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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96화 (196/212)

제196화

#196.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루시푸르네.

“루시 님…… 폐하!”

유리아가 애타게 자신의 주군을 불렀지만, 도저히 깨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저벅, 저벅, 저벅.

그런 유리아를 철저히 무시한 채, 베아트리체와 구미희가 쓰러진 루시에게 접근했다.

“심장, 이제 저 심장만 있으면…….”

구미희의 흥분에 젖은 목소리가 들렸다.

쏴아아앗.

베아트리체가 얼음으로 된 예리한 송곳을 생성했다.

당장이라도 루시의 심장을 뽑을 기세.

쏴아아악.

이윽고 베아트리체의 얼음송곳이 루시의 심장을 향해 나아간다.

“안 돼!”

이를 본 유리아가 애절하게 외쳤다.

쫘아아아악!

하지만 빙하의 여제의 얼음송곳은 끝내 심장을 노리지 못했다.

루시의 가슴 바로 3센티미터 위에서 멈췄다.

꽈아아아악.

저편에서 날아온 촉수가 베아트리체의 팔과 얼음송곳을 꽉 붙잡고 있었다.

“……!”

베아트리체는 자신을 저지한 존재를 보더니 처음으로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어림없지요.”

시몬은 그런 베아트리체를 차갑게 뜬 눈으로 노려보았다.

“루시 님! 유리아 님!”

시몬 바로 옆에는 구민주가 찰싹 붙어 있었다.

공격이 저지당한 베아트리체가 신경질적인 몸짓으로 자신을 붙잡은 촉수를 당긴다.

하지만 시몬의 키메라 촉수는 질겼다.

쏴아아아.

결국 빙하의 여제의 냉기가 시몬에게 쏘아졌다.

시몬이 뻗은 키메라 촉수가 순식간에 얼어 부서진다.

“하하!”

시몬은 가볍게 웃더니 얼어 버린 촉수를 도마뱀 꼬리 자르듯 버렸다. 그리고 냅다 또 다른 촉수들을 생성해 휘둘렀다.

파아앗.

그러면서 본연의 힘 중 하나인 신성력도 펼쳤다.

키메라 마법과 신성력, 너무나 정반대인 이질적인 힘이 합쳐졌고 기괴한 퓨전 요리가 되어 베아트리체를 덮친다.

베아트리체는 괴식 같은 공격을 말없이 노려보다가.

“이노센티아!”

언령을 영창하여 이노센티아를 펼쳤다.

파아아앗!

“?!”

하지만 이노센티아는 키메라 성자 시몬에게 큰 효과를 주지 못했다.

“저에겐 효과가 없는 모양입니다?”

오히려 처음 쏘았던 냉기가 더 효과적인 것 같다.

파바박.

시몬은 베아트리체에게 더욱 가까이 접근했다.

가면 쓴 그녀와 차갑게 눈을 뜬 시몬의 얼굴이 30센티미터까지 좁혀졌다.

“왜요? 루시프가 없으니까 제힘을 발휘 못 하시나?”

“……!”

시몬의 말이 끝나자마자 베아트리체는 반박이라도 하듯 다시 냉기를 뿜어냈다.

파아아아, 번쩍!

동시에 그녀의 또 다른 힘, 어쩌면 본체이기도 한 빛의 힘이 터졌다.

시몬은 급히 촉수를 이용해 새총처럼 몸을 뒤로 당겨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새 인형을 잘도 구해 왔군요? 어디에 있던 아바타지? 완성된 세계수 쪽인가?”

거리를 벌린 그는 가까이서 확인한 베아트리체의 상태를 보곤 조소했다.

차갑게 뜬 그의 실눈이 유독 예리하게 느껴졌다.

시몬과 베아트리체는 서로를 향해 살의를 띄우느라 정신없었고, 그 와중에 루시의 심장을 노렸던 뾰족한 얼음송곳은 바닥에 떨어져 구르고 있었다.

덥석.

바닥에 떨어진 기다란 얼음송곳을 구미희가 주웠다.

“…….”

흰색 박사 가운과 새치가 자잘한 머리카락이 전투의 바람으로 휘날린다.

그녀는 루시와 시몬의 결투를 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바닥을 보았다.

그곳에는 죽은 사람처럼 잠들어 있는 태루시가 있었고, 좀 더 옆에는 어느새 의식을 잃고 잠든 문유리 집행관이 있었다.

“박, 박사님……!”

그리고 의식을 잃은 루시 바로 옆에는 한때 입양해서 키웠던 구민주라는 아이가 있었다.

“박사님이라…….”

민주가 우려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보자, 구미희의 눈에 옛 기억이 살며시 떠올랐다.

옛날 저 아이를 막 입양했을 때, 구미희는 아이더러 자신을 절대 엄마라 부르지 말라 했다.

그 말에 어린 구민주는 당돌하게 뭐라고 부르면 되냐고 물었고, 구미희는 뭐라고 부르고 싶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처음 민주의 대답은 ‘아주머니’였다.

짜악!

괜히 기분이 더러워져 뺨을 때렸다.

대전쟁을 겪은 아이라 그런지, 뺨을 맞았지만 울거나 충격을 받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어깨와 고개를 움츠리고는 고아답게 생존을 위해 머리를 굴릴 뿐이었다.

그리하여 그 아이가 10초 정도 고민하다가 두 번째로 한 말이 바로 ‘박사님’이었다.

구미희는 썩 괜찮다 싶었고, 그날 이후로 저 아이는 자신을 박사님이라 불렀다.

잠시 옛 기억을 떠올린 구미희는 그윽한 시선으로 구민주를 보았다.

“몸은 괜찮니? 아무리 흡수되었다고 해도 비각성자가 견딜 수 있는 파동은 아닐 텐데?”

그리고 사뭇 자상한 목소리로 건강에 대해 물었다.

“…….”

민주는 딱 봐도 현기증을 참는 것 같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물 뿐이다.

“이번 일이 끝나면 넌 실업자가 되겠지? 원하면 나와 함께 일하자꾸나. 옛정을 생각해서 월급은 나쁘지 않게 주마.”

이어서 구미희는 방해하지 말라는 듯한 의미로 한 가지 제안을 민주에게 던졌다.

비록 비각성자지만, 저 아이처럼 똘똘한 경우라면 자신의 매니저로 쓸 만할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 저어~기서 가만히 있으렴.”

파앗.

구미희는 만약을 대비해서 구민주를 향해 손을 펼쳤다.

손끝에서 초상 장비의 힘을 이용한 염력이 쏘아졌다.

그녀는 최하급의 비전투 계열 각성자지만 어쨌든 각성자다.

구민주가 제아무리 젊고 해병대를 나왔다고 해도 비각성자인 이상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꺄악!”

염력을 맞은 민주의 몸이 수 미터 뒤로 날아갔다.

민주를 파리 쫓아내듯 멀리 보낸 구미희는 다시 시선을 돌려 누워있는 루시를 보았다.

“이 심장만 있으면 모든 것을 알 수가 있다고 했지? 신이 되어 온 우주의 비밀을 알 수 있다고!”

과학자답게 진리를 향한 열망이 구미희에겐 가득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인생이자 목표였다.

“오라! 진리를 담은 심장이여!”

박사는 환희에 찬 눈으로 얼음송곳을 번쩍 들었다.

지금 그녀를 방해할 사람은 없다.

문유리 집행관은 눈앞의 태루시처럼 의식을 잃어 깨어날 기미가 없었고, 김시오는 저기 베아트리체와 정신없이 싸우고 있다.

어쩐 일로 베아트리체가 살짝 밀리는 것 같지만 사실상 막상막하.

즉, 이쪽에 신경을 쓸 여유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방금 자신이 펼친 염력에 밀려났던 구민주는 이들 중 제일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존재.

구미희는 인신 공양을 진행하는 아즈텍 사제의 기분으로 눈앞의 제물에 집중했다.

“아줌마!”

하지만 그때, 수 미터 뒤로 날아갔던 구민주가 구미희에게 달려들었다.

“아줌마! 멈춰! 루시 님한테 손대지 마!”

민주는 구미희의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 호칭을 연이어 뱉었다.

“감히!”

구미희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민주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한번 이능을 발현하기도 전에 젊은 구민주가 더 빨랐다.

퍼억.

민주는 구미희에게 몸통 박치기를 했고, 작은 체구인데도 어찌나 강한지 구미희는 쿵 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루시 님! 일어나세요, 루시 니임!”

구미희를 덮친 민주는 몸과 시선을 박사에게 고정한 상태로 애타게 루시를 불렀다.

“내가! 너를 못 죽일 줄 알고!”

넘어진 구미희는 바로 몸을 일으켜 역으로 민주를 제압했다.

늙고 최하급 비전투 계열이지만 각성자인 여성, 젊고 군대를 나왔지만 비각성자인 여성.

두 여자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때만큼은 구미희는 이능을 쓰지 않았다.

민주 또한 군에서 배운 격투술을 써먹지 않았다.

둘 다 감정적으로 욱해져서 기술을 쓸 이성이 없었기 때문.

그저 서로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손톱으로 할퀴고 깨무는 원초적인 몸싸움을 할 뿐이다.

하지만 점점 싸움에서 우세한 것은 구미희였다.

머리가 산발이 되고 화장이 지워지고 박사 가운과 오피스 복이 엉망이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이성이 점차 돌아왔다.

그 말인즉 섬세한 정신으로 이능을 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미희에게는 염력을 발생시켜 주는 호신용 초상 장비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파아악.

“끼아아악!”

구미희가 초상 장비로 이능을 펼치자 민주의 몸이 찰파닥, 바닥에 눌렸다. 그 모습이 마치 실험대에 놓인 개구리 같았다.

“이 은혜도 모르는 년이!”

퍼억, 퍼억, 퍼억.

“뭐? 아줌마? 이 기생충 같은 게!”

구미희는 염력으로 짓누른 민주를 향해 쉬지 않고 발길질을 했다.

“죽어! 죽어! 죽으라고!”

민주를 향한 구미희의 발길질과 표정에는 어떠한 옛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으으으으으…….”

구민주는 부러지고 부은 몸을 꿈틀거리며 신음을 흘렸고, 얼마간의 구타가 끝난 후.

“후우, 후우…….”

구미희는 거친 숨을 내쉬며 바닥에 잠시 떨어트렸던 베아트리체의 얼음송곳을 들었다.

“그냥 너도 죽자. 어차피 비각성자에겐 지옥 같은 세상 아니니? 그냥 죽고 다음 생에선 각성자로 다시 태어나자?”

그녀는 숨을 헐떡이는 민주의 가슴을 향해 송곳을 겨눴다.

퍼억!

하지만 구미희는 이번에도 송곳을 찌르지 못했다.

“아윽……!”

그녀의 뒤통수에서 굉장히 센 타격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또 어떤……!”

구미희는 윙윙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뒤를 보았다.

짜악!

그리고 이어지는 싸대기에 철퍼덕 쓰러지고 말았다.

청은발의 여인이 그렇게 쓰러진 구미희의 머리를 꾸욱 밟았다.

구미희가 쓰러지자 민주를 짓눌렀던 염력이 풀렸다.

“루…… 루시 님?”

염력이 풀리자 구민주는 간신히 고개를 돌릴 수 있었고, 눈덩이가 탱탱 부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 시력으로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야……!”

뿌연 시야지만, 딱 봐도 노기가 가득한 루시의 실루엣이 보였다.

“네가 뭔데 우리 애를 때려!”

시야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청력은 아직 멀쩡했기에 구민주는 루시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애! 우리 민주를! 내 시녀를! 왜 때리냐 말이다!”

퍽, 퍼억, 퍽!

“어딜 그따위 조잡한 마도구로 저항을 해?! 죽어! 죽어!”

구타에 의한 바닥의 진동이 민주의 귀와 몸에 절로 전달됐다.

하지만 민주에게는 루시의 발길질에 의한 진동보단 그녀가 외친 말이 더 깊게 와닿았다.

‘우리 애…… 우리 애라고 하셨어.’

루시의 입에서 나온 ‘우리 애’라는 말에 민주는 억눌렸던 감정이 터졌다.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소리 없이 끙끙 울었다.

“후우…….”

루시는 거친 숨을 진정시키며 발아래의 중년 여성을 내려다보았다.

먼저 쓰러진 구민주보다 더 심한 몰골의 산송장이 눈앞에 있었다.

숨이 붙어 있지만 지금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할 것 같은 모습.

‘그냥 죽여?’

루시는 자신의 손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놈의 차원 코어 때문에 지금 당장 설원의 힘을 쓰기가 어려웠다.

도대체 몸속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일단 진지하게 살펴봐야 했다.

설원의 권능을 쓰지 못하는 것과 별개로 루시는 기본적으로 마나를 다룰 줄 아는 마녀, 지구로 치면 최상급 각성자.

그래서 구미희 정도는 손쉽게 몸싸움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물론 그녀가 중간중간 초상 장비로 어설픈 저항을 하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설원의 힘을 쓰지 못할 뿐이지, 다른 보조 마법도 능숙히 쓸 수 있는 루시였다.

그렇게 루시는 구미희를 반병신으로 만들어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일단 살려 두자. 내 상태에 대해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

루시는 일단 이 여자를 살려 두기로 결정했다.

자신의 시녀를 아프게 한 여자다. 마음 같아선 당장 죽이고 싶지만, 물어볼 것이 많았기에 참았다.

저벅, 저벅, 저벅.

그때, 쓰러진 구미희의 머리를 밟고 있는 루시를 향해 누군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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