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화
#177.
성인 광고 배너를 누르고 로딩을 빠져나오자 어플을 다운 받으라는 링크가 보였다.
홀리듯 어플을 다운 받았고 그 어플을 켰다.
이윽고 가입 절차 화면이 떴다.
“…….”
루시는 다시 한번 주위를 힐끔거렸다.
집안은 아무도 없었다.
구민주는 동원 예비군 훈련이 있다면서 이틀째 집에 없었고, 유리아와 시몬도 베아트리체의 정보를 수집한다며 밖으로 나갔다.
오직 오늘 비번인 루시만이 집에 있는 상황.
고오오오.
루시는 괜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다시 휴대폰에 집중했다.
개인정보 입력란에 귀화하면서 받은 자신의 주민 번호와 휴대폰 번호를 입력해 보았다.
‘사용할 수 없는 주민 번호입니다.’
하지만 먹히지 않았다.
‘외국인 차별인가?’
루시는 미간을 구겼다.
실제 이유는 차별이 아닌 보안 때문이었다. 집행관의 개인정보는 매우 중요한 정보다.
이런 이유로 협회의 인증을 받지 않은 사이트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귀화한 고위 각성자의 주민 번호는 일반 주민 번호와 자릿수부터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부분까지 루시는 알지 못했다.
“…….”
그녀는 여전히 콩콩 뛰는 심박동을 느끼며 눈앞의 가입란을 말없이 노려봤다.
인간은 방법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민주의 주민 번호가…….’
대마녀의 놀라운 기억력이 빛을 발휘했고 현지 시녀의 주민 번호와 메일 주소, 휴대폰 번호를 기억해 냈다.
그렇게 그녀는 성인 사이트에 구민주의 주민 번호와 메일 주소를 입력했다.
‘이미 가입된 주민 번호입니다.’
“어?”
좀 당혹스러운 문구가 나왔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 아이도 성인이니까.’
루시는 그러려니 여겼다. 이미 가입이 되어 있다고 하면 오히려 더욱 쉬웠다.
아이디는 이메일로 대체하는 걸 확인한 그녀는 로그인 화면 옆에 있는 비밀번호 찾기를 눌렀다.
거기서 다시 한번 민주의 메일 주소와 개인정보를 입력했다.
그러자 임시 비밀번호가 메일이 전송됐다고 안내창이 떴다.
살금살금.
루시는 조심스레 민주의 방으로 들어갔다.
삐익.
그리고 민주가 사용하던 컴퓨터를 켰다. 다행히 잠겨 있지 않았고 메일도 자동 로그인되어 있었다.
꿀꺽.
루시는 알 수 없는 스릴을 느끼며 시녀의 메일함을 확인했다.
띠링.
메일로 온 임시 비밀번호를 로그인 창에 초집중하여 입력했다.
“!!”
마침내 신세계가 열렸다.
* * *
이틀 후 늦은 저녁.
3박 4일 예비군 훈련을 갔던 민주가 돌아왔다.
“아오! 개 같은 나라! 애국할 가치도 없는 나라! 해 주는 것은 뭣도 없으면서어! 군 가산점도 안 주면서어어!! 훈련 수당도 교통비만 달랑 주면서!! 조기 퇴소 좀 시켜 달라니까 그걸 그렇게 씹냐아!”
현관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민주의 툴툴거리는 혼잣말이 메아리친다. 적막했던 집안이 생기를 되찾았다.
“다녀왔습니다아!”
현관문에서 거실로 들어선 구민주가 언제 투덜거렸냐는 듯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신고합니다! 예비역 병장 구민주는 동원 훈련을 마치고 무사 복귀하였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필승!”
간만에 예비군복을 입어서 그런지 인사도 경례로 했다.
작은 체구에 ‘무적해병 여군2사단’을 한자로 크게 수놓은 예비군복이 인상적이다.
“어? 김시오 집행관님과 문유리 집행관님은 오늘도 출동인가요?”
경례를 마친 민주는 거실 소파에 홀로 앉아 멍하니 휴대폰을 보는 루시를 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저…… 루시 님? 괜찮으세요? 혹시 무슨 일 있었나요?”
이어서 소파에 앉아 유독 퀴퀴한 분위기를 풍기는 루시를 걱정스레 보았다.
“어? 크흠! 와, 왔느냐! 민주야. 그 예비군이라는 거 잘 다녀왔나 보구나. 정말 고생이 많아.”
눈동자가 탁하고 눈 아래 다크서클이 퀭한 루시가 휴대폰을 급히 뒤로 숨기면서 민주를 맞이했다.
“루시 님? 무슨 일 있나요? 안색이 좋지 않으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좀 무리를 했더니.”
“루시 님이 무리를 할 정도로 강한 마인이 있었나요?”
“마인 문제는 아니고 이것저것 알아보느라…….”
루시는 민주의 눈치를 보면서 말끝을 흐렸다.
‘돈을…… 민주의 이름으로 돈을 너무 많이 썼어.’
그녀의 이틀을 앗아 간 므흣한 어플, 그 어플의 계정 주인이 바로 구민주다.
계정에 있던 포인트는 물론, 추가 결제까지 해 버렸다.
포인트 자동 충전이 되어 있어서 더욱 물 쓰듯 쓴 것 같았다.
태광휘를 닮은 배우의 화보집부터, 태광휘와 비슷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19금 ASMR까지. 하나하나가 도저히 구매하지 않고는 못 견딜 유혹들.
‘이틀 동안 출근도 안 했지. 내가 미쳤던 건가?’
비번에 이어 추가로 연차까지 사용했던 루시였다.
협회에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흔쾌히 그녀의 연차 사용을 허락해 줬다.
최근 그녀가 저지른 일들 때문에 더더욱 그랬던 것 같았다.
“그…… 민주야? 월급은 요즘 괜찮니?”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루시는 뜬금없이 민주에게 월급에 대해 물었다.
“월급이요? 완전 최고지요!”
고용주가 자신의 급여에 대해 묻자, 민주는 언제 루시를 걱정했냐는 듯 해맑게 답했다.
괜히 각성자, 각성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돈을 긁어모은다는 대형 PMC와 길드의 고위 헌터급은 아니지만, 명색이 협회의 집행관이다. 대한민국 공직자 중에서 집행관보다 연봉이 높은 공직자는 없다.
그 집행관 연봉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임에도 구민주는 만족했다.
심지어 자신의 고용주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업계 평균보다 후하게 급여를 책정해 줬다.
이대로 3개월만 지나면 그놈의 주식으로 잃었던 원금을 복구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물론 그 빌어먹을 독신세로 절반 정도 뜯기겠지만요.”
아, 정정한다. 세금을 고려하면 6개월 정도는 걸릴 것 같았다.
끼이잉.
밝게 답하던 민주는 문득 세금 관련 기억이 떠올랐는지 급격히 쭈그러들었다.
“독신세? 절반이나 뜯는다고? 나도 그러니?”
급격히 풀이 죽은 매니저를 본 루시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헌터는 독신세에서 면제예요. 저 같은 민간인에게나 해당하지요.”
“그때 만난 신지영이라는 배우처럼 입양이라도 하지 그러냐?”
루시는 전에 엑스트라 알바를 할 때 만난 여배우 신지영을 떠올렸다.
“입양도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심사가 아주 엄격하다고요. 애초에 저 하나 먹고살기도 벅차고…….”
질문에 답하는 민주의 얼굴에 그늘이 살짝 드리워졌다가 사라졌다.
“…….”
민주의 머릿속에 자신의 유년기와 청소년기가 스쳤다.
‘그 여자처럼 될 것 같아서 싫어.’
대전쟁 시절, 괴수에게 부모를 잃고 폐허를 떠돌던 유년기.
배급 우선권을 받으려고 어린 구민주를 입양했던 어느 골드미스가 있었지.
그 골드미스에게 입양되어 정서적인 방치를 받았던 청소년기가 구민주의 에고를 관통했다.
“혹시 마음에 둔 남자는 없고?”
입양에 대한 민주의 부정적인 반응에 루시가 조심스레 물었다.
민주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진 것 같았지만 독신세 때문에 그런 것으로 루시는 추측했다.
“당장은 연애나 결혼을 할 생각은 없어요.”
루시의 물음에 민주는 머릿속에 드리운 그늘을 털어 내고는 외쳤다.
“여하튼! 저는 차라리 독신세를 내겠어요! 이미 군복무도 하고 예비군도 다녀왔는데 뭐라 할 사람도 없고요!”
“독신주의자라. 그래, 그게 너의 결정이라면 참견하지 않으마.”
민주의 입에서 독신이라는 말이 나오자 루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한에도 결혼을 하지 않는 여자들이 있긴 했지.’
보통 마녀들이 독신이었다.
“그나저나 법이 좀 융통성이 없는 것 같구나. 아이를 낳는 것이 시대의 과제라고 해도 젊은이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유예 기간을 줘야지.”
“첫 취직 후 3년 동안은 유예 기간을 주긴 해요. 하지만 3년 내로 가정을 이루지 않으면 3년 치 독신세를 한 번에 내야 하죠. 또 저소득층은 독신세 과세가 10%밖에 안 되고요.”
“뭐가 다 대비가 되어 있긴 하구나.”
민주의 대답에 루시는 어깨를 으쓱했다.
‘모순적이고 혼란스럽지만 그럼에도 세세한 체계가 잡혀 있어. 가까이에서 보면 퇴고하는 것 같지만, 멀리서 보면 그 퇴보를 연료 삼아 문명 전체가 진보하고 있어.’
루시는 지구, 태광휘의 세계를 정확히 평가했다.
‘이게 솔라가 의도한 방관인 것일까?’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 가을이라 해가 짧아져서 저녁임에도 하늘은 캄캄했다.
‘그 살모사가 말했었지. 솔라라고 처음부터 방관과 방치로 세상을 둔 게 아니었다고.’
루시는 문득 전에 성녀와 나눴던 대화 중 일부를 떠올렸다.
그때가 언제였냐면, 루시가 그 기자라는 버릇없는 잡놈의 한쪽 팔을 족친 다음 날이었다.
사태가 사태인 만큼 루시는 아침부터 협회 본부로 가서 아스카와 면담을 해야 했다.
당시 협회 본부의 부협회장실에서 루시는 아스카와 이 세상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세상을 뒤엎을 힘이 고위 각성자들에게 있으면서 왜 이렇게 방치하냐는 식으로 말이다.
‘이건 제 추측이지만, 광휘 오빠도 처음에는 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려고 했어요. 소영 언니가 살아 있을 적에요!’
서로 연적에 가까운 사이였지만, 그때만큼은 이상하게 대화가 통했었지.
‘하지만~ 광휘 오빠가 개입할 때마다 부작용이 엄청났어요. 오빠의 비호를 무기 삼아서 뇌절을 하는 이들이 넘쳐났던 것이에요.’
아스카에게 전해 듣기론 솔라라고 해서 처음부터 세상을 이렇게 방치하진 않았던 것 같았다.
‘특히 광휘 오빠를 신처럼 모시는 광신도들이 문제였어요. 아무리 징벌을 해도 광휘 오빠와 소영 언니의 의도를 곡해하는 이들이 계속 생겨났지요.’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는 법.
‘결국 광휘 오빠는 세상과 관련된 통치를 위정자들에게 위임했어요. 모순적이고 혼란스럽지만 그게 그나마 순리에 맞았거든요.’
아무리 신에 준하는 힘을 가진 그라고 해도 사람 일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나 보다.
‘특히나 소영 언니가 돌아가시자, 광휘 오빠의 세상을 향한 방관은 더 심해졌고요.’
뒤이어 자연스레 따라온 박소영이라는 여인의 그림자가 루시의 가슴을 찝찝하게 만들었다.
‘그 박소영이라는 여자의 오빠가 지금의 협회장 박태오라고 했었지?’
유독 자신을 보는 협회장의 눈초리가 차가웠던 이유를 루시는 너무도 잘 알았다.
자신이 여동생을 죽인 빙하의 여제와 무척이나 닮은 것도 모자라, 솔라의 연인임을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근데 내가 눈치를 볼 필요도 없지 않나?’
한편으론 괜한 억울함과 짜증도 치밀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데,
“……루시 님? 루시 님?!”
자신을 부르는 구민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잠시 딴생각 좀 하느라 그런 것이니 걱정 말렴. 너도 훈련받고 왔을 텐데 어서 들어가서 쉬거라.”
루시는 속으로 민주에게 이번 달에 보너스라도 더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좀 일찍 자야 할 거 같아요. 3박 4일 내내 빡세게 구른 것도 모자라서, 마지막 날에는 심지어 조기 퇴소도 안 시켜 준 게…… 정말이지 심신이 힘들어요…….”
“그래, 그래.”
조기 퇴소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루시는 고생한 자신의 시녀를 토닥여 줬다.
그렇게 민주가 방 안으로 사라지고 잠시 숨을 죽이던 루시는 뒤로 숨겼던 휴대폰을 켰다.
그리고 자신의 이틀을 불태웠던 성인 사이트 어플을 삭제했다.
‘지구의 문화는 무섭도다.’
이 이상 더 파고들었다간 뇌가 꼬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 못 본 것들이 좀 남았지만, 내일부터는 현실을 살아야만 했다.
“으그그극!”
으드득, 으드득.
그리고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을 풀었다.
몸을 푼 루시는 욕실로 들어가 목욕을 시작했다.
약 30분 뒤.
“꺄아아아아아악! 해킹! 해킹당했다아아!”
구민주의 방 안에서 비명소리가 새어 나와 목욕 중인 루시의 귀에까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