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웨어울프 잡다가 화가 난 백정.
백작저로 돌아온 루카스는 아직까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만에게 집이 가난하다고 말하자, 아만은 결국 숨을 헐떡이며 곧 죽을 것처럼 웃어댔다.
창피한 것은 괜찮았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창고에서 좀 꺼내다가 쓰시면 안 됩니까?”
“……그, 그래도 되긴 하는데!”
“그런데요? 왜 제가 웨어울프 가죽까지 벗겨야 됩니까?”
순간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X됐다.’였다. 그만큼 당황스러웠다.
대답을 머뭇거리며 한참을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아, 가져다주면서도 뭐라고 할 말이 없겠구나…….”
“그, 그렇지! 내가 그 진귀한 것을 어디서 가져왔다고 할 거야? 응? 그렇잖아?”
“그럼 그냥 그렇다고 하시면 되지 왜 화는 내십니까, 그래?!”
“어, 어디서 언성을 높이느지!?”
“하! 높이지도 아니고 높이느지는 또 뭐랍니까?”
“그만, 그만!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하여튼 웨어울프나 잡으러 가!!”
“흥! 내가 뭐 웨어울프 잡는 백정도 아니고…… 에잇!”
***
어찌나 당황했는지 말까지 꼬였었다. 조금 전 일을 다시 떠올리니 또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살아왔던 세월 중 이렇게도 수치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루카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똑똑똑
“도련님, 아카데미에서 아만 교수님이 찾아오셨어요.”
문 너머로 들려오는 사용인의 목소리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하아…… 웨어울프나 잡으랬더니 여긴 왜 온 거야?’
거칠게 머리를 흩뜨린 루카스가 문 너머에 대답했다.
“알겠어. 곧 나갈게.”
***
“아, 루카스. 아만 교수님께서 찾아오셨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제 아비인 시비에 백작과 아이들이 먼저 보였다.
“루키! 얼른 와!”
제게 손을 열심히 흔들어 보인 폴라는 무엇이 그렇게도 신이 나는지 연신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루카스, 교수님께서 넬라도 돌봐주셨다!”
그러고 보니 아직 누워있어야 할 넬라 역시도 꽤 쌩쌩한 모습으로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해 보인 루카스의 얼굴에 작게 경련이 일었다.
“하하, 루카스 군! 제가 반갑지 않은 건가요?”
“…….”
“녀석도 참, 교수님께서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시오. 애가 아직 철이 없어서…….”
“아닙니다. 백작님. 루카스 군이 얼마나 어른스러운데요.”
루카스는 싱긋 웃어 보이는 아만의 죽통을 그대로 돌려 빼놓고 싶은 충동을 꾹 눌렀다.
“아, 그보다 백작님. 오는 길에 들으니…… 영지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던데요.”
“아…… 개의치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작은 소동입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일지라도 자식의 선생에게까지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과, 제 아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꿋꿋하게 지켜 보이는 백작의 입가가 부자연스러웠다.
“아닙니다. 저도 마침 연구에 필요하던 참이고…… 백작님께서 조금 도와주신다면 제가 한번 나서봐도 괜찮겠습니까?”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아만이 웨어울프를 짠! 하고 처리하면 그 가죽이나 가져다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가죽이나 부산물들이 어디에서 뿅 하고 나타나기는 힘들었다.
아만은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
‘꼬마, 제법인데?’
우선 눈앞의 문제를 해결이나 할 심산으로 아만에게 일거리를 툭 던져놓기만 했었다.
하지만 아만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접근해 왔다.
방학을 맞아 제 고국으로 돌아가다가 들러가는 척. 들러가는 김에 문제를 해결해 주고 백작의 위신을 세워줄 만한 ‘부탁’의 말까지 더했다.
“정, 정말이십니까?”
“예, 제가 무엇 하러 실없는 소릴 하겠습니까? 저도 고국으로 돌아가는 중에 잠시 신세를 질까 싶어 들른 것인데…… 이렇게 연구에 필요한 재료가 이곳에 딱 나타나 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하하!”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저와 우리 영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백작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우와, 그럼 교수님이 그 늑대들 잡아 주시는 거예요?”
“그럼! 웨어울프쯤이야.”
해맑게 묻는 폴라의 머리를 다정하게 쓸어준 아만이 활짝 웃어 보였다.
‘창고 못 찾으면…… 진짜 큰일 난다…….’
***
“자, 그럼 출발하시지요.”
“예. 위치는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그러니 백작님께서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제 뒤를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래 봬도 검술 아카데미 차석 출신입니다.”
아만의 당부에 제 검집을 한번 꽉 쥐어 보인 백작의 표정이 무척 다부졌다.
“하하! 역시, 백작님께서 안 계셨더라면 혼자서는 힘들었을 텐데 너무나 든든합니다!”
그렇게 시타타의 웨어울프 원정대가 꾸려졌다.
말이 원정대지 인원은 단출했다. 노쇠한 기사 둘과 아만, 그리고 백작이 전부인 원정대는 실력 있는 마법사의 동행에 기세가 등등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잠시. 숲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만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백작과 일행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하, 하지만…….”
“괜찮습니다. 제가 신호하면 그때 와주시면 됩니다.”
아만이 살짝 윙크해 보였다. 그들 역시 아만의 실력을 알기에 아만이 부리는 것이 객기가 아닌 여유인 것을 알았다.
“그럼 언제든지 신호해 주십시오.”
짧게 고개를 끄덕인 아만이 홀로 숲속으로 들어섰다. 얼마 가지 않아 웨어울프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하, 아주 겁대가리들을 상실했네!”
제 레어가 위치한 숲속에서, 그것도 웨어울프 한 무리가 이렇게 민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모여 노닥거리고 있다니?
아무리 백 년 가까이 유희 중이라 한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집을 비운 것은 비운 것이고, 그렇다고 제 기운을 주기적으로 뿌리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야, 너희 다 미쳤냐?”
아만이 웨어울프 무리에게 여유롭게 다가갔다.
자신의 기운을 살짝만 내비쳐도 웨어울프 무리 따위는 그대로 꼬리를 말고 바닥을 설설 길 것이었다.
-크르르…….
“어? 이것들이?”
하지만 아만을 발견한 웨어울프 무리는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혹시나 자신이 뿌린 기운이 모자란가 싶어 더욱 기운을 팍팍 뿌려댔다.
-크르르…… 크르르…….
“어?! 이, 이것들이?!”
이 정도의 기운이라면 주변 몇 킬로까지 기운이 뻗쳐 온 동네 몬스터가 땅에 머리를 푹 박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제 눈앞에 웨어울프 무리는 정신이 나간 것인지 아직도 흉흉한 이빨을 드러낸 채 곧 돌진이라도 할 듯 뒷발을 굴러댔다.
“하, 이거 뭐 잘못됐는데?”
그들의 눈을 자세히 보던 아만이 무언가를 눈치챘다. 그들의 눈에 초점이 없었다.
길을 헤매는 고양이 한 마리의 눈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는데, 이 웨어울프들의 눈에는 영혼은커녕 그 비슷한 것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정도면 누군가 손을 쓴 수준이 아니었다.
토끼 한 마리의 영혼을 빼내려 해도 꽤 높은 수준의 술식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몬스터 중에서도 상위 티어에 속하는 웨어울프의 영혼을 지배했다는 것은 누군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런 장난질을 했다는 것.
“그 늙은이…….”
머릿속을 스치는 한 사람. 마탑주 알베르토.
이 또한 그와 연관된 조직 라크메르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았다.
“같잖고… 하찮은… 인간들이…….”
아만의 목소리가 분노에 잠겨 낮게 그르렁거렸다.
지금의 분노는 황성에서 구울이 나타났을 때와, 아이들이 몰살당했을 때. 그리고 죄 없는 이민족들이 범인으로 몰려 처형당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감히… 감히… 내 집에서…….”
-콰콰쾅!!! 쾅!!!
그의 외침과 함께 굉음이 터져 나왔다.
온 숲은 불길로 휩싸였으며, 눈앞에 있던 웨어울프는 흔적도 찾을 수 없이 짓뭉개져 있었다.
“감히 인간 놈들이…….”
아만의 눈동자가 분노에 휩싸였다.
“이 아마록 테리디어의 레어에…… 겁도 없이!!”
-쿠궁…… 쿵! 쿵!
그의 분노에 대지가 진동했으며, 대지의 진동음과 화마에 휩싸인 숲이 타들어 가는 소리는 마치 멸망을 보는 듯했다.
-쿠쿵! 쿵!
“아만!?”
그때였다.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에 아만이 고개를 홱 돌렸다.
“정신 차려! 다 죽일 거야!?”
루카스였다. 그의 얼굴을 본 아만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루카스님?”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만의 눈가가 떨려왔다.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세차게 내저어봤지만, 살기에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미친. 가죽 벗기랬더니…… 이건 뭐 퍼즐 맞추듯 맞춰도…… 됐고, 정신이나 차려.”
가죽을 깔끔히 잘 벗기나 싶어 몰래 따라와 본 것인데 일이 커져 있었다.
아만의 기분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감히 자신의 구역에서 인간들이 이토록 설쳐댔으니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이것들이 해놓은 짓을 보십시오. 전부 몰살시킬 겁니다.”
“진정하고 우선 돌아가자.”
이미 아만이 내뿜은 기운과 미친 듯이 흔들린 대지 덕분에, 제 아버지와 기사들은 정신을 잃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루카스는 그들을 수습할 새도 없이 아만의 폭주를 막으려 단숨에 달려왔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백작과 기사들 역시도 통구이가 되었거나 시체도 찾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드래곤에게 인간은 눈앞에 흔적도 찾아보기 힘든 웨어울프와 똑같은 존재였다.
“진정이 안 됩니다. 건방진 인간 놈들을…… 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여지껏 보아왔던 그의 장난스러운 표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 족쳐야지.”
“그건 당연한 거고요.”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이것들은 뿌리를 뽑지 않으면 언제고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그럼 전부 몰살시키면 되는 일 아닙니까?”
“…….”
루카스 역시도 드래곤으로 살아왔던 그 긴 시간 동안 아만과 같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저 역시도 인간들이 진절머리나게 싫었을 때가 있었으며, 차라리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싶었던 때도 있었다.
이 세상엔 수많은 종족이 존재했으며, 그 종족 중에 인간과 같거나 더 높은 지능을 가진 종족들도 많았다.
엘프, 드워프, 세이렌 등등 수많은 인간형 종족들이 존재했으니, 세계의 악이나 다름없는 인간 따위야 멸종시켜도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인간들은 자연과 타협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다른 종족을 해치는 것은 물론 같은 종족인 인간들을 해치는 것 역시 서슴지 않았다.
그런 인간들이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쓸데없이 숫자만 많고 다른 이종족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득을 부득부득 챙기는 바퀴벌레만도 못 한 종족을 몇 번이고 멸종시키고 싶었다.
“안 된다.”
“왜 안 됩니까? 루카스님 역시도 제국 하나를 쓸어버린 적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
“아버지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삼천 년 전에 있었던 그 사건을요. 그런데 저는 왜 안 됩니까?”
어느새 기억 저 뒤편에 자리해, 꺼내 보기 힘들었던 삼천 년 전의 사건을 떠올린 루카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왜 안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니까.”
“예?”
“필요하니까.”
“하!”
루카스의 대답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 아만이 이를 부득 갈았다.
“나 역시도 모두 겪었던 일이다. 하지만 인간 역시도 꼭 필요한 종족이다.”
“루카스 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인간들이 숲에 사는 엘프며 드워프들까지 죄다 잡아다가 노예로 부리고!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픽시들까지…! 이것들이 했던 그 만행들을 모두 아시지 않습니까!”
“……나도 안다.”
-쾅!!
도통 화가 가라앉지 않는지 아만의 마력이 다시 한번 허공에서 폭발했다.
“그런데 왜!!! 왜 안 되냐는 말입니다!!! 제집까지 들어와 이 가엾은 종족의 영혼까지 조종했습니다!!!”
“……네 아버지에게 가서 다시 물어봐라. 어째서 인간들이 꼭 필요한지 말이다.”
말을 마친 루카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약속하지. 이것들을 끝까지 찾아내 뿌리 뽑겠다고.”
“…….”
“네가 돕지 않아도, 자결을 해 당장 신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루카스 역시도 인간으로 산 십 년 남짓의 세월보다, 드래곤으로 살아온 반만년의 세월이 더 길었기에 인간보다는 드래곤의 편에 서는 것이 당연했다.
“……알겠습니다. 로드.”
루카스의 단호한 표정을 본 아만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스는 자신이 아는 로드였다.
그렇기에 그의 말에 더 이상 토를 다는 것은 무의미했으며, 루카스가 하는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