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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87화 (187/212)

제187화

#187.

게이트에서 나온 남자를 본 유리아는 경악을 담아 외쳤다.

“솔라시우스 전하?!”

본능적인 외침 덕분에 어둠과 하나가 된 은신은 무용지물.

“……?”

유리아의 목소리를 들은 금발의 남자는 그녀가 숨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자의 시선은 무너진 건물의 그림자 속을 정확히 향했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푸른색?’

시선이 교차하면서 유리아는 남자의 눈동자 색을 유심히 보았다.

얼굴과 분위기 머리 색은 분명 그분을 닮았다.

하지만 눈동자 색은 달랐다.

그 외에 눈매라든가 귀의 모양 등등 기억 속의 남자와 차이가 있다.

‘달라, 그분이 아니야.’

자세히 보니 솔라시우스와 다른 점들이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을 잘못 보았습니다.”

남자가 솔라시우스가 아님을 확인한 유리아는 뒤늦게 사과했다.

‘닮았지만 아니야. 로안, 솔라시우스 전하는 금발 금안이시니까.’

눈앞의 남성은 금발이었지만 눈동자는 푸른색이었다. 푸른 눈에서는 사파이어 빛이 났다.

‘마치 루시푸르네 폐하의 눈동자 같군.’

그 푸른 사파이어 눈동자가 마치 루시푸르네와 닮았다고 유리아는 생각했다.

‘나이도 좀 더 어려 보이고.’

그녀의 기억에 있는 솔라시우스는 20대 초중반. 저 남성은 아무리 봐도 10대 후반이었다.

“…….”

유리아는 게이트에서 나온 남자를 관찰하면서도 여전히 경계 태세를 유지했다.

언제든 싸울 준비를 함과 별개로 그녀의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눈앞의 남자가 적이 아니길 바라고 또 바랐다.

‘부디 싸우지 않았으면.’

연모하는 이와 닮은 남성이었기에, 그녀는 특히나 싸우고 싶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너는 누구지?”

처음으로 남자의 입이 열렸다.

‘높은 제국어?!’

그리고 그 남자의 입에서 나온 언어에 유리아는 다시 한번 놀랐다.

“누군데 아바마마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지?”

“??”

하지만 유리아에겐 아직 더 놀라야 할 것들이 수두룩했다.

“그리고 뭐? 전하라고? 태양 제국의 태양 대제께 전하라니. 여기가 다른 차원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신성모독으로 처벌받았을 거야.”

“!!”

이어지는 남자의 말에 유리아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어…… 그, 그러니까…… 솔라시우스 전…… 폐하의 아드님이라고요?”

유리아는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짜내면서 물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질문하는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의 스무고개로 어지러웠다.

‘평행 차원 같은 건가?’

그러다가 지구에 와서 접한 차원 개념이 떠올랐다.

‘눈동자를 보니 역시 루시푸르네 폐하와 이어지시는구나! 다른 차원에서도 똑같이…….’

충격에 이은 씁쓸함과 체념이 밀려온다.

‘그런데 딸이 아니라 아들? 그럼 루한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한편으론 괜한 궁금증도 피어났다.

“그렇다. 내 이름은 솔로안, 태양 제국의 황태자이자, 태양 대제의 적장자니라.”

유리아의 질문에 솔로안은 퉁명스럽지만 나름 성의껏 대답을 해 줬다.

“이곳에 평행 세계의 아바마마가 계시는 건가? 전하라는 호칭을 보아하니, 아직 암흑제국을 멸하지 못하셨나 보군?”

유리아와 마찬가지로 눈앞의 황태자 또한 이 세계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는 모양.

“어, 그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계시긴 계시는데…….”

솔로안의 질문에 유리아는 설명을 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으으으으, 그러니까…… 지구에 계셨는데 루한에 갔다가 다시 여기로 오셨다가 지금은 태평양으로…….”

부족한 그녀의 말주변으론 태광휘와 솔라시우스의 서사를 짧게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

당연하지만 유리아의 설명을 솔로안은 알아듣지 못했다.

“뭐, 평행 차원이면 그럴 만하다. 충분히 이해했다.”

다행히도 솔로안은 자세히 알려 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 세계의 아바마마를 도와 악황제를 척살하고 싶다만,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게 있어서.”

유리아가 있는 그늘에 시선을 고정한 솔로안의 표정에는 다급함이 엿보였다.

“평행 차원의 여기사여, 본인은 사람을 찾고 있다.”

솔로안은 제일 급한 부분부터 유리아에게 물었다.

“혹시 내 쌍둥이 누이를 못 봤나? 어마마마를 닮은 청은발에 아바마마를 닮은 금안을 한 여성이다. 레이디답지 않은 짧은 단발을 했고 본인과 마찬가지로 기사 제복을 입었을 거야.”

“싸, 쌍둥이 말입니까? 못…… 못 봤습니다.”

솔로안의 질문은 당연히 유리아가 알 리가 없는 질문이었다.

“도움이 못 돼서 죄송합니다, 전하.”

그녀는 괜히 솔로안에게 위축되어 사과까지 했다.

‘쌍둥이, 쌍둥이였구나! 역시 솔라시우스 님과 루시푸르네 님이야. 딸 하나만 낳는 루한의 오랜 전례마저도 깨 버리시다니!’

한편으론 의도치 않게 궁금증이 해소된 유리아였다.

“으음…… 이 차원의 아바마마는 아직 어마마마와 만나지 않으신 건가?”

반면, 유리아의 반응을 본 솔로안은 괜히 심각해진 얼굴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애초에 여긴 우리가 살던 세계와 건물 양식부터가 다르군. 전쟁 중인 것은 알겠다만.”

그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보았다.

“……?”

주위를 살피던 솔로안의 시선이 도시의 서쪽 끝과 동쪽 끝에 잠시 머물렀다.

“그러고 보니, 그대는 언제까지 그림자에 숨어 있을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 건물 아래에 서 있는 유리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심지어 나만 내 이름과 신분을 말했어. 본래라면 반대여야 하는데.”

솔로안의 얼굴에 살짝 불만족스러운 감정이 서렸다.

“어서 나와서 얼굴을 보여라! 그대의 신원을 소개하라. 아무리 다른 차원이라도 기본적인 예절마저 다를 수는 없어.”

그는 유리아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제 소개가 늦었군요. 무례를 용서하시길.”

꿀꺽.

유리아는 괜히 침을 삼키고는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걸을수록 그녀의 몸이 솔로안이 내뿜은 헤일로의 영향에 닿았고, 새벽에 잠긴 도시, 늘어진 건물 그림자에서 유리아의 분홍색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빛을 찾았다.

“저는 루한 왕국의 유리아 폰 문라이트, 문라이트 변경백의 장녀입니다.”

유리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

그녀가 그늘에서 나오며 자기소개를 하자, 이번엔 솔로안의 얼굴에 놀람이 번졌다.

“스, 스승님?!”

그리고 유리아가 전혀 예상치 못한 단어를 뱉었다.

“??”

솔로안의 입에서 나온 ‘스승님’이라는 단어에 긴장된 얼굴로 자기소개를 하던 유리아 또한 당황한다.

“어쩐지 목소리부터 낯이 익다 싶더니…… 평행 차원의 스승님이셨군요!”

솔로안은 유리아를 아는 모양이다. 정확히는 그의 차원에 있던 유리아를.

“전하의 세계에서는 제가 스승을 하고 있습니까?”

유리아는 솔로안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궁에서 저와 누이에게 기사도를 알려 주셨지요.”

솔로안의 말투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공손함과 친근함이 그의 높은 제국어 억양에 물씬 풍겼다.

“저, 저따위가 황실 스승이라…… 이렇게 영광스러울 수가!”

뜻밖의 사실에 유리아의 얼굴에는 봄이 왔다.

‘그렇게 해서라도 솔라시우스 폐하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할 것 같아.’

충격과 혼란이 가득했던 심경에 평화와 설렘이 찾아왔다.

흥분이 담긴 유리아의 분홍색 눈동자가 솔로안에게 쏠렸다.

좀 더, 좀 더 알고 싶다. 솔로안이 왔다고 하는 차원에 대해서.

그 차원의 솔라시우스와 자신에 대해서.

“그런데 스승님?”

하지만 평화와 설렘도 잠시.

“예? 전하.”

“스승님에게서 사악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뱀피르 계열의 기운 같은데…….”

솔로안이 심각한 얼굴로 유리아를 쳐다보기 시작한다.

“설마…… 마족에게 영혼이라도 파신 겁니까? 기사도의 표본이신 당신이 어째서!”

유리아에게서 뒤늦게 발견한 알파의 기운.

처억.

이를 눈치챈 솔로안이 무기를 꺼내 든다.

기사 제복과 어울리지 않게, 솔로안의 무기는 황금색 스태프였다.

황금색 스태프의 끝에는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놓칠까 싶은 주먹만 한 투명한 구슬이 마석처럼 박혀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이건……!”

180도 바뀐 솔로안의 반응에 유리아는 당황한다.

‘솔로안 전하의 세계에서 나는 지하드에게 당하지 않은 건가?’

눈앞이 막 캄캄하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하지? 당장이라도 날 공격할 기세야!’

짧은 순간에 냉탕과 열탕을 오가는 기분이다.

“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셔야 할 겁니다. 저는 지금 매우 실망이 큽니다. 현재 당신의 상태는 제 스승님을 향한 모욕이기 때문입니다.”

“…….”

솔로안의 말이 이어질수록 유리아는 심장이 콕콕 찔리는 아픔을 느꼈다.

“저도 원해서 이런 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이 세계의 저는 지하드라는 흑마법사에게 마법 실험을 당했습니다. 그런 저를 구해 주신 분이 솔라시우스 폐하시고요!”

유리아는 눈시울을 붉히며 솔로안에게 하소연하듯 설명했다.

“…….”

솔로안은 그런 유리아에게 계속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일 뿐이다.

“맹세코 저는 이 힘을 나쁜 일에 쓰지 않았습니다!”

유리아는 이제 눈물까지 흘리며 입을 열었다. 괜한 억울함과 서러움이 몰려온다.

“으음.”

그런 유리아를 본 솔로안의 얼굴에 갈등과 고민이 어렸다.

키아아아아악!

그때였다. 가까이서 흉악한 괴성이 들렸다.

쿠구구구구구.

우오오오오!

키아아아악.

유리아와 솔로안이 있는 곳으로 다시 한번 마인들의 웨이브가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파치지직.

그것도 모자라 이번엔 근처 허공에 스파크와 함께 균열이 발생했다. 아까 솔로안이 나왔던 것과 유사한 크기들.

‘게이트?!’

소형 게이트 균열이 다섯 정도 생성되었다.

크기는 방문만 한 것이 셋, 집채만 한 것이 둘이었다.

“추격자들이 왔군.”

허공의 게이트를 본 솔로안이 미간을 구겼다.

우우웅.

그리고 유리아에게 향했던 스태프를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조준했다.

“……!”

전투가 다가온다.

구르르르르.

마지막 웨이브라도 되는지 어느 때보다 많은 마인들이 몰려온다.

유리아는 솔로안의 눈치를 보았다.

효율적인 전투를 위해선 알파의 이능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솔로안 옆이라 괜히 망설여졌다.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이내 눈을 질끈 감고는 혈기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파아아앗.

혈향이 가득한 안개가 피어났다.

붉은 운무가 솔로안이 있는 곳을 최대한 피해 퍼졌다.

[끄아아아악!]

크어어어어.

안개 속으로 달려든 마인들과 좀비들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생명력을 잃는다.

번쩍, 서걱, 서걱.

혈향의 운무 속에서 유리아의 검무가 펼쳐졌다.

“…….”

솔로안은 혈기사가 된 유리아를 말없이 보았다.

사악한 힘으로 사악한 것들과 싸우는 다른 차원의 스승.

그의 푸른 눈동자에 아까와 같은 적개심이 서서히 사라졌다.

솔로안은 유리아에게 향한 시선을 거두고는 허공의 다섯 차원 균열을 노려보았다.

유리아가 마인을 비롯한 잔챙이를 상대하는 동안.

파아아앗, 파앗.

이윽고 다섯 게이트가 열렸다.

[크아아아악!]

[쿠오오오오.]

그 안에서 고위 마족으로 추정되는 흑염의 존재가 튀어나왔다.

“좋아, 와라!”

솔로안은 자신을 쫓아온 다섯 마족을 노려보며 외치더니.

우우우우웅.

태양의 힘을 모아 펼쳤다.

어두운 밤하늘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

검무를 추던 유리아는 휘두르던 검도 잠시 멈추고는 멍하니 그 모습을 보았다.

참으로 그리운, 참으로 똑같은, 그분의 기운.

태양을 머금은 빛이 밤하늘을 밝힌다.

비록 검이 아닌, 마법에 가까운 방식이지만 본질은 아버지와 아들이나 같았다.

[빛이 있으라!]

이윽고 태양의 마도사의 언령이 영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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