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이상한 애들.
어둡고 습한 지하 감옥 안. 모습이 온전치 못한 사내들 앞에 아카데미의 수장 알베르토가 서 있었다.
“도대체… 도대체!!! 네놈들은 일을 어떻게 처리했길래!!!”
분노한 알베르토의 외침이 감옥 안에 울려 퍼지고, 사내들은 저마다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을 달싹였지만, 입막음을 위해 침묵 마법을 써둔 덕에 나오는 소리라고는 끅끅거리는 신음뿐이었다.
-쾅!
그가 쏘아 보낸 마법은 감옥에 걸려있는 방어 마법에 막혀 그대로 소멸하고 말았다.
그 덕분에 감옥 안에 갇힌 자들에게는 아무런 타격이 없었지만, 그들은 그야말로 공포에 덜덜 떨고 있었다.
그들은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한 채 알베르토의 분노를 힘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툭
그런 그들의 앞에 떨어진 작은 주머니 하나.
“그분의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해라. 목은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을 테니.”
주머니를 주워 든 한 사내의 손이 덜덜 떨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주머니 속엔 독이 든 구슬 여덟 개가 들어있었다.
“끄억… 읍! 으으으!”
사내가 주머니를 손에 든 채, 마치 거위가 꺽꺽대는 듯한 소리를 내며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그런 사내를 따라 다른 이들도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며 저마다 무어라 항변하듯 입을 달싹였다.
“네놈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알고 있지 않나? 언제나 그분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혀를 쯧쯧 차 보인 알베르토가 몸을 돌려 감옥을 빠져나갔다.
***
“모두… 말입니까?”
“…그렇더군요.”
“하, 도대체 경비들은 뭘 했길래!”
“그들 역시 따로 처벌할 생각입니다.”
알베르토의 말을 들은 아만은 콧바람을 씩씩 불어댔다. 괘씸한 마음이 든 아만이 그들을 찾아가 직접 심문할 생각이었다.
그들을 잡았을 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다들 몇 대씩 쥐어박고 나니, 나약한 인간들이 까무룩 기절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내지도 못했는데 간밤에 모두 독을 먹고 자결을 했다고 한다.
알베르토가 직접 가 추적마법까지 써 보았지만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하니 그는 답답증이 치밀어 미칠 지경이었다.
‘내가 먼저 갔어야 했어!’
하지만 후회는 언제 해도 늦었다. 누가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겠는가!
“너무 심려치 마세요. 학장의 이름을 걸고 꼭 범인을 찾아낼 테니…….”
주먹을 꽉 쥐어 보이는 알베르토의 눈이 결의에 차올랐다.
“후…… 알겠습니다.”
그 눈빛을 본 아만이 길게 한숨을 내쉰 뒤 학장실을 빠져나왔다.
‘저 늙은 놈이 뭘 하는지 알아봐야겠군.’
***
“오늘도 와주셨군요. 루카스님.”
그날의 일이 있고 난 뒤, 루카스를 바라보는 사서의 눈빛에는 어느새 존경까지 깃들어 있었다.
그의 신분이 평민이고, 아무리 자신이 백작가의 도련님이라 한들 이렇게까지나 깍듯이 존대를 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건만 이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져 있었다.
마치 진정한 스승을 대하는듯한 노인의 태도에 루카스는 이제 조금 불편해지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제 모습은 열한 살짜리 작은 꼬마에 불과했다. 그 안에 든 게 아무리 오천 년 묵은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남들이 그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너무 그렇게 존대하지 않으셔도…….”
“아닙니다. 지금의 저는 루카스님의 제자나 다름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노인의 인자한 웃음에 어색한 웃음으로 화답한 루카스가 자리에 앉았다.
그날 이후 약속한 대로 매일같이 찾아와 그의 마법 수련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맨 처음 그 마법석을 주웠을 때 분명 제 몸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마나가 생겨났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조금 달랐다. 그에게 아무리 마나를 찾는 법을 일러주어도 그는 똥간에 앉아 힘을 주는 노인처럼 인상만 찌푸릴 뿐 도통 마나를 찾아내지 못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심장 부근에 온 정신을 집중해 보세요. 그곳을 더듬어 보세요.”
“자꾸 더듬으라 하시는데 저는 아무리 더듬어봐도 그것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그게 아니라! 더듬는다는 것이 그… 뭐랄까… 보이지 않는 손을 불러내 보세요!”
“그러니까 그 보이지 않는 손이… 저는 없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감각! 그래요. 감각을 집중시켜 보세요.”
루카스는 답답증이 치밀어 미칠 것만 같았다.
“끄으응…….”
눈을 감은 브랑디가 다시 한번 앓는 소리를 냈다.
이러기를 벌써 몇 주째였다. 아카데미의 방학 역시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아…… 잘 한번 찾아보세요.”
깊게 한숨을 내쉰 루카스가 안타깝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아니, 이걸 못 찾나 그래?!’
심장 부근에 서클을 그려내던 루카스는 답답한 마음에 마른세수를 해댔다.
‘이걸! 왜 못 찾느냐고!’
***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기 전 제 방으로 찾아온 아만이 전한 충격적인 소식에 루카스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루카스 군? 루카스 군~”
‘귀찮은 개망나니 도마뱀 자식! 어디서 이름을 함부로 불러 대!?’
얼이 빠진 채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는 제 앞에서, 잔망스럽게 이름을 불러대며 손까지 샥샥 흔들어 보이는 아만의 얼굴을 보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니까… 제가 기초반……?”
“맞아. 기초반으로 강등당했단다.”
‘강등’에 힘을 주어 말하는 아만의 주둥이를 콱 뭉개버리고 싶었다.
어떻게 된 도마뱀인지 아카데미 안에서는 저렇게나 자연스럽게 반말을 찍찍 잘해대고 있었다.
일부러 제 속을 긁으려 하는 것이라면 굉장한 성공이었다. 루카스의 속은 지금 박박 긁혀 상처가 가득했으니.
‘내가…… 아무리 마법을 보이지 않았다 해도…! 기초반이라니?!’
처음엔 그저 이 아카데미에서 자신이 가진 문제를 풀어낸 다음, 마법 실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다면 당장에라도 나갈 생각이었다.
아카데미보다는 바깥 환경이 마법을 수련하기엔 훨씬 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의도치 않게 한 단계가 강등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고귀한 마법생물의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가 남고 말았다.
“확실히 강등……이 맞습니까?”
“그럼! 강등이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성적은 나름대로 중위권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초급반에서 기초반으로의 강등. 기초반은 말 그대로 마법의 ‘ㅁ’ 자도 모르는 그런 치들이 있는 반이었다.
마력석으로 측정한 제 마나가 너무 미미했나 싶었지만, 그것은 또 아니었다.
1서클 정도의 마나를 보였으니 초급반에 딱 적합한 정도였다.
‘그렇다면 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그의 앞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던 아만이 입을 열었다.
“아! 나도 기초반 담임 교수를 맡게 되었단다!”
“……?”
“아무래도 우리 루카스 군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싶달까…….”
몸을 배배 꼬며 제 푸른 머리를 귀 뒤로 넘겨 꽂은 아만이 싱긋 웃어 보였다.
‘저 쌍놈의 도마뱀 새끼가!!!’
***
4월 학기의 입학 연회가 시작되었다.
매 학기마다 신입생을 받는 아란트 아카데미의 새 학기는, 재학생들 역시 새로운 레벨로 편성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첫 학기와 다른 테이블이었다.
두번째 테이블에서 첫 번째 테이블로 옮겨오게 된 루카스는 다시 한번 재학생들과 신입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쟤 걔잖아? 천재라던.”
“풉! 내가 뭐랬어? 천재 아니랬지?”
한 학기를 조용히 다녔던 루카스는 학생들의 관심이 완전히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전에 그들의 관심을 다시 가지고 오고 말았다.
“어이! 나 기억하지?”
테이블 건너편에서 자신을 부르는 듯한 소리에 고개를 든 루카스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입학식에서 보았던 그 사내였다. 아무렇지 않게 제 어깨에 손을 올리고 첫날부터 기분을 잡치게 만들었던 장본인.
“인상 쓰면 뭐 어쩔 건데? 꼬마 도련님?”
비릿하게 웃음 짓던 사내가 저를 향해 다가왔다.
“이제 우리 같은 반이네?”
“꺼져라. 대갈통을 날려버리기 전에.”
“하! 당돌한 꼬마 자식. 강등을 당했으면 주제를 좀 알 것이지…… 이름만 귀족이지 뭐 볼 것도 없는…… 으아악!”
어디까지 나불거리나 싶어 건방진 주둥이를 보고 있던 그때였다. 사내의 목에 작은 불빛이 번쩍이더니 사내가 제 목을 붙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건방진 놈. 감히 신분도 모르는 천한 종자 주제에 귀족을 욕보이다니.”
반짝인 불빛의 주인공은 루카스보다 한 뼘 정도밖에 커 보이지 않는 어린 소년이었다.
‘저건 또 뭐야? 그리고… 마법도 아닌 마도구를 썼어?’
소년의 손에 들린 것은 분명 마도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주문 한마디 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었다.
제 작은 몸을 보호하기 위한 호신용품이라도 되는지, 손에 꼭 쥔 마도구의 끝이 빛나고 있었다.
마도구는 아무리 기능이 별 볼 일 없다 한들 비싼 값을 자랑했다.
하다못해 향기를 내게 하는 마도구 조차도 귀족 부인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나가 비싼 값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지만, 남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마도구라니. 분명 엄청난 집 자식이 분명해 보였다.
“흥! 건방진 자식들… 아무리 신분이 나뉘어 있지 않다고 한들…… 쯧!”
말을 마친 소년이 몸을 홱 돌려 자리를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당차게 돌린 몸은 얼마 가지 않아 루카스와 같은 테이블에 멈춰 섰다.
“흠흠…….”
작게 헛기침을 해 보인 소년이 루카스와 두 자리 떨어진 곳에 어색하게 앉았다. 루카스와 같은 기초반인 듯싶었다.
소년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던 사내가 거친 기침을 해대며 땅을 짚고 일어섰다.
“이, 이런 개 같은! 쿨럭! 쿨럭!”
무언가 단단히 결심한 듯 비척거리며 자신에게 걸어오는 사내를 바라보던 루카스의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여기서 저 자식을 때려눕히고 상급반으로 가?! 아니, 아니지… 그럼 귀찮겠지.’
지척까지 다가온 사내가 제게 손을 뻗었다.
“네 이놈!!!”
작은 나무막대 같은 마도구를 든 소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치자, 사내는 이미 학습이라도 되었는지 제 목을 얼른 감쌌다.
“이, 이런 건방진 꼬마 자식이!!!”
소년이 마도구를 고쳐 잡고 쏘아내려던 그때, 누군가 사내를 막아섰다.
아만이었다.
“그만! 새먼트 시깃. 퇴학이라도 당하고 싶지 않은 거라면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을 겁니다.”
“크윽!”
아만의 말을 들은 새먼트라는 사내는, 교수에게까지는 대항할 생각이 없는지 꽤 순순히 물러났다.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 하나.’
그가 마도구를 손에 꼭 쥔 채 손에서 놓지 않는 소년을 바라봤다.
귀족을 욕보인 것이 많이 분했는지 아직도 씩씩거리는 소년에게 다가간 아만이 손을 내밀었다.
그것이 악수를 청하는 줄 알았는지 소년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아니, 마도구.”
그가 내민 손을 툭 쳐낸 아만이 싱긋 웃으며, 소년의 손에 들린 마도구를 향해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이, 이건! 내 아버지인 시러스 오닐 공작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절대 안 됩니다!”
마도구를 등 뒤로 재빠르게 숨긴 소년이 제 아비의 이름을 냉큼 외쳤다.
그러자 주변의 시선이 소년에게 빠르게 옮겨갔다.
오닐 공작가.
아란트 제국에서 입김이 세기로 소문난 공작가였다. 서자의 편에 서서 그를 황제의 자리에 앉게 한 일등공신.
그 덕에 오닐 공작가는 제국 내에서 견줄 가문이 없을 만큼 크게 성장했다.
“예. 집에 갈 때 돌려드릴게요~”
지체 높은 공작가를 비아냥거리듯 싱긋 웃어 보인 아만이 마법을 써 소년의 손에 있는 마도구를 낚아챘다.
“어휴! 지긋지긋한 귀족들. 여기 와서까지 저런 소릴 들을 줄이야!”
갑작스레 들려오는 얇은 소녀의 미성에 놀라 돌아보는 둘. 긴 밝은 갈색 머리를 아무렇게나 틀어 올린 그녀는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며 고개를 저어댔다.
금안에 가까운 밝은 그녀의 눈동자가 스키르를 향했다.
-털썩!
아무렇지도 않게 제 옆에 앉은 소녀를 보는 소년의 눈이 순간 매섭게 변하더니.
“건방진 것. 감히 내가 누구인 줄…….”
“근방진 긋~ 감히 눼가 누구인 쥴~”
강적이었다. 소년의 말을 따라 하며 얄밉게 얼굴을 비틀어 보인 소녀가, 높게 묶어 올린 머리를 한번 쓱 쓸어내렸다.
“이런, 미친!!!”
“베~”
화룡점정. 알차게 혓바닥을 쏘옥 내민 소녀, 폴라 펠레브가 고개를 홱 돌려 루카스를 바라봤다.
“안녕? 너도 귀족이니?”
“…….”
이상한 애들이 둘이나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