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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208화 (208/212)

제208화

#208.

태광휘의 집은 그가 장기간 비운 사이에 많이 변했다.

본래에도 넓었지만 본의 아니게 확장 공사를 한 덕에 더 넓어졌다.

자신의 보금자리가 멋대로 바뀐 것에 태광휘는 처음에 불쾌함을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바뀌었다.

적어도 지금처럼 여러 사람이 한곳에 모여 수다나 식사를 하기엔 지금의 상태가 더욱 적합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로뮤 오빠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니까?”

“역시 그림자 핵과 반응하는 게 맞나 보군.”

만찬장에 앉은 루나가 아까 피스를 키우고 싶다고 떼를 쓴 일에 대해 설명 중이다.

“실은 저도 마왕을 키우고 싶다는 알 수 없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유리아도 조심스레 대화에 끼어들었다.

“세피로스는 일단 내가 보관하기로 했어.”

루나와 유리아를 번갈아 본 태광휘가 입을 열었다.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마왕과 솔라 님의 기운은 완전 반대니까요. 적어도 더 성장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지금 세피로스는 어디 있는 거야?”

“쥴리아.”

“엥?”

“쥴리아의 장난감으로 줬어. 쥴리아도 나와 같은 계열이니까.”

끼이이이이.

때마침 옆에서 피스의 비명이 들렸다.

“꺄하핫! 이거 재밌어!”

쥴리아가 마치 주물럭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피스를 이리저리 주무르고 있었다.

피스를 만지는 쥴리아의 양손에는 불과 빛의 에너지가 위생장갑처럼 씌워져 있었다.

늘 조용하고 적막했던 태광휘의 집에 활기가 솟는다.

루시, 구민주, 시몬, 유리아, 루나, 로뮤, 쥴리아 그리고 태광휘.

여덟 인연이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영웅들의 귀환!”

“인류는 지금까지 속아 왔다!”

“마인에게 넘어갈 뻔했던 세계! 3인의 집행관이 지켜 내다!”

만찬장에 TV가 있는 것이 좀 이상하지만, 그 TV에서 나오는 뉴스는 주목할 만하다.

“솔라 오빠는 역시 실물이 더 나아.”

짧은 사이 지구의 문물에 금방 적응해 버린 루나가 TV 화면을 보면서 말했다.

“태평양 게이트는 닫혔고, 저 태광휘와 헌터들은 돌아왔습니다.”

TV에는 태광휘가 중심에 서서 연설과 기자회견을 겸비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귀환한 헌터들과 협회장 박태오가 그런 태광휘의 뒤에 조신히 서 있다.

“하지만 저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불미스러운 일들이 여럿 있었고, 저는 이를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입니다.”

그가 지구로 돌아오자마자 모든 언론과 인터넷에서 루시와 시몬, 유리아에 대한 가짜 뉴스를 없앴다.

정정 보도가 하루 종일 이어졌고. 하나같이 마인과 일부 정치인, 기업인에게 협박당해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사과문이 줄을 이었다.

“책임자에겐 분명한 처벌이 있을 겁니다.”

태광휘는 세상을 피로 뒤덮을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생각도 없었다.

지금 박태오가 귀환한 헌터들과 함께 예리한 숙청을 준비 중이다.

여차하면 태광휘와 이 만찬장에 있는 사람들도 도움을 줄 것이다.

* * *

지구의 수호자 태광휘의 식사라고 해서 별다를 건 없다.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것도 먹고 싶었어.”

“네! 네! 루시 님, 또 있나요? 이번에 다 시켜요! 사람도 많으니까 남을 걱정은 없을 거예요.”

루시는 점심때부터 구민주와 함께 배달 어플을 정신없이 둘러보았고, 평소 먹어 보고 싶었던 음식들을 원한의 서 쓰듯 알차게 주문했다.

그리하여 거대한 식탁 위에 무수한 배달 음식이 하나둘씩 놓이기 시작했다.

“나 없는 동안 고생 많았어, 루시. 너와 유리아, 시몬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태광휘는 맥주 캔을 하나 따면서 루시에게 말했다.

“응…… 고마워, 솔라.”

괜한 태광휘의 칭찬에 루시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생각해 보니 시몬과 유리아의 공이 압도적으로 컸다. 자신은 솔직히 기분 내키는 대로 깽판만 쳤을 뿐이다.

“이것부터 드셔 보세요, 루시 님. 전에 이 파스타 먹어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루시 옆에 있던 구민주가 그녀에게 제일 먼저 로제 파스타를 건넸다.

“그래, 한번 먹어 보마.”

“오오오!”

드디어 루시가 식사를 하게 되자, 민주는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늘 고용주를 두고 혼자 식사를 할 때마다 체하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저 엄청난 똥고집이 마침내 끝난 것이다.

태광휘는 자신과 함께 첫 식사를 하기 전까지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는 루시의 사연에 처음엔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지고지순한 그녀의 고집에 알 수 없는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루시와 함께 영광의 첫 식사를 시작했다.

어색하게 포크를 쥔 루시의 손이 파스타를 조심히 말았고, 광휘 또한 그런 루시와 호흡을 맞춰 파스타 면을 포크로 말았다.

만찬장의 모두가 숨을 죽이고 이를 지켜보았다.

마치 높은 어른이 먼저 식사를 들기 전 수저를 들지 않는 예절을 따라 하듯, 누구도 태광휘와 루시가 첫 한입을 하기 전까지 식기를 만지지 않았다.

냠, 꿀꺽.

루시의 입으로 파스타가 들어갔고, 태광휘의 입에도 들어갔다.

“어때요?”

구민주가 눈을 빛내며 루시에게 물었다.

“너무 맛있어!”

루시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됐지? 이제 먹어도 되는 거지!”

그러자마자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루나가 치킨 다리를 들었다

“루나, 흘리잖아. 천천히!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지! 그렇다고 뼈를 씹으면!”

로뮤가 그런 루나를 케어하느라 바빴다.

루시의 기억에 더할 나위 없는 첫 식사이자 만찬이 시작됐다.

* * *

이후의 나날은 의외로 바쁘지 않았다.

태광휘는 지구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역할을 한다.

그 외 자잘한 일들은 다시 제정신을 차린 협회와 검룡길드가 알아서 할 터.

중간중간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도 시몬이나 유리아가 한 손 보탤 뿐이다.

그래서 근 3달 동안 태광휘는 루시와 원 없이 일상을 즐겼다.

일행들과 함께 여행도 다녔고, 때론 루시와 단둘이 데이트도 즐겼다.

루나시르네는 어려서 그런지 지구의 문물에 엄청난 속도로 적응했다.

1주일 만에 지구의 거의 모든 문물을 깨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루나 님! 이건 어때요? 이번에 새로 나온 게임기인데…….”

“사자!”

“어쩜! 진짜 멋지시다!”

“민주야, 네 것도 사!”

“꺄악! 사랑해요, 루나 님!”

“뭘~ 어차피 내 돈도 아닌데~.”

그 적응의 일등 공신에 구민주가 있었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었다.

루나와 구민주는 마치 친자매처럼 죽이 잘 맞았다.

지구에서 일상을 누리면서도 태광휘 일행은 본연의 일을 잊지 않았다.

‘루한보다 여기가 더 고향 같아.’

이제는 마도서보다 훨씬 익숙한 태블릿을 보며 루나가 문득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지구의 문물에 중독되어 버려서 큰일이다.

루한으로 돌아가면 도저히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았다.

게임, 배달, 택배, 드라마, 영화, 그리고 무엇보다 인터넷!

이것들을 버리고 어떻게 살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어서 지구와 루한의 안정적인 통로 연결에 노력해야 한다.

솔라 오라버니의 게이트 코어가 있다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점점 다가오는 차원 충돌이 문제다. 태평양 게이트를 닫았다지만 100년 내로 다시 마계와 지구가 합쳐질 것 같았다. 그리고 지구 다음은 루나의 고향 차원이다.

잠시 잡념 빠졌다가 벗어난 루나는 다시 태블릿의 수치를 보면서 미간을 좁혔다.

“으음.”

뭔가 풀리지 않는 모양.

“이번에도 실패야?”

태블릿을 보고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루나를 향해 태광휘가 물었다.

“실패는 없어. 계획과 다른 결과만 있을 뿐.”

“그게 실패 아니냐?”

“……아니야!”

뭔가 정곡을 찔린 기분이 든 루나가 발끈했다.

“그나저나 오라버니, 아까 시몬과 무슨 얘기를 길게 하던 거 같던데? 무슨 얘기를 한 거야?”

“별거 아니야.”

“거짓말. 시몬과 오라버니 사이가 어색한 건 여기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을걸?”

“루시의 심장에 있는 차원 코어를 분리할 방법은 없는 거야?”

“말 돌리네? 하긴, 지금은 새언니의 심장이 더 중요하지.”

“리리아에게 다시 한번 물어볼까?”

“다시 물어봐도 대답은 비슷할걸? 세계수님도 이런 현상은 처음이라고 하셨잖아?”

“그건 그렇지.”

“으으으음~.”

루나는 태블릿과 자신의 오라버니를 잠시 번갈아 보았다.

“마지막 남은 결론은 하나야.”

이윽고 살짝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둘이 날 잡지그래?”

처음이 어렵지, 한 번 입이 열리니까 루나는 멈추지 못했다.

“아니이이! 그렇게 붙어 다니면서 아직 첫날밤도 못 보냈다는 게 말이 돼?! 되냐고! 고자야? 고자냐고!”

오라버니가 먼저 해야! 나도 눈치 안 보고 로뮤 오빠랑 진도 좀 나가지!

초인적인 이성으로 간신히 뒷말은 뱉지 않은 루나였다.

“……괜찮을까?”

그런 루나의 말에 태광휘는 처음에 당황하더니, 이내 걱정스레 되물었다.

“뭐가?! 결혼식 전에 하는 게 어때서! 오빠 지구 출신이잖아! 여기가 루한이냐고!”

“괜한 부작용이 나타날까 조심했던 것뿐이야.”

태광휘는 자신의 왼손에 낀 두 개의 태양샘 반지를 보았다.

괜히 루시와 깊은 관계를 나누다가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라도 하면?

그런 걱정 때문에 둘은 지금껏 입맞춤도 제대로 하지 않았었다.

“눈 딱 감고 하자! 내가 봤을 때 남은 방법은 이것밖에 없는 거 같더라.”

“알았어.”

“여기서 하기 좀 그러면 호텔이라도 하나 잡든가. 민주 양한테 내가 말해 놓을게!”

루나의 설득에 태광휘는 결심을 굳히기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여기서 조금 떨어진 거리.

‘잘했어! 아주 잘했어요! 루나!’

벽 뒤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루시는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날 오후, 태광휘는 루시에게 저녁 데이트를 제안했고, 루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나섰다.

둘은 시내를 거닐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았다.

협회가 정상화되었고, 협회로부터 온갖 지원을 받은 루나가 인지 저하 마도구를 기가 막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

둘의 데이트는 처음이 아니다. 루한에서도 비슷하게 해 봤었고, 지구에서도 만찬 날 다음 날부터 종종 이렇게 나들이를 갔었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느낌이 다르다.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루시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

태광휘 또한 살짝 긴장한 모양인지 연신 먼 곳을 보거나 침을 삼킨다.

스윽.

둘의 손이 스쳤다.

움찔!

잔뜩 긴장하고 있던 루시가 화들짝 놀란다.

덥석!

그런 루시의 손을 태광휘가 꼭 잡았다.

“루시.”

“으, 응!”

“오늘 집에 가지 말자.”

“!!”

태광휘는 꽉 잡은 그녀의 손가락을 폈고, 자신의 왼손에 있던 태양샘 반지 중 검지에 있던 반지를 빼 루시의 왼손 약지에 끼웠다.

이제야 비로소 태광휘와 루시의 왼손 약지에 똑같은 반지가 끼워졌다.

“이 반지. 베아트리체가 만들었다고 했지.”

태양샘 반지를 본 광휘는 말했다.

“……응.”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아.”

어쩌면 루시프가 아스카에게 보여 줬다는 환영이 지금 이 순간이 아니었을까?

“응! 나도 솔라와 마찬가지야. 그 여자가 만들어 준 윈테이라도, 태양샘 반지도, 우리에겐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루시는 태광휘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더 멋진 복수가 된 것 같았기에 거부감은 크게 들지 않았다.

“…….”

태광휘는 잠시 말없이 루시를 보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감정은 고요했지만 깊고 끈적였다.

언제부터였을까?

루한에서 지구로 와서야 그는 자신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루시가 계속 생각났고 보고 싶었다.

그녀와 함께(정확히는 마검에 동기화되었을 때) 루한을 돌아다니고 세계수 묘목 속에서 예나를 구했던 기억이 진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리웠다. 그래서 쥴리아와 함께 루한으로 갈 방법을 찾아다녔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방황하던 그에게 루시푸르네는 어느덧 안식처였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눈앞에 루시가 있다.

태광휘는 고요한 눈으로 루시를 보다가 불현듯 입을 열었다.

“루시.”

“응?”

“고마워.”

“엉?”

“그냥 모든 게.”

뒤에서 앞에서 헌신적으로 자신을 도와준 루시를…… 그는 잊지 않았다.

그것이 회귀 전의, 게임 플레이 당시의 인연 때문이라도, 태광휘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것과 별개로 그녀의 진심은 진짜였으니까.

루한으로 강제 소환됐을 때. 그녀가 준 마검 윈테이라 덕분에 그는 마왕의 저주를 이겨 낼 수 있었다.

위기 때마다 루시는 태광휘 곁에 나타나 도움을 주었다.

그가 태평양 게이트에 있었을 때, 지구에서 루시가 보여 준 모습들은 광휘에게 더 큰 신뢰와 고마움으로 다가왔다.

그랬기에 고마웠다. 모든 것이.

“……?”

태광휘의 뜬금없는 고맙다는 말에 루시는 눈을 크게 깜빡였다.

쪽.

그런 루시가 귀여워, 태광휘는 작게 미소 지으며 그녀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고, 이에 루시는 괜히 붉어진 얼굴을 숨기고 싶은지 그의 품에 머리를 묻었다.

둘은 손을 꼭 잡고 구민주가 예약해 뒀다는 호텔로 향했다.

그렇게 막 호텔 앞에 도착했을 때.

불청객처럼, 전형적인 클리셰처럼.

파치지지짓.

두 사람이 서 있는 허공에서 균열이 일었다.

“게이트?!”

“……!”

게이트가 열렸다.

“꺄아아아악!”

“게이트, 인스턴트 게이트다!”

“협회에 신고해!”

허공의 균열을 발견한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루시와 태광휘는 전투 준비를 하면서 눈앞의 게이트를 노려보았다.

다행히도 게이트의 크기는 작았다.

파아앗.

얼마 후,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며 누군가를 뱉어 내더니.

슉!

순식간에 닫혔다.

“쿨럭…… 허억, 헉…… 으윽……!”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존재는 사람이었다.

루시와 똑같은 청은발과 태광휘와 똑같은 금색 눈동자가 고결한 여기사.

그런데 기사 제복부터 얼굴이 피투성이다.

“설마…… 루샬트?!”

루시는 만신창이 상태로 신음하는 루샬트를 보며 눈을 크게 떴고.

‘이 아이가?!’

태광휘는 처음 보는 미래의 자식을 말로 형용하기 힘든 감정으로 보았다.

“일단 데려가서 치료부터 하자.”

하지만 지금은 멀뚱히 구경이나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둘은 당장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루샬트를 서둘러 집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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