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204화 (204/212)

제204화

#204.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고 있었다. 로뮤와 루나 그리고 귀환한 헌터들이 마인들을 빠르게 척살 중이었고, 루시 일행을 포위했던 협회와 길드의 헌터들은 태광휘의 생환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황이다.

우린 과연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마인을 제외한 모두가 깊은 혼란과 고민에 빠졌고, 그런 헌터들 사이에서 한 남성이 조심스레 걸어 나왔다.

“지구 인류의 수호자 태광휘 헌터님! 무사히 돌아오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그리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임시로 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하워드 김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하워드 김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얼마 전 갇혀 있던 박태오와 아스카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전적이 있던 자였다.

“태광휘 헌터님! 부디 태루시 집행관을 멀리하셔야 합니다. 그녀는 위험합니다!”

하워드 김 임시 사무국장의 말에 재회로 달아오르던 분위기가 확 하고 식었다.

“이계의 이방인들! 태루시와 김시오, 문유리가 우리 인류에 끼쳤던 피해가 막심합니다.”

그는 이윽고 목에 핏줄까지 세우며 외쳤다.

“…….”

막 루시의 가슴팍에서 간신히 얼굴을 빼낸 태광휘는 무심한 금색 눈동자로 하워드 김을 보았다.

꿀꺽.

하워드 김은 그 차가운 금색 눈동자에 절로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협회장과 성녀를 감금했나? 내 집을 엉망으로 만들고? 무엇보다 마인들과 손까지 잡은 것 같은데?”

태광휘의 입에서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싸늘한 대꾸가 나왔다.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날이 갈수록 협회와 집행관의 폭주가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만.”

태광휘는 루시의 품에서 근엄한 눈으로 임시 사무국장과 헌터들을 쓸어 보았다.

줄어든 키 때문에 그는 루시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의 어깨에 엉덩이를 걸친, 반쯤 목말을 탄 모양새였다.

“…….”

태광휘는 입을 다물고는 사무국장과 헌터들을 노려보았다. 7살 아이의 눈빛이지만 누구도 감히 마주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어서 그의 금색 눈빛이 루시에게 향했다.

“루시, 어떻게 된 일이야?”

“그게 말이야…… 솔라…… 나는…….”

태광휘의 물음에 루시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말하려 했다.

일단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자.

처음 지구에 온 것부터, 대명그룹, 언론의 음해, 제주 사태, 개성시 지하 연구소, 국감장, 마인 사천왕이라는 누명까지, 이것들을 동시에 떠올리고 정리하려고 하자.

“흐윽…… 그게…… 나는 진짜 억울해…….”

괜히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샘솟았다.

“솔라가 없는 동안 내조를 열심히 하려는 죄밖에…… 흐윽, 없었는데…… 세상에서는 날 막 미친년처럼 매도하고…….”

흐아아아아앙.

결국 루시는 울음을 터트렸다.

“루시? 괜찮아, 괜찮아.”

당황한 태광휘가 그런 루시를 이젠 역으로 안아 줘야만 했다.

체구가 작았기 때문에 루시의 얼굴과 머리 정도만 품었다.

“그래, 잘했어. 루시는 잘못한 게 없어.”

그의 작은 손이 연신 루시의 청은발을 쓰다듬는다.

그렇게 루시를 달래면서 태광휘는 하워드 김과 변심했던 헌터들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어디 할 말 있으면 해 보라는 듯한 침묵의 으름장.

“헐…… 선즙필승이라니.”

어느새 슬금슬금 도착한 구민주가 그런 고용주를 보고 얼빠진 얼굴을 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곤 태광휘에게 말을 거는 구민주였다.

“저어, 태광휘 님!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루시 님의 매니저인 구민주라고 합니다.”

지구의 수호자 태광휘와 대화를 하다니! 꿈만 같은 상황이지만, 이상하게 긴장은 안 들었다. 그동안 워낙 고용주와 별별 일을 겪어서 그런 모양.

“제가! 저, 구민주가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구민주는 지금까지 지구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구민주는 무수한 조별 과제를 치렀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조장을 했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 이렇게 빛을 발했다.

* * *

협회 임시 사무국장 하워드 김은 저 구민주라는 비각성자와 이를 경청하는 태광휘. 둘의 대화에 몇 번이고 끼어들고 싶었다.

거짓! 전부 거짓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태광휘가 눈에서 살기를 흘리며 그의 입을 봉인했다.

“…….”

그도 물론 진실이 무엇인지는 안다. 하지만 만약 저 태광휘가 진실을 알게 된다면 피의 숙청이 시작된다.

살아남는 헌터가 과연 몇이나 될까? 세계는 진정으로 무너질 것이고, 지구에 남아 있는 마경과 심심치 않게 생성되는 게이트에 인류는 다시 한번 대멸종을 겪어야 할 것이다.

세계 각국 정부와 길드, 기업, 언론사, SNS 등에서 만들어낸 페이크 정보들이 아직 가득하다. 이것만 있으면 태광휘를 충분히 다시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저기 협회장과 성녀를 비롯한 비전향 헌터들이 거슬리지만 괜찮다. 진실을 외치는 자들은 한 줌이다. 반면, 온 세상이 가공된 진실을 외치고 있고, 믿고 있다.

태광휘는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무게 추는 자신들 쪽이 압도적으로 무거웠다.

꿀꺽.

하워드 김을 비롯한 헌터들이 침을 삼켰다. 일부는 도망칠 준비를 했고, 일부는 감히 태광휘에게 대항할 준비를 한다.

“……해서 이렇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장황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구민주의 설명이 끝났다.

태광휘와 함께 구민주의 얘기를 듣던 루시는 어느덧 울음을 그쳤다.

“…….”

그녀는 걱정을 담아 말없이 태광휘의 눈치를 보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과연 그이는 어떤 판결을 내릴까?

“할 말 있나?”

구민주의 얘기를 다 들은 태광휘가 이번엔 하워드 김을 비롯한 헌터들에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저 주장은 극히 일부의 주장입니다!”

그러자 하워드 김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박한다. 절대 물러날 수 없다. 물러나는 순간 죽음뿐이다!

“구민주와 태루시, 그리고 협회장을 비롯한 헌터들의 주장은 소수입니다.”

그는 그사이에 준비한 태블릿을 태광휘에게 바쳤다.

“반면 저희 쪽 주장은 인터넷에만 접속하면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 접속 가능한 태블릿이다. 당장 인터넷에만 접속하면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있다는 듯한 뉘앙스다.

임시 사무국장의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대로 세상을 등질 것이냐? 당신의 손으로 당신이 지켜 온 세상을 부술 것이냐?’라는 의미.

“필요 없다.”

그리고 태광휘는 하워드 김이 건넨 태블릿을 받지 않았다.

“내 결론을 말하지.”

그는 여전히 루시의 어깨에 앉은 상태로 외쳤다.

모두의 시선이 광휘의 입에 쏠렸다.

“나는 루시를 믿는다.”

그 말과 함께 사방에서 탄식이 이어졌다.

“솔라……!”

태광휘의 말에 루시는 오늘따라 유독 울보가 된 것만 같았다.

“단, 너희에게도 속죄할 기회를 주겠다.”

울먹이는 루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태광휘는 말을 이었다.

“이 사태의 책임자들을 바쳐라! 죽여도 좋고, 제압해서 데려와도 좋다. 힘이 달린다면 말해라! 직접 징벌을 내릴 것이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이어질 때마다 세계에 지각변동이 일었다.

타앗!

태광휘는 그렇게 외치더니 루시의 품에서 빠져나와 땅으로 착지했다.

그의 눈에 어느새 마인들을 처리하고 돌아온 루나와 로뮤 그리고 귀환한 헌터들이 담겼다.

“루나, 로뮤, 유리아 그리고…… 시몬.”

그는 먼저 루한에서의 인연들을 호명했다.

“협조하지, 로안.”

“어떻게? 다 죽여 버리면 돼, 오라버니?”

“솔라시우스 전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하하하하, 이제야 교통정리가 제대로 되겠군요?”

모두가 그의 호명이 뜻하는 바를 눈치챈 모양.

“부탁한다.”

태광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부탁하자, 넷은 바로 움직였다.

“태오 형.”

다음으로 태광휘는 협회장 박태오를 불렀다.

“면목 없다, 광휘.”

박태오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숙였고, 태광휘는 무심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됐어. 진짜 사과하고 싶으면 서둘러 협회 정상화에 임해 줘.”

“알았다.”

“너희들은 박태오와 함께 움직이도록.”

“오케이!”

“진짜 잠깐 자리 비웠다고 이렇게 개판을 해 놓다니…….”

“참교육 좀 제대로 해 줘야겠어.”

태평양 게이트에서 복귀한 협회와 검룡길드의 최고위 헌터들이 박태오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끝까지 의리를 지켰던 22명의 비전향 헌터들도 마찬가지.

그렇게 태광휘가 지시를 내리자 빠르게 그의 주변이 비기 시작했다.

반대로 사방에서 전투음과 비명, 고성이 오갔다.

“아빠! 나는 뭐 하면 될까?”

마지막까지 호명되지 않은 쥴리아가 루시와 태광휘 사이로 달려왔다.

“광휘 오빠! 정말 너무한 것이에요!”

이어서 성녀 아스카도 다가온다.

“…….”

태광휘는 말없이 그런 아스카를 보다가 그녀의 어깨에 있는 애완 괴수를 보았다.

“아스카.”

“네! 광휘 오빠!”

“힘을 회복해야 해. 그래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어.”

“……!”

태광휘의 말에 아스카의 금색 눈이 크게 떠졌다.

“이를 위해선 나와 비슷한 힘이 필요해. 쥴리아의 힘도 흡수하긴 했지만 효율이 좋지 않더라고.”

“오빠가 원하면 저 아스카! 힘을 충분히 바칠 수 있는 것이에요!”

그 말에 아스카는 잠깐의 고민도 없이 바로 답했다.

“바친다라? 목숨이 위험할지도 몰라.”

“목, 목숨?! 호에에에엣! 괜, 괜찮은 것이에요……. 아스카는 할 수 있어요!”

“고마워, 아스카.”

태광휘는 짧아진 다리로 아장아장 걸으며 아스카에게 다가갔다.

“헤헤헤! 드디어! 저도 작은 광휘를 안을 수 있게 된 것이에요!”

아스카는 기다렸다는 듯 태광휘를 번쩍 안아 들었다.

“…….”

뒤에서 루시와 쥴리아가 굳은 표정으로 그 장면을 지켜본다.

‘역시.’

아스카에게 안긴 태광휘는 그녀의 어깨에 아직 붙어 있는 검은색 애완 괴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고오오오.

태광휘가 가까이 오자, 애완 괴수 피스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평소처럼 비명을 지르거나, 벌벌 떨지도 않았다.

“힘을 어떻게 드리면 되나요, 광휘 오빠?”

피스를 관찰하는 태광휘의 귀로 아스카의 몽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깊은 키스를 하면 돼.”

태광휘는 조심스러운 눈으로 아스카를 보았다.

꺄아아아아아!

그 말에 아스카는 행복사 직전의 사람처럼 흐물거리는 얼굴을 했다.

주륵.

그녀의 코에서 흥분에 의한 쌍코피가 흘렀다.

“하겠어요! 지금 당장 하겠어요!”

아스카는 품에 안은 작은 태광휘를 더욱 꼭 안으며 말했고, 태광휘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그의 작은 입술을 향해 자신의 입술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

아스카는 보고 말았다.

저 앞에서 유독 조용히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루시와 쥴리아를.

특히, 루시의 손에서 어쩐지 보이지 않는 태양샘 반지를.

그녀는 굳은 눈으로 급히 태광휘의 손을 보았고, 태광휘의 왼쪽 검지와 약지에 두 태양샘 반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흠칫!

이를 본 아스카는 순간 몸이 굳었다.

하지만 이미 둘의 사이는 너무나 가까워져 있었다.

덥석.

이제는 아스카가 아닌 태광휘가 역으로 먼저 입술을 들이밀고 혀를 그녀의 입 안에 집어넣었다.

[마왕 세피로스를 애완동물로 키우다니. 대단하군, 아스카. 아니, 베아트리체라고 불러야 하나?]

딥키스를 당한 아스카의 머릿속에 태광휘의 차가운 목소리가 텔레파시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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