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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202화 (202/212)

제202화

#202.

평소의 시몬은 온화한 성직자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어쩌다 그가 실눈을 부릅뜰 때가 있는데, 그때엔 평소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졌다.

“…….”

루시는 모처럼 눈을 크게 뜬 시몬의 눈동자를 보았다.

문득, 전에 시몬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노센티아요? 확실히 이상하긴 했지요.’

이노센티아에서 시몬은 멀쩡했다. 루시는 이를 까먹고 있다가 얼마 전에 물었었다.

‘제 개인적인 추측으론…… 제 몸이 키메라와 신성력이 공존하는 끔찍한 혼종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그녀의 물음에 시몬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답했다.

갑자기 왜 이런 기억이 떠올랐냐고 묻는다면, 그녀도 잘 모르겠다.

‘시몬, 회귀 전에는 특별한 활동 없이 사라졌던 존재.’

회귀 전의 시몬은 죽음의 대마녀 리나 리버스를 없애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후의 그의 행적은 끝내 듣지 못했지.

“루시 님? 왜 그렇게 저를 보시지요? 혹시 제가 실수라도……?”

“한 달이나 지나서 그 사실을 말한 게 실수라면 실수지?”

그 사실이란 성녀가 보낸 메시지를 말한다.

“면목없습니다, 하하하…….”

“됐다. 이번엔 넘어가지.”

“감사합니다.”

“…….”

말로는 넘어간다고 말하는 루시였지만 속으로는 아니었다.

‘어차피 추궁해도 말하지 않을 녀석이야. 지금 내 몸 상태론 위협도 불가능하고. 일단 지켜보자.’

그녀는 마음속 한편에 시몬에 대한 의심을 묻어 두었다.

* * *

시몬이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박태오와 아스카, 그리고 신념을 고집한 헌터들이 갇혀 있는 곳은 뜻밖의 장소였다.

“감히 솔라의 집에다가!”

루시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그녀의 시야에 지구에 처음 와서 묵었던 태광휘의 집이 잡혔다.

세상을 유람하면서 끝내 솔라의 집에는 가지 않았었다. 괜히 태광휘의 집이 싸움에 휘말려 파괴되면 나중에 그이가 돌아왔을 때 면목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루시의 염려를 모욕하듯이 저놈들은 태광휘의 집을 수용소로 썼다.

집 안의 벽을 부수고 창문을 막는 식으로 소중한 그이의 흔적을 처참히 파괴했다.

“……용서 못 해!”

루시는 국감장 때 이후 처음으로 깊은 분노를 느꼈다.

어차피 태광휘가 돌아오면 새집으로 가긴 할 거다. 하지만 저 집은 나름대로 가치가 있었다.

어쨌거나 그이의 체취가 가득 있는 공간 아니던가?

그런 의미 있는 집을…… 그런 소중한 장소를 저렇게 파괴하다니!

‘시몬!’

한편으론 이 사실을 이제야 말한 시몬이 원망스러웠다.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었을 터.

하지만 이내 원망보단 분노의 대상에게 집중했다.

고오오오오.

살기가 루시의 피부를 뚫고 퍼져 나간다.

차원 코어의 제약으로 제힘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

“루시 님, 저기 인질들이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공격 명령을 내리고 싶던 차에, 유리아가 루시에게 불쑥 말했다.

유리아가 가리킨 쪽은 솔라의 집 옥상.

거기에는 대구속진이 겹겹이 처져 있었고, 총 24명의 사람이 족쇄를 달고 서 있었다. 그중 둘은 루시도 익히 아는 얼굴이다.

“진짜 인질일까?”

굴욕적으로 포로가 된 박태오와 아스카를 보며 루시는 고개를 갸웃했다.

“네?”

“난 저 둘을 믿지 않아.”

박태오도 아스카도 딱히 좋은 기억과 감정이 없던 루시였다.

“하지만…….”

“루시 님, 저기 인질로 있는 사람들은 가능한 한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솔라 님이 돌아오셨을 때 정상화가 쉬워집니다.”

반면, 유리아와 시몬은 다소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박태오와 아스카가 끝내 자신들을 신뢰하지 않았던 점은 유감스럽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협회장과 성녀는 필요하다.

“함정일지도 몰라.”

“최대한 조심해서 진입하겠습니다.”

“솔라 님의 집을 어쨌든 되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되찾아야지. 내 말은, 굳이 인질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모처럼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다.

리더인 루시는 인질과 상관없이 공격하길 원했고, 실질적인 무력인 유리아와 시몬은 인질을 가급적이면 구하길 원했다.

‘분열! 분열이라니!’

유일한 비각성자 구민주는 그저 옆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저길 봐.”

엇갈린 의견을 내던 루시가 턱짓을 했다.

“?!”

“으음.”

그녀의 턱 끝이 가리킨 곳을 본 유리아와 시몬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대놓고 마인들을 대동하는군요?”

“빙하의 여제와 루시프라는 자도 저기 보이는군요.”

그사이 추가로 모습을 드러낸 무리 때문이다.

“레드문이 개입했어. 변수가 너무 많아졌어.”

인질이나 집의 파손처럼 무언가를 신경 쓰면서 싸울 정도로 레드문이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 * *

협회는 태광휘의 집에 구속되어 있던 박태오와 아스카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밖에서 깽판 치고 있는 4인조 빌런을 잡는 데 힘을 보태 달라는 부탁.

당연하지만 그와 아스카는 단호히 거절했다.

보아하니 두 사람뿐만 아니라 22명의 헌터들도 거절한 모양.

그리하여 그들은 이 비참한 몰골로 태광휘의 집 옥상으로 올라와야 했다.

햇빛과 바깥 공기가 오랜만에 반가웠지만, 이를 고스란히 누릴 마음의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태루시!”

“문유리와 김시오 집행관도 있는 것이에요!”

5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네 사람이 보였다. 아스카의 유체 이탈 뉴스로 대강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긴 했다.

“망설이는 것 같아요! 우리가 인질로 잡혀서겠지요?”

루시 일행은 이쪽을 보면서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고, 이를 본 아스카가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른다.

“끝까지 발목만 잡는군…….”

상황을 대강 눈치챈 박태오는 당장이라도 죽고 싶었다.

“크윽!”

“빌어먹을…….”

이는 함께 납치된 22명의 헌터들도 마찬가지.

파아아앗.

괜한 분함에 반쯤 포기했던 이능을 몇몇이 발휘했지만, 옥상 바닥과 팔다리에 묶여 있는 족쇄가 빛나면서 그의 이능을 막았다.

[다들 잘 지내셨나요?]

이어서 뒤에서 가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루시프!”

박태오가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회색 날개를 펼친 루시프가 허공에 떠 있었다.

“…….”

그런 루시프 바로 옆에는 청은발에 가면을 쓴 여인 또한 있었다.

“빙하의 여제도 있는 것이에요.”

베아트리체를 노려보는 아스카의 금색 눈동자에 긴장이 담겼다.

“……리체.”

박태오는 이제는 제법 가라앉은 감정으로 베아트리체를 응시했다.

[저는 여러분이 협회의 도움을 거절하길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그런 박태오와 아스카를 향해 루시프가 재밌다는 듯한 억양으로 말했다.

[덕분에 제 바람대로 이렇게 잘 익은 제물이 되어 주셨군요.]

타천사의 회색 날개가 쫙 펼쳐졌다.

-!!

그러자, 옥상에 있던 이노센티아의 구속구가 눈부시게 빛났다.

끼이이이이이이!!

제일 먼저 아스카의 품속에 있던 애완 괴수 피스가 비명을 질러 댔고.

“으아아아악!!”

“꺄아아악!”

박태오와 아스카를 비롯한 헌터들 또한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저 멀리 있던 루시 일행이 반응한다.

이제야 유리아와 시몬, 루시가 빠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루시프가 앞으로 날아오르더니 세 사람 앞에 떡하니 정지했다.

[멈추시지요? 안 그러면 이들의 목숨은 보장 못 합니다.]

그리고 경고 한다.

루시프의 경고에 셋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그 자리에 뚝 하고 멈춰 섰다.

“우린 신경 쓰지 마!”

고통에 신음하던 박태오가 그 꼴을 보곤 절규하듯 외쳤다.

“아직 버틸 수 있는 것이에요!”

옆에 있던 아스카도 한마디 거든다.

이에 루시와 유리아 시몬이 모여 뭐라뭐라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그냥 무시하고 공격하자니까?!”

“위험합니다.”

“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저기 있는 인질들이…….”

“방금 들었잖아? 신경 쓰지 말라고.”

“그래도 너무 쉽게 버리는 건…….”

“알 바야?”

거리가 좁혀져서 그런가 루시와 유리아, 시몬의 대화 소리가 귀로 들렸다.

“…….”

“저, 저! 정말이지 나쁜 여왕인 것이에요! 으으윽!”

루시의 말을 들은 박태오와 아스카는 고통 속에서 황당함을 느꼈다.

말로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저렇게 쿨하게 수긍할 줄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만화나 드라마처럼 짧게 신파 정도는 찍고서 움직여 주면 어디가 덧나나? 낭만이 없어요, 낭만이…….”라며 아스카가 고통의 식은땀을 흘리며 툴툴거린다.

[…….]

루시프도 말이 없는 게 살짝 당황한 모양.

그러는 중에도 레드문의 마인들이 한 명 한 명 증원 중이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마인이 모인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

루시 일행 뒤와 측면에서도 협회와 길드의 헌터들이 포위 대형으로 압박해 오고 있었다. 무림맹과 마교가 동맹을 맺으면 이런 느낌일까?

마치 세계의 운명을 건 결전의 순간이라도 온 것 같다.

사악한 빌런은 루시 일행이고, 이에 맞서는 영웅은 협회와 길드, 레드문 연합인 셈. 어지럽다.

포위가 어느 정도 구축되자, 지금껏 조용하던 빙하의 여제가 냉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솨아아아아!

“!!”

“이게…… 뭐야!”

“크윽!”

베아트리체의 냉기를 정통으로 맞은 루시와 시몬, 유리아가 기겁한다.

“그사이에 힘을 회복한 모양이군요?”

시몬은 눈을 크게 뜨면서 정면 상공을 보았다.

“그냥 회복한 정도가 아니야.”

루시는 빙하의 여제 바로 옆에 있는 타천사 루시프를 노려보았다.

‘저 타천사, 저놈이 베아트리체의 힘을 증폭시키고 있어!’

그녀의 시선이 루시프와 옥상에서 괴로워하는 인질들을 두루 살폈다.

[얼어라!]

루시는 태양샘 반지를 빼고는 제한적인 설원의 권능을 펼쳤다.

파아앗.

설원의 권능 중 하나인 설원의 결계가 무한의 추위로부터 그녀와 시몬, 유리아를 보호해 줬다.

‘오래 못 버텨……!’

하지만 루시의 표정은 결코 좋지 못했다.

“이건…… 전성기의 나와 맞먹어!”

그녀는 고백하듯 신음을 섞어 말했다.

“무한의 추위란 말입니까?!”

“!!”

이에 시몬과 유리아가 경악한다.

시몬은 부릅뜬 눈으로 루시푸르네와 루시프 그리고 베아트리체를 보았다.

“…….”

그의 시선이 특히 루시와 베아트리체에게 좀 더 오래 머물렀다.

촤아아악.

이어서 그는 망설임 없이 촉수를 펼쳐 베아트리체를 향해 쏘았다.

하지만 베아트리체가 펼치는 무한의 추위는 너무나 강력하다.

시몬의 촉수가 설원의 결계를 벗어나자마자 순식간에 얼어 부서졌다.

“하아압!”

시몬이 움직이자 유리아도 가만 있을 수 없다는 듯 알파의 권능을 펼쳤다.

스스스슷.

붉은색이 감도는 안개가 혈향과 함께 펼쳐졌지만, 이 또한 설원의 결계를 벗어나자마자 선홍빛 서리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고오오오오.

베아트리체의 무한의 추위는 이제 루시의 설원의 결계를 팍팍 압박한다.

‘얼어 죽는 설원의 대마녀가 될 순 없어!!’

루시의 머릿속에 경종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이겨 낼까?

“루시 님, 안 되겠습니다! 공간 이동을!”

고민하는 루시를 향해 시몬이 다급히 외쳤다.

“그랬다간 저 뒤에 있는 구민주 양이 위험합니다.”

그러자 유리아가 우려를 표한다.

루시는 고개를 살짝 돌려 뒤를 보았다.

좀 떨어진 곳에서 구민주가 조심스레 이 상황을 보고 있었다.

전투에 휘말리지 않게 하려고 대피시킨 것인데 이렇게 될 줄이야.

“크윽!”

루시는 곧바로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곤 있는 힘껏 설원의 결계를 유지했다.

‘제발…… 제발…… 깨어나라! 깨어나!’

속으로는 여전히 가로막혀 있는 깨달음의 벽을 두들겼다.

하지만 벽은 깨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솨아아아아,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베아트리체의 냉기가 설원의 결계를 뚫었다.

“!!”

이를 본 루시와 유리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시몬은 눈을 부릅뜨고서 베아트리체를 노려보았다.

압도적인 차가움이 셋을 원자 단위까지 얼리기 직전!

“……?!”

루시는 베아트리체가 내뿜는 무한의 추위가 급격히 주춤하는 것을 느꼈다.

‘따듯해……?’

동시에 그녀의 등 뒤에서 따듯함이 몰려왔다.

“!!”

머릿속을 하얗게 만드는 포근함에 루시는 눈을 크게 떴다.

주르륵.

사파이어 같은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촤아아앗.

이어서 게이트가 열리는 균열음이 들렸다.

“엘 라흐마크!”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요정어와 함께 화살이 쏘아져 루시프를 저격했고, 루시프가 재빨리 날아온 화살을 피했다.

[드리워져라!]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그림자로 이뤄진 파도가 루시프를 덮쳐 저 멀리 밀어낸다.

더불어 베아트리체가 내뿜었던 무한의 추위 또한 급속도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

루시는 멍하니 빙하의 여제가 있는 하늘을 보았다.

“시즈……!”

쿠오오오오.

그곳에는 어느덧 비행형으로 최종 진화한 붉은색 드레이크 시즈가 베아트리체를 위협 중이었다.

“아아……!”

그리고 시즈의 등에는 태양검을 든 한 남성이 타고 있었다.

루시는 급히 태양샘 반지를 꼈다.

반지를 끼자, 그녀의 영혼이 감격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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