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201화 (201/212)

제201화

#201.

어떻게 보면 획기적이고 또 어떻게 보면 정신 나간 것 같은 루시푸르네의 계략.

이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유리아와 시몬은 잠깐 사이에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럴 바엔 차라리…… 은행이나 마석 보관소를 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시몬은 두 사람의 의견을 듣다가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그 과정에서 무의미한 파괴와 살육을 하게 될 것 같아서 기각한다. 우린 먼저 걸어오는 싸움만 피하지 않을 거야.”

이미 마음이 차용증에 기운 모양인 루시는 단호한 표정으로 시몬의 대안을 거부했다.

“후우, 따르겠습니다. 먼저 배신한 것은 그들이니까요.”

결국 먼저 수락한 사람은 유리아였다. 그녀는 여전히 망설이는 눈을 했지만, 루시의 제안이 최선이라고 여겼다.

“저는…… 하아, 어쩔 수 없지요.”

홀로 남은 시몬도 고민을 좀 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의식주는 이제 걱정 없겠구나. 민주야, 어디 먼저 가 보고 싶니?”

모두의 의견이 통일되자 루시는 이 순간까지도 충심을 잃지 않는 기특한 시녀에게 제일 먼저 의견을 물었다.

“백화점이요!”

민주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답했다.

“좋아, 백화점으로 가자!”

“으히히히히, 백화점 털기라니! 전부터 꼭 해 보고 싶었어요!”

“어서 시내로 가자꾸나.”

목적지를 정한 루시 일행은 인적이 드문 서울 변두리에서 당당히 시내로 이동했다.

세계의 시선이 한 시간 내내 폭격이 이어지고 있는 평택의 고급 주택단지로 쏠렸다. 이미 단지 내 시민들은 대피한 지 오래. 국군과 주한미군은 마음 놓고 미사일과 포를 쏘았다.

도심의 시민들은 빌딩에 달린 TV를 통해, 또는 각자의 휴대폰으로 숨을 죽이며 이를 시청했다.

그러나 인류 최악의 세 마인은 TV 화면 속에 있지 않았다.

“루, 루시……? 학살자 태루시다!”

“괴물 김시오와 문유리도 있어!”

서울! 서울에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저 폭격은…….”

이는 인류의 어떤 공권력으로도 저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실패했다! 마인 사천왕 레이드가 실패했어!!”

태광휘가 돌아오지 않는 한, 지구는 저 사악한 사천왕 때문에 신음할 것이다.

“꺄아아아악! 도망쳐!!”

“엄마아아아아!”

시내에서 루시 일행을 본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꺄하하하하하!”

이를 본 민주가 속 시원하다는 듯 기쁘게 웃었다.

“아하하하하!”

루시 또한 지금껏 참아 왔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모양인지 크게 웃었다.

그런 둘의 모습은 정말이지 빌런 여왕과 간신배 그 자체였다.

“…….”

“…….”

졸지에 사천왕 패거리가 된 시몬과 유리아는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둘을 따랐다.

* * *

세상을 뒤집어 놓은 국감장 대학살로부터 한 달이 흘렀다.

부산의 한 호텔에서 근무하는 호텔리어 정은화는 이틀 전부터 숙박 중인 VVIP들 때문에 오늘도 악몽을 꿨다.

괜히 자신의 평화로운 직장이 각성자들의 싸움에 휘말리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신경쇠약까지 왔다.

“후우…….”

정은화는 한숨을 쉬면서 호텔 1층 로비를 슬쩍 보았다.

그곳에는 협회와 길드에서 파병한 헌터들이 며칠째 진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잘 안다.

저렇게 위압감 있게 로비를 장악한 헌터들이 최상층에 계신 VVIP가 내려오면 눈을 내리깔기 바쁘다는 것을.

심지어 사천왕 중 유일한 비각성자인 구민주 매니저 앞에서도 설설 기는 게 저들이었다.

마인 사천왕과 파병 온 헌터들 사이에 이러한 암묵적인 협약이 체결된 지 보름이 좀 넘었다.

이 암묵적인 협약이 체결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가?

최상층에는 악명 높은 VVIP가, 바로 앞에는 존재 자체가 가혹행위인 헌터들이 있는 호텔에서 정은화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 퇴근하고 싶다.’

그녀는 최근 들어 유독 치밀어 오르는 퇴사 욕구를 퇴근 욕구로 물 타면서 버텼다.

그렇게 오늘도 불안, 초조하게 호텔리어 업무를 하고 있었다.

‘헉! 엘리베이터가 움직인다!’

그때, 호텔 엘리베이터의 층수 표시기에 불이 들어오더니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으로 향함을 알렸다.

“허업……!”

“크흠!”

정은화뿐만 아니라 로비에 있던 헌터들도 사천왕이 내려오는 것을 인지한 모양. 다들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긴장한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잠시 후, 최상층에 멈췄던 엘리베이터가 1층 로비로 내려왔고, 띠링 하는 알람 소리와 함께 오늘날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마인 사천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편, 편안한 시간 되셨습니까? 고, 고…… 고객님!”

정은화는 총지배인의 본분을 다하고자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투숙객에게 다가갔다.

“그래, 해운대 전망이 아주 좋더구나?”

사천왕 중에 제일 악명 높은 태루시가 친히 잔잔한 미소로 그녀의 인사를 받아 줬다.

“후우…….”

“휴…….”

기분이 좋아 보이는 태루시의 모습에 로비에서 대기 중이던 헌터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체크아웃하러 온 것이다.”

이어서 루시의 입에서 나온 체크아웃이라는 말에, 정은화는 마음속에 광명이 비추는 것을 느꼈다.

“모, 모시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체크아웃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정은화는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숨기며 말했다.

“민주야?”

“네! 영수증 저한테 주세요!”

그러자 현재 지구에서 가장 출세한 비각성자로 유명한 구민주가 정은화 앞에 나섰다.

“그, 그, 여기 영수증입니다.”

그녀는 인터넷에서 본 정보를 참고하여 영수증과 펜을 구민주에게 건넸다.

앞서 사천왕을 겪은 상인들의 생생한 증언이 인터넷에 가이드북처럼 있었고, 정은화 또한 이를 참고했다.

“흐음……?”

영수증을 건네받은 민주는 영수증에 찍힌 숫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혹…… 혹시…… 무슨 문제라도……?”

인터넷에서 본 가이드대로 금액을 좀 더 올려 쓴 정은화는 당장이라도 오줌을 지릴 것 같은 불안감을 느껴야만 했다.

“우리 때문에 호텔 영업에 지장이 있지 않았나요?”

“예?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사천…… 아니, 아니! 고객님들께서 머물다 가시면 더욱 유명해져서 영업에 도움이 됩니다.”

“에이~ 괜찮아요. 0 두 개 정도 더 붙여서 영수증 다시 내오세요.”

“감, 감사합니다?”

정은화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서둘러 영수증을 다시 발행했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영수증을 다시 받은 구민주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자신들의 돈도 아니다. 오히려 원수 같은 놈들의 계좌를 터는 일이다.

“어디 보자~ 이번엔 누구에게 청구를 할까요~.”

민주는 품에서 두꺼운 리스트를 꺼내 페이지를 넘겼다.

‘저게 원한의 서……!’

저 리스트 북의 정체를 아는 정은화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이번엔 여기다!”

페이지를 넘기던 구민주는 한 업체를 선택했고, 곧장 리스트와 영수증을 들고 루시에게 쫄쫄쫄 향했다.

“루시 님! 뉴욕타임스로 정했어요.”

“그래? 알았다.”

구민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루시는 수표책을 쓰는 거부처럼 영수증 뒷면에 쓱쓱쓱 차용증을 썼다.

파아앗.

이어서 무슨 이능인지 모를 마법까지 부여했다.

마법 차용증으로 인챈트가 끝난 영수증을 루시에게 건네받은 민주는 이를 다시 정은화에게 건넸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은화는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레 차용증을 손에 쥐었다.

영수증 뒤에는 위조와 사칭을 방지하기 위해 마법으로 창백하게 빛나는 필체가 영롱하게 새겨져 있었다.

계산을 마친 루시 일행은 호텔 정문으로 당당히 걸었다.

“…….”

“…….”

로비에 있던 헌터들은 분명 이 사천왕을 저지해야 하는 임무를 받았음에도 최대한 눈을 깔고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루시 일행이 사라지고 3분 후.

“후우…….”

“하아, 이번에도 살긴 살았네.”

“X발, 진짜 때려치울까?”

로비 사방에서 안도와 현타의 숨소리가 가득했다.

“차용증은 저희에게 주십시오.”

“아…… 넵!”

이윽고 로비에 있던 헌터 중 한 명이 정은화에게 다가가 차용증을 받아 갔다.

“그 대금 이체는…….”

헌터의 손에 차용증이 넘어가자 정은화가 걱정스레 물었다.

자신은 호텔의 일개 직원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회사가 돈을 못 받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저희도 죽긴 싫습니다.”

차용증을 받은 헌터는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씁쓸히 답했다.

다음 날, 지구 반대편의 언론사 뉴욕타임스에서 정은화가 일하는 호텔로 대금을 이체했다.

* * *

이거, 생각보다 너무 좋은데?

루시를 비롯한 마인 사천왕이 요즘 느끼는 심경이다.

집행관으로 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자유롭고 삶의 만족도도 좋았다.

한 달 사이,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동남아 등등 자유롭게 세계를 여행했다.

중간중간 여행지에서 게이트가 열리면 몬스터를 토벌하고 게이트를 닫았다.

그들이 머무는 동네에서 마인에 의한 범죄가 발생하면 협회를 대신하여 징벌을 내리기도 했다.

여행 경비는 구민주가 그동안 차곡차곡 집필한 리스트, ‘원한의 서’에 있는 기업과 개인에게 청구했다.

차용증에 지목당한 기업과 사람은 당연히 처음에는 안 주겠다고 뻐겼다.

그러자 상인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용증에 적힌 대로 인터넷에 돈 못 받았다는 글을 올렸고, 이를 구민주가 인터넷에서 보고 루시에게 전달했다.

그러면 루시 일행이 직접 찾아가 해당 기업과 정부 기관을 마인과 몬스터 다루듯 초토화시켰다.

그렇게 세 번 정도 하니까 그 뒤론 다들 자동으로 납부했다.

더 큰 유혈 사태를 일으키기 싫었던 협회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아예 차용증 전담 부서까지 신설한 모양.

“진즉에 이렇게 할 걸 그랬습니다.”

시내를 거닐며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음미하던 유리아가 해맑게 웃었다.

“이제 시민들도 우리를 보고서 도망치지 않더군요?”

시몬 또한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평화로운 표정으로 거리를 걸었다.

연예인이 거리에 나온 것처럼 무수한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인 눈으로 10미터 정도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예전처럼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을 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멀찍이서 웅성거리며 휴대폰을 들고 촬영할 뿐이다.

“선글라스와 모자를 벗으니까 참으로 개운합니다.”

한 달 사이, 루시 일행에게 변화가 있다면 유리아와 시몬이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에게서는 예전처럼 충동적인 감정이 안팎으로 새지 않았다.

“그나저나 루시 님, 이제 슬슬 박태오 협회장님과 아스카 성녀님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길을 걷던 중에 시몬이 문뜩 루시에게 물었다.

“뭐 하러? 차원 코어 덕분에 이젠 모자랑 선글라스가 필요 없잖아?”

“아스카 성녀님은 초상 과학에 지식이 깊습니다. 박태오 협회장님도 복직만 하면 협회와 정부의 연구 지원을 이끌 수 있을 테고요.”

루시의 물음에 시몬이 준비했던 대답을 건넸다.

“하긴, 우리 둘만으로는 슬슬 한계가 느껴지기는 해. 지구의 차원 코어라서 그런지, 루한 출신인 우리가 모르는 부분도 있는 것 같고.”

시몬의 말에 루시는 떨떠름한 눈으로 수긍했다.

늘 자신을 의심하던 박태오와 솔라를 노리는 살모사 같은 아스카가 눈에 안 보이는 것은 루시에겐 호재였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두 사람을 일부러 구출하지 않은 것이고.

하지만 슬슬 휴가의 끝이 보였다.

시몬과 함께 심장과 하나가 된 지구의 차원 코어에 대해 연구를 해 봤지만 도통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흐음…… 좋아, 슬슬 구출 작전을 생각해 보자고.”

루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의 목적지를 결정했다. 박태오와 아스카, 두 사람이 갇힌 곳으로 갈 거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알아냈어? 협회 본부에 다시 쳐들어가야 하나?”

하지만 막상 가려니까 어디로 가야 할지부터 막막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성녀님께서 그분의 패밀리어로 메시지를 전달해 주셨거든요. 그 메시지를 제가 운 좋게 받았지요.”

“성녀? 그 살모사 말이야? 언제?”

“한 달 살짝 안 됐습니다.”

“뭐어? 그걸 왜 이제 말하는데?”

“그게…… 깜빡했다고 말한다면 믿어 주시겠습니까?”

“??”

“한 달 동안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놀아 본 적은 저도 없었거든요.”

“……믿을 거라고 생각하나?”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정신없이 놀다 보니 기억의 우선순위에서 밀렸습니다.”

루시의 질문에 답하는 시몬의 실눈이 모처럼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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