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아카데미 축제 (2)
모든 수업이 끝나자, 아만의 말대로 게시판엔 축제를 알리는 벽보가 붙었다.
[ 마법 아카데미 대축제! ]
*분야*
마법약 (제조)
마법 방어 / 버프
마법 응용 / 공격
각인 / 암호 해독
*상금*
각 분야 1등 (1명) - 100 골드.
각 분야 2등 (2명) - 80 골드.
각 분야 3등 (3명) - 60 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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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을 비롯해 각 분야별 부상이 소개된 벽보 앞엔 학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우와! 저번 축제랑은 비교도 안 되잖아?”
“그러게. 5등도 분야별로 다섯 명이나 돼! 게다가 20골드라고?”
“게다가 1등은 마탑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까지 준대!”
벽보를 본 학생들은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뒤에 선 루카스와 일행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리 아만에게 들어 일등상품은 알고 있었지만, 상금을 비롯한 다른 상품들을 보니 다시 한번 놀라웠다.
“우와… 언니 마법 약 5등 상품도 대단해. 용기의 물약이래.”
“그러게…….”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용기를 더해주는 물약으로, 전장에 나가는 기사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시초였다.
하지만 책에서나 보던 용기의 물약을 직접 받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 꽤 괜찮은 상품이었다.
“우와! 저것 봐! 암호 해독 2등 상은 금빛 나침반이야! 저거 하나면 어느 길드에서나 길잡이로 취업이 가능하다던데… 저런 걸 상품으로 준다고?”
“그러게나 말이야. 3등 상은 은빛 나침반이네? 아니, 문제를 얼마나 어렵게 내려고 저런 상을 내거는 거야?”
“상품을 보아하니……. 하, 이번엔 진짜 어렵겠어. 지난번엔 3등 상까지밖에 안 나왔다며?”
“그랬었지. 이번엔 4등 상이나 나오면 다행이겠군.”
벽보를 보며 떠드는 이들의 표정이 금세 침울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카데미의 축제에서 열리는 대회는 큰 규모만큼 엄격한 룰이 적용되었다.
분야별로 총 다섯 번의 시험이 있었으며, 그 시험을 통과한 이들은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예를 들어 총 열다섯 명의 학생이 첫 테스트에 통과했다면, 떨어진 학생들의 몫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그 열다섯 명의 학생들이 모두 다음 단계에 승급하지 못한다면, 다시 한번 4등 상을 두고 토너먼트 형식으로 겨루어 등수대로 4등 상과 5등 상을 나누어 가지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다 보니 1등 상은커녕 2등 상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참나, 이번 역시 5등 상도 글렀군.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는 마법 각인으로 가겠어. 너는?”
“흠… 마법 각인은 경쟁이 너무 치열할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5등 상도 못 받을 이들이 태반일 텐데.”
벽보를 보며 이들의 말을 듣던 폴라의 표정 역시 어두웠다.
“하… 시험이 엄청 어렵다는 뜻이었구나.”
“그런가 보네.”
“루키. 너는 그럼 뭘로 할 거야?”
폴라의 질문에 루카스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러게… 뭘로 하는 게 좋을까.’
솔직한 심정으로는 루카스 역시 마법 각인 대회에 나가 최상급 각인서를 얻고 싶었다.
‘아님 만능열쇠도 괜찮겠지.’
그는 값비싼 물건보다는 구하기 힘든 물건에 먼저 비중을 뒀다. 어찌 됐건 아만에게 이야기하면 구하지 못할 물건은 없겠지만, 찾아온 기회인데 굳이 날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마법 응용이나 방어 분야는 클래스에 따라 실력이 결정되는 분야였기에, 힘을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는 루카스에겐 참가가 어려운 분야였다.
“루키?”
“아, 음… 암호 해독.”
“암호 해독!? 거기 엄청 어려울 텐데?”
“응. 뭐. 그냥 참가해 보려고.”
“왜? 너는 응용이… 낫지 않아?”
폴라 역시도 루카스가 힘을 드러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목소리를 낮춰 물어왔다.
“암호 해독을 한번 해보고 싶어서. 그러는 넌? 각인으로 정했어?”
“하아… 아니… 각인은 조금 어려울 것 같아. 이야기 들어보니까 엄청 경쟁도 심한 것 같고…….”
“그럼?”
“…고민해 봐야지. 어차피 뭘 하든지 상을 받는 건 어렵겠지만……. 넬라는?”
폴라의 말에 멍하니 둘의 대화를 듣던 넬라가 고개를 들었다.
“음… 나는… 마법 약.”
“엥? 마법 약? 너 마법 약 수업 들은 지도 얼마 안 됐잖아! 마법 약은 더 어려울 거야. 차라리 마법 방어는 어때?”
“마법 방어가 더 어려울 것 같아… 나한테는 지금 마법 약밖에 없을 것 같아.”
넬라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마법을 쓰게 된 지도 얼마 안 됐고, 암호 해독이나 각인 분야는 수학과도 같은 분야였기에 넬라에겐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래. 마법 약도 괜찮지. 하… 나도 마법 약으로 할까…….”
그때 스키르가 입을 열었다.
“나도 정했다. 마법 약으로 할 거다.”
“…너도?”
그 역시도 다른 곳보다는 마법 약이 나을 거라 생각했는지 결정을 내렸다.
“에라, 모르겠다! 그럼 나도 마법 약 할래!”
“…너도?”
“왜. 꼽냐?”
“언어를 조금 순화하는 것이 좋겠다. 숙녀의 입에서 그런 험한 말… 윽!”
폴라의 말에 훈수를 두던 스키르는 따끔한 제 뒤통수를 부여잡았다.
“뭐. 이것도 꼽냐?”
“으윽… 숙녀가 그런 손버릇은… 아, 알겠다! 그, 그만! 폭력 멈춰!!!”
폴라가 다시 손을 치켜들자, 스키르는 얼른 뒤로 물러나며 그녀를 저지했다.
“팍씨! 한 번만 더 숙녀 어쩌고 해봐! 그땐 뒤통수 한 대로 안 끝날 테니까!”
“…….”
어딘지 모르게 과격해진 폴라의 모습. 하지만 스키르는 제 뒤통수를 연신 매만지면서도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저 자식 지금… 처맞고 웃는 건가?’
그런 그의 모습을 본 루카스의 팔에 소름이 돋아났다.
‘흠… 사랑인가.’
***
어느새 축제 하루 전날. 전야제가 열렸다.
연회장으로 분주히 향하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너 나 할 것 없이 들떠있었다.
“오늘 로드리고 가에서도 후원하지? 그럼 백작님도 오셔?”
“응. 그런데 후원금만 내셨어. 참관은 하지 않으실 거야.”
발견된 광산이 대박을 터트리자, 루카스의 아버지인 시비에 백작 역시 오닐 공작가 못지않은 후원금을 냈다.
하지만 수도에서 누구 하나 반기는 이가 없을 테니 참관은 하지 않았다.
“피이…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폴라가 입을 비죽이자, 작게 미소지은 루카스가 자리에 앉았다.
“크… 이번 전야제 역시 기대가 되는군!”
“오. 자네는 저번 축제에 참가했었다고 했지? 어떻던가? 정말 소문대로 성대한가?”
“아, 물론이지! 저번 축제도 역대급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번엔 더 대단할 거라고 하더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모두 한껏 들떠있었다. 하긴 축제의 규모와 성대함을 아는 이라면 누구나 들뜰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회장에 마련된 자리에 학생들이 앉자 이번 행사의 주최를 맡은 아만이 단상에 올라섰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아만의 해맑은 인사에 학생들은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냈다.
“네. 모두들 소식을 들어 알겠지만, 이번 행사의 주최를 맡은 아만 티노어입니다.”
확성 마법을 썼는지 온 연회장엔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행사를 알리기에 앞서, 아카데미의 빛나는 별이자 마탑의 등대와도 같았던 알베르토 학장님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그를 위해 우리 함께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아만의 말에 깊이 동감하며 고개를 푹 수그리자, 루카스는 속에서 욕지거리가 올라왔다.
‘미친 놈…….’
정말이지 뻔뻔하고 또 뻔뻔한 드래곤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아니 자기 손으로 고이 보내놓고 저런 위선적인 태도라니!
‘하셀을 만나게 된다면 꼭 말해야겠군. 절대 저 자식에게 로드 자리를 물려주지 말라고…….’
묵념의 시간이 끝나고 다시 아만이 입을 열자, 학생들의 눈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자, 그럼. 축제 전야제에 앞서 마법계의 무한한 발전을 위해 후원해 주신 감사한 분들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번 공식 후원 신전인 위대하신 타라스! 그들의 종이 되신 마신교입니다!”
‘미친놈.’
정말이지 미친놈이었다. 뭐? 위대하신 타라스?
다른 종족은 몰라도 드래곤 만큼은 마신에게 치를 떨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모든 마족을 관장하는 신이었기 때문.
학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에 앞으로 나선 사람은 잿빛 로브를 입은 마신교의 사제였다.
‘손등에 문장이라… 대신관인가.’
모든 신은 자신을 모시는 신관의 몸에 문장을 내렸다. 그 문장이 잘 보이는 위치일수록 높은 위치의 신관이라는 뜻이었다.
‘변태 새끼들. 무슨 가축에 인장 찍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모시는 종에게 문장을 내린다?
의도는 좋았다. 뭐, 신이 자신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으니 그것까지는 인정.
하지만 대신관쯤 되는 자들을 보면 손등이나 목 심지어는 이마에 문장을 받은 자도 있었다.
루카스는 그 문장을 볼 때마다 뭔가 이질감이 들었다.
마치 집에서 기르는 소나 돼지에게 ‘내 꺼’라는 표식을 남기기 위해 찍는 인장 같아 보였달까.
“허허… 감사합니다. 위대하신 타라스님께서도 오늘 일을 기뻐하고 계실 겁니다. 저희 마신교는 장차 마법계를 이끌 여러분들을 후원하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느낍니다.”
단상에 올라온 마신교의 사제를 본 몇몇 학생들의 동공이 흔들렸다.
“저도 압니다. 여러분들께서 저희 마신교를 생소하게 여기신다는 것을요. 하지만 주신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 모든 신들은 이 땅에 내린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십니다.”
말을 잠시 멈춘 대신관이 한 손을 번쩍 들자, 몇몇 학생들의 몸이 눈에 띄게 흠칫 움츠러들었다.
“위대하신 타라스님께서 가장 밝은 빛을 위하여 어둠을 내리셨으니! 그대들의 어둠은 우리에게 맡기라!”
그러자 대신관의 손끝에 어두운 기운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야?”
학생들의 수군거림에도 교수진과 아만은 그저 묵묵히 그의 손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염병을 떠네.’
그 모습을 보는 루카스는 또 짜증이 치밀었다. 그는 저게 뭔지 알고 있었다.
마신교 사제에게 내려지는 고유 능력. 잠식된 어둠.
인간을 비롯한 모든 어둠을 흡수해 힘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고유 능력이었다.
그것은 어둠을 이용해 대상의 신체를 강화하거나 마력을 증폭시키는 버프를 줄 수도, 공격할 수도 있었다.
때문에 신도가 몇 없는 마신교는 곳곳에 사제들을 파견해 큰 길드의 임무를 돕거나, 때로는 전쟁터에 나가 싸우기도 했다.
그들을 고용하는 것은 치유 능력이 있는 사제들을 고용하는 것보다 더욱 높은 값을 요구했기에, 마신교는 마족이 사라진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었다.
“그대들의 어둠은 빛이 되어 내리니!”
신관의 손끝에 모였던 어두운 기운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대들의 힘이 되고!”
-파아앗!
밝은 빛이 터져 연회장을 가득 메우더니.
“그대들의 빛이 되리라!”
-파스스스스
그 빛은 가루가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우와아…….”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오자, 대신관은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대신관이 단상에서 내려가자 다시 아만이 올라와 행사를 이끌었다.
“자, 여러분도 보셨다시피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는 법이지요. 다시 한번 대신관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짧은 감사 인사에 이어 후원자들을 순서대로 불러내어 인사를 전한 아만은, 축제 일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또한 궁금하신 사항은 각 분야별 담당 교수님을 찾아가면 됩니다. 자, 그럼…….”
모든 설명을 마친 아만이 한 손을 치켜들었다.
“모두들 축제를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피유우웅! 팡! 파팡!
“와아아아!”
아만의 손에서 터져 나온 색색깔의 빛이 폭죽이 되어 높은 천장을 수놓자, 학생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아카데미의 축제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