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74화 (174/212)

제174화

#174.

이 세계 사람들은 큰 힘을 가진 존재를 어떤 식으로든 헐뜯지요.

때론 있지도 않은 사실을 그럴듯하게 꾸며서라도 말입니다.

이건 인간의 본성. 그놈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이 본성을 더욱 적나라하게 만듭니다.

대전쟁이 끝나고 2차 개문 직전까지 평화가 있었다.

마경의 몬스터들이 있었지만, 마왕군에 의해 체계적으로 움직이던 몬스터 군단과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2차 개문이 열렸을 때도 마찬가지.

1차 개문 때처럼 아무 대비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대전쟁과 같이 마왕군의 대대적인 침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산발적인 침공.

태평양 게이트가 있다지만, 이것은 막연한 위기감만 줬다.

마치 1차 개문 전에 유행했던 기후 위기 같은 느낌.

애초에 태광휘를 비롯한 인류의 위대한 영웅들이 그 게이트를 닫으러 원정을 떠났다.

몇 년째 소식이 없는 것이 불안했고, 이로 인해 세계적인 경제 공황이 따랐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어찌어찌 굴러갔다.

게이트 난민이 생기고 심심치 않게 아사자와 사망자도 나왔지만, 세상은 억지로 평화로웠다.

먹고살 만하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인권에 다시 관심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인권은 개문 사태 이전의 인권과는 개념이 다소 달랐다.

개문 사태 이전에는 인권 운동이 범죄자 인권 중심이었다면, 초상 시대의 인권은 비각성자 인권이 중심이 되었다.

살인마든 의인이든 비각성자가 각성자에게 피해를 입으면 모든 인권 단체로부터 비호를 받았다.

이것은 각성자로부터 평등권을 지키기 위한 비각성자들의 몸부림에 가까웠다.

인터넷 여론에 힘을 얻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대명그룹이라는 기업의 돈이라도 받은 것일까?

“협회와 레드문의 대립으로 국내에서 하루 평균 311명의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는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각성자들 간의 분쟁이 도를 넘었다는 여론이 강합니다.”

딸깍.

“언제까지 무고한 약자들이 각성자들의 싸움에 휘말려 희생되어야 합니까!”

딸깍.

“저희 대명 마석 보관소 유족회에서는 협회에 진상 규명을 요청합니다. 또 이 참사의 직접적인 관련자인 김시오, 문유리, 태루시 집행관의 대국민 사과와 재발 방지 서약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딸깍.

“협회에서는 인질들이 이미 마인에게 사망한 상태였다는 입장을 고수하였습니다. 세 집행관은 오히려 마인들의 마족 소환 의식을 저지한 영웅이고 현재 나돌고 있는 가짜 뉴스에 대해서 엄중히 대응할…….”

딸깍.

“한편, 테러 당일 초상 감시카메라가 일시 점검 중이었다는 건과 관련하여 마인들이 내부 협력자를 통해 이를 알고 노렸을 거라는…….”

청은발을 똥 머리로 대충 묶고 검은 면티에 핑크 색 수면 바지를 입은 루시는 무심한 눈으로 TV를 시청했다.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쉬는 날의 직장인 그 자체였다.

“대명그룹의 김은찬 명예회장은 금일 기자 회견에서 이번 사태는 마인들이 일으킨 끔찍한 테러에 불과하며, 더 큰 참사를 막은 협회와 집행관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무심히 전환되던 TV 화면이 멈췄다.

“…….”

소파에 누워서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던 루시는 TV에 나오는 김은찬이라는 대상단주를 유심히 보았다.

“참으로 영악하지 않습니까? 뒤에서는 각종 가짜 뉴스를 퍼트리면서, 앞에서는 협회와 우리를 지지한다고 하는 모습이.”

옆에서 루시와 비슷한 몰골로 있던 유리아가 입을 열었다.

유리아 또한 흰색 티셔츠에 푸른색 수면 바지를 입고 있었다.

진분홍색 머리는 언제나 쇼트커트를 유지했기에 따로 묶을 필요가 없었다.

“이 나라에서 집행관은 왕과 비슷한 권한을 가진다고 하지 않았나?”

루시는 턱 끝으로 TV를 가리키며 의아해 했다. 그곳에는 여전히 자신들을 비난하는 뉴스가 방영 중이었다. 무슨 왕이 이렇게 만만하지?

“저도 여기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입니다. 여긴 위정자일수록 욕을 더 먹더군요. 이 나라에서 제일 많은 욕을 먹는 사람이 대통령입니다.”

“그놈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인가?”

유리아의 대답에 루시는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솔라도 이렇게 욕을 먹나?’

그러다가 자세를 바로잡고는 두리번거렸다.

“핸드폰! 핸드폰!”

“여깄습니다.”

루시가 핸드폰을 찾자, 유리아가 소파 틈에 빠진 그녀의 폰을 찾아 건넸다.

“고맙다!”

휴대폰을 받은 루시는 어느덧 제법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화면을 터치했다.

한국인답게 녹색 검색창을 켰다.

-김시오 집행관, “국민에게 숨긴 것 없어, 협회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나?”

-오늘 집행관 대표로 기자 회견에 임한 김시오 집행관은 희생자에 심심한 위로 전해, 그러면서도 일부 언론에서 언급한 의혹에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선을 그어

녹색 검색창 메인 기사에 이번 일과 관련된 기사 섬네일이 보였다.

이 자리에 없는 시몬이 대신 고생해 주고 있었다.

-마석 보관소의 참사는 태루시 집행관의 이능 때문?

바로 옆 기사에 루시를 직접 언급한 기사도 있었다.

“……!”

루시는 숨을 크게 쉬고선 뒤로 가기를 눌렀다.

이미 진즉에 보았던 기사였다. MBS라는 이름 있는 방송사에서 낸 뉴스였고, 악의적인 추측과 도발로 활자가 채워져 있었다.

댓글 또한 루시를 향한 악의로 가득했고, 루시는 이를 몇 개 정도 보다가 말았다.

계속 보았다간 간신히 이겨 낸 공황이 재발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쯧.’

그녀는 속으로 혀를 한 번 차고는 본래의 목적을 검색하려 했다.

‘그런데 뭐라고 검색하지?’

하지만 막상 화면 속 자판을 두들기려던 그녀의 손이 멈칫했다.

―태광휘의 과오

잠시 고민하던 루시는 이윽고 이렇게 검색창에 입력했다.

“흐음?”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태광휘에 대한 비판적인 글은 보이지 않는다.

태광휘보단 태광휘의 부하들의 과오가 더 많이 나왔다.

‘특히 박소영, 솔라의 전 연인, 그 여자에 대한 과오가 많군?’

루시는 연관 검색어로 뜬 한 여인을 보면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오피스 룩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며, 안경을 쓴 지적인 미녀가 화면 속에 있었다. 몇 번을 보았지만 개운치가 않다.

‘마음에 안 들지만, 내조는 확실히 잘했어.’

루시에게 매우 복잡한 감정을 주는 여인이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어쩌면 태광휘가 직접 했어야 할 더러운 일들, 찝찝한 일들의 책임자가 전부 박소영의 짓으로 되어 있었다.

“태광휘 헌터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보시려면 여기 말고 커뮤니티로 들어가셔야 해요. 그리고 검색어도 은어가 따로 있어요.”

그렇게 휴대폰 화면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구민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은 잘 잤니?”

루시는 시선을 살짝 돌려서 자신의 시녀이자 매니저를 보았다.

이미 저 아이의 인기척을 알았기에 놀라거나 하진 않았다.

“네에, 우리 진짜 어쩌죠? 집행관 하자마자 이렇게 꼬이다니……. 이건 분명 대명그룹에서 꾸민 일이에요!”

루시에게 다가오자마자 구민주는 눈물을 글썽였다. 민주의 두 눈에는 다크 서클이 짙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얼굴에 뾰루지가 났으며, 혓바늘도 돋았는지 발음이 살짝 둔하다.

“신경 쓰지 마렴. 더 이상 이거에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고. 밤새 키배인지 뭔지도 안 해도 돼. 협회에서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으니.”

듣기론 밤새 루시와 관련된 악플들과 키보드 배틀인가를 떴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모든 글들을 캡처해 협회의 법무팀에 보냈다고 한다.

“그치마안…….”

‘이렇게 이미지가 실추되면 광고 의뢰가아…….’

구민주는 이틀 동안 산책 못 간 강아지 같은 얼굴을 했다.

“민주야, 그만 징징거리고 그거나 자세히 말해 보렴. 커뮤니티가 뭐지? 특정 단어는 또 뭔 소리고? SNS 같은 거니?”

“아! 그게 커뮤니티라는 건요…….”

“민주 양, 스톱!”

루시의 질문에 민주가 답하려 하자, 옆에 있던 유리아가 급히 제지한다.

“에?”

구민주는 처음으로 자신을 엄한 눈으로 보는 유리아의 태도에 얼어 버렸다.

“민주 양, 참고로 저는 루시 님을 막지 못합니다. 김시오 집행관도 루시 님보단 힘이 약해요. 아마도.”

“!!”

하지만 이어서 유리아가 속삭인 말에 구민주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를 뻔했는지 깨달았다.

“경, 쓸데없는 짓이다. 나는 이미 이곳 인간들에게 크고 작은 실망을 수없이 해 왔다. 더 실망해 봤자야.”

“아닙니다, 루시 님. 바닥 아래에 지하가 있는 것처럼 익명에 숨은 인간의 추악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루시 님이 보셨던 기사의 댓글들이 천사로 느껴질 정도로요.”

“……!”

유리아의 대꾸에 루시는 어깨를 흠칫했다.

아까 기사에서 본 악플로도 몇 시간 동안 심란한 기분이었는데, 이보다 더 심하다고? 심지어 나도 아닌 솔라가 그런 취급을 받는 곳이 있다고?!

루시는 궁금하면서도 두려웠다.

“……안 보겠다.”

결국 두려움이 호기심을 앞섰다.

“도대체 이놈의 세상은…….”

루시는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는 구민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혹시 너도 그렇냐는 듯한 눈초리.

“히이익! 딸꾹, 딸꾹! 저는 태어나서 악플 같은 거 한 번도 써 본 적 없어요! 커뮤니티도 눈팅만 했구요! 진짜예요!”

이에 구민주는 아까보다 더 언 모습으로 딸꾹질을 했다.

“정말이냐?”

지나치게 당황한 민주를 보며 루시와 유리아가 의심의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그으…… 어쩌다가 아주 가끔? 한 세 번 정도?”

결국 구민주는 고해성사라도 하듯 처음보단 작아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후우…… 민주, 너도 어쩔 수 없는 이 세계 주민이었구나?”

루시가 적지 않게 실망한 반응을 보였다.

“억울해요! 저는 오히려 피해자였다구요! 정당방위였어요!”

이에 구민주가 정말로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가 복무한 해병대 여군 사단을 암캐병대니 군캉스라고 비하하는 것들을 어떻게 참아요! 저는 제 전우들의 목숨값과 명예를 걸고 싸웠을 뿐이에요!”

항변하는 민주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

“?!”

그런 민주의 항변과 진심 어린 눈동자에 루시와 유리아의 의심 어린 표정이 풀렸다.

“세상에!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군인들도 욕하고 비하한단 말이냐?”

“제가 보았던 미디어에서는 그런 내용이 없던데, 커뮤니티와 SNS에 있는 내용인가 보군요?”

오히려 민주가 말한 커뮤니티의 추악한 일각에 충격을 받았다.

“네에, 여자들은 보통 이등병부터 사령관까지 여군으로만 구성된 여군 사단에서 복무하거든요. 그거 가지고 비하를 많이 받아요.”

“여자로만 이뤄진 군부대가 무슨 문제가 있나? 듣기론 민주, 너도 실전을 치렀다고 들었다.”

“물론 실전을 치르긴 하지만…… 남군들과 비교하면 적은 것은 맞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우들끼리 어떻게 그런 소리를?”

“그게…… 보통 이런 비하는 군대를 안 간 사람들이 주로 하는 편이에요. 유난 떨지 말라는 식으로요.”

“뭐어?!”

거실에 경악과 침묵이 흘렀다.

“…….”

“…….”

“…….”

오직 TV 뉴스 소리만이 세 사람의 적막을 가려 줄 뿐이다.

이러한 적막 속에서.

띠리리리리.

불쑥 루시와 유리아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상황이 터졌나 보군.”

휴대폰 화면을 본 루시가 차갑게 중얼거렸다.

“욕은 욕대로 하면서, 도움은 또 뻔뻔히 요구하고. 참으로 추한 백성들이로다.”

루시가 비꼬듯 말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진짜 극소수에요! 만약 대놓고 그런 소리 하면 순식간에 매장당해요!”

그런 루시를 민주가 급히 진정시켰다.

“…….”

옆에 있던 유리아는 씁쓸함이 감도는 미소를 지을 뿐이다.

유리아의 분홍색 눈동자에 여전히 세 집행관을 비난하는 뉴스가 담겼다.

“어쨌든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 자들이 있기는 있다는 것이군.”

구민주의 말에 루시는 코웃음을 쳤다.

“하긴, 당장 문유리와 김시오도 치욕을 입은 상태지. 전에 거주하던 집에서 추방당해 우리 숙소로 피신 오지 않았는가?”

“추방이 아닙니다. 시위대와 기자로 인해 이웃 주민들이 피해를 볼 것 같아서 자발적으로 나온 것입니다.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만 잠시 루시 님의 집에 신세를 지게 된 것뿐입니다.”

유리아가 급히 정정했다.

“만약 불편하시다면 지금이라도…….”

유리아는 정정하면서 루시의 눈치를 보았다.

“무슨 소리! 내가 그대들에게 눈치를 주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나를 은혜도 모르는 옹졸한 군주로 만들지 마라!”

루시는 그런 유리아의 말에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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