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41화 (141/225)

141화. 설득 (1)

생각해 보면 쉬운 문제였다.

그들이 굳이 멍청이처럼 나서지 않아도 이미 루카스와 이민족 몇몇들 사이엔 교류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로드께서 직접 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뭐 무척이나 가까운 건 아니지만, 그나마 내가 더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루카스 역시 드래곤들을 도울 의무가 있었다. 제 손으로 쫓아낸 마족들 때문에 이 사달이 났으니,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돕고 싶은 게 루카스의 마음이었다.

“흠. 그럼 어디부터 가실 예정이십니까?”

“드워프.”

“호오. 드워프요?”

아만의 물음에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도 같이 가면 어떻습니까? 저번에 제가 뽀삐를 데리고 사라져 줬으니, 저에게도 꽤나 감사해할 것 같은데요.”

아만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자, 루카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뽀삐.”

다시 들어도 어이가 없는 그 이름을 루카스가 읊조리자, 아만이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네. 저희 뽀삐가 요즘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신이 나서 떠드는 아만을 보는 루카스의 눈엔 초점이 없었다.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종족이군.’

아만과 같은 종족으로 수천 년을 살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아만이라는 드래곤은 도통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언제나 해맑고 신명 나있는 저 드래곤의 머릿속엔 도대체 뭐가 들었을까.

“하하하! 정말 우리 뽀삐 기특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지난번엔 저를 주겠다고…….”

“그만.”

“아, 넵.”

결국 루카스가 아만의 말을 막아섰다.

“그래서 드워프에게 같이 가겠다고?”

“예.”

루카스는 생각했다. 저 해맑은 것을 데려가면 과연 도움이 될까 하고 말이다.

“그러지.”

“네.”

“단.”

“……?”

“입을 좀 닥치고 있을 수 있겠나?”

루카스가 조건을 내걸었다. 드래곤의 문제이니 드래곤을 데려간다면 분명 도움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만이 입을 여는 순간부터 설득은커녕 일을 그르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 족장은 아만이 뽀삐라는 만티코어를 두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모두 보았으니.’

그러자 아만의 눈이 축 쳐지더니 울상이 되었다.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로드께서는 혹시 제가…… 제가 창피하십니까?”

아만의 울망울망한 눈이 루카스를 향했다.

“창피라니. 절대 아니다.”

그에 루카스는 얼른 상황을 무마하려 애썼다.

“너는 지금 드래곤이 아니냐? 설득 따위는 내가 할 테니 너는 위엄 넘치는 드래곤으로 남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렇다.”

“거짓말.”

루카스의 사탕발림이 튕겨 나왔다.

“거, 거짓말이라니?”

“로드께서는 지금 제게 소위 ‘공갈’을 치고 계십니다.”

“허.”

루카스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공갈이라니. 도통 저런 말을 어디서 배워 온 것인지!

“맞지 않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왜 제게 ‘닥치라’는 말을 하셨겠냐는 말입니다.”

“아만. 나는 지금 한시라도 빨리 움직이고 싶으니 잘 들어라.”

아만이 루카스를 찌릿 째려봤다.

“네가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네가 방금 그런 ‘공갈’ 같은 말을 하등한 종족 앞에서 쓸까 무섭구나.”

“안 씁니다!”

아만이 버럭 소리쳤다.

“……그래. 그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해봐라.”

결국 루카스가 항복을 선언했다.

***

드워프의 영역인 이그노스에 도착한 루카스와 아만은 먼저 족장을 찾았다.

“저기 있군.”

드워프의 족장인 투르캄 우르두르는 대장간에 있었다.

“영혼을 담으란 말이야! 풀무질을 한번 할 때마다 불의 신께 빌고 또 빌어야 원하는 불을 얻을 수 있다고 몇 번을 이야기 하나?! 엉?!”

투르캄은 대장간에 서서 여기저기를 누비며 성질을 내고 있었다.

“에잇! 네 놈에게 쥐어진 그 망치가 가엾다! 이런 썩어 문드러질 놈 같으니라고. 리듬을 타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

그에 다른 드워프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큰 소리로 ‘예’라고 대답을 해보였다.

그들은 불과 제작에 진심인 종족이었다.

“투르캄.”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투르캄이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누가 나를…… 어? 자네!”

루카스를 알아본 투르캄이 짧은 다리를 놀려 얼른 루카스에게 달려왔다.

“크하하! 이렇게나 금방 보게 되다니. 안 그래도 지난번에 풀지 못한 회포가 마음에 걸렸는데 말이야. 응?”

루카스의 허리춤에 두툼한 손을 턱 하고 올린 투르캄이 루카스의 허리와 엉덩이 사이 그 어디쯤을 연신 두드렸다.

‘어딜 만지는 거야?’

찌푸려진 루카스의 미간에 투르캄은 ‘아차’하며 얼른 손을 내려놨다.

“크하하! 내가 너무 반가워서 그랬다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드, 드래곤님?”

그제야 아만이 눈에 들어왔는지 투르캄이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드래곤님이다.”

“어이구! 이런 귀한 곳에 누추한 분이 어쩐 일로…….”

당황한 투르캄이 말의 앞뒤를 바꿔 말하고 말았다. 귀한 곳에 누추한 분이라니!

“큽…….”

그에 루카스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아냈다.

“뭐라?”

그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들었던 아만이 곧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 인상을 찌푸렸다.

“예……?”

하지만 투르캄은 제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도 모르는지, 그저 눈을 동글동글 뜰 뿐이었다.

“후, 됐네.”

아만 역시 더 따져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손을 홱 젓고는 대장간을 빠져나갔다.

“투르캄. 당신에게 상의할 것이 있어서 왔다.”

“드, 드래곤님까지 같이? 설마 그 광산을 다시 내놓으라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 건 아닐세.”

침을 꿀꺽 삼킨 투르캄이 제 허리춤에 달려있던 술통을 꺼냈다.

“크으-!”

그러더니 한 모금 크게 들이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

그들은 주변에 있는 한적한 곳을 찾다 결국 투르캄의 집으로 오게 되었다.

“들어오게!”

투르캄이 앞장서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루카스와 아만은 낮은 천장에 허리를 살짝 숙이고는 엉거주춤 그를 따랐다.

“앉으십시오. 드래곤님!”

제가 가진 것 중에 그나마 가장 좋은 의자로 보이는 것을 내어준 투르캄이 주방으로 가 분주히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크흠…… 대접할 것이 이런 것뿐이라. 하지만 저희에겐 진짜 귀한 안주입니다.”

투르캄이 꺼내온 것은 쿠키나 다과가 아닌 육포였다.

‘안줏거리밖에 없는 건가.’

고개를 끄덕이자, 투르캄이 자리에 앉았다.

“하실 말씀이라는 게…….”

투르캄이 컵에 든 무언가를 꿀꺽꿀꺽 넘겼다.

‘저것도 술이군.’

루카스와 아만에게는 차를 내어줬지만, 본인은 아닌 듯 보였다.

“혹시 마족들이 찾아왔는가?”

“…….”

아만의 질문에 투르캄은 대답 대신 다시 한번 잔을 들었다.

“마족들이 찾아왔군. 그들이 너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하던가.”

“…….”

대답이 없었다.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

“…….”

역시 대답이 없었다.

그에 루카스 역시 가슴이 답답했다. 벌써 드워프들까지 설득에 성공했다니.

도대체 무슨 달콤한 말을 속삭였기에 고집스런 저들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말인가.

“투르캄.”

루카스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자네를 설득하고자 왔는데, 자네 뜻이 그렇다면 우리 역시 포기해야 맞겠지.”

그에 아만이 눈을 크게 뜨고 루카스를 바라봤다. 마치 ‘포기라뇨?’ 하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니 너무 개의치 말게. 그들이 분명 자네들에게 좋은 조건을 내걸었을 거라 생각하네.”

루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지.”

그에 아만은 눈을 크게 뜨고 무어라 말하고 싶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묵묵히 루카스를 따라 일어났다.

“잘 지내게. 다음엔 우리가 적으로 만나겠구먼. 그러니 내게 주겠다 약속했던 그 선물은 준비하지 않아도 되네. 자네 손으로 만든 귀한 것을 들고 자네를 대적하고 싶지 않으니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싱긋 웃은 루카스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 때였다.

“자, 잠깐!”

투르캄의 다급한 외침에 루카스가 고개를 돌렸다.

“혹시 자네와만 이야기할 수는 없겠는가? 죄송합니다. 드래곤님.”

루카스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아만은 금세 풀죽은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다시 루카스가 자리에 앉자 투르캄은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며 머뭇거리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래. 자네 말대로 얼마 전에 마족들이 찾아왔네.”

투르캄은 어딘지 모르게 죄책감을 느끼는 듯한 표정이었다.

‘왕을 배신한다는 생각이 들었겠지.’

게다가 아만은 이미 이들에게 몇 번이나 도움을 주지 않았던가. 투르캄 역시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니 더욱 죄책감이 드는 것이겠지.

“그들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딱히 없었어. 그저 드래곤들을 돕지만 말아달라 이야기했지. 하긴 우리가 뭐 전투에 능한 종족도 아니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이 정말 없었는가?”

투르캄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드워프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크흠…… 뭐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 하나 있긴 했네.”

“그게 뭔지 물어도 되겠는가.”

투르캄은 잠시 말을 삼켜냈다.

“사실 내가 자네에게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네. 나는 자네가 좋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좋다는 말일세.”

투르캄의 말에서 진심이 뚝뚝 묻어나왔다.

“욕심이 없는 것도 좋고, 자네가 드래곤과 계약할 만큼의 실력자인 것도 좋네. 우리 드워프는 누구보다 강자를 좋아하는 종족이니 말일세.”

투르캄이 다시 한번 술을 들이켰다.

“크…… 그러니 내 부탁을 좀 들어주게. 사실 우리는 누구의 편에 서고 싶지도 않아. 하지만 마족들은 말했네. 그들의 편에 서지 않으면 모든 종족을 적으로 돌리게 될 거라고 말일세.”

투르캄의 손끝이 살짝 떨려왔다.

“알지 않은가? 우리는 전쟁을 좋아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쟁 납품이 좋아서이지 싸움이 좋아서는 아니라는 것을 말일세.”

그에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무기를 만들어 팔고, 돈을 버는 것을 좋아할 뿐이었다.

그들은 그저 제작자였다. 누구의 편에 서는 전쟁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품질 좋은 물건을 팔아 기쁨을 느끼는 제작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모든 종족을 적으로 돌리게 되리라는 엄포는 무엇보다 무서운 것이었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고개를 끄덕인 루카스가 투르캄을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잘 알지. 나 역시 드워프들을 오랜 세월 봐왔으니 말일세.”

폴리모프한 루카스의 모습은 20대 언저리의 인간 그 무엇도 아니었지만, 투르캄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투르캄 자네가 정녕 이 땅 위에서 드래곤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기쁠 것 같은지 생각해 보게. 저들은 드래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려 하고 있네. 그것도 모든 종족을 설득해서 말일세.”

투르캄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켜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종족 전쟁이 되고 말 걸세. 그것도 드래곤이 개입한 종족 전쟁 말일세. 드래곤들 역시 모든 종족을 아끼지만, 전쟁이 시작되면 제 편에 서지 않았던 종족들을 먼저 찾아가 멸할 걸세.”

“……”

“지금 살고 있는 드래곤은 총 열다섯. 그들 목숨 하나에 종족 하나라고 생각하면…… 쉬운 계산 아니겠는가?”

그러고는 루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 역시 자네가 좋기도 하고 말일세.”

“…….”

“그래서 내가 자네의 선물을 받으러 와도 되겠는가.”

투르캄이 루카스를 잠시 보더니 입술을 꽉 물었다.

“이틀 뒤에 다시 와주게.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해.”

“그러지.”

루카스가 웃자, 족장 역시 어색한 미소로 화답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