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화
#198.
시몬에게서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루시는 이내 그 느낌을 마음속 한구석으로 치웠다.
“여전히 의문이란 말이지. 지금 지구에 나와 시몬, 유리아와 싸워 이길 각성자가 있나?”
시몬의 설명이 끝났음에도 또 다른 의문이 여전히 루시에게 남았기 때문이다.
“저들은 유독 우리만 가지고 헐뜯고 있어.”
다른 집행관도 많음에도 루한에서 온 세 집행관만 콕 집어서 공격하는 이유.
“솔라는 그렇다 쳐도,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우리에게 이토록 적대적인 거지? 분명 제주도와 뉴시카고에서 우리의 힘을 간접적으로 알았을 텐데?”
세 사람의 힘을 모르지 않음에도 계속 선을 넘는 행위들.
“아마도 우리가 이방인이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루시의 의문에 시몬이 자신이 추측한 바를 추가로 말했다.
“이방인이라고?”
“협회에서 최대한 기밀로 붙였지만, 저희가 루한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것은 이 세계의 고위층이라면 대부분 압니다.”
시몬은 말을 이었다.
“우리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저들은 더욱 두려운 겁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언제 배신할지 모를 잠재적 침략자로 보일 테니까요.”
시몬의 말이 이어질수록 루시는 팔짱을 끼고 깊은 눈을 했다.
“어떻게든 우리에게 족쇄를 채우겠다는 수작으로 보입니다. 만약 반항하면 이참에 숙청할 생각일 테고요.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요.”
옆에 있던 유리아 또한 거기까진 생각 못 했는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두려운 겁니다. 그 두려움이 이성과 합리를 짓눌렀고요. 불쌍하게도…….”
말을 마치는 시몬의 목소리에는 약간이지만 측은지심이 담겼다.
“……이해했다.”
루시는 시몬의 말을 이해했다.
‘회귀 전의 내가 솔라를 보았을 때, 그때의 나와 지금의 지구가 비슷하구나.’
회귀 전, 솔라가 활약하면 활약할수록 루시는 불안했었다.
저 제국의 망명 황족이 언제 배신할지 모른다. 그의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불안했다. 그가 배신했을 때를 가정하면 그날은 악몽을 꾸었지.
‘그랬군. 그랬어……. 나는 저들을 욕할 처지가 못 됐어. 그저 인간성의 한계였을 뿐이야.’
지구인들의 행태와 자신의 과거가 겹쳐 보였다.
왠지 모를 동질감에 루시는 동족 혐오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솔라는 과연 누구의 편을 들까? 어쩌면…….’
태평양 게이트에서 돌아온 솔라가 과연 자신의 편을 들어 줄지가 갑자기 불확실해졌다.
지금까지 그이가 자신의 편을 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신은 이방인이고 솔라는 지구의 수호자다. 어쩌면…… 그녀의 믿음과 전혀 다르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
괜히 밀려오는 불안감에 루시는 거실을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태평양 게이트는 어때? 혹시 소식 들은 거 있어?”
루시는 태광휘가 들어간 태평양 게이트에 대한 근황이 궁금했다.
“그게 좀 이상합니다. 협회에서도 정부에서도 갑자기 태평양 게이트에 대한 자료 공개를 중지했습니다.”
“……!”
시몬의 말에 루시의 얼굴이 굳었다.
“인터넷은?”
그러고 보니 개성에서 돌아온 후로 태평양 게이트를 검색해 보지 않았다.
“인터넷도 마찬가집니다. 공식 발표로는 초상 위성의 교체 및 정비 때문이라는데…….”
“당장! 태평양 게이트로 가 보자.”
루시는 고민한 겨를도 없이 소파에서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유리아, 민주 양을 부탁합니다.”
이제는 세상의 눈치를 볼 이유도 필요도 없는 상황. 루시도 시몬도,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잠시 후, 시몬과 루시가 집 안에서 공간 이동을 감행했다.
* * *
태평양 중심부, 하와이에서 남동쪽으로 약 1,000킬로미터에 위치한 공해상.
태평양 게이트는 호주 대륙의 절반 크기인 게이트다. 이쯤까지 왔으면 안 보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검푸른 바다는 드넓었고 고요했다. 하늘은 청명했다. 게이트는 보이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시몬과 함께 하늘을 부유 중인 루시는 눈을 부릅뜨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을 씻고 비벼도 거대한 게이트는 보이지 않았다.
“솔라시우스…….”
이어서 왼손에 낀 태양샘 반지를 보았다.
이 반지를 다시 꼈을 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을 때, 그때 바로 이곳에 왔어야만 했다.
후회가 밀려온다. 협회를 믿는 게 아니었다.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해야 했다.
“저들은 인류의 영웅 태광휘와 헌터들이 태평양 게이트와 함께 산화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제야 저들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그들은 태광휘가 돌아오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협회를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가 지금까지 추론했던 모든 게…… 전부 부질없어졌습니다.”
허무할 정도로 맑은 바다 위 하늘을 보며 시몬이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태평양 게이트가 사라진 것은 아마도 제주도와 시카고 사태 직후인 듯싶습니다. 그럼에도 저희에게는 끝까지 숨겼군요. 거짓 자료를 주면서까지.”
“…….”
루시는 시몬의 말을 한 귀로 들으며 멍하니 태양샘 반지를 보았다.
그녀는 한참을 그렇게 힘없이 있었다.
“……솔라는 죽지 않았어. 그이는 반드시 돌아올 거야!”
그러다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물론입니다. 그렇게 허망하게 가실 분이 아닙니다.”
옆에 있던 시몬이 루시의 말에 바로 호응했다.
어찌 되었든, 현재 태광휘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흔들리는 정신으로 집에 돌아온 루시는 이후의 방향을 고민해야 했다.
“일단 그 국정감사인가에 가지.”
“괜찮으시겠습니까?”
루시의 결정에 시몬과 유리아가 걱정 어린 눈으로 물었다.
“솔라가 올 때까지, 또 나와 유리아가 힘을 되찾을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해.”
시몬의 우려에 그녀는 결심이 굳은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힘을 되찾거나, 또는 솔라가 돌아오면…… 전부 쓸어 버리겠어.”
일단은 놈들이 원하는 대로 춤을 춰 줄 생각이다. 최대한 시간을 벌면서 그녀 앞에 있는 깨달음의 벽을 깨야 한다. 어쩌면 그 전에 솔라가 올 수도 있다.
지금 그녀와 시몬, 유리아에게 필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시간이다.
“유리아 경은 여기서 민주를 보살피고 있어 줘. 국감장에는 나와 시몬이 갔다 올 테니.”
이번에도 루시는 시몬과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 * *
대한민국 서울 국회의사당, 협회 집행관의 면책특권에 대한 국정감사장.
이건 분명하다.
저들은 루시와 유리아가 지금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말을 해 보세요, 말을! 이 학살자들아! 집행관이면 다야?! 다냐고!!”
그러지 않고서는 저렇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짖지 못한다.
“…….”
루시는 밀려오는 모욕감과 분노에 인상을 썼다.
“표정 관리 안 하세요, 태루시 집행관! 당신은 지금 잘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마인을 때려잡겠다고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죄! 국군 장병들을 죽인 죄! 이것은 집행관의 면책특권으로도 결코 면죄받을 수 없습니다!”
저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라는 작자를 시작으로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루시와 시몬을 게걸스럽게 헐뜯는다.
마왕 세피로스가 여기 국감장에 와도 이 정도는 아닐 터.
“아이고! 우리 딸 살려내라, 나쁜 것들아!”
“우리 애가 뭘 잘못했다고 그리 처참하게 죽이셨습니까?! 왜에!!”
이어서 제주 사태 유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와서 엉엉 우는 모습까지 그대로 방송을 탔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
루시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이 자리에 섰다. 하지만 태어나서 이런 모욕은 처음 겪기에 도저히 표정 관리가 안 됐다.
“…….”
옆에 함께 선 시몬 또한 평소의 온화한 실눈을 버린 지 오래다.
국감장에서 시몬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하지만 심기가 불편한 것이 대놓고 선글라스 밖으로 풍겼다.
“김시오 집행관은 발만 변형계 각성자지, 실상은 몬스터와 다를 게 없어요! 저런 괴물이 시민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위험합니다! 당장 어디 지하 시설에 가둬야 해요!”
고오오오.
시몬은 차갑게 뜬 눈으로 자신에게 괴물이라며 손가락질해 대는 국회의원을 노려보았다.
하이에나처럼 루시와 시몬을 헐뜯는 정치인들의 눈에는 욕망과 희열이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재선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환희가 그곳에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터질 듯 말 듯하던 두 사람의 인내의 심지에 기어코 불이 붙는 일이 발생했다.
“협회에서는 세 집행관의 학살과 인명 경시 행위에 깊은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또! 현재 공석인 협회장과 부협회장을 대신하여, 저 마용민 사무국장이 진심 어린 사죄를 세계 시민 여러분께 전하는 바입니다.”
함께 국감장에 참석한 협회 사무국장 마용민의 발언이 그 시작이었다.
“저와 협회의 사죄와 반성만으론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안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마용민은 아주 잘 압니다.”
뒤룩뒤룩 살이 찌고 눈과 입매에 욕심과 성질이 가득한 마용민 협회 사무국장의 사죄는 두 집행관의 표정과 마찬가지로 딱히 진정성 있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협회는 다신 이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안을 제시하는 바입니다.”
마용민은 잔뜩 표정을 구기고 있는 루시와 시몬을 노려보며 손짓했고, 그의 손짓에 협회 직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뭔가를 그에게 건넸다.
“이것은! 이번에 협회에서 개발한 구속구입니다.”
그의 손에 개 목걸이처럼 생긴 초상 장비가 쥐어져 있었다. 그 목걸이 중앙에는 큼지막한 마석이 박혀 있었고, 그 마석에는 이노센티아와 똑 닮은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저는 이 자리에서 협회 사무국장의 이름으로 두 집행관에게 명합니다.”
마용민이 손에 쥔 목걸이의 용도를 다들 짐작한 모양인지, 시장통 같았던 국감장이 급조용해졌다.
“두 집행관께서 앞선 참사들에 대해 일말의 책임과 반성이 있다면! 지금 당장 이 구속구를 목에 착용하십시오!”
모두의 시선이 루시와 시몬에게 집중되었고, 카메라를 통해서도 전 세계인의 이목이 쏠렸다.
“거절한다면?”
그리고 루시는 마용민을 죽일 듯 노려보면서 차갑게 대꾸했다.
“참나!”
“일말의 반성도 없군.”
“당장 헌터들을 동원해서 저 둘을 체포해야 합니다!”
그러자 국감장 곳곳에서 탄식과 한탄의 소리가 들렸다.
“어디 듣보잡 같은 곳에서 잡것들이 와서는…….”
그때 루시의 귀로 한 국회의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혼잣말이지만 대놓고 들으라는 듯이 한 말.
무엇보다 루시와 시몬의 정체를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마이크가 아직 켜져 있어,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 의원의 혼잣말을 들었다.
“나의 루한이 듣보잡이라고? 그리고 내가…… 잡것이라고?”
그리하여 루시는 인내의 끈에 이어서 이성의 끈마저 놓아 버렸고.
“…….”
시몬은 이젠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루시를 말리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묻겠다. 방금 나보고 잡것이라고 그랬나?”
“크흠, 제 말을 들으세요, 태루시 집행관. 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
루시의 차가운 살기에 그 국회의원은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내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초인적인 정신으로 루시의 살기를 버텼다.
“하! 잡것이라니. 나, 루한의 여왕, 루시푸르네에게 잡것이라니.”
“들. 으. 세. 요. 태루시 집행관.”
그는 카메라를 최대한 의식한 듯한 단호한 자세와 표정으로 오히려 루시를 꾸짖었다.
“게다가 나한테 저딴 개 목걸이를 채우려 해?”
“신, 신성한 국감장에서 왜 반말입니까? 지금 태루시 집행관의 발언은 국회를 능멸하는…… 커억!”
하지만 그 의원의 꾸짖음은 끝내 이어지지 못했다.
“숨…… 숨이…… 가슴이……!”
루시에게 모욕을 선사한 국회의원은 가슴을 부여잡고 몸을 떨었고, 이 모든 장면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방송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