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173.
폭발 백작의 자폭은 시몬과 유리아의 기준에서도 엄청났다.
지구의 과학 개념으로는 핵융합을 초월한, 반물질 폭발급의 파괴 에너지.
그 재앙을 루시는 폭발의 시작점에서 얼려 버렸다.
마치 빅뱅 직후의 순간을 얼린 것 같은, 우주의 신비가 여기에 있다.
“…….”
“…….”
시몬과 유리아는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그저 멍하니 얼어붙은 폭발의 시작점을 감상할 뿐이다.
털썩.
그때, 옆에서 루시가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루시 님!”
“괜찮으십니까!?”
둘은 급히 루시에게 다가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지친 것뿐이다. 걱정 안 해도 돼. 오늘은 간만에 푹 잘 것 같구나.”
루시는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
새근, 새근.
마치 ASMR 같은 곱고 규칙적인 숨소리가 그녀의 호흡에서 나왔다.
“휴우.”
유리아와 시몬은 숙면에 든 루시를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어서 서로의 얼굴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
유리아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하하하.”
시몬은 짧게 웃었다.
“이걸 협회에 뭐라고 보고해야 할까요?”
유리아는 얼어붙은 자폭점을 보며 시몬에게 물었다.
“생각해 보니 감시카메라가 저기 있군요. 그냥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유리아의 질문에 시몬은 지하실 천장에 달린 CCTV를 보았다.
최중요 시설에나 설치하는, 초상 기술을 몰빵해서 만든 감시카메라들이었다. 하나하나가 고급 외제 차 값을 가볍게 웃돈다.
시몬은 CCTV를 향해 손을 뻗었다.
촤아악.
그의 손이 촉수로 변해서 고무줄처럼 길게 뻗었고, 뻗어 나간 그의 손이 천장의 카메라들을 살폈다.
“고장…… 났군요.”
초상 감시카메라의 상태를 살핀 시몬의 실눈이 살짝 떠졌다.
“루시 님이 폭발을 막을 때 고장 난 걸까요?”
고장 났다는 말에 유리아가 추측했고, 시몬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처음부터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
많은 의미를 담은 그의 말에 유리아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시몬은 품에서 초상 무전기를 꺼냈다.
딸깍, 띠익.
무전기는 루시가 펼친 냉기 폭풍 속에서도 작동했다.
“집행관 김시오입니다. 이제 내려오셔도 좋습니다. 매우 추우니 방한복 입고 오세요. 설명은 이따 보고서로 제출할 겁니다.”
―네, 집행관님!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치안관의 대답이 바로 수신됐다.
“…….”
지상의 지원팀을 부른 시몬은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천장의 작동하지 않았던 카메라와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번갈아 보았다.
“이거, 인권 단체에서 뭐라 하는 게 아닌가 모르겠군요.”
시몬이 걱정스러운 뉘앙스로 입을 열었다.
“마인을 죽인 것을 가지고요?”
이에 유리아가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이 세계의 인권 단체가 이상하다지만 그 정도는 아닙니다. 문제는 이 보관소의 직원들이지요.”
유리아의 물음에 시몬이 고갯짓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냉동 참치처럼 꽁꽁 얼어 버린 민간인 시체들을 가리켰다.
“우리가 죽인 게 아닙니다만?”
유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대중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거예요. 정확히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겠지요.”
시몬의 시선이 천장의 카메라를 향했다.
“설마요. 우리는 협회의 집행관인데…….”
“여론전은 이방인인 우리에게 불리합니다.”
“협회가 막아 주지 않을까요? 애초에 우리가 이계인이라는 것은 협회의 극소수만 알잖아요?”
“협회는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조직이고, 협회의 집행관은 가장 경외받는 직업이긴 합니다.”
대화를 나누는 둘의 입에서 입김이 나왔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이지요.”
시몬의 우려 어린 말을 끝으로, 위층과 이어진 계단에서 발소리와 인기척이 들렸다.
* * *
우려 가득했던 시몬의 추측은 정확했다.
-협회 공보실을 믿냐? 언제부터 각성자가 비각성자 목숨 신경 썼다고?
-인질?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이거 너무 맞아떨어지네요…… 대명 마석 보관소에 있는 마석이 전부 훼손된 것도 그렇고…… 마인부터 인질까지 생존자 한 명 없는 것도 그렇고…… 이거 냄새가 납니다.
-딱 봐도 협회와 집행관이 짜고서 마석을 챙긴 거겠지~ 입막음으로 인질로 있던 직원들까지 얼려 죽인 거고~
그날 저녁, 인터넷에서는 낮에 있었던 마석 보관소 테러에 대한 각종 가짜 뉴스와 음모론이 터져 나왔다.
* * *
광주농업특별시.
개문 사태 이후 가장 개과천선한 산업이 있다면 바로 농업일 것이다.
바다의 대부분은 마경화가 되었고 거대한 해양 괴수들이 선박을 공격했다. 1차 개문부터 대전쟁이 끝날 때까지 해상 물류는 사실상 끊어졌다.
2차 개문 직전에야 해양 괴수의 접근을 차단하는 초상 스텔스 도료가 개발되었다.
하지만 초상이라는 이름이 붙은 덕분에 엄청나게 비쌌다.
괴수 퇴치 도료를 선박에 칠해도 이를 활성화하고 유지할 각성자도 필요했다.
초상 도료도 모자라 최소 D급 이상의 각성자가 승선해야 하는 조건은 물류비를 아득히 높게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상당수의 선박은 연안 항해로 교류할 수밖에 없었고, 물류의 이동이 막혔으니 수입과 수출 또한 박살이 났다.
식량의 90%를 수입에 의존하던 한국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때부터였다. 이 나라에서 늘 천시받던 농업이 반도체보다 중요한 산업이 된 것이.
정확히는 그냥 농업이 아닌, ‘초상’이라는 마법의 단어를 더한 ‘초상 농업’이.
농업 수도 광주 외곽, 농업 도시라는 말과 다르게 광주시 외곽에는 20층 높이의 빌딩이 빼곡하다.
하지만 투명한 빌딩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책상과 컴퓨터 대신 창고가 있었다.
각 층의 창고에는 겹겹이 빼곡히 배양 중인 농작물과 배양육이 즐비하다.
이런 창고형 배양판 사이로, 정장을 입은 화이트칼라 대신, 청바지에 면티를 입은 농부들이 농작물과 배양육을 살핀다.
이 20층짜리 빌딩 한 채에서 매달 5만 명분의 식량을 생산한다.
광주를 비롯한 호남 전역에는 이러한 농업 빌딩이 무수하다.
당연하지만 이 또한 초상 산업이다.
각 농업 빌딩에는 층마다 마석이 설치되어 있었고, 빌딩 최상층에는 C급 이상의 각성자 한 명과 이를 보조하는 D급 이하의 각성자들이 상주하여 오늘도 식량을 생산했다.
그리고 이러한 농업 빌딩이 즐비한 광주시 중심부.
국내외 초상 농업을 선도하는 초상농업 컨벤션 센터는 본래엔 광주시의 명물이었지만, 지금은 또 다른 의미로 주목받았다.
저벅, 저벅, 파슷.
반쯤 파괴된 컨벤션 센터의 잔해를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다.
남녀였다. 둘 다 검은 정장 위에 검푸른색 초상 코트를 망토처럼 걸쳤다.
한 남자는 2미터의 거대한 덩치에 검은 스포츠머리를 했고, 다른 여성은 아담한 체구에 찬란한 금발, 무엇보다 어깨와 정수리에 헤일로가 은은히 빛났다.
콰가각.
협회장 박태오는 구두 아래에 밟힌 얼음 조각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늦여름이지만 빙하의 여제를 사칭한 마인이 머물렀다 간 곳은 에어컨을 터보로 틀어놓은 것처럼 쌀쌀했다.
흐으읍.
박태오는 숨을 크게 마셨다. 차가운 기운이 그의 콧속으로 스며든다. 냄새가 난다. 빙하의 냄새.
“…….”
그렇기에,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한편으론 의문도 들었다.
분명 빙하의 여제 베아트리체는 죽었다.
태광휘의 태양검에 의해.
자신도 그때 옆에 있었기 때문에 잘 알았다.
그 전투에서 태광휘는 아스트라를 잃었다.
그 직전에는 사랑했던 여인을 잃었지.
박태오도 빙하의 여제에게 사랑하는 가족을 빼앗겼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일한 혈육이었던 동생, 박소영을 앗아간 원수.
꽈악.
박태오의 양 주먹이 세게 쥐어졌다.
고오오오오.
폐허로 변한 컨벤션 센터의 잔해가 박태오의 분노 게이지와 함께 천천히 떠올랐다.
“자아~ 자아~ 우리 협회장님은 진정하는 것이에요!”
그때, 옆에 있던 성녀 아스카 레이나가 그런 박태오의 옆구리를 쳤다.
워낙 체구 차이가 났기에, 아스카는 박태오의 옆구리를 펀치 머신 때리듯 했다.
그래야 분노에 이성이 흐려진 협회장이 정신을 차릴 테니까.
“으음.”
박태오는 아스카의 목소리에 기운을 가라앉혔다.
푸드드드듯.
떠올랐던 폐허의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도대체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건가요? 이미 증거란 증거는 전부 수집했잖아요?”
그런 협회장을 향해 성녀는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도 그 루시라는 여자를 의심하는 건가요?”
아스카는 박태오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
박태오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니이~ 알리바이가 명확한데 뭘 의심하는 건가요? 이러다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냉기술사 다 죽이겠어.”
“냄새가 비슷해.”
“예에~ 저도 코가 있는 것이에요. 원래 냉기술사의 마나는 비슷한 것이에요~.”
“외모도…….”
“응~ 베아트리체의 얼굴은 아무도 모르쥬~? 광휘 오빠한테 척살당할 때도 가면과 함께 통째로 증발했잖아요?”
성녀의 이어지는 반박에 태오는 그저 한숨을 작게 내쉴 뿐.
“어쨌든 수상한 것은 수상한 거야. 태루시는 물론, 나머지 둘도.”
박태오는 그렇게 말하다가 이상함을 느끼곤 아스카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어쩐 일로 루시라는 여자를 옹호하지? 서로 못 잡아먹는 사이 아니었나?”
박태오의 의문에 아스카는 방긋 웃으며 답했다.
“그래도~ 협조적이잖아요? 지금처럼 헌터가 부족할 때 S급을 뛰어넘는 헌터의 충원은…… 분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것이에요!”
아스카의 해맑은 대답.
“루시라는 여자가 연적인 것과 별개로, 저는 지구의 성녀이자, 부협회장이며, 검룡 길드의 길드장이니까요!”
‘뭔가 꿍꿍이가 있군.’
박태오는 아스카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구의 성녀니, 성결과 순수의 화신이니 같은 칭호는 전부 미디어에서 지어 낸 것.
그가 아는 성녀의 진짜 모습은 대전쟁 내내 함께 구르고 굴렀던 찌들 대로 찌든 베테랑이다.
“그들이 유독 협조적이기 때문에 더욱 수상하다고 봐.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우린 이미 경험했잖아?”
박태오의 시선이 무너진 컨벤션 센터 폐허 위에 피어오른 설원을 응시 중이다.
“베아트리체, 그 여자도 처음엔 전우였어. 가장 믿을 수 있는 헌터 중 하나였지.”
박태오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태루시뿐만 아니라 김시오와 문유리도 경계한다.”
“그런 생각을 하시면서 용케도 안 들키셨네요? 김시오 집행관과 꽤 친하게 지내는 줄 알았는데?”
박태오의 말에 아스카는 묘한 눈을 했다.
“그래 보였나?”
아스카의 묘한 시선에 태오는 조소를 지었다.
“이미 김시오, 아니, 시몬이란 이계인은 우리가 자신들을 이방인 취급하는 것을 눈치챈 거 같았는데? 그것도 처음부터.”
“우리라니요?”
“몰랐나? 시몬은 아스카, 너도 경계하는 거 같던데? 전부터 그쪽을 보는 시선도 심상치 않았거든? 그나저나…… 정말 눈치 못 챈 거야?”
“호에에에! 혼또?!”
아스카가 모처럼 일본식으로 과장된 반응을 보였다.
“그 실눈 자식, 겉으로 백날 웃으면서 다가와 봤자 소용없지. 충직한 기사 노릇 하는 분홍 머리도 마찬가지고.”
박태오는 과장된 반응을 하는 아스카를 무시하곤 말을 이었다.
“처음엔 우연을 가장해 접근하거나, 또는 지인의 소개로 모습을 드러내거나. 사기꾼들이 대체로 그렇게 행동해.”
말을 하는 그의 머릿속에 옛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안면을 튼 후에는 천천히 차근차근 친분과 신뢰를 쌓아 가고.”
얼굴에 큰 상처를 입었다면서 늘 가면을 쓰고 다녔던 청은발의 냉기 원소술사가 있었다.
“오히려 먼저 돈을 빌려 주는 식으로 우정을 쌓지.”
그녀는 누구보다도 인류를 위해 헌신했고, 박태오와 박소영, 태광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전우였다.
한때나마 베아트리체에게 연심을 품었던 박태오였기에.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하지.”
그랬던 그녀가 갑자기 인류를 배신했다.
“너무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 처음에는 믿지 않아. 무슨 오해가 있었을 거라며 애써 자위하지.”
마인이 되어 사천왕이 되었을 때에도 박태오는 믿지 않았다.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뭔가 저주나 세뇌에 걸렸을 거야.
아니면 사천왕에 잠입해서 마왕군에게 크게 한 방 먹이려는 걸 거야.
그래서 당시 박태오와 태광휘는 마지막까지 베아트리체의 척살을 망설였다.
“사기꾼들은 그때 마지막 확인 사살을 해 버리지.”
그러다가 결국 베아트리체가 박소영을 죽였을 때.
“그렇게 배신당한 피해자는 마지막까지도 이 상황을 애써 부정하면서 허우적거리다가 파멸해 버려.”
그제야 태광휘와 박태오는 후회했고, 인류의 공적을 죽이기로 다짐했었다.
“…….”
박태오의 회상은 짧지만 강렬히 이어졌고, 그 종점에는 베아트리체와 놀랍도록 닮은 루시라는 여자가 있었다.
얼굴은 모르지만, 체구가 비슷했다. 목소리도 비슷했다.
발산하는 마나도 마찬가지.
그리고 특히 그 분위기.
빙하의 여제와 태루시는 그 분위기가 너무도 일치했다. 소름 돋을 정도로.
‘태광휘, 돌아오면 해명해야 할 것이다.’
그는 이를 갈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태루시와 김시오, 문유리가 말한 태광휘와의 인연이 정말 진실인지.
어떻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빙하의 여제와 닮은 루시라는 여자와 깊은 관계가 되었는지를 박태오는 태광휘의 입을 통해서 명확히 알고 싶었다.
“…….”
그런 박태오를 성녀 아스카가 말없이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