괴된 집무실을 수리해야 한다.

그들은 장소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동한 곳은 아까 유리아가 구민주를 가르쳤던 회의실.

정작 구민주는 그사이 피곤했는지 구석에서 깊게 잠든 상태였다.(실은 유리아가 혈마법으로 재운 것이다.)

“차원 코어…… 차원 코어라. 세계수와는 다른 개념일까요?”

“시몬 경에게도 생소하겠지. 나 또한 여기 오기 직전에야 요정 숲으로부터 알게 된 것이었으니까.”

회의실 안에서 시몬, 유리아, 아스카, 박태오 그리고 루시는 차원 코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차원 코어. 한 세계의 핵이자 씨앗. 이것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알더라도 아주 극소수만 알았다.

지구는 물론이고 루시의 고향도 마찬가지. 당장 대마녀인 루시만 하더라도 최근에야 차원 코어에 대해 알았다.

“한 세계의 모든 정보를 담은 씨앗이자 도서관이라고 하더군. 세계수의 말로는 만약 세계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한…… 지구의 개념으로는 백업 파일이 가장 어울리겠군.”

루시는 여기 지구인들에게 차원 코어에 대해 설명했다.

“지구는 세계수와 같은 차원 신이 없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이 세계가 유지되는 것은 바로 차원 코어 때문일 거야.”

이미 유리아와 시몬에게 한 번 했던 얘기지만 그때보다 더 자세히.

“내가 루한에서 보았던 우리 세계의 차원 코어는 크지 않았어. 내 몸통만 했고 아주 투명해서 집중하지 않으면 눈에 담지 못하는 투명한 알이었지.”

“그렇게 중요한 것을 막 그렇게 옮겨도 되는 건가?”

“요정 숲에서 들고 온 차원 코어는 본체가 아니었다.”

박태오의 물음에 루시가 바로 답했다.

“차원 코어 본체의 위치는 오직 세계수만 알고 있다고 하지. 순백궁에 있던 것은 차원 코어의 아바타다.”

“아바타면 외형에 차이가 있는 거 아닌가요?”

이번에 아스카가 물었다.

“아바타라고 해도 생김새는 본체랑 똑같다고 했었지.”

“사람 몸통 크기의 투명한 알이라…….”

“으음, 그런 물질이 있었나?”

시몬으로부터 받은 보고보다 더 자세한 정보.

성녀와 협회장은 루시의 설명을 경청했다.

“응?! 혹시, 차원 코어가 그거일까요?”

차원 코어에 대한 루시의 설명을 들은 아스카가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모양인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게 뭔데?”

여전히 루시와 아스카의 사이는 적의가 흐르는 관계였지만 그래도 의사소통에는 문제없었다. 적어도 서로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았다.

“이번에 성공한 초상 심문 있잖아요? 거기서 나온 진술과 너무 유사하네요. 안 그래요, 태오 오빠?”

아스카는 박태오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놈들의 금제를 풀었지. 이제야 매치가 되는군.”

아스카의 말에 박태오 또한 뭔가 생각나는 게 있는 모양.

“뭔지 자세히 설명을 해 줘.”

“최근 초상 심문으로 다른 차원에서 온 지성체 침략자를 심문하는 데 성공했거든요!”

아스카는 설명을 이었다.

“물론 완전히는 아니지만요. 그래도 무엇을 노리고 지구를 적대하는지는 알게 된 것이에요. 그들은 지구에서 어떤 구를 찾고 있다고 했어요. 지구가 파괴될수록 꼭꼭 숨어 있던 그 구가 반응한다고도 했지요.”

“……?”

아스카의 설명에 루시는 낮에 있었던 드래고니안들과의 싸움이 떠올랐다. 특히 마지막 실버 드래고니안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던 유언이.

“지구의 차원 코어가 있어야 자신들의 세계가 구원받는다는 소리인가? 아까 싸웠던 드래고니안들도 비슷한 얘길 하던데. 그들은 지구의 차원 코어로 깊게 잠든 자신들의 드래곤을 깨울 수 있다고 했었지.”

“?!”

“!!”

무심코 던진 루시의 말에, 박태오와 성녀의 얼굴에 경악이 비쳤다.

“루시 님? 어떻게 그걸 들으신 겁니까?”

“다른 차원의 지성체가 그걸 말했다고요? 금제를 뚫고?!”

유리아와 시몬 또한 마찬가지로 경악한 얼굴.

“왜 이렇게들 놀라지?”

4명 모두가 놀란 얼굴을 하자, 루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구를 침공한 다른 차원의 지성체들, 그들이 왜 지구를 적대하는지를 우리는 최근까지 몰랐었다.”

이번에 박태오가 대표로 루시에게 설명을 해 줬다.

“드래고니안이나, 마족, 최상급 정령, 지능이 있는 몬스터, 신수 등등, 무수한 포로를 잡아 심문했었지만 어떤 강력한 금제가 그들의 영혼에 걸려 있었지.”

“그 영혼의 금제를 최근에야 일부 해제할 수 있었던 것이에요. 바로 저 아스카가 갈고닦은 이능으로 말이죠!”

옆에 있던 아스카가 설명에 끼어들었다.

“이계의 침략자들은 지구에서 늘 무언가를 찾고 있었지요. 그걸 찾기 위해 지구를 파괴하고 인류를 학살했고요. 그걸 구해야만 자신들 세계의 염원이 이뤄진다는 이유로.”

말을 하는 아스카와 박태오의 눈이 분노로 뜨겁다.

“마계의 마족들도 그렇게 말하던가?”

루시는 문득 마계의 괴수들이 떠올랐다.

다른 세계야 그러려니 해도. 마계의 악마들은 원래 유희를 목적으로 하위 차원을 침공했었다.

“11차원도 지금은 지구의 차원 코어를 찾고 있는 것 같았어요.”

“지금은?”

“음~ 심문 과정에서 알아낸 바로는 그들은 처음에 유희를 위해 지구로 놀러 온 것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바뀐 모양이에요.”

“마왕 때문인가?”

“네! 광휘 오빠가 마왕에게 아주 큰 부상을 입힌 덕분에 지금 11차원의 상태가 많이 안 좋은가 봐요! 마왕은 자신의 힘을 회복하기 위해 지구의 차원 코어를 노리고 있는 모양이고요.”

끼이, 끼이.

아스카는 자신의 어깨에 올라와 있는 검은색 마리모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악취미군.’

루시는 눈앞의 꺼림칙한 마계 생명체가 거슬렸으나 애써 무시했다. 저런 걸로 이 여자와 말싸움하고 싶지도 않았다.

‘정말 서둘러야겠어.’

그저 차원 코어를 더욱 서둘러 찾아야겠다는 결심만 했다.

“어찌 되었든 저희도 최근에야 알게 된 정보였는데…… 이걸 그토록 쉽게 알아냈다고요? 드래고니안이 정말 그냥 말해 줬어요?”

설명을 대강 마친 아스카는 의심의 눈초리로 루시를 보았다.

“정확히는 죽어 가면서 혼잣말을 한 것이었다.”

루시는 그런 아스카의 눈초리를 무시하며 답했다.

“으음? 단순히 운이 좋은 것일까요?”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군. 이론상으로는 가능할 것 같아. 죽어 가면서 영혼에 박힌 금제가 먼저 풀렸다면 말이지. 속으로 하던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입으로 중얼거렸다고 보면 신빙성 있어. 실제로 이번에 우리가 한 초상 심문도 이와 비슷했으니까.”

아스카와 박태오가 턱을 손으로 만지며 나름 분석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노센티아가 있었지?!’

진지하게 자신의 말을 분석하는 박태오와 아스카.

이 둘을 보던 루시는 지구에 와서 두 번이나 경험한 ‘이노센티아’를 떠올렸다.

“저기, 혹시…….”

루시는 이노센티아에 대해 물어보려고 입을 열었다가.

“…….”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닫았다.

“무슨 일이지?”

루시가 말을 하다가 말자, 박태오가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루시는 고개를 저었다.

‘이노센티아는 개인적으로 알아보자.’

그녀의 눈이 성녀와 박태오를 짧게 쓸었다.

‘이노센티아는 나에게 약점과도 같은 거야. 함부로 알려져선 안 돼.’

차원 코어야 루한뿐만 아니라 지구의 안보와도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그러니 저 두 지구인과 정보를 공유해도 된다.

하지만 이노센티아는 아니다.

태광휘는 루시에게 말했었다. 협회와 지구인들을 너무 믿지 말라고, 협회 안에는 불손한 의도를 지닌 배신자가 언제나 존재했다고.

‘저 둘도 완전히 믿어선 안 돼.’

루시는 한발 더 나아가, 태광휘의 전우이기도 한 두 사람마저도 경계했다.

이건 대마녀가 아닌 군주의 정치 본능이다. 원래 배신은 수하에게 당한다. 당장 옛 재상 아리아 데스모 사례가 있지 않던가?

‘지금 내 정체와 능력이 저 둘에게 알려진 것만 해도 좋지 않아.’

결국 초기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정체와 힘을 숨기고 최대한 은밀히 활동하기로 한 계획이 말이다.

이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두 사람, 유리아와 시몬이 지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초상 심문이었는데…… 누구는 그냥 유언 듣듯이 들어 버리다니. 이것은 불공평한 것이에요!”

루시가 이런저런 조심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도.

“우연일 수도 있지 않나? 내용도 우리가 알아낸 것과 큰 차이도 없고.”

아스카와 박태오는 루시가 드래고니안에게서 들었다는 말에 대해 얘기 중이었다.

“그게 정 의문이면 루시 님을 모시고 심문을 다시 해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때 두 사람의 말을 듣던 시몬이 불쑥 끼어들었다. 대화가 나아가지 않고 쳇바퀴 돌듯이 구르는 느낌이 들어서 나선 것이다.

“지금은 힘든 것이에요. 왜냐하면 이번에 심문을 하면서 협회에서 데리고 있던 지성체 포로를 모두 써 버렸거든요.”

시몬의 의문에 아스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답했다.

“써 버렸다는 건?”

“모두 백치가 되거나 죽은 것이에요. 그래서 민간 길드에게 의뢰를 내린 상황이긴 해요. 근데 아무도 응하려 들지 않더라고요? 광휘 오빠가 없다고 협회의 말을 요즘 너무 우습게 안단 말이죠?”

성녀의 미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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