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93화 (193/212)

제193화

#193.

본래에도 저출생으로 죽어 가던 나라였다.

그랬던 나라에 게이트가 터졌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지만 젊은 인구가 소중한 한국은 더욱 타격이 컸다.

대전쟁은 10년 동안 이어졌고, 처음 1~2년의 대혼란기 이후에는 대체로 소강상태였다.

각성자의 탄생, 그중 태광휘를 비롯한 영웅들의 활약으로 한국은 대전쟁에서 멸망을 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개문 초기에 너무나 많은 젊은이가 죽어 버렸다.

게이트 사태로 바닷길과 하늘길이 제한되었고, 세계적으로 싸우거나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필요했기에, 다른 나라에서도 자국민 이주를 철저히 막았다.

예전처럼 다문화니 외노자 같은 방법도 쓰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런 한국에 당시 북한의 붕괴는 축복이었다.

한국은 북한 난민들을 흡수했고, 노동력으로 요긴하게 써먹었다.

이마저도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몬스터가 아닌 인구 붕괴로 진즉에 망했을 것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론 자국민이 아이를 낳아야 했다.

법치와 민주주의가 반쯤 무너진 시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다산 정책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때의 정책은 태광휘가 마왕을 없앤 종전 후에도 독신세와 부모 월급, 여성 징병제로 이어졌다.

대전쟁 10년, 무수히 많은 집과 건물이 무너졌고, 배급제가 시작되었으며, 화폐 대신 물물교환이 이뤄지던 시기.

군인과 경찰이 혼자 사는 사람들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경으로 끌고 가던 시기.

노동 가치가 없는 노인들을 방치해 사회적으로 아사시키던 시기.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정자들은 흔히 말하는 헬조선식 방법으로 저출산을 극복했다.

모든 배급의 우선순위는 아이를 가진 부모였다.

아이를 기르고 있으면 적어도 군대로는 끌려가지 않았다.

군대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이 몬스터에게 죽어 나갔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눈을 바닥까지 낮춰서라도 가정을 이뤄야만 했다.

나이가 많아 자식을 낳을 수 없으면 고아가 된 아이라도 입양해서 키워야만 했다. 그래야만 강제 징집과 징용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배급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그 외 모든 정부 정책 분야에서도 아이가 있냐 없냐에 따라서 가산점과 우선권이 주어졌다.

대전쟁 중반 당시, 전쟁고아가 되어 도심을 떠돌던 어린 ‘구민주’는 이런 목적으로 한 골드미스 여성에게 입양되었다.

* * *

“오랜만이구나. 소식은 들었다. 꽤 좋은 직업을 얻었더구나?”

평택의 어느 카페, 구민주는 눈앞의 중년 여성을 보며 숨을 깊이 마셨다.

동경의 대상이자, 트라우마의 대상. 그런 사람과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보렴, 역시 애들은 놔둬도 알아서 잘 큰다니까?”

구미희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구민주를 훑어본다.

애정은 눈곱만큼도 없는, 그저 뻔뻔함과 무심함이 반반씩 담긴 시선이다.

“그나저나 이름은 여전히 내가 지어 준 이름으로 쓰는구나? 굳이 그 이름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내가 너에게 특별히 잘해 준 것도 아니고.”

알긴 아는구나. 구미희의 말에 민주는 오히려 씁쓸해졌다.

“아실지 모르지만 원래 이름은 기억 안 나요. 그리고 지금 이름이 저는 마음에 들고요.”

그녀는 유년기의 기억이 거의 없었다. 부모가 눈앞에서 몬스터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본 충격 때문이다.

그랬기에 구미희가 지어 준 이름, 옛 시절의 민주주의라는 의미를 담은 구민주라는 이름을 아직 잘 쓰고 있었다.

“그러니? 네가 만족한다면 상관없다만.”

민주의 대답에 구미희는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의 성까지 입양한 아이에게 주면 완전한 입양 조건이 갖춰진다. 당시에는 이것만으로도 배급권을 우선 지급해 줬었다.

그런 의도로 대충 지어 준 이름. 이를 만족해하는 옛 양녀를 보자 구미희는 알 수 없는 보람을 느꼈다.

“너는 참으로 기특한 아이였지. 전쟁고아로 자라서 그런가? 눈치도 빠르고 말도 잘 들었어. 손이 안 갔어.”

그녀는 모처럼의 감정을 담아 칭찬을 건넸다.

“…….”

하지만 구미희의 뜬금없는 칭찬에 민주의 얼굴은 오히려 어두워졌다.

“그렇게 좋게 봤으면서, 왜 성인이 되자마자 내쫓았나요?”라고 사납게 쏘아붙이고 싶었다.

구미희는 어린 민주를 늘 방치했다.

그녀의 직업은 초상 과학자. 거주 지역도 안전했고 배급도 풍족했다. 그녀가 민주를 입양한 것은 아이가 있어야만 연구 예산 배정에서 가산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구미희는 늘 연구 때문에 바빴고, 그녀는 입양한 아이에게 배급으로 온 의식주 정도만 공유했을 뿐이다.

구민주에겐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던 것에 비하면 이마저도 감지덕지긴 했다.

그러나 고아로 살아왔던 아이는 정에 굶주렸고, 한편으론 멋진 커리어 우먼인 구미희를 동경했었다.

구민주는 구미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녀를 따라 했다.

깔끔하고 정리 정돈이 철저한 그녀를 따라 매일 아침 이불을 갰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빨래와 청소도 열심히 했다.

공부도 열심히 해 천막 학교에서도 늘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다.

양모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렇게 노력했다.

하지만 구미희는 그런 구민주를 철저히 무시했다. 잘했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민주는 그럴수록 더욱 발악했다. 혹여 밉보여서 쫓겨날 것이 두려워 반항하거나 말썽을 일으킬 엄두는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필사적이었음에도, 구미희는 민주가 성인이 되자 바로 집에서 내보냈다.

“그…… 네가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집에서 내쫓은 것은 미안하게 생각해.”

구민주의 굳은 얼굴을 눈치챘는지 구미희는 갑자기 사과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나는 상황이 좋지 않았어. 비각성자인 네가 괜히 각성자들의 일에 휘말릴까 급히 내보냈던 거야.”

“…….”

지금 구미희가 한 말이 진심인지 변명인지, 민주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다만 괜히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무슨 일 때문인지 알 수 없나요? 저, 아시겠지만 집행관의 매니저가 되었어요. 이미 초상 세계에 발을 내밀었다고요.”

구민주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랬지. 어리석게도 말이야.”

그리고 그런 민주를 보며 구미희는 한숨을 쉬었다.

이어서 그녀는 상체를 민주에게 가까이하고는 귓속말로 짧게 말했다.

“레드문.”

“!!”

구미희의 귓속말에 민주는 흠칫 놀랐다. 한편으론 자신이 쓸모없어서 쫓겨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꼈다.

“혼자 왔지? 카페에 말이야. 태루시 집행관에겐 얘기 안 했고?”

민주를 향해 구미희는 속삭이듯 작게 물었다.

“…….”

민주는 점점 밀려오는 불길함을 억누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최소한의 의리를 지켰어. 하지만 너는 끝내 불로 뛰어들었지. 이건…… 나도 못 막아.”

구미희는 곧바로 정 없는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

“……예?”

“목숨까지 내버리면서 너를 지켜 줄 정도로…… 우리 사이가 달갑지는 않지?”

그 말을 끝으로.

-!

“?!”

민주는 시야가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의식을 잃었다.

* * *

같은 시각, 카페가 위치한 시내 상공.

‘저것들이 감히 내 시녀를!!’

루시는 자신의 시녀가 납치당하는 과정을 전부 목격했다.

그때 지하에서 본 여자와 민주가 만나 대화하는 것도 보았고, 그런 민주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것도 보았다.

이어서 마인으로 추정되는 사내 둘이 카페로 들어왔고 의식 잃은 민주를 둘러업고 승합차에 싣는 것도 실시간으로 보았다.

‘따라가 보자!’

당장이라도 저 마인들을 징벌하고 싶지만 일단 따라가기로 했다.

저 구미희라는 여자와 마인들을 쫓다 보면 차원 코어가 있는 이화초상연구소로 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몬과 유리아에게 얘기할까?’

그들을 쫓으면서 루시는 손에 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두 사람은 뉴 시카고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여러모로 성가신 상황에 놓인 것 같았다.

기자와 시위대가 시도 때도 없이 두 사람에게 다가와 시비를 터는 모양.

박태오나 아스카가 멀쩡했으면 협회의 힘으로 막았겠지만, 지금은 둘 다 병상에 누워 있었다. 현재 협회는 마용민 사무국장이라는 철저한 외부인이 지휘 중이었기에, 루시를 비롯한 유리아와 시몬은 제대로 된 협회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루시야 평소 행실(?) 때문에 아무도 다가오지 못했지만, 호구력이 뛰어난 둘은 아니었기에 지금도 일거수일투족이 피곤했다.

‘괜히 정보가 샐 수 있어.’

알 수 없는 이유로 도청과 관련된 초상 장치는 루시 앞에서 먹통이 되었다고 박태오가 말했다. 하지만 유리아와 시몬에겐 분명 감시가 붙었을 터.

‘박태오의 말대로라면 내 휴대폰은 안전해. 하지만 유리아와 시몬의 휴대폰은 아니지.’

괜히 레드문과 관련된 자들이 들었다가 차원 코어를 들고 내빼면 귀찮아진다.

‘일단 위치부터 확인하고 상황 봐서 지원 요청하자!’

그녀는 이내 들고 있던 휴대폰을 품에 넣었다.

그리고 홀로 자신의 시녀를 납치한 승합차를 쫓았다.

검은 승합차는 북쪽으로 이어진 고속도로를 쉬지 않고 달렸다.

옛 휴전선을 넘어 옛 북한 지역까지 달렸다.

* * *

옛 북한 개성시.

세계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재건이 한창인 도시.

공사 중인 건물 중 태반이 대공황으로 멈춰 있다.

다만 오늘도 일상을 시작하는 사람들 덕에 유령도시 느낌은 나지 않았다.

부우웅,

그런 도심 중앙 도로로 검은색 승합차가 질주한다.

제한 속도는 물론 신호마저 무시하고 질주했지만, 누구도 이 검은 승합차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개성시의 통일 경찰들이 이 승합차를 에스코트했다.

‘추적 마법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후우.’

루시는 미간을 찌푸리며 개성시의 상공을 내려다보았다.

저 자동차라는 것은 마차 따위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만약 그녀가 하늘 높이서 추격하지 않았다면 진즉에 놓쳤을 터.

‘내가 쫓아온다는 것을 눈치채진 않았겠지?’

사방에 마력 감지 드론이 열기구처럼 떠다닌다지만, 하늘 나는 사람 한 명을 콕 찍어서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녀는 기감을 펼쳐 주위를 살핀 후 개성시로 천천히 하강했다.

도시로 은밀히 하강하던 루시는 검은 승합차가 들어간 건물을 보았다.

‘저기가 그 이화초상연구소라는 곳인가?’

연구소처럼 보였는데, 이름은 딱히 없었다.

‘구미희라는 여자가 민주에게 접근하지 않았으면 찾기 힘들었을 거야.’

옛 북한 지역에 대한 자료는 아직 디지털화가 덜 되었고 이렇게 도심에 대놓고 있어도 이름이 정확히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타앗.

루시는 구민주가 납치된 건물 옥상에 착지했다.

서걱.

이어서 옥상의 잠긴 문을 윈테이라를 휘둘러 손쉽게 잘랐다.

문을 부순 후 계단을 타고 쭉쭉 내려갔다. 건물은 7층밖에 되지 않아서 금방 내려갈 수 있었다.

‘나를 협박하기 위해 민주를 납치한 것이겠지?’

루시는 민주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때 민주의 반응이 수상해서 몰래 추적 마법을 건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추적 마법을 따라 계단을 타고 한층 한층 이동했고, 어느덧 1층 로비에 도착했다.

그러나 민주의 신호는 1층까지 내려왔음에도 가까이 느껴지지 않았다.

‘또 지하야?’

아니나 다를까 또 지하다.

웅성, 웅성, 웅성.

건물 안.

1층 로비에 루시가 나타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모두가 루시를 보며 웅성거린다.

하지만 다들 멀찍이서 벌벌 떨며 웅성거릴 뿐 누구도 다가와 말을 걸지 않았다.

심지어 건물의 보안 요원들까지 겁먹은 모습.

빙하의 집행관 태루시의 악명이 로비 중심에서 풀풀 풍겼다.

“이봐.”

루시는 그들 중 가장 가까이 서 있는 보안 요원을 불렀다.

“네, 넵! 집행관님!”

재수 없게 지목당한 보안 요원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이라는 사실에 사색이 되었다.

“안내해.”

“어딜……?”

“이 건물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곳.”

“……!”

꿀꺽.

루시의 요구에 보안 요원은 대답도 못 하고 침을 삼켰다.

안내하면 레드문 간부들에게 살해당할 것 같고, 그렇다고 안내하지 않으면 팔다리 중 하나가 삭제될 것 같고.

이마와 등에서 식은땀 줄줄 흘리는 보안 요원의 모습은 그 누가 보아도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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