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80화 (180/212)

제180화

#180.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동.

제주초상해양기지(옛 제주해군기지).

초상이라는 글자가 붙은 곳치고 협회의 입김이 안 들어간 곳은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옛 제주해군기지에서 출발한 제주초상해양기지는 대한민국에서 협회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매우 드문 곳이었다.

오직 해군과 다국적 기업들의 자본만으로 운용되는 기지.

주로 바다 괴수와 해양 게이트, 심해의 마경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된 이 기지는 협회 본부 못지않게 경비가 삼엄했다.

그 해양 기지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파아아앗.

마력장과 함께 공간 이동 마법진이 파도 위에 생성되었고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웃차! 하마터면 물에 빠질 뻔했군.”

박태오는 바닷물에 닿았던 구두 끝을 급히 떼면서 상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의 등에는 비행을 가능케 해 주는 초상 장비가 배낭처럼 달려 있었다.

“…….”

루시는 상공에 부유한 상태로 팔짱을 끼고 그런 협회장을 볼 뿐이다.

“자아, 받아. 아스카가 준비한 변신 도구와 신분증이야.”

그런 루시를 향해 박태오가 무언가를 건넸다.

루시는 말없이 박태오가 건넨 신분증과 변장 도구를 챙겼다.

스으으으.

변신 도구를 작동하자마자, 변신 마법을 사용한 것처럼 루시의 몸이 신분증에 있는 여자 연구원과 똑같이 변했다.

박태오 또한 커다란 덩치가 줄더니 병약한 인상의 남자 연구원으로 외모가 변했다.

이제 이 상태로 최대한 낮게 날아서 기지로 들어가면 된다.

“협회장, 내게 할 말이라도 있나?”

기지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려던 루시가 출발하려다 말고 박태오에게 물었다.

그녀가 변신에 임한 순간부터 박태오의 눈빛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건 또 정상 작동하는군? 도청이랑 감시 장치는 먹통이더만.”

연구원으로 변신한 루시를 박태오가 노골적인 의심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

루시와 박태오가 말도 없이 서로를 노려본다.

바다 위에서 뜬금없는 대치가 이뤄졌다.

‘뭐 어쩌라는 거야? 진짜 한판 붙어야 하나? 솔라의 소중한 전우라고 해서 봐줬더니! 기어오르는 것도 정도가 있지.’

루시는 인내의 한계를 콕콕 찌르는 박태오의 태도에 성질이 뻗쳤다.

자신과 시몬, 유리아에게 감시를 붙여 둔 것만 해도 불쾌한데 이젠 하다 하다 대놓고 의심마저 한다. 마치 제발 좀 싸우자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솔라와의 인연 때문에 참고 또 참았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눈앞의 남자는 더욱 무례하게 굴었다.

‘오냐! 마침 장소도 좋겠다. 이 기회에 반병신을 만들자. 나중에 솔라한테 잘못했다고 빌면 용서해 주겠지?’

죽이지만 않으면 돼, 죽이지만.

고오오오.

생각을 마친 루시는 설원의 권능을 일으키려 했다.

눈앞의 박태오란 남자는 꽤 강한 자였지만, 그래 봤자 지구인. 솔직히 시몬이나 유리아보다도 약할 것 같았다.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닐 테니.”

그런 유리아의 기세를 느낀 것일까? 아니면 원래 저런 성격인 것일까?

“어서 가지. 기지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군.”

박태오는 갑자기 어깨를 으쓱이더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둔다.

“아니, 난 중요해. 네놈의 태도! 이 기회에 제대로 바로잡아 주마.”

그러나 루시는 박태오처럼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고오오오오.

설원의 권능이 주위의 공기를 급격히 낮췄고, 아래의 넘실거리던 바다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

루시의 진심을 눈치챈 박태오가 표정을 굳힌다.

흐읍!

박태오는 급히 자신의 강화 이능을 펼쳤고 매서운 냉기에 저항했다.

“이봐! 태루시!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

그리고 급히 루시를 향해 외쳤다.

“일단 저기를 봐!”

박태오는 루시의 냉기를 온몸으로 받아 내면서 어딘가를 가리켰다.

“?!”

마지막으로 들어주는 셈 치고 박태오가 가리킨 곳에 시력을 집중한 루시는 눈을 크게 떴다.

“저게 뭐야?”

루시가 멍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늦은 건가?”

박태오는 표정을 굳혔다.

스스스슷.

바다 위에 펼쳤던 설원의 권능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

목적지인 제주초상해양기지에서 거대한, 아주 거대한 마기가 감지되었다.

제주도 해양 기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매우 강력했다.

마력 탐지 드론은 물론이고, 대형 게이트를 예보하는 지구 궤도의 초상 위성에서도 감지되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이를 최대한 숨겼다.

협회에서 움직이려 했으나, 몇몇 협회 간부들에 의해 중간에서 컷 당했다. 하필 협회장과 성녀가 협회 본부에 없었던 것이 이를 가능케 했다.

하지만 그렇게 숨기고 지연시킨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이미 박태오와 루시는 현장에 있었으니까.

“마치 폭주 중인 것 같군.”

해양 기지에 도착하자마자 박태오가 말했다.

“…….”

뒤를 이어 지상에 착륙한 루시가 눈앞의 기지를 조용히 노려보았다.

“기지에 있는 사람들도 당황하고 있어.”

“공습경보 한 번을 울리지 않는군. 어떻게든 기밀로 숨기겠다는 건가?”

기지는 사이렌 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정신없어 보였다.

기지를 경비하는 해군과 해병대 그리고 국군의 초상부대가 경황없이 뛰어다녔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졌는데도 전화기가 이토록 조용하다니. 하! 마용민 사무국장의 짓이겠지? UN의 끄나풀인 것은 알았지만 이젠 대놓고 수작이라니.”

기지를 살피던 박태오는 이어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보면서 조소를 지었다.

‘소영이가 있었다면 달랐을까? 정치랑 경영은 그 아이가 잘했었는데.’

조소로 휘었던 입가가 씁쓸함에 내려앉았다.

“…….”

죽은 동생이 떠오르자, 자연스레 옆에 있는 여자에게 시선이 갔다.

“왜 또 그런 눈빛이지? 여기서 싸우자는 건가?”

변장 마법으로 표독스러운 인상의 여성 연구원이 된 루시는 박태오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가지.”

박태오는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을 애써 억누르며 루시에게 손짓했다.

“앞장서도록.”

루시는 박태오의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턱짓으로 대꾸했다.

“덕분에 기지로 들어가는 것은 쉽겠어.”

그런 루시의 반응에 박태오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곧바로 기지 정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정지! 정지!”

경황없는 와중에도 정문의 헌병들이 그런 박태오와 루시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05시설 연구원입니다! 안에 일어난 일 때문에 급히 들어가야 하니까 어서 문 열어요!”

이에, 박태오는 달리면서 자신의 신분증을 정문의 헌병에게 흔들면서 외쳤다.

“김 해병님! 어떻게 합니까?!”

“몰, 몰라. 당직사관님, 무전도 안 받으셔!”

총구를 겨누던 헌병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동공을 이리저리 굴렸다.

“에이, 씨X! 모르겠다. 통, 통과!”

결국 겨눴던 총구를 내리고는 통과를 외쳤다.

그렇게 기지 정문을 당당히 통과한 이후에도.

“급하니까 어서 05시설로 안내하세요! 조금이라도 늦으면 여기 지하에서 게이트가 열린다고!”

박태오는 처음과 비슷한 말을 외치며 신분증을 내밀며 뛰었다.

“…….”

어느덧 루시 또한 말없이 자신의 신분증을 내밀면서 박태오와 함께 달렸다.

“통과!”

“에라, 모르겠다! 통과!”

“야! 상황이 이런데 무슨 명단 확인을 해?! 어서 통과시켜! 급해!”

“통과, 통과!”

지금의 상황과 박태오의 외침이 효과가 있었는지, 두 사람은 어떤 검문도 받지 않고 기지 지하 연구실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인간은 뭔가 꺼림칙한 거나, 반대로 소중한 게 있으면 땅속에 숨기려는 본능이 있다.

초상해양기지 아래에 있는 것은 둘 다일 것이다. 소중하면서도 꺼림칙한 것이 보관된 장소.

고오오오오오!!

“통제가 안 됩니다!”

“게이트! 게이트가 열린다아!!”

지하 깊숙이 위치한 05연구실은 공포와 혼란 그 자체였다.

“다 틀렸어. 방법이 없어!”

“도, 도망쳐! 어서!”

“여기서 죽기 싫다고!”

“저건 통제 못 합니다! 당장 대피를…….”

유일하게 지상으로 이어진 엘리베이터로 연구실의 초상과학자들이 몰려들었다.

“연구원들이 도망칩니다!”

“도망?! 이 미친 것들이! 도망을 치려거든 저것부터 닫고서 치라고 그래!”

“막아!”

“안 돼! 제발 내보내 줘!”

“이거 해결하기 전에는 누구도 엘리베이터 못 타! 못 탄다고!”

연구실을 경비하는 초상부대의 헌터들이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연구원들을 막는다.

띠잉.

그러던 중 지상과 연결된 유일한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가동하기 시작했다.

“야이, 씨! 누가 엘리베이터 눌렀어!”

이를 본 한 장교가 험악하게 외쳤다.

“저희가 누른 게 아닙니다!”

“지상에서 지하로 누군가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쪽에 있던 병사들이 억울하다는 듯 답한다.

“도대체 누가?!”

“지원군인가?”

“제발 협회의 집행관이었으면!”

“집행관은 얼어 죽을……. 협회 입김 피한다고 했던 짓거리 생각하면 퍽이나 오겠다.”

“제발 내보내 줘어…… 제발!”

헌병과 초상부대의 헌터들, 그리고 내보내 달라고 아우성치는 연구원들이 각자의 바람을 외치면서 엘리베이터의 LCD를 바라보았다. LCD의 숫자가 점점 지하 깊숙이 내려오고 있었다.

한편, 연구실 중심부에선 초상부대의 지휘관과 이 시설의 책임자인 연구소장이 망연자실 서 있었다.

“게이트 타입이라도 말하라고요! 구미희 박사님!”

그러다가 초조함과 절박함에 못 이긴 초상부대 지휘관이 연구소장을 향해 윽박지른다.

“나도 몰라, 이진호 중령. 이건 처음 관측된 게이트야, 마력 파동도 이런 유형은 처음이고. 마치 12차원의 모든 마나가 정밀한 시계 부품처럼 얽혀 굴러가는…….”

중년의 나이임에도 젊었을 적 미모가 짙게 남아 있는 여성이 무테안경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그녀는 연구실의 상황 모니터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등급, 등급이 정말 S급입니까? 진짜 S급이면 지금이라도 전국에 경보를 내려야 합니다! 지금 여기 있는 초상 전력으로는 절대 못 막습니다!”

“마력 자체로만 보면 S급을 능가해. 어쩌면 SS급일지도 몰라.”

“……맙소사.”

구미희 박사의 말에 이진호 중령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지원 요청은 하지 않았나?”

지휘관의 말에 연구소장이 되물었다.

“위에선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최대한 버티라고만 합니다. 지원도 뭐도 명확한 얘기가 없고요.”

중령은 쓰고 있던 군모를 벗어 던지며 답했다.

“협회, 협회에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연구실에 협회와 연결된 핫라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이라도 났는지 경기를 일으키듯 외쳤다.

“협회가 과연 도와줄까? 차라리 레드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어때? 요즘 사이가 돈독한 것 같던데?”

이에, 구미희는 냉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명백히 비꼬는 말투였다.

“그래도 일단 요청이라도 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연구소장님.”

하지만 이진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실은, 이미 협회와 연결된 핫라인을 통해 상황을 알렸어. 하지만 거기서도 일단 버티라고 하더군?”

“그, 그게 무슨?!”

“왜냐면 이 핫라인은 마용민 사무국장과 연결된 것이거든.”

“!!”

구미희는 그런 지휘관의 희망을 완전히 부쉈다.

마용민 사무국장이라면 정부에서 협회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임명한 인사였다.

“그럴 수가!”

군문에 있는 이진호도 그 정도는 알았다.

“…….”

막막함에 잠시 말이 없던 중령은 뭔가 결심이라도 했는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다 저 투명한 알 때문입니다! 마인 놈들이 가져왔을 때부터 불길했었는데!”

눈이 반쯤 돌아 버린 현장 지휘관은 책임의 소재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바로 구미희 박사 바로 옆에 있는 무언가에.

성인 몸통만 한 투명한 구체가 그곳에 있었다.

고오오오

투명한 구체를 본 이진호는 뭔가에 홀린 듯 초점 없는 눈을 했다.

“일단 부수겠습니다! 이걸 부수면 어떻게든 답이 나오겠지요.”

이윽고 그는 악을 쓰면서 자신의 초상 무기를 꺼냈다.

그리곤 곧장 투명한 구체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흐아아압!”

들고 있던 자신의 도끼를 치켜들었다.

“지금 뭐 하는?!”

이를 본 박사가 눈을 부릅뜨고서 외쳤다. 하지만 E급 각성자에 불과한 그녀가 A급 각성자인 초상부대 지휘관을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이윽고 중령의 도끼와 투명한 구체가 부딪쳤다.

콰아아악!!

첫 번째 도끼질이 큰 소음과 충격파와 함께 휘몰아쳤다.

하지만 충격파 외에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멈춰어-!”

구미희의 비명 어린 만류를 배경음 삼아 두 번째 도끼질이 곧바로 이어졌다.

-------!!

이번엔 소리로 표현하기 힘든 충격파와 충격음이 지하 전체에 메아리치듯 퍼졌다. 지하 공간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크게 울렸다.

띠잉!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막 도착을 알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