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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209화 (209/212)

제209화

#209.

집으로 안 올 것처럼 굴었던 태광휘와 루시가 금방 돌아오자, 루나와 민주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태광휘가 등에 업은 피투성이 여성을 보고는 또 한 번 놀랐다.

“얘가 내 조카라고?”

루샬트를 치료하면서 루나는 물끄러미 미래의 조카를 보았다.

“협회에 얘기는 끝냈습니다. 애초에 큰 피해가 없었기 때문에 언론과 SNS도 잠잠하고요.”

구민주가 막 전화를 끝내고 와서 태광휘에게 보고했다.

태광휘와 루시는 말없이 침대에 누워 있는 루샬트를 살폈다.

루샬트의 부상은 심해서 루나와 시몬, 로뮤가 번갈아 가면서 치료 중이다.

다행히도 빠른 치료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모양.

깨어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나, 얘 깨어나면 저 검 좀 연구해 봐도 될까?”

루나가 태광휘를 보면서 물었다.

루샬트는 의식을 잃은 상태임에도 한 손에 푸른색 검을 꼭 쥐고 있었다. 그 검의 손잡이 끝에는 게이트 코어라는 투명한 구슬이 있었는데 금이 가 있었다.

“내 제노사이드로 충분히 연구했잖아?”

“저건 또 다를 거 같단 말이지. 미래의 기술이잖아! 미래의 마도 공학! 저기 봐! 게이트 코어에 금이 가 있는 게 내 손길이 분명 필요할 거야.”

“나중에 네가 직접 허락받아. 난 협조하지 않을 거니까.”

“칫! 치사하다!”

그렇게 루나와 태광휘가 투닥거리고 있을 때였다.

“으음…….”

“어! 의식이 돌아왔나 봐!”

루샬트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움찔거린다.

얼마 후. 태광휘와 똑 닮은 루샬트의 금색 눈동자가 떠졌다.

“고…… 고모?”

깨어난 루샬트는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소녀를 보며 갸웃했다. 얼굴이 루나 고모와 매우 닮았다. 많이 젊어진 것 같았지만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왜 흑발에 흑안이지?’

점점 초점이 맞춰지는 루나의 용모에 루샬트는 의아했다. 자신이 기억하는 루나시르네는 아바마마와 같은 금발 금안이었으니까.

“정신이 드시오?”

이어서 고모로 추정되는 여자 옆에 있던 남성의 목소리도 들렸다.

“고모부!”

엘프기 때문에 외모 변화가 거의 없던 로뮤를 루샬트는 바로 알아보았다.

“고, 고모부?!”

“헉! 고모부래!”

루샬트의 말에 고모부의 놀란 반응과 고모의 꺅꺅거리는 비명이 들렸다.

막 부상에서 깨어나서 그런지 머리가 아프다.

루샬트는 그렇게 의식이 다시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으음 아직 완전히 회복은 안 된 모양입니다.”

“!!”

하지만 그때, 반대쪽에서 들린 또 다른 목소리에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암흑 성자…… 시, 시몬!”

루샬트는 시몬을 보곤 눈동자를 떨었다.

“오! 그 세계선에 저도 있나 보군요? 그런데 암흑 성자라니.”

휘익.

시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루샬트는 손에 꼭 쥐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아아, 결국 저질렀나 보군요.”

루샬트가 갑자기 휘두른 검을 여유롭게 피한 시몬은 당황한 기색이 놀라울 정도로 없었다.

“요즘 연결을 일부러 끊었거든요. 그래서 뭘 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지 뭡니까? 하지만 이 반응을 보니 때가 된 것 같군요.”

그는 마치 이런 날이 올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조소를 지었다.

“루시프!!”

그런 시몬을 향해, 루샬트는 공포에서 분노로 변한 눈으로 그의 또 다른 이름을 외쳤다.

“!!”

스르릉, 처억!

동시에 이 장소에 있던 모두가 무기를 들었다.

루나는 로사리오를 오브처럼 들어 음영술을 펼쳤고, 로뮤는 정령술을 화살에 담았다. 루시 또한 제한적이지만 설원을 준비했다.

유일한 비각성자인 구민주는 화들짝 구석으로 피신했고, 쥴리아가 그런 민주를 보호했다.

“…….”

오직 태광휘만이 팔짱을 끼고 있을 뿐이다.

“결국 이렇게 되었군요.”

자신에게 무기를 겨눈 동료들을 씁쓸하게 바라본 시몬은 과장된 몸짓으로 인사를 했다.

“지금까지 즐거웠습니다. 특히 루시 님, 당신은 모르시겠지만 루시 님의 심장 덕분에 처음으로 잠시나마 자유를 누릴 수 있었어요.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연결해야겠군요.”

모두의 충격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시몬은 알 수 없는 말을 이었다.

“이건 기념품으로 제가 가지고 가겠습니다.”

이윽고 품에서 흑염으로 된 덩어리를 꺼내 흔들었다.

“아앗! 내 피스가!!”

이를 본 쥴리아가 뒤늦게 울상이다.

파아앗.

시몬이 선 바닥 위에서 공간 이동을 알리는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어딜 도망가려고!”

루나와 로뮤가 막 공간 이동을 하려는 시몬을 향해 음영술과 화살을 쏘았다.

촤앗.

하지만 시몬이 펼친 생육의 막에 의해 저지되었다.

루나의 음영술 또한 마찬가지.

“아빠……?”

“솔라?”

쥴리아와 루시는 싸움에 참가하려다가 태광휘를 보곤 멈칫했다.

태광휘는 팔짱을 꼈을 뿐, 그 이상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우우웅, 파앗.

모두가 태광휘의 반응에 멈칫하는 사이, 결국 시몬은 피스와 함께 차원 너머로 사라졌다.

끼이이이이!

피스의 비명이 뒤늦게 메아리쳤다.

* * *

“허억!”

유리아는 갑자기 밀려온 탈력감에 몸을 크게 휘청였다.

“문 집행관님? 괜찮으십니까?”

옆에 있던 치안관이 그런 유리아를 보곤 걱정스레 물었다.

“예? 예!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그녀는 횡설수설하듯 답했다.

‘뭐, 뭐지?’

하지만 머릿속은 방금 느낀 알 수 없는 단절감으로 엉망이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시몬!’

이 탈력감과 단절은 시몬에 의한 것임을 유리아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완전히 끊어졌어?’

유리아와 시몬은 늘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구로 불시착한 이후로 점점 그 끈은 옅어졌다.

지금까지 이를 차원 이동의 긍정적인 후유증 정도로 여겼다.

그러다가 오늘,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무언가를 느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그녀와 시몬을 이어 주던 끈이 기어코 절단된 느낌을.

“문 집행관님? 상대가 안 좋아 보입니다.”

멍한 유리아의 귀로 다시 한번 치안관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현재 유리아는 협회의 지원 요청으로 모처럼 집행관 업무를 하고 있었다.

“마인 놈들이 저주라도 쏜 건가?!”

곧 전투에 돌입하기 직전, 모두가 유리아의 상태에 민감하다.

“…….”

유리아는 모두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이능을 살폈다.

알파는 여전히 꿈틀거린다. 어떤 자아도 없는 완전한 그녀의 일부가 되어서.

“괜찮습니다. 제 걱정은 마세요.”

유리아는 애써 웃으며 무장을 점검했다.

“…….”

그녀는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멍하니 만지작거렸다.

시몬에게 전화를 해 볼까 싶었지만 이내 관뒀다.

이상하게도 지금 그에게 연락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른다. 유리아는 미지의 두려움에 본능이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끼익.

잠시 후, 집행관과 치안관을 태운 차가 브레이크를 길게 밟는 것이 느껴졌다. 목적지에 도달한 모양.

덜컥, 쿵.

육중한 장갑차의 철문이 열리고 유리아는 장갑차 안에서 나왔다.

상쾌한 공기가 그녀의 정신을 맑게 한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자유로움이 유리아를 휘감았다.

“…….”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슬픈 기분이 들었다.

유리아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 *

거대한 순환이 만물을 지배한다.

우리는 그 순환을 ‘시험의 고리’라 불렀다.

11차원이 하위 차원을 침공하고, 12차원은 이를 방관하고, 그 과정에서 탄생한 강인한 영혼으로 신과 천사, 마족을 수급한다.

우주는 이 순환을 통해 끝없이 팽창하고, 차원 또한 세계선과 시간선을 무한히 뻗친다.

나는 어느 순간, 이 ‘시험의 고리’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이게 과연 선인가? 정의가 맞는가?

왜 무고한 이들을 외면해야 하는가?

우리 천계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바꿔야 한다. 바뀌어야 한다. 만약 바꿀 수도 없고 바꿀 의지조차 없다면 천계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12차원의 대천사이자, 천계의 치품 천사인 나라면! 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천계의 온 천사들이 결의하고, 하위 차원의 모든 신과 영웅들이 힘을 모은다면! 그렇게 하나가 되어 마계를 공격한다면! 이 시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거라고 봤다.

하지만 천사들은 거절했다. 하위 차원의 신과 영웅은 호응하지 않았다.

모두가 이 시험의 고리 속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에 타락한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생각을 바꿨다.

모든 것은 더럽혀졌고 오염됐으며 어긋났다. 전부 밀고 다시 새롭게 세워야 한다.

방법은 존재한다. 13차원에 깊게 잠드신 만물의 아버지를 깨우면 된다. 아버지가 깨어나 이 엉망인 우주를 본다면 단번에 모든 것을 무로 만드실 거다.

하지만 13차원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천계의 대천사도, 마계의 마왕도, 감히 열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13차원을 열 방법을 연구했고, 마침내 실마리를 찾았다.

이노센티아! 12차원과 11차원의 정수가 합쳐진 ‘희망’.

마계의 그림자 군주와 최초의 흡혈귀 알파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둘은 기껍게 나의 생각에 공감했고, 흔쾌히 합세하기로 하였다.

또 하나, 가련한 평천사 중에 한 명을 포섭했다.

천계에서 유일하게 염증을 느끼고 있던 우둔한 좌품 천사였다.

이 아이는 우리의 대의보다는 정체된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시간과 노력이 좀 들어갔으나, 결국엔 리리스라는 천사를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좋아, 이젠 결의를 실행하고 열매를 맛볼 일만 남았다.

실패! 실패, 실패, 실패!

우리의 결의는 실패했다. 은밀하고 위대하게…… 천상의 중심에서 두 마족과 함께 이노센티아를 발동하는 것까진 성공했다.

하지만 그렇게 엿본 13차원은 우리에게 만물의 아버지를 보여 주지 않았다.

“루시프! 마계의 사악한 존재들을 천상으로 끌어들이다니!”

“게다가 이노센티아?! 저 끔찍한 주문은 무엇이란 말인가?”

“천상의 위대한 규율을 어긴 너의 죄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도다.”

뒤이어 천계의 대천사들과 평천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두 마족을 포위했다.

우리는 순식간에 제압당했고, 징벌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다.

나는 거대한 혼란과 절망을 맛보았지만, 한편으론 또 다른 희망을 보았다.

13차원의 틈새에서 나는 보았다.

창조주 아버지의 그림자를!

나는 알아 버렸다. 13차원을 열 수 있는 진정한 열쇠를!

아아! 창조주 아버지, 어찌하여 이렇게 숨겨 놓으셨는지요.

13차원의 열쇠를 무한한 차원 어딘가에 던져 놓으시다니.

그 열쇠를 일개 필멸자 따위에게 품게 하시다니.

심지어 그 필멸자가 대를 이어 그 힘을 키우고, 그렇게 완성된 필멸자가 주인 없는 세계의 차원 코어를 또 얻어야만, 비로소 열쇠가 완성되게 설계하시다니!

이것은 아버지, ‘0’ 그 자체인 확률입니다. 이런 지난한 가능성을 내리시다니.

하긴, 만물을 무로 돌리는 것인데 이 정도는 되어야겠지요.

잘 알겠습니다, 아버지.

제가 만든 이노센티아는 자명종이었습니다. 당신의 잠을 깨우는 자명종. 하지만 자명종 소리가 들리려면 일단 문을 열어야 하지요.

좋습니다. 저는 지금 이렇게 추락하지만,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기필코 당신이 잠든 방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들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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