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테스트.
“자, 다들 이쪽으로 모이세요.”
마법 실습 과목을 맡고 있는 로날도 하센의 부름에 학생들이 그의 앞에 모여들었다.
“오늘은 전에 말씀드렸었던 하급 던전 클리어 실기시험입니다.”
상급반의 실기시험 중 하나인 하급 던전 파훼하기.
이 하급 던전은 버려진 던전을 이용해 아카데미가 만들어 낸 인위적인 던전이었다.
간단한 규칙을 설명하는 로날도의 미간이 좁아졌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니 다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거기, 방금 내가 뭐라고 했지?”
로날도가 턱짓으로 가리킨 사람은 다름 아닌 폴라였다.
항상 매 수업 시간을 집중하는 폴라는 오늘따라 넋이 나가 있었다.
“그, 그게…….”
“그런 자세로 조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나?”
로날도의 날카로운 일침에 폴라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언니 왜 그래? 괜찮아?”
“어, 어…….”
항상 빠지지 않고 챙겨 먹던 아침도 거른 폴라는, 넬라의 물음에도 그저 작게 대답할 뿐이었다.
‘이상한데…….’
그런 폴라를 바라보는 루카스의 얼굴에 근심이 드리웠다.
로드리고 백작가에서 폴라를 후견하기 시작한 뒤로, 그녀는 누구보다도 수업에 열심히 임했었다.
백작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한 덕에, 폴라는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런 폴라가 저런 모습이라니.
‘실기시험이 끝나면 물어봐야겠어.’
생각을 마친 루카스가 폴라에게서 시선을 뗐다.
“자, 1조 먼저 들어갈 겁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던전이라고 해도 위험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한시도 긴장을 놓지 마세요.”
로날도의 말에 침을 한번 꿀꺽 삼킨 1조의 인원들이 먼저 던전 입구로 향했다.
“자, 5분 뒤에 2조 들어갈 겁니다. 준비하세요.”
허리춤에 달린 회중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한 로날도가 2조 인원을 눈으로 체크했다.
“자, 잘할 수 있겠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스키르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야, 걱정하지 말고 버프나 잘 넣어.”
그런 스키르의 어깨를 한번 툭 쳐 보인 폴라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래도 던전은 위험한 건데…….”
“아, 쫄지 마! 내가 어? 전기로 파파팟! 하고 다 죽여줄 테니까!”
한 손을 들어 마법을 써 보이는 시늉을 하는 폴라의 당당한 외침에 스키르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웃어? 웃어?!”
“아, 아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모습을 되찾은 폴라.
“근데 언니…… 트랩은 어떻게 해?”
“……트랩?”
“응, 안에 몬스터만 있는 게 아니랬잖아.”
넬라의 말이 맞았다. 던전에는 몬스터뿐만이 아니라 함정 또한 존재했다.
상급 던전으로 갈수록 복잡한 함정이 곳곳에 도사렸으며, 그 함정을 파훼하지 못해 전멸하는 파티들이 수두룩했다.
“걱정하지 마. 그건 내가 탐색 마법을 쓸게.”
루카스의 간결한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과 같은 반에 다니지만, 도대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친구.
아이들은 차츰 커가면서 루카스에 대한 의심 또한 쉬지 않고 해왔었다.
하지만 그 의심이 도달하는 곳은 항상 ‘그냥 루카스지.’였다.
자신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
아이들은 그런 제 친구의 정체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자, 2조. 들어가세요.”
교수의 호명에 아이들은 서로를 번갈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
던전에 들어서자 습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윽, 무슨 냄새야?”
던전이 처음인 아이들은 먼저 코를 틀어막았다.
습하고 꿉꿉한 공기 중에 섞인 기분 나쁜 냄새는, 생전 처음 맡아보는 것이었다.
“나이아스. 이 앞에 뭐가 있는지 보고 와줄래?”
-알겠어.
넬라는 나이아스를 조용히 불러내 부탁했다.
“우리도 천천히 가보자.”
“나이아스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면 안 되는가?”
“시간 없어. 바보야.”
2시간 안에 던전을 끝내고 반대편으로 나오는 것이 실기시험의 주제였다.
던전을 클리어하는 시간에 따라 가산점이 부과되거나 감점이 된다.
“아, 알겠다.”
아이들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둡고 컴컴한 던전을 걸을 때마다 물이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라이트.”
한 손을 들어 라이트 마법을 펼친 루카스가 앞장서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조심히 그 뒤를 따랐다.
“추, 추적마법 써야 하지 않은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에 한 가지 마법밖에 쓰지 못했기에 스키르의 걱정은 당연하였다.
“쓰고 있어.”
“……라이트 마법도 쓰면서?”
넬라의 물음에 루카스는 아차 싶었지만, 그냥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대단하다.”
“대단하군…….”
“얘는 원래 대단했잖아.”
한마디씩 건네는 아이들에게 가볍게 웃어준 루카스가 한 손을 들어 아이들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조심해. 지금부터는 내가 밟는 곳만 밟고 따라오면 돼.”
루카스의 말에 긴장한 듯한 아이들은 루카스가 밟는 곳을 조심스레 따라 밟기 시작했다.
“자, 여기까지. 이제 괜찮아.”
쉬운 함정이었다. 밟으면 뭐가 튀어나올지는 모르지만, 한 방에 아이들을 때려죽일 만한 함정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아이들에게 굳이 감수하라고 할 필요는 없었다.
“자, 지금부터는 벽을 조심해.”
점점 좁아지기 시작한 길목부턴 벽에 함정이 숨어있었다.
“조심… 조심…….”
덩치가 훌쩍 커버린 스키르는 제 입으로 ‘조심’이라는 단어를 연신 내뱉으며 어깨를 한껏 움츠린 채 걷고 있었다.
“야, 좀 조용히 해.”
그 소리가 거슬렸던 폴라가 결국 한마디 하자, 스키르는 풀이 푹 죽은 채 묵묵히 걷기만 했다.
좁은 길목이 끝나고 넓은 공간이 나오자, 스키르는 그제야 제 허리를 쭉 폈다.
“나이아스, 앞에 뭐가 있어?”
-사람이… 죽어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사람이 죽었어.
“뭐래? 나이아스가 뭐래?”
“요정님이 뭐라고 하시는가?
나이아스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아이들이 넬라를 재촉했다.
“……사람이 죽어있대.”
“뭐?”
***
“그게 정말인가? 자네 아들의 병이 나았다는 게?”
“이 사람이… 속고만 살았는가?”
거듭되는 질문에 살짝 짜증이 일어난 사내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아니, 도대체 그… 그 병이 어떻게 나았다는 건가……?”
사실 질문을 하는 사내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아들의 병이라는 것이 다름 아닌 선천적인 정신증이었다.
세상에 여러 가지의 정신증이 존재했지만, 선천적인 정신증 대부분은 치료가 불가능했다.
“허허, 자네도 참… 그렇게 못 믿겠으면 우리 집으로 가보시게! 우리 아들이 이제 제대로 말도 하고 밥도 똑바로 먹는다니까 그러네!”
“……신기한 일일세.”
“나도 사실 믿기지 않네. 우리 데릭이 나를 아빠라고 불러주는 날이 오다니 말일세…….”
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찬지 사내는 찡해오는 콧잔등을 한번 슥 비볐다.
“도대체 어떻게 나은 건가? 저번에 자네가 말했던 그 교단이…… 진짜인가?”
“그렇다니까 그러네! 부활교는 다른 신전과는 차원이 다르네.”
‘부활교’ 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신흥종교였다.
대부분 실존하는 신을 모시는 신전과는 달리, 부활한 사람을 믿고 따르는 종교라고 했다.
“아니, 그런데… 그렇게 되면 다른 신들의 노여움을 사진 않을까 걱정일세…….”
“참나, 다른 신들이 해준 것이 무엇이 있는가! 내가 여태껏 헤르도네 신전에 지참금을 얼마나 갖다 바쳤는지는 자네도 잘 알지 않은가!?”
“아, 알지 그럼.”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여신이! 내게 기쁨을 가져다준 적이 있느냐 그 말이야! 그런데 부활교는 다르네. 내게 기쁨, 아니 그 이상을 주었다 그 말일세.”
사내는 흥분한 듯 목소리를 높이며 침을 튀기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자네도 가보게. 부활교 교단에 발을 딛는 순간 느끼게 될걸세. 아, 내가 여태 잘못된 신을 섬겼구나! 하고 말일세.”
“알겠네… 내 한번 가봄세.”
***
떠오르는 신흥종교인 부활교.
교단 앞에 선 사내의 인자한 미소에 교인들은 곧 쓰러질 듯 포효했다.
“교주님!!! 교주님!!!”
그의 옷자락이라도 잡아보려 손을 높게 뻗는 사람들.
걷지 못하는 아들을 업고 높은 곳에 위치한 부활당까지 힘겹게 올라온 여인은, 교주의 얼굴을 보자 모든 고통이 씻겨 나가는 듯했다.
“교주님…… 교주님!! 제발, 제발 저희 아들 좀 봐주십시오!!!”
여인의 처절한 외침에 교주의 눈이 그녀의 아들에게로 향했다.
“저 여인을 내게 데려오라.”
“예.”
교주의 명에 사내는 빠르게 단상을 내려가 여인과 그의 아들을 데리고 올라왔다.
“이름이… 무엇인가?”
“저, 저는… 저는!”
갑작스러운 교주의 부름에 당황한 여인은 입만 달싹이고 있었다.
“내 앞에선 그저 하나의 가엾은 나의 옌테일 뿐이니… 그대의 이름이 무엇이든 오늘 다시 태어나게 되리라.”
“교, 교주님……!”
그의 말에 감동을 받은 듯한 여인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대의 아들인가…….”
“예, 예!! 그렇습니다. 제발…] 제발 제 아들을 좀 봐주십시오…….”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했다는 그녀의 아들은 다리만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가엾은지고…….”
안타깝다는 듯 교주의 눈가에 옅은 주름이 졌다.
“나의 옌테는 모두 들으라!!!”
그녀와 아들에게서 시선을 뗀 교주가 청중들에게 소리쳤다.
“내 오늘 이 가엾은 여인과 그의 아들에게 축복을 내릴지니!”
“레니엔토!!!”
교인들은 믿는다는 뜻의 고대어 ‘레니엔토’를 큰 소리로 외쳤다.
“그대들은 보아라! 죽음에서 부활한 내가 내리는 축복을!!!”
“레니엔토!!!”
말을 마친 사내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여인의 아들에게 천천히 다가가자 교인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소년의 머리 위에 손을 가져간 교주가 눈을 감더니 무어라 축언을 읊기 시작했다.
“이 가엾은 영혼에게 내가 구원을 내릴지니…….”
교주의 손이 소년의 다리를 천천히 쓸어내리자, 그의 손에서 희미한 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오오……!!!”
교인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고.
“그 구원을 받아 앉은 자가 오늘 일어날 것이며…….”
-사아아아
“믿는 자에게 무한한 영광이 있으리라…….”
소년의 발끝에 교주의 손이 다다르자, 빛은 점점 크기를 키워갔다.
“일어나라!”
-파아앗!
그 빛이 터져 나오자 교인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무어라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어떤 자는 감복하여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자, 가엾은 소년이여… 일어나 보아라.”
“…….”
교주의 말에 소년은 한 손으로 땅을 짚고 부들부들 떨며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런 소년의 한쪽 어깨를 부축한 어미의 눈에 기대가 가득 차올랐다.
“어, 어어……!”
소년이 땅에 발을 딛자, 사람들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년은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지 미간을 가득 찌푸린 채 다리에 힘을 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소년의 팔을 붙잡은 어미가 그를 격려했다. 그러자 소년은 이를 앙다문 채 떨려오는 다리를 붙들려 애를 썼다.
“어어어!!!”
“자, 믿거라. 네 두 다리로 설 수 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라!”
“레니엔토!”
소년을 대신해 큰 소리로 대답한 어미가 붙잡고 있던 소년의 팔을 조심스레 놓았다.
“돼… 됐다!!!”
소년의 다리는 아직 떨려오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었다.
“기적이다!!! 기적을 행하셨다!!!”
“레니엔토!!! 레니엔토!!!”
사람들의 외침이 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들어라!!!”
교주의 외침에 사람들은 재빠르게 입을 다물고 그를 바라봤다.
“오늘 이 부활당에 온 모든 이들에게 내가 축복을 내릴지니.”
“레니엔토!!!”
-사아아아아아
교당 전체에 별 가루 같은 빛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손을 높게 뻗으며 그 빛에 닿으려 애를 썼다.
“그대들은 모두 구원받으리라.”
“레니엔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