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68화 (168/212)

제168화

#168.

평택의 고급 아파트 거실 안.

아침을 알리는 TV뉴스에서 어제의 이야기가 속보로 소개되었다.

“각성자협회 대변인실에서 강원도 전역을 설원으로 만든 원인을 발표하였습니다. 해당 사건은 8차원 게이트에서 나온 실버 드래고니안의 행위로 밝혀졌습니다.”

그 뉴스에서 루시의 업적은 철저히 숨겨졌다.

“당시 속초 게이트에 파견가 있었던 협회장 박태오 헌터와 국군 초상 부대의 활약으로 드래고니안들은 척살되었으며…….”

TV에서 나오는 뉴스 사운드를 뒤로하고 시몬이 루시에게 물었다.

“그런데 정말로 A급으로 하실 겁니까?”

“그래.”

뉴스에 루시의 활약이 소개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루시가 자신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A급 집행관이 되면 받으시게 될 급여가 줄어듭니다.”

“집행관 권한만 멀쩡하면 돼. 나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 돈도 내 시녀에게 급료 줄 정도면 되고.”

시몬의 재차 우려에도 루시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다음 소식입니다! 인류에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였습니다. 어젯밤 협회에 A등급의 냉기 원소술사가 신규 등록되었습니다. 태루시 헌터로, 협회의 집행관으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때를 맞춰 루시의 헌터 등록이 다음 뉴스로 나왔다.

“여타 집행관 헌터들처럼 태루시 헌터 또한 거의 모든 신원이 베일에 가려져 있으며, 일각에서는 태광휘 헌터와 성이 같은 점을 이유로 태광휘 헌터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각성자 등록은 공개가 원칙이다. B급만 되어도 뉴스에 떴다.

A급, 심지어 집행관이면 그래도 하루 정도는 언론에서 저렇게 다뤄 줄 것이다.

“이미 유명해지셨는데요?”

TV를 본 구민주가 힘빠진 어조로 물었다.

“저 정도는 상관없단다, 민주야.”

루시는 자상한 미소를 보이면서 자신의 매니저에게 말했다.

“그래, 저 정도가 딱 적당한 것 같구나.”

“……그런가요?”

“나를 너무 모르는 것도 집행관 업무에 문제가 될 테니, 적당히 알려지는 것은 오히려 괜찮아. 내가 우려하는 것은 온 나라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수준이란다.”

“네에.”

‘일단 성씨를 태로 한 것부터가 고농도의 어그로일 텐데?’

구민주는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으려다가 말았다.

‘뭐, 당사자가 좋다면 좋은 것이겠지.’

그녀는 자신의 집행관님의 별난 고집을 이젠 반쯤 자연의 섭리 보듯 했다.

협회 건물에 계속 있을 것이지, 굳이 평택에 있는 아파트에는 왜 왔냐 싶겠지만.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했기에 집에 온 상황.

그렇게 루시, 유리아, 시몬, 구민주 일행은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TV를 보면서 휴식을 취했다.

사실상 밤을 새운 셈이지만 구민주를 포함한 네 사람은 조금도 피로해 보이지 않았다.

시몬의 치유 마법 덕분에 민주의 얼굴과 팔에 있던 붕대와 반창고는 뗀 지 오래다. 잠도 아까 유리아가 혈향으로 재운 덕분에 짧지만 아주 푹 잔 상태.

드래고니안 여섯을 몰살시킨 루시 또한 밤사이 마력을 회복했기에 견딜 만했다. 완전한 설원의 대마녀로 각성한 그녀에게 수면은 며칠에 한 번 정도면 족하다.

그렇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침이 완전히 지난 시각.

“저희는 먼저 출근해 보겠습니다.”

출근할 시간이라고 하기엔 조금은 늦은 오전과 오후 사이.

“루시 님과 민주 양은 이따 오후쯤에 나오시면 됩니다. 사무실과 차량, 숙소가 그때쯤에 준비될 겁니다.”

“이따 민주 양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겠습니다. 민주 양은 오늘까지 제 차를 운전하시면 되고요.”

유리아와 시몬은 협회로 출근 준비를 하며 루시와 민주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루시 님, 협회를 믿으시면 안 됩니다.”

시몬이 사뭇 진지한 눈으로 실눈을 크게 뜬 상태로 루시에게 당부를 건넨다.

말을 건넨 시몬의 언어는 통역 마법을 해제한 대륙 공용어였다.

“박태오 협회장과 아스카 성녀도 믿지 마십시오.”

“안 믿는다.”

시몬의 당부에 루시는 어떤 의구심도 없이 바로 답했다.

루시의 입에서 나온 말 또한 높은 제국어 억양이 다분한 고향의 언어다.

“그럼 다행이고요.”

“경들은 협회에 우호적인 게 아니었나?”

시몬의 말에 루시가 짜게 식은 눈으로 물었다.

비록 신세를 지고 있긴 하지만, 루시의 신원을 협회에 알린 장본인들 아닌가? 물론 그 덕분에 일이 커지지 않은 것이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이방인입니다.”

루시의 질문에 시몬이 씁쓸한 눈으로 답했다.

“협회장도 성녀도, 뒤로는 저희를 경계하고 믿지 않고 있습니다.”

시몬 옆에 있던 유리아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리가 저들을 무조건 믿지 않는 것처럼요.”

그녀도 자신들이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모양.

“차원 코어에 대해서 별별 핑계를 대는 것도 아마 저희를 신뢰하지 않아서일 겁니다.”

시몬은 밤에 보았던 협회장과 성녀의 태도를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애초에 그들은 루시 님이 태평양 게이트 안에 계신 솔라시우스 전하와 만나 대화를 나눴다는 것을 믿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어리석군. 차원 코어가 가장 필요한 건 지구일 텐데.”

루시는 한심한 지구인들(협회)의 태도에 혀를 찼다.

“차원 코어에 대한 수색은 전부터 진행 중일 겁니다.”

“음?”

“저들 또한 초상 심문을 통해서 알아낸 정보가 있을 테니까요.”

“그 수색에 우리를 배제했다는 건가?!”

루시의 미간이 구겨졌다.

“우리는 그저 고가치 외노자에 가깝습니다.”

“협회에서는 우리가 차원 코어와 같은 일에 끼어들어 자신들의 기밀을 알아 가는 것을 원치 않을 겁니다.”

유리아와 시몬이 각자 진지하면서도 담담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즉,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따로 움직여야 합니다.”

“저와 유리아가 루시 님을 돕겠습니다. 어쨌든 저희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으니까요.”

구민주는 거실과 현관을 잇는 복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세 사람을 보면서 섭섭한 눈을 했다.

‘또 자기들끼리 말하고 있어!’

세 사람은 처음에 초상 번역된 한국어로 대화하다가, 어느 순간 구민주가 모르는 자기네 나라말로 대화를 이었다.

하지만 위대하신 집행관들께서 그렇게 하시겠다는데 자신이 뭘 어쩌겠는가? 그저 해맑게 지켜볼 뿐이지.

“참, 활동하실 때 대명그룹 계열은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그렇게 있는데, 갑자기 다시 한국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김시오 집행관이 구민주를 보면서 말했다.

“대명그룹과 관련된 부분은 민주 양이 잘 알 테니 걱정 없겠지만요.”

“대명그룹? 그게 뭔데?”

시몬의 말에 루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아! 대명그룹 회장의 차남을 루시 님께서 꽁꽁 얼려 죽이셨습니다.”

그런 고용주에게 구민주가 바로 설명했다.

“내가?”

“예, 그때 쇼핑하고 돌아오는 길에 저희를 납치하려 했던 자들 말이에요.”

“아아! 그 무도한 것들 말인가?”

이제야 기억이 난 모양인지 루시가 손벽을 친다.

“그런데 내가 조심할 필요가 있나? 그 대명인지 뭔지 하는 상단 따위, 없애 버리면 그만 아닌가?”

그러면서도 자신이 왜 조심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먼저 들쑤시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명분 싸움이 중요합니다. 저들이 협회의 집행관을 먼저 공격하면 모를까, 집행관이 먼저 공격을 하면 안 됩니다.”

“대명이면 이 나라에서 영향력이 큰 기업이니까요. 잘못하면 협회의 힘을 누르고 싶어하는 정치인, 기업인, 길드장에게 빌미만 주게 될 것입니다.”

시몬과 유리아가 나란히 루시에게 주의를 주었다.

“경들은 협회를 신뢰하지 않는다면서 의외로 협회를 많이 챙기는구나?”

“어찌 되었든 협회의 권세를 등에 업고 활동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협회가 무사해야 우리의 활동 범위도 편안해집니다.”

“알겠다. 먼저 도발하진 않겠도다.”

루시는 순순히 수락했다.

‘지구는 솔라의 세계야. 무도한 것들은 전부 얼려 버리고 싶지만, 그이의 허락 없이 너무 멋대로 구는 것도 좀 그래.’

조금은 다른 이유로.

“그리고 또 있습니다.”

루시가 순순히 받아들이자, 안도한 시몬은 다시 당부를 이었다.

“또 말이냐?”

이에 루시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드문이라는 마인 단체를 조심하세요, 루시 님.”

“레드문? 그건 또 뭐지?”

루시는 자신의 옆에 있는 구민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 설마 그때 그 취업 사기! 인신매매 조직이 레드문?!”

구민주는 이번에도 바로 떠올랐다는 듯 그 자리에서 폴짝 뛰면서 기겁했다.

* * *

해가 중천을 지난 오후, 평택에 있는 세계각성자협회 본부&한국지부.

오전까지만 해도 깨진 유리창과 그을림이 있었던 마천루 꼭대기는 그사이 멀쩡히 복구되어 있었다.

협회 본부 정문 주위에는 평소에도 기자들이 상주해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유독 더 많아 보였다.

새벽에 있었던 협회 본부 폭발과, 어제 강원도에서 열렸던 게이트 사태,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에 새로 등록된 A급 집행관 때문이다.

특히나 그 신임 집행관의 성씨가 기자들을 더욱 자극했다.

“온다! 저기 저 차야!”

끼익.

시몬이 빌려 준 집행관 차량이 협회 본부 정문을 통과한다.

카메라 셔터가 무수히 터지면서 이를 촬영한다.

자동차는 쭈욱 정문을 통과하더니 본부 건물 앞에 정차했다.

건물 앞쪽에도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무수히 포진되어 있었고, 그런 기자들을 협회 보안 요원들이 인간 장벽을 쳐서 제지 중이다.

이윽고 자동차 운전석에서 문이 열리더니 매니저로 추정되는 조그마한 체구의 여성이 내렸다.

구민주는 어디서 본 게 있는지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상태로 뒷좌석 문을 열었고, 그 뒷좌석에서 청은발이 눈부신 푸른 눈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복장은 흰색 운동화에 청바지 그리고 회색 반팔 티셔츠로 늦여름에 어울리는 매우 평범한 복장을 했다.

벨트에는 푸른색 마검 윈테이라와 인지 저하 열쇠고리가 있었으며, 왼손 약지에는 붉은색 반지가 빛났다.

“허헙……!”

“와아…….”

협회의 A급 집행관 태루시의 실물을 영접한 기자들이 숨을 멈췄다.

평범한 복장에 인지 저하 초상 장비를 패용했음에도 루시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빛난다.

이어서 일시적으로 침묵이 흘렀다.

아무리 협회 보안 요원들이 장벽을 치고 있다지만, 여기 모인 기자 중 누구 하나 루시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자가 없었다.

‘저 사람이 그때 미등록으로 잠시 수배되었던…….’

루시를 본 기자들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협회에서 잠시 수배를 때렸다가 취소했던 미등록 각성자가 떠올랐고, 곧이어 사다리 타기를 하듯 또 다른 존재를 생각했다.

이는 대전쟁을 경험한 나이 든 기자일수록 더욱 빨랐다.

‘이상하게 그 여자가 연상되는데?’

‘빙하의 여제, 빙하의 여제와 느낌이 닮았어!’

협회의 흑역사이자, 인류의 트라우마이기도 한 마인. 인류의 공적이었던 어느 여인을 기자들은 떠올렸다.

‘정말 태광휘 헌터와 연관이 있는 건가?!’

‘하지만 태양검과 빙하의 여제는 원수지간이었잖아? 결국 빙하의 여제는 죽었고.’

‘우연일까? 우연의 일치일까?’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하잖아!’

기자들을 비롯한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머릿속이 혼란에 빠졌다.

“…….”

“…….”

이 거대한 혼란의 사념 때문에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런 기자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루시는 구민주의 안내를 받으며 우아한 보폭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A급도 이 정도인데, S급이었으면…… 상상하기도 싫군.’

그녀는 자신을 포위 사격 중인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를 슬쩍 보며 치를 떨었다.

만약 루시의 생각을 옆에 있던 구민주가 들었다면, 성씨를 태광휘와 같은 것을 써서 더욱 기자가 몰렸다고 한마디 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하루가 마무리되어 가던 그날 저녁.

“뉴스 속보입니다! 광주의 초상 농업 컨벤션 센터에서 마인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또 다른 충격적인 소식이 한국을 너머 세계를 강타했으니.

“테러의 유형은 빙결 계열 원소술사로 추정되며, 현재 5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중 7명은 경찰, 4명은 협회 소속 헌터로 알려진 가운데…….”

“자신들이 이번 테러의 주체라고 주장한 마인 집단 ‘레드문’은 빙하의 여제는 죽지 않았고 부활하였으며, 이번 테러는 그 시작일 뿐이라며 트윗을 올렸습니다.”

“금일 임명된 태루시 집행관과 광주 테러를 일으킨 마인의 이능이 비슷하다는 사실에, 여론은 공교롭다는 반응입니다.”

“이에, 협회는 태루시 집행관과 빙하의 여제를 사칭하는 마인은 어떤 연관도 없다고 성명을 냈습니다.”

그날 인류는 한 명의 영웅과 한 명의 빌런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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