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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14화 (114/225)

114화. 앨리의 소중한 개미집 (1)

“백작님?”

시타타로 돌아온 앨리는 가장 먼저 시비에 백작을 찾았다.

“오, 앨리님.”

“잘 지내셨죠?”

광산을 둘러보는 중이었던 백작은, 앨리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무척이나 반가운 듯 보였다.

“항상 똑같지요. 허허.”

“그게 가장 좋은 거죠.”

백작의 사람 좋은 웃음에 앨리 역시 싱긋 웃어 보였다.

“그보다 어쩐 일이십니까?”

“왜요? 제가 온 게 불편하신가?”

“허허, 불편할 리가요. 두어 달은 더 지나야 돌아오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계획보다 일찍 오신 것 같아서요.”

“아, 뭐…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나서요.”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며 광산을 빠져나온 두 사람이 백작저에 들어서자, 입구에서 아만이 그들을 향해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아만 학장님?”

“네. 같이 왔어요.”

아만의 모습을 본 시비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안녕하십니까. 백작님.”

“예. 안녕했습니다.”

시비에는 아만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냉큼 백작저로 들어섰다.

“아이들이 아카데미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만은 그런 시비에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뒤를 냉큼 따랐다.

“예. 그렇다고 하더군요.”

“하하, 그래서 제가 이렇게 왔습니다.”

시비에는 안 그래도 불편하던 심기가 더욱 뒤틀렸다.

아이들이 돌아가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그 일의 원흉이나 다름없는 아카데미의 학장이 자신을 찾아왔으니 말이다.

아만의 능글맞은 목소리에 시비에가 걸음을 멈추고 그를 홱 째려봤다.

“하하… 화가 많이 나셨나 봅니다.”

“예. 제 금쪽같은 아이들입니다.”

“제게도 금쪽같은 아이들입니다만… 그래도 백작님만큼은 물론 아니지만요!”

시비에의 눈빛이 자신을 곧 잡아먹을 듯 이글거리자, 아만은 얼른 말을 덧붙였다.

“아이들이 가고 싶다 해서 보내는 겁니다.”

“물론입니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같은 그런 일이 발생했다가는…….”

시비에의 차가운 목소리에 아만이 침을 꿀꺽 삼켰다.

“가만 있지 않을 겁니다.”

“하하… 예. 걱정마세요.”

한낱 짐승조차도 새끼를 지킬 때에는 어떤 두려움도 없이 맞서지 않는가.

아만의 앞에 선 시비에 백작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시비에는 아이들에게 위협이 된다면 자신의 목숨은 물론 다른 어떤 것도 두려움 없이 내놓을 각오가 되어있었다.

“아이들을 불러 드리지요.”

시비에가 사용인을 불러 말을 전한 뒤 집무실로 들어가고, 남겨진 아만과 앨리는 조용히 눈빛을 교환했다.

“이상한 점은?”

“이제 찾아봐야지. 너는 애들 데리고 아카데미로 갈 거지?”

“그래야지.”

“그래. 나도 오랜만에 왔으니 조사 전에 한번 둘러봐야겠어.”

아만이 고개를 끄덕이자, 앨리 역시 백작저를 빠져나갔다.

“교수님!”

응접실에 앉아 차를 홀짝이고 있던 아만을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넬라였다.

“넬라 양!”

넬라는 아만이 왔다는 소식에 머리를 정리하자는 유모의 말도 듣지 않은 채 후다닥 뛰어 내려왔다.

“안녕하세요.”

치맛자락을 살짝 잡고 인사를 해 보이는 넬라는 이제 영락없는 숙녀의 모습이었다.

“그래요. 넬라 양.”

넬라의 머리를 다정히 쓸어 넘겨준 아만이 앞자리를 권하자, 그곳에 조심히 앉은 넬라는 연신 방긋방긋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뒤이어 응접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루카스가 인사했다.

“네. 루카스 군.”

넬라의 옆에 앉은 루카스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아만이 입을 열었다.

“저… 넬라 양? 루카스 군과 할 이야기가 있어 그런데, 자리를 잠시 비워줄 수 있나요?”

“아, 네!”

아만의 말에 잠시 실망한 듯한 표정이 넬라의 얼굴에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서운한 기색을 감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넬라가 방을 빠져나가고, 작게 한숨을 쉬어 보인 루카스가 아만을 쳐다봤다.

“와줘서 고맙군.”

“고맙긴요.”

시비에 백작과 이야기를 마친 루카스는 곧장 아만에게 연락을 취했다.

아만이 오게 됨으로써 백작이 가진 불안감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텔레포트할 생각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수도로 가는 그 길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직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채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 준비해서 오늘 저녁 떠나지.”

“예. 로드.”

“아, 그리고 하셀은 뭐라고 하던가?”

루카스의 물음에 아만은 무어라 말을 하려다 말기를 반복했다.

“…뭐 하는 거야?”

그의 입이 열리길 기다리던 루카스가 미간을 찌푸리자, 그제야 아만이 입을 열었다.

“그냥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그냥 두라고 했다니?

루카스는 아만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버지와 함께 흔적을 찾아 나섰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버려 두라고 하시더군요.”

“…미쳤군.”

루카스는 아만에게 자신이 직접 지시하지 않고 하셀에게 보낸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인간의 몸이 되어 힘이 없어졌다 한들, 조언을 하는 것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하셀에게 보낸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드래곤들에게 혹여 누가 될까 싶어서였다.

“걱정 마세요. 저와 앨라스가 따로 조사할 생각입니다.”

“하셀 그 자식이 뭐라고 하면서 그만 찾겠다고 하던?”

“흠흠!”

루카스의 물음에 대답 대신 목을 가다듬는 아만.

그런 그를 보는 루카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몇 개를 만들었든 찾아서 파괴하면 된다. 이런 간 큰 자식들이 다시 나오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풉!”

아만이 목을 가다듬었던 이유는 하셀의 말투를 따라 하기 위해서였다.

하셀의 말과 표정을 똑같이 따라 해 보이는 아만의 모습에 루카스는 그만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그게 우리 종족이 하는 일 아니겠느냐? 주신께 모두 뜻이 있으시겠지.”

“크하하! 하셀 그 자식이 그렇게 말했다고?”

루카스는 아만의 마지막 말에 자지러지듯 웃고 말았다.

누가 하셀의 자식이 아니랄까 봐 깐족거리는 폼이 너무나도 일품이었다.

“헤헤. 예. 똑같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루카스의 웃음에 아만 역시 기분이 좋은지 헤헤 웃고 있었다.

“그래. 진짜 잘하는구나.”

아만의 말을 듣고 나니 루카스는 그의 생각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인간의 몸으로 고작 십여 년을 살았다고… 나 역시도 마음이 조급해졌구나.’

하셀은 앞으로 천여 년은 더 살아낼 드래곤이었다.

마족이 마계로 떠난 것이 천 년 전의 일이었으니. 그들의 잔재가 다시 고개를 내미는 지금도 언젠가 천여 년 전의 일이 될 것이다.

하셀 역시도 범인을 당장 찾아내 찢어 죽이고 싶을 것이다.

“그래. 하셀의 말도 틀린 것은 없다.”

“…그렇습니까?”

아만의 물음에 루카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것들을 당장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섣불리 움직였다가 뿌리 뽑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시간을 주는 것도 괜찮겠지.”

“…그럼 어떡합니까?”

“하지만 네 영역을 침범했으니 나는 네 뜻을 존중하마.”

루카스의 지지에 아만은 감격스러워 제 가슴을 부여잡았다.

“영역을 침범당한 것은 너이지 않느냐.”

“로드……!”

아만은 당장이라도 루카스에게 달려들어 그를 와락 끌어안을 기세였다.

“하지 마라.”

감격한 아만의 표정을 읽은 루카스가 미리 한 손을 들어 그의 행동을 저지했다.

“역시… 눈치가 빠르셔.”

살짝 입을 삐죽인 아만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쯧……. 경망스러운 도마뱀 같으니.”

루카스는 말로는 그의 모습을 타박했지만, 사실 아만은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는 드래곤이었다.

***

백작저를 빠져나와 광장에 나온 앨리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지는 공기에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한데?”

저녁 시간이 다 되었음에도 광장에 나와 있는 사람도 얼마 없었고, 장을 보러 나온 사람 역시 몇 되어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아, 상단주님 아니십니까!”

앨리는 광장의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중심가에 위치한 정육점을 찾았다.

수다쟁이인 정육점 주인이라면 묻지 않아도 무엇이든 술술 말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네. 장사는 잘되시나?”

앨리가 진열대에 놓인 고기들을 스윽 살피며 슬쩍 묻자, 상점 주인은 도리질을 했다.

“어휴, 말도 마세요. 이번에 무슨 구원을 받겠다고 인간들이 싹 다 어딜 가서는…….”

시큰둥하게 대답한 상점 주인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손사래까지 쳐 보였다.

“예? 무슨 구원?”

“어머, 상단주님은 모르시겠네요. 안 그래도 자리를 비우셨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듯 보이는 앨리의 반응에, 그녀는 고기를 정리하던 손을 얼른 멈추고 앨리의 앞에 한 발짝 다가섰다.

“네. 이제 막 돌아온 참이에요.”

“그러셨구나! 어휴! 앨리님도 아시죠? 부활교 말이에요.”

그녀의 입에서 ‘부활교’ 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앨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졌다.

일전에 한번 백작저에서 마주친 적 있었던 부활교단의 사제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예. 알죠.”

“그 부활교에서 이번에 사람들을 싹 모아서 어딜 데려갔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 무슨 인간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가지고는… 아, 물론 그 치들이 주는 성수인가 뭔가는 확실히 효과가 좋긴 좋더라구요.”

교단에서 사람들을 데려갔다니?

이건 또 무슨 이상한 소리라는 말인가.

“아, 그래도 성수가 문제가 아니죠! 무슨 자기네들을 따라오면 구원을 내려준다 그랬다던가? 그래서 인간들이 죄다 그 교단을 따라서 가버렸다니까요!”

“어디로 갔는지 아시나?”

“그건 나도 모르죠. 데리고 간 것만 알지. 그래서 저기 옆에 과일가게도 문 닫은 거 아니겠어요!”

안 좋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감사해요. 그럼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셔. 가볼게요.”

“네. 다음에 오시면 제가 좋은 고기 한 덩이 드릴 테니 꼭 들르세요!”

앨리는 이미 돌아선 자신의 등 뒤에서 소리치는 상점주인을 뒤로한 채 걸음을 재촉했다.

‘무슨 아카데미 캠프 떠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데리고 어디로 갔다고? 뭔가 이상해.’

***

‘그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어디로 갔을까…….’

처음 한 생각은 서너 명도 아닌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갈만한 곳으로 어디가 있을까였다.

게다가 시타타 주변에는 부활교당이 있지도 않았으니, 교당이 있는 옆 영지까지 가려 했어도 그들은 이동 중이어야 했다.

앨리는 먼저 시타타 주변에 있는 숲을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추적마법부터 탐색마법까지 써 보았지만, 사람들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이거 부활교당을 다 뒤질 수도 없고…….’

이곳저곳을 빠르게 누비던 앨리의 발걸음이 일순 멈춰 섰다.

‘…저게 뭐야?’

앨리의 발걸음이 멈춘 곳, 그 앞에 끔찍한 광경이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마치 햇볕에 바싹 말린 고기처럼 말라비틀어진 사람들.

더욱 기이한 것은 그들이 누워있는 모양새였다.

반항 한번 하지 않은 듯, 모두 한곳을 바라본 채 누워는 시체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이런 씨X!”

앨리의 고함이 숲을 가득 메우고 메아리쳐 돌아왔다.

“어떤 정신빠진 자식들이!!!”

앨리의 눈앞에 누워있는 수십 구의 시체들은 자신이 직접 공들여 가꿔온 시타타의 주민들이었다.

“감히… 누가…….”

앨리의 음성이 낮게 그르렁거리자,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쿠르릉… 쿠릉…….

“어떤 자식들이… 내 귀여운 인간들을…….”

-둥… 두두둥…….

진동하던 대지의 울림이 더욱 커지기 시작하고.

“어떤 자식들이…….”

진동하는 대지 위에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

“……?”

그러자 눈앞에 나부끼는 무언가.

“다 뒈졌어.”

부활교를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진 보라색 띠였다.

이로써 모든 증거가 완벽해졌다.

자신의 귀여운 인간들을 죽인 깜찍한 것들이 누구인지 너무나도 확실해지고 말았다.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게 죽여주지.”

보라색 띠를 손에 꽉 쥐어 보인 앨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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