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아카데미 축제 (1)
마탑주이자 아카데미의 수장인 알베르토의 죽음이 가지고 온 파장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제국민들은 명망 있는 마탑주의 죽음에, 의문을 넘어 분노까지 보이고 있었다.
“아니, 알베르토님께서 그렇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셨는데, 황제 폐하는 뭐 하고 계신 거랍니까!?”
“어허, 말을 삼가게.”
“허, 지금 말을 삼가게 생겼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알베르토 님이라고요!”
아카데미가 생긴 이후 알베르토는 꽤 두꺼운 팬층을 가지고 있었다.
인자하며 현명한 마탑의 주인.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자애로운 마법사.
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뛰어난 마법사.
그런 마법사를 보유한 아란트의 제국민들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런 마탑주가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그런데 황제라는 사람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알베르토의 죽음에도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으니, 제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 소식 못 들었는가?”
“무슨 소식 말입니까?”
“황제 폐하 소식 말이네.”
“뭐, 잘 먹고 잘 싸고 있겠죠.”
“아이고, 이 양반 아무것도 모르는구먼? 이쪽으로 가까이 와보게.”
목소리를 낮춘 사내가 조심히 손짓했다.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간 사내 역시도 덩달아 목소리를 낮췄다.
“그게…….”
“뭡니까……?”
“황제 폐하께서 바보가 되셨다는 소문이 있네.”
“하! 형님도 참.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이 어딨답니까!?”
사내는 형님이라 불린 자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코웃음을 쳤다.
황제가 바보가 됐다니? 알베르토의 죽음에 이어 황제까지 바보가 되면 제국은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진짜일세. 자네도 알지 않는가? 황제궁에서 일한다는 내 사촌 데릭말일세……!”
“……진짜라고요?”
“그래. 데릭 걔가 말해준 정보이니 정확할걸세. 그… 똥오줌도 못 가린다는 말을 하더구먼…….”
“허, 그럼 앞으로 제국은 어떻게 되는 거랍니까?”
사내의 얼굴에 근심이 드리웠다.
“뭐, 우리가 그걸 알 방도가 있겠는가?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잘들 하시겠지…….”
“허 참… 이거 큰일 났구먼요…….”
***
아카데미의 카페테리아.
“너희도 들었지? 알베르토님 말이야.”
“알고 있다.”
폴라와 스키르 역시도 빠르게 번진 소문을 접한듯했다.
“그럼 어떡해?”
“알아서들 하실 거다.”
스키르는 공작가의 영식답게 무언가 들은 이야기가 있는지, 시큰둥한 표정으로 샐러드를 휘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스키르는 제 형인 스턴이 집에 돌아온 뒤로 한동안 침울해 있다가 요즘에서야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는 중이었다.
“너는 참 태평하다. 안 그래, 루키?”
“뭐, 스키르 말도 틀린 건 없지. 알아서 하실 거다.”
“뭐야? 귀족들은 원래 다 이래?”
제 편을 들어줄 거라 생각했던 루카스 역시 너무나도 태평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걱정한다 해도 달라질 것도 없고 말이야.”
“아니, 그래도 그렇지! 학교장님이 주, 죽었잖아……!”
입에 담지 못할 이야기라도 되는 듯, 폴라는 목소리를 낮췄다.
“언니… 그럼 우리 이제 학교장님이 없어……?”
“응…….”
넬라 역시도 누군가 죽었다는 말에 겁을 먹었는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루카스는 그런 아이들을 다정히 달랬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그 자식은 악마보다 못한 놈이니 그런 슬픈 표정도 아깝다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뭘 알겠는가? 끔찍한 일은 그저 오래 산 용이나 겪으면 되지…….
“그럼 우리 축제는 어떻게 되는 거야?”
“……맞아. 학교장님도 없는데.”
폴라의 말에 넬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축제. 말이 좋아 축제지, 사실 황실에서 몇 년에 한 번 아카데미 학생들의 실력을 가늠하고자 여는 큰 대회였다.
물론 테스트에 참여하지 못하는 기초반 학생들을 비롯한 다른 이들을 위해 소소한 이벤트들 역시 많이 있었고, 제국민과 타국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이벤트도 많았다.
“그건 잘 모르겠군.”
“흠…….”
그런데 학교장이 갑작스레 죽었으니, 이 모든 이벤트를 주관할 주최자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뭐, 알아서 하겠지.”
“나 이번 축제에 뭘로 참가할지도 다 정했는데!”
폴라는 혹여 축제가 열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듯 보였다.
“언니 뭐 하려고 했는데?”
아카데미 축제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크게 마법 약, 마법 응용, 마법 방어 그리고 각인과 암호 해독 대회를 진행했다.
게다가 상금을 비롯한 진귀한 부상이 있었기에,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 있는 분야를 골라 참가했다.
“나는 마법 응용! 너는? 생각해 둔 거 없어?”
“음… 나는 마법 약……?”
“크흠… 나는 뭐 열리지 않아도 괜찮다.”
반면에 스키르는 축제가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금 안도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왜? 매년 열리는 것도 아니고 이번이 아니면 언제 또 열릴지도 모르는데!”
축제가 매년 열리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축제를 열 수 있는 기금과 상품이 적절히 모이는 때가 매번 다르기 때문.
“그, 그냥 복잡하기도 하고… 우리 가문에서도 후원을…….”
“흥, 귀족 재수 없어. 특히 너!”
“끄응…….”
스키르와 폴라가 투닥거리는 사이, 루카스는 잠시 고민에 빠져있었다.
‘축제라… 이번 축제에 후원하는 신전이 어디였더라……?’
아카데미 축제엔, 언제나 후원하는 신전이 하나쯤은 있었다.
축제의 규모가 크기도 하고 이때를 빌어 교인들을 포섭하려는 의도 역시 있었다.
“하… 그보다 이번에 축제가 안 열리면 다음 해에 열리려나?”
“크흠! 그것 또한 괜찮을 듯싶군. 학교장님도 안 계신데 억지로 진행하는 것보다는…….”
“야! 너는 상관없겠지만 나는 이번 대회에서 꼭 상 받고 싶단 말이야!”
“상관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폴라가 버럭 소리치자, 스키르는 무어라 변명을 하려다 다시 입을 닫았다.
‘……스턴 때문인가.’
스키르가 축제에 참여하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단 하나일 것이다.
혹여 자신의 형인 스턴보다 못한 성적을 낼까 두려운 것이겠지.
스키르 역시 실력이 많이 늘었다지만, 그의 형인 스턴을 따라잡으려면 사실 한참 멀었다.
“루키! 너는 축제 안 열려도 상관없어!?”
“열리면 좋겠지만 스키르의 말대로 어지러운 시국에 열리는 것도 썩 좋진 않아.”
“쳇… 귀족들은 다 똑같아…….”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는지 폴라의 입이 댓 발 튀어나왔다.
“그런 게 아니라…….”
루카스가 무어라 폴라를 달래려는 때였다.
“안녕? 다들 점심은 맛있게 먹었나요?”
“어? 아만 교수님!”
언제 온 건지, 아만의 해맑은 인사에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소식은 다들 들었을 거라 생각해요.”
우수에 찬 듯한 아만의 표정에 아이들 역시 고개를 떨궜다.
‘쯧. 지가 죽여놓고는… 연기가 아주 수준급이군.’
루카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 여러분도 모두 조심하도록 해요. 혹시 몰라 아카데미에 결계를 더욱 강화하긴 했지만요.”
“저… 교수님. 그럼 저희 축제는 안 열리는 건가요?”
폴라의 질문에 아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축제는 일정대로 진행될 겁니다. 제가 주최를 맡기로 했구요.”
“진짜요!?”
“그럼요. 최대한 안전하게 진행하도록 애쓸 테니, 여러분들은 대회에 나가 솜씨를 뽐내주세요.”
싱긋 웃는 아만. 그런 그의 대답에 폴라는 활짝 웃었지만, 스키르의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번에 후원하는 신전은 어딘가요?”
“오, 루카스 군. 이번엔 마신교에서 후원하기로 했어요.”
“…마신교 말입니까?”
“네. 그렇다고 하더군요. 저도 이번에 주최자를 맡으며 알게 된 거라 조금 놀랍기는 하지만…….”
마신교. 하고많은 신전 중에 왜 하필 마신교라는 말인가?
물론 마신교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듯 그들 역시 꼭 필요한 종교였다.
또한 마족과 마물의 근간이 되는 신이었으며, 마족 역시 하나의 종족이었다.
그저 사람들과 이종족들의 시선이나 인식이 좋지 않을 뿐.
“마신교면… 타라스를 모시는……?”
“오, 맞아요. 스키르 군.”
“근데 왜 마신교예요? 마신교는 나쁜… 거 아닌가?”
“아니에요. 폴라양. 마신교 역시 마신 타라스를 모시는 신전일 뿐. 주신의 뜻에 따라 창조된 모든 신 중에 악신은 없습니다.”
“아… 그렇구나…….”
아만의 따끔한 일침에 조금 풀이 죽은 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여러분. 이번 부상이 궁금하지 않나요? 어차피 오늘 저녁에 벽보가 붙을 테지만 미리 알려줄까요?”
“네! 좋아요!”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 고개를 번쩍 드는 폴라.
“그래요. 먼저 생각나는 건, 마법 약 대회 상품 중에 사랑의 묘약이 있더군요.”
“사랑의… 묘약이요? 그게 정말 있는 거였어요?”
“하하. 물론이죠. 사랑의 묘약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신비로운 묘약이에요. 물론 상대의 마음에 따라 지속력이 다르긴 해도… 효과는 무척 확실하죠.”
“우와…….”
갈수록 태산이었다. 아카데미 학생에게 사랑의 묘약을 부상으로 걸다니? 그 때문에 일어난 치정극이 얼마나 많은데!
“또 뭐가 있어요?”
“음… 아! 암호 해독과 각인 상품으로는 최상급 각인서와 만능열쇠가 있더군요.”
“만능… 열쇠요?”
최상급 각인서 역시 놀라웠다. 물건에 마법을 각인할 때 필요한 각인서는, 그 등급이 높을수록 더욱 강한 마법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만능열쇠라니? 도대체 이 아카데미는 학생들을 마법사로 키우고 싶은 건지, 도적으로 키우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네. 만능열쇠는 말 그대로 만능열쇠예요. 아, 물론 높은 수준의 마법이 걸린 자물쇠는 열지 못하겠지만 말이에요. 또…….”
또 있다고?
“마법 방어에는 최상급 회복 약, 마법 응용에는 최상급 마나석이 있더군요.”
정말이지 입이 떡 벌어지는 상품들이 아닐 수 없었다. 최상급 회복 약은 죽기 직전의 사람도 살려낸다는 포션이었다.
게다가 최상급 마나석까지. 이전 축제의 상품이 뭐였는지 궁금해지는 지경이다.
아이들은 아만의 입이 열릴 때마다 입을 떡 벌리고 서로를 쳐다보길 반복했다.
‘이래서 매년 못 여는 건가.’
루카스 역시도 상품의 규모에 꽤 놀랐다. 아카데미에서 열리는 축제이니만큼 적당한 상품이 내걸릴 줄 알았는데, 어째 나오는 상품마다 죄다 최상급이었으니 말이다.
“다들 자신 있는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해 상품을 얻길 바랄게요. 물론 이것들은 일등상품이지만, 다른 상품들도 무척 푸짐하니까요.”
“……네!”
“자, 그럼! 남은 점심시간 잘 보내고 수업 잘 들어요.”
“네! 교수님도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아만이 아이들의 인사를 받으며 유유히 떠나자, 폴라는 넬라의 손을 붙잡고 자신이 세운 계획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계획을 바꿀 거야! 각인으로 하겠어!”
“왜?”
“잘 들어봐. 방금 아만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 중에 가장 비싼 건 최상급 각인서야! 저건 구하기도 힘들고 얻었다고 하더라도 쓰기도 힘들어.”
“응.”
“그러니까 내가 일등을 해서 받게 되면!? 냉큼 파는 거지!”
“…….”
“왜 대답이 없어?”
“아냐. 언니 말이 맞아.”
“너 내가 못 얻을 거라고 생각하지?”
“…….”
빈말이라도 아니라고 해주면 좋으련만. 넬라의 눈은 먼 산을 향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니까 더 각인으로 해야지. 사실 나는 마법 응용이 난이도가 쉽다고 해서 가려고 했는데… 그래도 내가 제일 자신 있는 건 각인이야!”
도대체 언제부터……?
폴라는 각인 수업을 들을 때마다 ‘너무 어렵고 하기 싫어!’라며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가장 자신 있는 게 각인이라니?
“지, 진짜야! 어디 한번 봐! 내가 일등은 못 해도 5등 안엔 들어 보일 테니까!”
“……힘내. 언니는 꼭 할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