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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78화 (178/212)

제178화

#178.

다음 날, 루시는 3일간의 휴식을 끝내곤 집행관의 업무를 다시 시작했다.

딱히 휴대폰으로 울리는 출동 알람이 없었기에, 그녀는 협회 본부로 출근했다.

협회 본부 건물에는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기자들의 숫자가 평소보다 배는 많아 보였다.

아마도 3일 전에 있었던 해운대 테러 때문인가 싶다.

그 테러의 주체가 바로 빙하의 여제 베아트리체고, 그 빙하의 여제와 유독 닮은 협회의 헌터가 바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태루시 집행관이었으니까.

“우와, 기자들이 마치 모세의 홍해처럼 갈라지네요?”

운전대를 잡은 민주가 놀란 눈으로 말했고, 조수석에 앉은 루시는 팔짱을 끼고서 자신을 보는 기자들을 말없이 보았다.

공포, 경외, 호기심.

이제야 군주를 향한 제대로 된 시선들이 느껴졌다.

‘맞아야 말을 잘 듣는 건 인간이나 가축이나 비슷하구나.’

루시는 속으로 혀를 차고는 눈을 감았다.

“그나저나 민주야, 그…… 해킹은 괜찮니?”

기자들을 향해 속으로 혀를 찬 루시는 이어서 조심스러운 어조로 민주에게 어제의 일을 물었다.

“네…… 일단 급히 그 사이트에서 탈퇴했어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알뜰하게 봤더라구요.”

“그, 그렇구나. 돈은…… 괜찮니?”

“후우, 그 업체에서는 보상이 힘들다고 했어요. 고객의 부주의로 계정이 유출된 것 같다고요. 사용 아이피도 어떻게 우회했는지 협회 기기의 아이피로 뜬다고 하네요.”

민주는 울상이 된 얼굴로 답했다.

“안됐구나.”

루시는 입에서 나온 말과 반대의 ‘다행’이라는 감정을 속으로 느꼈다.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민주는 루시를 범인으로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

그저 해킹을 당했다고 여긴 모양.

업체에 얘기했지만, 요즘 세상이 그렇다시피 개인의 부주의로 인해 계정이 유출되었다면서 보상을 거부했다.

“경찰에게는 얘기할 거니?”

“이런 일은 경찰이 나서지 않아요. 정 범인을 잡고 싶으면 제가 사비로 탐정이랑 변호사를 고용해야 해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죠.”

개문 사태 이전이었다면 사이버수사대가 도움을 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은 각성자와 괴수에 의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죽어나는 세상.

이런 일에 행정력을 투과할 정도로 경찰이 여유 있는 조직은 아니다.

“그냥 제가 부주의해서 이렇게 된 거죠. 에휴…… 그냥 이걸로 연말 액땜이나 했다고 치게요. 히히히히히~.”

“…….”

애써 밝고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구민주를 보면서 루시는 더더욱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이번 달부터 월급은 물론 보너스도 잔뜩 줘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협회 본부에 도착한 루시는 구민주와 함께 본부에 마련된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웅성웅성, 수군수군.

1층 홀부터 엘리베이터, 복도를 거닐면서 무수한 시선이 루시를 쫓았다.

하지만 누구도 감히 그녀의 앞을 막지 않았고, 시비를 걸지도 않았다. 감히 눈도 마주치지 않았으며, 그림자조차 밟으려 하지 않았다.

“밖에 기자들도 그렇고 본부 내부도 그렇고. 아마 3일 전에 있었던 해운대 테러 때문에 더 그런가 봐요.”

루시와 함께 걷던 구민주가 작게 속삭였다.

“그 빙하의 여제를 사칭한 마인을 말하는 거냐?”

“네, 그래서 유독 그런가 봐요. 게다가 루시 님 3일 동안 쉬셨잖아요? 그 시기가 묘하게 겹…… 어……?”

루시에게 작게 말하던 민주가.

?!

문득 몸이 굳더니 눈을 부릅떴다.

‘잠깐? 3일간 휴일? 내가 예비군 간 동안에?! 그러고 보니 내 컴퓨터 안 잠겨 있었지? 메일도 자동 로그인되어 있었고!’

고용주를 따라 걷던 발은 여전히 전진했지만, 속도가 아까보단 떨어졌다.

‘설마 루시 님이? 그 성인 어플을?! 근데 왜 내 계정으로?’

설마라는 강한 의혹이 그녀를 휘감았다.

“빙하의 여제와 내가 쓴 연차가 하필 겹치긴 했지. 아래 것들이 말 만들기 좋은 건수긴 하겠구나.”

의혹에 눈을 부릅뜬 민주의 귀로 루시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하하, 그렇죠?”

민주는 루시의 이어지는 조소에 이 의혹을 덮기로 했다.

설령 사실이라면 어쩌겠는가.

‘따져 봤자 해고밖에 더 당하겠어?’

이럴 땐 그냥 모르는 척 덮어 두는 게 비각성자의 처세술.

그저 앞으로 개인정보 관리를 철저히 하자고 다짐하는 게 전부일 뿐.

‘루시 님이 정말 범인이고 양심이 있다면! 이번 달에 위로금으로 보너스라도 주시겠지.’

속으로 작은 바람을 품으면서 말이다.

집무실에 들어선 루시는 고개를 갸웃했다.

“……?”

분명 자신의 집무실이건만,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커, 커피를 냉큼 대령하겠사옵니다!”

옆에 있던 구민주는 눈치를 쓱 보더니, 자신의 고용주는 입에 대지도 않는 커피를 타 온다면서 슉! 하고 사라졌다.

“오늘은 나와 함께 움직이지, 태루시 집행관.”

집무실에는 그리하여 단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왜 협회장이 나와 함께 움직인다는 거지?”

협회장 박태오와 태루시 집행관만이 집무실에서 묘한 기운을 서로에게 쏘았다.

“알면서 묻는 건가? 댁이 설치고 다니는 것 때문에 온 나라, 아니, 전 세계가 난리야. 형식적으로나마 내가 옆에 붙어 있어야 여론도 진정되겠지.”

최근 부산에서 일어난 사건도 있고.

박태오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협회장씩이나 되어서 시간이 많은가 보군. 아니면, 나를 의심하는 건가?”

“의심한다면?”

“…….”

루시를 대하는 박태오의 태도는 오늘따라 유독 더 딱딱하고 차가웠다.

아마 최근 해운대에서 일어난 테러 때문인 듯싶었다.

“내 알리바이는 너희가 더 잘 알지 않나?”

박태오의 태도에 루시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빙하의 여제는 다중 이능 각성자였지. 그 능력 중에는 분신술도 있었고.”

루시를 바라보는 박태오의 눈빛이 차갑다. 친근한 척하면서도 거리를 명확히 두는 아스카의 눈빛과는 결이 달랐다.

“3일간 그대가 휴가를 낸 것, 그것도 충분히 의심스러워.”

“……나는 분신술을 쓸 줄 몰라. 그리고 애초에 연차를 허락해 준 것도 협회가 아닌가?”

빌어먹을 3일. 루시는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대꾸했다.

“혹시나 하고 허락해 준 거야. 그 3일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할지 지켜보기 위해서. 아니나 다를까, 집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더군? 집 안에서 무엇을 했지?”

“그, 그냥 핸드폰만 했다!”

루시는 괜히 뜨거워지는 얼굴을 애써 식히며 외쳤다.

“아무렴 그러시겠지.”

루시의 대꾸에 박태오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그녀의 말을 한쪽으로 흘렸다.

“그래서 우리 몰래 차원 코어 찾는 건 잘되나? 듣기론 셋이서 나름 아등바등하는 것 같던데?”

박태오의 어조에는 분명한 비꼼이 들어가 있었다.

“누구들 덕분에 진척이 없더군.”

이에 루시는 미간을 좁히면서 답했다.

“그럴 거 같아서 선물을 준비했지.”

퉁명스러운 루시의 대답에 박태오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폈다.

가뜩이나 거대한 그의 덩치가 더욱 커져 집무실 한쪽을 가득 채웠다.

“레드문 본진으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뭔가를 연구 중인 거 같아. 어쩌면 거기에 차원 코어가 있을지도 몰라. 이것이 그쪽과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해.”

“!!”

박태오의 말에 루시의 눈이 크게 떠졌다.

“문유리와 김시오는 아스카와 함께 이미 의심되는 또 다른 구역으로 보냈어. 지금쯤 미국으로 향하는 협회 전용기에 탔을 거야.”

어쩐지 그녀가 쉬는 3일간 유독 연락이 없더니, 외국에 간 모양이다.

“…….”

한편으론, 지구 반대편으로 가면서 아무 말도 없었다는 것에 루시는 서운함과 의아함을 느꼈다.

그녀가 두 사람과 전화나 문자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어도 말이다.

“말없이 떠났다고 너무 서운해하지 마. 정보가 샐 것을 염려해서 말하지 말라고 내가 지시했거든. 이렇게 직접 전해 주겠다고 말이야.”

루시의 표정을 읽기라도 했는지 박태오가 시몬과 유리아를 변호했다.

“태루시, 너는 나와 함께 여기를 간다.”

박태오는 루시의 집무실에 걸린 대한민국 전도의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알다시피 협회 내에는 외부인이 많아. 협회의 전신이 UN 초상 관리 기구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그래서 대놓고 움직이진 않을 거야.”

“…….”

각성자협회의 협회장이 저렇게 말을 하니까 굉장히 언밸런스하다.

박태오는 루시의 시선을 무시하곤 집무실 내부를 훑어보았다.

“참고로 이 집무실에는 어떤 도청 장치나 몰래카메라도 없어. 원래 있었는데 그쪽의 마력 때문인지 첫날부터 제대로 작동을 안 하더군?”

“?!”

이어지는 박태오의 말에 루시는 미간을 구겼다.

저들이 자신과 시몬, 유리아를 의심하는 것은 잘 알았기에 충분히 추측은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말하다니.

‘솔직한 건가? 아니면 대놓고 무시하는 건가?’

살짝 헷갈렸다.

‘잠깐?!’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휴대폰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혹시…… 내 휴대폰에도 그런 짓을 했나? 내 숙소에도?”

루시는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을 느끼며 물었다. 목소리에 작게나마 떨림이 묻었다.

“물론이지.”

그녀의 물음에 박태오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쿵!

루시는 심장이 땅으로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그으…… 그으…… 내가 본 그걸 쟤들도?’

그걸 잘 알면서도 나를 의심했다는 건가?!

고오오오오!

루시는 당장이라도 눈앞의 박태오와 협회 본부를 얼려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이 또한 전부 먹통이더군. 김시오와 문유리한테서는 이상 없던 것들이, 태루시, 너의 마력 앞에서는 게이트 속 전자 기기처럼 먹통이 돼. 아스카가 직접 만든 초상 장비였는데 말이야.”

“……!!”

루시의 파괴 본능이 박태오의 이어지는 아쉬움 가득한 말 덕분에 확! 하고 가라앉았다.

“어쨌든 우리 둘은 최대한 은밀히 움직일 것이다. 도청이 먹통이 되었다고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전부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

방금 큰일이 날 뻔했다는 사실은 아는지 모르는지, 박태오는 할 말을 마저 했다.

“내 비서와 그쪽의 매니저도 이 일에서 빠질 거야. 정보의 유출은 둘째치고 너무 위험해.”

“후우.”

루시는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협조하지.”

제일 큰 위기를 넘겨서 그런지 그 뒤의 얘기는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 정보는 어디서 얻은 거지? 놈들의 함정일 수도 있지 않나?”

심호흡을 마친 그녀는 박태오에게 이 첩보에 대한 의구심을 말했다.

협회 내의 스파이를 고려하면 합리적인 의심이다.

“정보의 출처는 걱정 안 해도 돼. 이건 아스카가 직접 구한 정보니까.”

“성녀가?”

“그 애는 보기와 달리 초상연구 쪽에 재능이 있거든. 치료계 각성자이기 이전에 뛰어난 초상과학자기도 하지.”

박태오는 말을 이었다.

“초상과학자들은 자신들만의 별도 커뮤니티가 있어. 아주 폐쇄적이지.”

‘초상과학자들의 커뮤니티라. 마녀회나 마탑 같은 건가?’

루시는 고향 세계의 마탑이나 마녀회 같은 모임으로 이해했다.

‘그러고 보니 솔라를 지구로 귀환시키는 데 그 살모사가 큰 도움을 줬다고 했었지?’

“…….”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도저히 정이 안 가는 여자였다.

“그 커뮤니티 안에는 협회부터 정부, 기업, 심지어 레드문의 매드 사이언티스트까지, 별별 초상학자들이 모이나 봐.”

루시는 박태오의 설명을 경청했다.

“아스카는 그곳에 떠도는 정보 조각을 수집해서 퍼즐을 맞췄다고 해.”

박태오의 설명이 다 끝났다.

“…….”

루시는 미간을 살짝 구긴 상태로 눈앞의 협회장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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