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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81화 (181/225)

181화. 마왕의 딸.

하셀과 루카스는 바딤을 해츨링 알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오. 저게 마음에 드는군.”

바딤이 골라낸 알은 노란 바탕에 검은 점이 찍힌 매끈한 알이었다.

‘하필 골라도 저걸…….’

저 알은 루카스가 아는 알이었다.

“자, 그럼 잘 부탁하겠네. 며칠 뒤에 보세!”

“예. 알겠습니다.”

바딤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대지의 마나가 진동했다.

‘도대체 무슨 마법일까.’

생전 처음 보는 마법의 식과 마나 운용.

‘한 생을 몇만 년을 살아내면 저게 가능한 것인가.’

어느새 모든 주문을 끝마쳤는지 바딤의 몸이 더욱 옅어지기 시작했다.

-파스스스.

바딤의 영혼이 알에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제가 가져가서 돌보겠습니다.”

“그러도록 해라.”

이제 조만간 알이 깨어나면 다른 걸 더 물을 수 있겠지.

***

[파멜라. 나의 파멜라. 충실한 나의 종아.]

어두운 숲을 헤매는 파멜라는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정처 없이 걸음을 옮겼다.

[파멜라. 나의 파멜라. 가여운 아이야.]

저 목소리라면 제 아픔을 모두 쓰다듬어 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리 오너라. 나의 아이야.]

따스한 목소리. 이제는 기억에서 흐려진 엄마의 목소리가 마치 이러했던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제가 갈게요.’

아무리 입을 뻐끔거려봐도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저 목소리만 찾으면 나는 괜찮을 테니까.

[그래. 이리로. 이리로 오너라.]

목소리를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저 앞에 보이는 희미한 빛에 파멜라는 전율했다.

드디어 찾았구나. 나의 안식처를.

[파멜라. 가여운 아이.]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안 돼!’

빛무리가 검은 존재들에 의해 가려지기 시작했다.

[파… 메, 가여, 이야…….]

목소리가 끊겨 들리기 시작하자, 파멜라는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제 몸을 긁고 할퀴는 덩굴을 무시한 채 계속 내달렸다. 오늘은 닿아야 한다. 오늘은 제발 저 빛무리를 구해내야만 해.

“안 돼!!!”

그때 나오지 않던 목소리가 확 터져 나오며 잠에서 깨어났다.

“파멜라. 왜 그래요?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거예요?”

식은땀이 등에 흥건했다. 며칠이나 같은 꿈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꿈일까. 꿈에서 목소리가 들리면 영영 깨어나고 싶지 않을 만큼 포근했다.

깨어나고 나면 그 빛무리에 닿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쉬울 만큼.

마치 그 빛무리에 닿으면 제게 평온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그, 그게…….”

리월의 손길이 닿으니 이내 헐떡이던 숨은 잦아들기 시작했다. 저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손길이었지만, 꿈에서 들었던 목소리만큼은 아니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이곳에 머문 지도 어느새 며칠이 흘렀지만, 그들은 파멜라와 리월을 이곳에서 내보낼 생각이 없는 건지 도통 아무 말도 없었다.

“리월. 어젯밤엔…….”

“아, 어제 달이 너무 아름답더군요. 파멜라가 곤히 자기에 혼자 산책을 좀 했습니다.”

“아.”

그보다 이곳에 온 뒤로 리월의 행동이 조금 이상해졌다. 분명 낯선 곳이고 낯선 사람들일 텐데도 리월은 모든 것을 친근히 대했다.

“왜 그러나요?”

리월의 눈초리가 살짝 가늘게 변하자, 파멜라는 얼른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식사해야죠.”

파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아. 리월.”

침대에서 일어나려던 리월이 파멜라를 다시 돌아봤다.

“고마워요.”

“얼른 우리 같이 식사해요.”

뜬금없는 파멜라의 감사 인사에 싱긋 웃은 리월이 방을 빠져나갔다.

***

“파멜라를 데려와라.”

“예.”

야스탄은 자비로운 군주였다. 제 일족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죄인이라 하여 무자비하게 형을 집행하지도 않았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파멜라가 들어왔다.

“잘 쉬었나요?”

야스탄이 입꼬리를 올려 묻자, 파멜라는 무서운 것이라도 보는 듯 어깨를 말고 몸을 발발 떨며 대답했다.

“……예.”

파멜라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야스탄은 제 말을 잘 따르는 파멜라에게 상을 줄 예정이었다.

“파멜라가 내 말을 잘 따라줬으니 상을 줘야겠죠.”

정작 파멜라는 금시초문이었다. 그의 말을 잘 따랐다니? 게다가 지난번과 달리 제게 존대를 하며 묻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파멜라가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물리며 야스탄에게서 멀어졌다.

“파멜라. 충실한 나의 종.”

야스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파멜라의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물리던 걸음이 우뚝 멈춰 서며 야스탄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서, 설마.’

제 꿈속에 자꾸만 나타났던 잃어버린 엄마 같던 목소리가.

“가여운 아이야.”

야스탄이 부드럽게 읊조리자, 파멜라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있을 곳.’

엄마 품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제 꿈에서 봤던 것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드디어 닿을 수 있어.’

이젠 닿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꿈에서 그토록 닿으려 노력했지만 닿을 수 없었던 것.

“나의 가여운 아이야.”

야스탄의 손끝에서 하얀빛이 터져 나왔다.

“아아…….”

제게 내렸던 능력과 같은 것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따스했다.

“네게 새로운 모습을 주마.”

파멜라가 수긍의 뜻으로 고개를 푹 수그렸다. 조금 전까지 무섭기만 했던 그가 지금은 마치 엄마 같았다. 아니, 어머니가 신이 되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사아아…….

하얀빛이 몸을 감싸자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아름답구나.”

손을 내려다보니 더 이상 새하얀 피부가 아닌 제 앞에 있는 위대한 야스탄과 같은 연한 잿빛 피부가 되었다.

“흐윽…….”

감히 저따위가. 감히 같은 피부색을 가져도 되는지 생각이 들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나의 가여운 아이야.”

야스탄은 제 앞에 무릎 꿇은 저와 똑 닮은 잿빛 피부와 흑갈색 머리칼을 가진 파멜라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다 되었구나.’

이제 파멜라는 힘을 사용할 때마다 더욱 마족의 모습에 가깝게 변해갈 것이다.

공들였던 작품이 완성되는 지금 이 순간, 야스탄은 행복했다.

“너는 이제 나의 충실한 종이자 가여운 자들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야스탄이 손을 들어 파멜라의 눈물 한 방울을 슥 닦아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파멜라가 아닌 멜라니, 멜라니 울파다. 너는 나의 딸이다.”

파멜라의 눈동자가 일순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야스탄과 눈을 똑바로 맞추고 대답했다.

“예. 아버지.”

“그래. 멜라니. 나는 네 아버지다.”

눈앞에 작은 인간의 가장 약한 곳. 야스탄은 그곳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제 파멜라는 멜라니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어 저를 위해 충직하게 일할 것이다.

***

야스탄의 방을 빠져나온 파멜라는 걸음걸이부터가 달라져 있었다.

언제나 조금 위축된 듯 말려있던 어깨는 당당히 펴졌으며, 조심스레 내딛던 걸음도 이제 더 이상 조심스럽지 않았다.

파멜라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새로 태어난 기분을 만끽했다.

피부와 머리칼 색은 이내 본래 색으로 돌아왔으나, 이제 제겐 자애로우며 권력 있는 아버지가 생기지 않았는가.

오래전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마족. 이제 그들이 지상을 차지할 날이 머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나는 제국의 공주나 다름없어.’

언제나 멀리서 지켜보며 부러워만 했던 것들이 이제 제 손에 쥐어질 것이다.

먼발치에서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는 것만으로 매를 맞았던 지난날이 스쳐 지나갔다.

‘나도 이제는 부러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우아하게 부채를 흔들며 저를 괄시했던 어느 귀족 영애의 눈빛을 떠올렸다.

‘너보다 내가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설 거야.’

아름다운 드레스 자락을 흩날리며 정원에 앉아 티타임을 즐기던 영애들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그 웃음도 이제 내 것이 되겠지.’

괜스레 입에 미소가 걸렸다.

‘폴라도 받아주기로 하셨다.’

마왕에게 제 동생을 찾게 도와달라 말하니, 야스탄은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네 동생 역시 나의 자식이나 다름없으니.’

그 말을 들으니 더할 나위 없이 안심이 되었다.

‘나는 마왕의 딸이다.’

조금 전 야스탄이 제게 들려줬던 이야기를 찬찬히 곱씹었다.

‘드래곤은 적이다.’

제 아버지와 가여운 동족들을 마계로 내쫓은 자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졌다 한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영혼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영혼이 필요했다. 아주 품질 좋은 영혼이 말이다.

이제는 제 아버지가 된 야스탄이 보여준 여러 가지 영혼석들. 그중 으뜸은 인간의 것이었다.

오크나 고블린 등 하등한 몬스터의 영혼을 모아둔 것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인간의 것과 질이 달랐다.

물론 그보다 더 높은 등급을 자랑하는 것은 엘프나 픽시들의 것이었기에 파멜라가 그들의 영혼을 취하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야스탄은 말했다.

‘하지만 죄 없는 종족들을 해칠 수는 없는 일이다.’

제 아버지는 자비로운 사람이었다. 더욱 질이 좋은 영혼들을 두고도 먼 길을 돌아가다니! 아, 이 얼마나 자애로운가.

그 말을 들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족과 같이 인간에게 핍박받았던 가여운 자들. 그런 이들의 영혼을 거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영혼이 많을수록 동족들을 데려오는 시기가 앞당겨져.’

그녀의 동족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의 영혼을 모아야 해.’

***

야스탄은 파멜라가 방을 빠져나간 이후 연신 새어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큽!”

아무리 참으려 해봐도 자꾸만 터져 나오는 웃음.

“크, 크하하하!”

결국 야스탄은 고개를 젖혀가며 크게 웃고 말았다.

얼마나 웃었는지 배까지 당겼다.

‘어리석은 것.’

며칠 꿈을 조종해 세뇌를 했기로서니 곧장 저를 아버지라 부르며 목숨이라도 바칠 듯 구는 게 귀여웠다.

오늘 파멜라를 불러들였을 때만 해도 조금 이른 감이 없잖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착각이었다.

‘동족?’

제까짓 게 잠시 비슷한 피부와 머리칼을 가졌다 마족을 동족이라 칭하다니. 뿔도 없는 주제에 말이다.

‘어찌 그리 멍청할까.’

파멜라는 제가 본 인간 중에 가장 멍청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맨 처음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로 리월을 보냈을 때만 해도 ‘설마’하는 의심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렇게 일이 술술 풀리니 의심을 품었던 제 자신이 멍청해 보일 지경이었다.

이제 파멜라는 저가 내려준 새로운 이름인 멜라니가 되어 인간의 영혼을 족족 수집해올 것이다.

‘멍청한 것.’

마족이 겪었던 과거 이야기를 꺼내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몇 번 흘리고 맺히지도 않은 눈물을 찍어내는 척 좀 했더니, 당장에라도 인간과 드래곤을 모두 멸할 듯 이글거리는 파멜라를 볼 수 있었다.

인간은 우매하다. 멍청했고 어리석었다.

“머지않았다. 머지않았어.”

이제 정말 머지않았다.

제 충직한 딸이자 인간들의 성녀인 파멜라가 나서면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모일 것이다.

인간들은 제 발로 영혼을 바치고자 사지로 걸어 들어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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