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206화 (206/212)

제206화

#206.

지구라는 세계는 참 이상했어요. 이 세계에는 어느 차원에나 하나씩 존재하는 세계수 같은 수호신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이상함과 별개로 수호신이 없다는 사실은 저에게 기회이자 광명으로 다가왔어요.

‘차원 코어! 지구의 차원 코어만 있으면 신성력과 설원의 권능을 한 번에 품을 수 있을 거야!’

힘든 일을 견디면 좋은 일이 찾아온다는 말은 어느 세계에나 존재하지요. 여기서는 새옹지마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말은 틀리지 않았어요.

‘그렇게 되면 천사로 돌아갈 수 있어! 어쩌면…… 이 지구라는 세계의 신이 될 수도 있겠어.’

주인이 있는 차원 코어와 주인이 없는 차원 코어는 그 가치가 완전히 달라요.

‘타 차원의 존재들이 왜 기를 쓰고 지구로 오는지 이제야 알겠어.’

왜 이 볼 것 없는 차원에 그토록 많은 침략자가 몰려왔는지 궁금했는데 의문이 풀린 것이에요.

‘지구인에게는 알리지 말자.’

모두가 잠재적 경쟁자예요. 그래서 지구인들에게는 차원 코어에 대해 알려 주지 않았지요.

한편 이상한 점도 있었지요.

‘그런데 뭐지? 무슨 제약이 걸려 있어?’

바로 다른 차원에서 온 침략자들. 그들에게 차원 코어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강력한 금제로 인해 심문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이건 12차원의 주술?!’

그리고 그 금제의 근원은 그립고도 그리운 고향 천계의 술식이었어요.

‘경쟁자 중에 천사도 있다니! 어쩌면 타천사인가?!’

더 불안해졌고 조급해졌어요.

‘빙하의 여제 베아트리체를 좀 더 많이 만들자!’

대응책으로 인형술을 펼쳤지요. 더 많은 베아트리체를 만들었어요.

‘가라! 다른 차원으로 가서 이 금제를 건 존재에 대해 알아봐!’

무수한 베아트리체가 여러 차원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저는 그동안 지구에서 열심히 활약했지요.

지구의 차원 코어를 찾는 한편, 침략자들이 차원 코어를 찾지 못하게 최대한 저지했지요.

그렇게 정신없이 몇 년을 활동하니 어느덧 꽤 높은 위치에 올라와 있게 되었어요.

베아트리체와 아스카 둘 다요.

* * *

참으로 신기한 것이, 지구에 마하와 아주 똑같은 타입의 인간이 존재하더라고요?

이름은 태광휘. 모든 부분에서 마하보다 나은 것 같은 남자가 요즘 눈에 들어오네요?

특히나 태광휘의 영혼이 품고 있는 태양의 신성력.

‘태광휘까지 흡수한다면 좌품 천사였을 때보다 더 높은 신성력을 가지게 될 거야!’

너무나 탐이 납니다.

“광휘 오빠아~.”

저는 누구보다 태광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어요.

“아스카? 오늘따라 더 붙는구나. 좀 떨어지렴.”

하지만 광휘 오빠는 저를 여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보았지요.

왜냐면 저와 태광휘의 사이를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광휘 씨! 광고 하나 잡아 왔어요! 우리 검룡길드 재정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바로 박소영. 박태오의 동생이자 태광휘의 연인.

“으음…….”

“제발요! 이거 꼭 해야 해요. 당신이랑 우리 단원들 밥값 때문에 적자 직전이라고요!”

“……알았어.”

늘 단호하고 무심한 태광휘라도 박소영 앞에서는 호락호락했지요.

“…….”

그걸 보면서 저는 알 수 없는 불쾌함을 느껴야 했어요.

* * *

대전쟁 중반부가 지나가던 어느 날.

‘오랜만입니다, 리리스.’

참으로 오랜만으로 속삭임을 들었습니다.

바로 루시프. 저와 함께 천계에서 추방된 전직 대천사. 아주 빌어먹을 놈이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리리스.’

그는 다짜고짜 저에게 부탁을 했어요.

참나! 어이없어. 제가 호구처럼 순순히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가 봐요.

‘당신과 인연을 맺고 있는 태광휘는 지구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흠흠! 일단 들어는 보자고요.

‘그를 없애야 합니다. 그가 지구에 없어야만 지구의 차원 코어를 찾을 수 있어요. 당신이 제격이겠군요. 태광휘를 흡수하세요.’

매우 혹할 만한 제안이에요.

하지만 저는 답답했어요. 누군 안 흡수하고 싶냐고요!

‘아! 이걸 보시면 방법이 생각날 겁니다.’

루시프는 답답해하는 저를 향해 어떤 환영을 보여 줬어요.

“!!”

그가 보여 준 환영은 미래였어요. 그리고 그 미래에는 베아트리체였을 때의 저와 닮은 여자와 태광휘가 행복하게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어요.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면서 양손을 잡고 있었고, 그 손에는 태양샘 반지가 감히 끼워져 있더군요?

베아트리체와 닮았지만, 확연히 다른 여자. 아마도 루한에 두고 온 후손이겠죠? 그 여인과 함께 있는 금발 금안의 남자는 태광휘가 분명해요. 마하도, 제국 황족도 아니었지요.

‘리리스, 인형술로 참 재미있는 일을 벌이셨더군요? 금제에 있는 주술의 정체는 이노센티아입니다. 제가 천계에서 만들었던 주술이지요. 협조를 부탁하는 의미로 이것을 전수해 드리지요.’

“?!”

그 말을 끝으로 루시프는 더 이상 속삭임을 잇지 않았지요.

파아아앗!

대신 저의 머릿속으로 이노센티아에 대한 지식이 생성되었지요.

“……!”

홀로 남아 이노센티아를 되새김하던 저는 머릿속에 빛줄기가 들어선 기분이었어요.

한편으로는 반항심과 욕심이 무럭무럭 생기기 시작하네요.

태광휘는 내가 먹고 지구의 차원 코어는 루시프, 당신이 꿀꺽하시겠다고? 천만에요. 둘 다 제 거예요!

천계에서처럼 순순히 이용만 당하지 않을 테니까요.

* * *

“허윽!”

아아, 결국 저질러 버렸어요.

“리, 리체? 어째서? 왜…….”

베아트리체로 동기화한 저의 눈앞에 박소영의 믿지 못하는 얼굴이 보이네요.

“…….”

슬퍼야 하지만, 이상하게 기쁜 기분이 더 드는 것은 왜일까요?

이제 저의 또 다른 신분, 빙하의 여제는 인류의 공적이 되었어요.

태광휘와 저 아스카의 사이를 가로막던 유일한 장애물은 치워졌고.

설령 그가 제 후손과 어쩌다 만난다고 해도 이번의 일로 큰 편견을 가지게 될 거예요.

이제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슬퍼하는 광휘 오빠에게 다가가 위로해 주고 그를 품기만 하면 모든 게 끝이에요.

그렇게 천사의 힘을 회복한 후에, 기다렸다가 지구의 차원 코어까지 흡수한다면?!

이게 바로 일석삼조일까요?

소영 언니가 죽은 충격 때문일까요?

광휘 오빠는 이후 다른 여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어요.

문제는 눈길을 주지 않는 것에 저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면 곤란한데?”

다시 한번 불안감이 덮쳤고, 특히나 루시프가 보여 준 환영이 저를 더 조급하게 했어요.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태광휘와 지구의 차원 코어가 더 중요하니까.’

그래서 제가 씨앗을 뿌렸던 루한에 대한 공작도 펼쳤어요.

‘루시프가 보여 준 환영에 따르면, 태광휘는 언젠간 어떻게든 루한으로 가게 될 거야. 미리 대비해야 해.’

애써 차지한 육신으로 차원 이동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저는 베아트리체를 루한으로 보냈어요.

지구의 마왕군 4천왕이 된 베아트리체였기에 손쉽게 11차원에 합류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루한에 있는 가련한 존재와 접촉할 수 있었지요.

‘불쌍한 우리 황후 마마, 광야를 돌고 계시는구나. 복수가 그렇게 하고 싶으신가?’

“누…… 누구?!”

바로 거짓의 대마녀 옥타나.

‘그렇게 갈망한다면~ 하게 만들어 줘야지?’

“!!”

최초의 황후이자, 버림받은 하이엘프였던 아낙시아의 원한.

이 불쌍한 아이를 다시 한번 이용하게 된 것이에요.

‘받으렴! 이것은 12차원의 주술 이노센티아란다. 설원의 가호와 권능을 망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주술이지.’

“아아! 감사합니다! 저의 긴 복수를 이룰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 아이에게 ‘이노센티아’를 전수해 줬어요.

대가는 단 하나! 제가 뿌려 놓은 씨앗 루한의 왕가를 망치는 것!

혹여나 태광휘가 저 후손 중에 하나와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또 하나의 안전장치였지요.

* * *

“용사여! 네가 이겼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다!”

이노센티아를 옥타나에게 전수해 안전장치를 만들기를 잘했어요.

“네놈을 저주하마! 너는 이 저주에서 자유로울 수 없도다!”

키아아아악!!

지구를 침략했던 마왕 세피로스의 화신이 결국 소멸해 버렸거든요?

저의 인형 중 하나였던 베아트리체는 그 전에 소멸해 버렸고요.

그 소멸 과정에서 본체인 저도 타격을 입었어요. 인형술과 제 영혼을 이은 술식 중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부분이 영구적으로 파괴됐어요. 앞으로 어떤 인형술을 펼쳐도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사실이 참 아쉽네요.

‘리체의 목소리 값으로 그 땍땍거리던 정령을 없앤 거로 만족하는 것이에요. 박소영도 없애고 정령 아스트라도 없앴고 마왕도 사라졌으니까~ 슬슬 다시 광휘 오빠를 공략해 볼까요?’

멀리서 마왕의 최후를 보면서 저는 앞으로의 일을 계획했어요.

“마왕을 없앴으니 이제 EX급으로 불리겠네요?”

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태광휘에게 다가가 물었어요.

“이제 뭐 할 거예요?”

태양의 후예를 해제한 광휘 오빠는 저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네요.

“은퇴해야지.”

제 질문에 오빠는 피로감이 짙은 미소로 답했어요.

“……네?”

저는 고개를 갸웃했어요.

“저기 수송기가 왔군.”

“광휘 오빠! 잠깐……!”

태광휘는 더는 말하기 싫다는 듯 저를 두고 등을 돌렸어요.

광휘 오빠는 마왕을 없앤 후 은거에 들어갔어요.

듣기론 집에서 종일 게임과 TV만 본다고 하더군요?

저는 일단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기로 했어요.

하지만 뒤늦게 후회했죠.

천하의 그 태광휘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방법으로 루한으로 소환당했을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이 가증스러운 마왕 세피로스는 뒤끝이 좀 길어요.

지구에서 소멸한 화신에 대한 책임 중 일부를 저에게 돌린 것이에요!

저는 루한으로 소환된 광휘 오빠에게 개입할 수 없었어요. 마왕 세피로스가 저의 개입을 막았기 때문이에요.

[일이 잘 안 풀리나 보군요? 리리스.]

그리고 그때였어요, 발을 동동 구르던 제 앞에 루시프가 직접 나타난 것이.

검은 후드를 깊게 쓰고, 타천사의 상징인 회색 날개를 뭐가 자랑이라고 펄럭이는지.

아무리 계약자를 이용한 등장이라도 참으로 불호인 것이에요.

[어쨌든 태광휘가 지구에서 없어졌군요? 지금이 기회입니다. 차원 코어를 찾도록 하지요. 그리고 그 전에…… 지구부터 장악하도록 합시다.]

저의 짜게 식은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루시프는 제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자기 할 말만 할 뿐이에요.

* * *

태광휘는 분명 무시 못 할 차원의 별종이에요. 마하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죠. 거기다 루한에 심어 놨던 씨앗이 루시푸르네라는 이름으로 개화된다면? 이건 저와 루시프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요.

지구의 정부와 기업, 협회를 타락시키는 것은 일종의 보험이자 인질극인 셈이에요.

저는 루시프의 조언대로 협회와 지구를 장악하기 위해 움직였어요. 루시프의 레드문이 저를 도왔고, 저는 얼마 남지 않은 베아트리체를 레드문에 보탰어요.

마왕이 사라지고 구심점이 없어졌던 마인들에게 인류의 공적 베아트리체의 부활은 큰 버팀목이 되었나 봐요.

세계를 타락시키는 작업은 느리지만 은밀하게 진행되었고, 어느 날 아스트라의 환생이라는 쥴리아라는 아이와 연결될 때까지 이어졌어요.

태광휘는 정말 대단해요. 루한까지 가서 별의 저주라는 죽을 고비를 극복하더니, 제가 작업해 놨던 설원의 저주도 기어코 해결했지 뭐예요?

하지만 무엇보다…….

[태광휘 말입니다. 기어코 마왕 세피로스의 본체에까지 타격을 주었더군요. 마계의 대군주가 소멸 직전까지 갔었나 봅니다.]

“헐…….”

저는 루시프가 전해 준 소식에 황당함을 느꼈어요.

마왕 세피로스가 누군가요? 11차원 마계의 군주. 대천사들도 상대하기 힘든 초월자예요.

그런 마왕의 본체를 소멸 직전까지 몰아세웠다니!

“이게 세피로스라고요?”

저는 루시프가 가져온 주먹만 한 흑염 덩어리를 유심히 보았어요.

키이이이이!!

천하의 마왕 세피로스가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벌벌 떨고 있어요. 가여워라.

* * *

세피로스를 무찌르고 지구로 복귀한 태광휘는 다시 은둔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말만 은둔이지, 그는 쥴리아라는 아이와 함께 루한과 지구를 잇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지요.

마왕 세피로스 본체가 큰 타격을 입자, 개문 사태가 지구에서 다시 발생했어요.

하지만 태광휘는 협회와 검룡길드의 헌터들에게 2차 개문 사태를 맡기고는 지구와 루한을 이을 방법을 쥴리아와 함께 계속해서 연구했지요.

“큰일이에요! 이대로 있다간 그가 차원 코어에 대해 알게 될 수 있어요!”

저는 조바심을 느꼈어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태광휘는 곧 지구에서 꽤 긴 시간 동안 자리를 비울 테니. 어쩌면 영영 못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반면, 루시프는 뭔가 계획이 있는 모양인지 여유만만이네요.

그리고 얼마 후, 루시프의 말처럼 태평양 게이트가 열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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