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제1장
혁련소, 연무진을 만나다
산동의 중심에 솟아 있는 태산(太山)은 그 영험함이 하늘에 닿은 곳이라 알려진 천하에 으뜸가는 명산이다.
고대 제국의 황제들이 하늘을 받드는 봉신의 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한 태산은 서쪽을 가르는 황하와 동쪽에 펼쳐진 동해의 기운까지 어우러진, 그야말로 하늘과 닿아 있는 성산으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높이보다는 그 신비스러운 영험함으로 세상의 으뜸으로 인정받는 그곳의 초입에 서로 상반되는 기운을 지닌 두 청년이 마주하고 있었다.
자연의 한 부분인 양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서로에게 검을 겨눈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노려보는 자와 그저 담담하게 쳐다보는 자는 얼굴 역시 눈빛처럼 상반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백색 장포에 갈색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청년은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은발 청년을 담담한 빛으로 바라보았다.
은발 청년의 빼어난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는데 상대를 노려보는 그의 눈빛은 당혹, 불신, 분노 등으로 복잡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믿을 수 없군.”
은발 청년의 입에서 묵직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입을 열자 거친 숨결이 갈색머리 청년의 얼굴까지 닿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상대가 대꾸를 하지 않자 은발 청년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후후후! 천하에 너 같은 자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을…….”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묻어나는 목소리, 그러나 갈색머리 청년은 여전히 입을 닫은 채 은발 청년을 직시하고만 있었다. 그런 그의 분위기는 태산을 뽑아 그 자리에 박아놓은 듯, 넘을 수 없는 철벽을 연상시켰다.
은발 청년의 얼굴이 실룩거렸다.
“이름 석 자 정도는 알고 싶군. 적어도 첫 패배를 안긴 상대의 이름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
“오만한 것인가? 아니면 성정이 과묵한 것인가?”
“……!”
여전히 상대는 대답이 없다. 은발 청년은 화가 치밀었다. 패배에 대한 분노보다 당장의 무시에 대한 감정이 우선하자 다시 검을 섞고픈 욕구마저 들었다.
“젠장! 화가 나는군.”
“혁련소!”
담담한 음성이 갈색머리 청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화를 내려던 은발 청년이 낯빛을 바꾸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린아이 같은 빠른 감정의 변화다. 대체적으로 이런 종류의 사람은 순수하거나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은발 청년의 표정이 다시 바뀌었다. 분명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러나 혁련이라는 성이 주는 무게감은 그의 성난 눈동자를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의 이름을 듣자 불현듯 하나의 존재가 떠올랐다.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존재, 고금을 통틀어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 존재와 청년의 성이 같았다. 그리고 언젠가 한 번 보았던 그와 눈앞의 청년은 무척 닮아 있었다. 눈동자의 흔들림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묵직하게 가라앉는 느낌을 준다. 그는 그런 존재였다.
“비슷한 이름을 지녔군. 그분과…….”
갈색머리 청년의 눈동자가 이채를 발했지만 이내 본연의 심유함으로 가라앉는다.
스르릉!
검집에 검을 넣어버린 은발 청년이 깊은 숨을 내쉬고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그대의 이름, 가슴 속에 새겨 놓겠다. 그리고 오늘의 패배도…….”
은발 청년이 몸을 돌렸다.
그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려 할 때까지도 혁련소는 그를 보고만 있었다. 걸음을 옮기던 은발 청년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패배한 자의 그것으로 보기 힘든 환한 미소가 그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이름 정도는 물으리라 기대했는데, 패자의 이름 따윈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인가?”
혁련소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종잡을 수 없는 상대의 감정변화 때문이다.
“말이 많은 친구군.”
“첫 패배가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군. 그런 그대는 당연히 이런 내 마음을 모르겠지? 패배를 모르고 살았을 테니…….”
“지금까지 수십 번을 싸웠지. 하지만 이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야.”
그 말에 은발 청년의 얼굴이 불신으로 물들었다. 자신은 자신이 속한 곳에서도 꽤 강자에 속한다. 이미 절정을 넘어선 자신이다. 그런 자신을 눈앞의 청년은 일 각 만에 검을 거두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결코 만만치 않는 고수라고 봐야 했는데, 고작 이번이 첫 승리라니…….
“후후! 그 말이 사실이라면 더 비참해지는군. 젠장!”
“승패가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지.”
“득도한 고승처럼 말하는군. 마음이 쓰리지만 강자들의 사치라고 봐야겠지?”
혁련소의 눈가에 슬쩍 주름이 잡혔다. 잠시 은발 청년을 담담한 빛으로 쳐다본 그가 입을 열어 물었다.
“이름은?”
“누워서 절 받는 것이 이런 기분일 줄은 처음 알았군.”
씁쓸하게 미소를 지어 보인 은발 청년이 다시 몸을 돌렸다.
“연무진! 기억해두게. 나의 이름 석 자를…….”
중얼거린 은발 청년, 연무진이 패배의 흔적을 남기고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가 사라져간 방향을 응시하던 혁련소가 몸을 돌렸다.
“신교라…….”
천하만마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신교주 연유극, 그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으니 그의 이름이 사라져간 청년의 이름과 같았다. 은발마검 연무진, 자신에게 패배하고서 사라져간 바로 그 청년이었다. 그는 잠시 연무진이 사라져간 방향을 쳐다보며 그대로 서 있었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이 서서히 어둠을 두르기 시작했다. 지평선 너머에서 붉은 석양이 하루의 생을 마감하고 떨어져 내린다.
‘지금쯤이면 들통났겠군.’
관옥 같은 얼굴에 슬쩍 그늘이 진다. 미간을 슬쩍 좁힌 그가 이내 전방으로 시선을 던졌다.
황제의 오만함을 닮은 듯, 그 고고함을 드러낸 태산의 장중한 그림자 위로 붉은 태양이 완연한 아름다움을 뽐내며 걸려 있었다.
‘잡히면 수련동이야. 이번엔 스스로 돌아갈 때까지는 절대 잡히지 않겠다.’
투벅! 투벅!
그가 붉게 타오르는 석양 속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육신은 석양의 품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 *
화룡검(火龍劍) 뇌우(雷雨)는 당금 천하의 이름난 고수이자 전대 무림맹의 호법을 지닌 위인으로 악을 보면 참지를 못한다고 소문난 열혈호한이자 중원 최고의 객잔 화룡루의 주인이기도 했다.
무림맹의 호법직을 은퇴한 그는 무림인의 본분은 마다하고 숙수의 길을 걷고 있는 특이한 위인이기도 했다. 타고난 재주가 있었던 탓인지 명성만큼이나 그의 요리솜씨 또한 대단했으니 화룡객잔은 그로 인해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화룡객잔은 모두 삼층으로 이루어진 꽤나 큰 객잔이다.
일반고객들을 주로 받는 일, 이층과는 달리 이름난 무림의 고수이거나 지역의 유지들이 주로 애용하는 삼층은 그 음식 값이 상당히 비쌈에도 불구하고 빈자리가 없었다. 모두가 화룡검 뇌우의 명성 탓이다.
상당히 넓어 보이는 객잔 안은 갖가지 기화이초를 심어놓은 분재와 뛰어난 장인들의 작품들로 인해 한껏 고급스러움을 자아냈는데, 그런 삼층 객잔에 바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창가의 탁자에 백색과 흑색 장포를 입은 청년들이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갈색머리에 백색 장포, 은발에 흑색 장포를 걸친 청년들은 좀처럼 보기 힘든 특이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눈에 띄는 그들의 용모 때문에 객잔 안의 다른 인물들은 이따금 그들을 힐끔거렸다. 그들은 바로 태산의 초입에서 결투를 벌이고 헤어졌던 혁련소와 연무진이었다.
“후후! 이런 게 인연이라고 하나.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은발 청년, 연무진이 혁련소을 보며 웃음을 흘린다.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는 혁련소는 그저 바깥을 힐끔거릴 뿐 대화엔 무관심해 보였다.
쪼르륵!
따르는 술이 잔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연무진의 귓속을 크게 울렸다. 연무진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마시게. 술은 내가 사지.”
“패배하고 술까지 사면 억울하지 않나?”
“크크! 그렇군. 하지만 마음에 드는 친구를 만난 것으로 대신하면 그다지 억울할 것도 없겠지.”
“친구를 사귄다는 것이 그다지 쉬운 것은 아니지. 그리고 너와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내겐 없으니 친구라는 말, 함부로 하지 마!”
“자네 마음이야 어떻든 나완 상관없어. 난 그저 내가 좋으면 그것으로 다인 놈이니까.”
“세상 편하게 사는군.”
투덜거린 혁련소가 술잔을 입으러 가져갔다. 뜨거운 화주가 뱃속을 달구자 저절로 눈가에 주름이 생겨났다.
탁!
술잔을 내려놓은 연무진이 혁련소를 직시했다.
“어디 갈 곳은 있나?”
“발길이 닿는 곳이 전부 갈 곳이지.”
“크크!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말을 하는군.”
혁련소가 고개를 들어 연무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가에 슬쩍 이채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어울리지 않는 말이군.”
“어울리지 않는다?”
“천하만마의 주인이 될 자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지.”
“알고 있었나?”
“그 이름에 은발을 지닌 자가 또 있을까.”
연무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술잔을 기울인 그가 중얼거리듯 입을 놀렸다.
“신교의 소교주는 모든 것을 다 가지는 자리로 보는군. 뭐, 교주의 위에 오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까짓 것들은 이미 오래전에 지워버렸지. 지금은 그냥 낭인처럼 살고 싶을 뿐, 검 한 자루에 화주 한 병이면 그저 즐거울 뿐이야.”
연무진의 관옥 같은 얼굴에 그늘이 진다. 술잔을 기울이던 혁련소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이질감.
자신과는 전혀 다른 그 무언가가 연무진에게서 강하게 느껴졌다. 둘은 묵묵히 술잔을 기울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탁자를 덮어가는 술병들은 늘어만 갔고 열을 넘어갈 때가 되어서야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어놓은 창을 통해 바람이 들어오자 혁련소의 갈색머릿결이 흩날렸다.
“멋지군.”
흐려진 눈으로 혁련소를 응시하는 연무진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둘은 객잔 밖으로 나섰다. 어둠이 내린 거리는 지나는 사람 하나 없이 적막했다.
“어디로 갈 텐가?”
연무진의 물음에 혁련소는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발길이 멈추는 곳까지.”
“크크! 역시 멋지군. 부럽기도 하고.”
숨을 몰아쉬니 독한 화주의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연무진이 혁련소의 어깨를 잡았다.
“같이 가지 않겠나?”
“내가 갈 곳이 아니지. 그곳은…….”
“두려운가?”
연무진의 물음에 혁련소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미소라기엔 너무나 차가웠다.
“후후! 두려움 따윈 태어날 때부터 없었다.”
“그럼 같이 가세나. 이 연무진이 어떻게 사는지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군. 부탁이라 생각하고 따라주었으면 고맙겠네.”
“유람을 하려고 나온 것이 아니었나?”
“물론 그럴 작정으로 교를 나왔지만 돌아가야 할 일이 있어서… 거부하기엔 지나치게 큰 일이지.”
연무진의 얼굴이 씁쓸함으로 물들었다. 혁련소의 가라앉은 시선이 연무진을 직시했다.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연무진의 고독함이 그의 가슴을 찔러왔다.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만이 지닌 우울함마저 그에게서 느껴졌다.
‘소문과 다르군.’
연무진은 절대 이런 모습을 보여선 안 될 존재다. 자신이 아는 그곳은 이런 모습을 보이는 자들은 절대 살아갈 수 없는 곳이다. 더욱이 연무진의 신분이라면 더더욱 이런 모습은 보여선 안 되는 것이다. 혁련소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밤하늘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고개를 돌린 그가 걸음을 놓았다.
“신강이라면 제법 시간이 걸리겠지.”
“응! 함께 갈 텐가?”
“뭐, 마땅히 갈 곳도 없으니 이번 기회에 천하의 신교를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혁련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무진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걸음을 옮기는 혁련소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그의 눈동자 또한 기쁨의 빛을 보인다.
“하하하! 역시 오늘의 패배와 술값은 억울하지 않게 되었어.”
연무진이 혁련소를 지나쳐 빠르게 앞장섰다. 그런 연무진을 응시하던 혁련소의 두 눈은 이내 감정을 묻어버린 지극히 담담함 분위기로 바뀌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그는 연무진의 뒤를 따랐다. 앞서 걷던 연무진이 뒤를 돌아봤다.
“경공으로 가겠나?”
“……!”
“경공으로 가지!”
연무진이 느닷없이 바람처럼 질주를 시작했다. 그가 남긴 흙먼지가 혁련소의 얼굴을 덮었다. 슬쩍 미간을 좁힌 혁련소의 육신도 이내 연무진을 쫓아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 * *
사람이 놀라면 넋이 빠지는 법이다.
눈은 초점이 없어지고 입은 저절로 벌어지며 머릿속은 비워지는 증세가 동반되기 마련이다. 단리세가의 단리중호가 지금 그런 상태였다.
그런 그의 주변으로는 단리세가의 무사들로 보이는 자들이 쓰러져 있었는데 하나같이 꼼짝을 않는 것이 죽었거나 실신을 한 듯 보였다.
웅성웅성!
화룡객잔의 모든 사람들이 한 사내를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잘 벼른 칼날 같은 예기를 뿜어내는 사내는 흑발에 장검을 늘어뜨린 채 단리중호를 직시하고 있었다. 사내를 향한 단리중호의 눈동자는 두려움으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세가의 무사들을 한번 손짓으로 저렇게 만든 존재는 지금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오대세가의 자존심이 아니라면 벌써 도주했을 자신이다.
하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세뇌받은 삶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명문세가의 자제라면 결코 두려워 몸을 피해서는 안 된다고 배워온 그였다.
“비켜!”
사내의 입에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단리중호는 사내의 말을 거역할 용기가 없었다. 지금껏 그의 발목을 잡아왔던 세가에 대한 자존심은 그의 말 한마디에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사내를 단리중호는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
“쓸데없는 시비는 죽음을 부르는 곳이 강호야. 그것을 기억해라. 애송이!”
사내의 차가운 음성이 단리중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사내의 육신은 유령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객잔 안의 사람들이 단리중호를 보며 수군거렸다. 인상을 찌푸린 사람들도 있었고 그를 보며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헉! 살았어.’
그러나 단리중호는 자신이 살아 있는 것에 희열을 느낄 뿐 그들의 시선 따위는 관심에도 없었다. 객잔 안이 순간 비릿한 냄새로 진동했다. 모든 사람들이 단리중호를 쳐다보며 입과 코를 막았다.
바닥을 흥건히 적신 누런 액체, 단리중호가 지린 오줌이었다.
* * *
신강의 하늘은 중원의 그것보다 훨씬 높고 장대함을 자랑한다.
천산(天山)을 가로질러 중원의 북방에 위치한 그곳엔 천년빙설의 보호를 받으며 자리 잡은 거대한 성곽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다.
신교(神敎)!
천하만마의 성지이자 안식처인 그곳은 중토(中土)를 노리는 전귀(戰鬼)들이 핏빛 칼날을 벼르며 중원정벌의 야망을 불태우는 곳이기도 하다. 심마(心魔) 조치양은 그러한 신교의 사대전주의 하나이자 당금 무림의 최고수군에 들어가는 절대고수이다.
신교의 두뇌를 상징하는 그는 뛰어난 재지와 책략, 그리고 엄청난 무력의 소유자다. 수많은 절기를 일신에 탑재한 그는 신교의 실질적인 이인자의 자리에 오른 자이기도 했는데, 그런 조치양의 육신이 바닥을 파고들듯 오체투지의 형상으로 엎드려 있었다.
조치양의 앞에는 거대한 체구를 지닌 적발 노인이 고리눈을 한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또 나갔단 말이냐?”
적발 노인의 입에서 살벌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조치양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아이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워낙 경공이 신출지경에 이른 분이시라, 죄송합니다.”
“흑영대 전체가 눈을 뜨고서도 막지 못했단 말이냐?”
“잠깐 산책을 하고 오겠다고 나가시는 바람에…….”
적발 노인의 음성에서 분노가 느껴지자 조치양은 머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적발 노인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시선은 조치양을 향했지만 그를 분노하게 만든 존재는 눈앞에 없었다.
“다른 전(殿)의 놈들도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이번 일을 빌미로 극마전(極魔戰)의 출전포기를 요구하겠군. 그렇지 않느냐?”
“초마(超魔)와 검마(劍魔)측에서 이미 그것에 대해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조만간 소주인의 출전포기와 교주님의 중립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니 대책을 강구해서 사전에 그들이 손을 잡는 것 정도는 막아야 합니다.”
“놈들이 손을 잡을 확률은?”
“소주께서 출전을 하시면 확률은 반 이상이 될 것이고 교주님께서 중립을 표방하지 않으시면 확률은 십 할입니다. 단 출전포기와 중립표방이 모두 이루어진다면 그들이 손을 잡는 확률은 전무합니다.”
팍!
의자의 손잡이가 가루로 흩날린다.
적발 노인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섬광을 발하며 조치양의 숙여진 어깨를 향했다.
“시간은?”
“한 달 안에 소주께서 돌아오셔야 모든 것이 그나마 희망이 생깁니다. 만약 그 안에 돌아오지 못하신다면 당대 극마전은 포기하셔야 합니다.”
“놈은 지금 어디에 있다더냐?”
“흑영대가 강호로 나갔으니 곧 소식을 전해 올리겠습니다. 어쩌면 지금쯤 소교주를 만났을 수도 있겠습니다.”
조치양은 고개를 들어 적발 노인을 바라보았다. 눈앞의 존재는 당대 천하제일을 바라보는, 어쩌면 이미 그 성좌에 발을 디뎠을 수도 있는 그런 존재였다. 물론 절대 넘어설 수 없는 무적의 존재가 중원에 그 위대한 육신을 웅크리고 있었지만 그 존재는 강호의 일에 손을 끊은 지가 오래전이다. 그를 제외한 현역에서 자신의 주인을 넘어설 자,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런 존재가 지금 주체하기 힘든 분노를 보이고 있었다.
그의 분노를 사고 살아날 자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지금 자신의 주인은 어쩔 수 없는 대상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분노를 풀어서도, 풀지도 못할 대상은 바로 신교의 소교주이자 뇌어양의 작은 주인인 은발마검 연무진이다.
조치양은 그의 분노가 자신의 것인 양 마음이 쓰였다.
“교주님! 너무 심려 마십시오. 소주께선 반드시 보름 안에 돌아오실 겁니다. 극마전의 중요함을 누구보다 깨우치고 계신 분이시니 그분을 믿어 보십시오.”
“조치양!”
“예! 교주님.”
“사전주(四展主)들에게 전해라. 날짜의 변경 없이 극마전을 치를 것이라고. 그리고 무진이 그놈이 제시간에 오지 않으면 출전포기와 중립표방 또한 지키겠다고 말이다.”
“교주님!”
조치양의 육신이 거칠게 흔들렸다.
“모든 것은 무진 그놈에게 달렸다. 스스로 일어서지 못한다면 내손으로 목을 잘라 선조들께 죄를 빌 수밖에.”
적발 노인이 몸을 일으켜 대전을 나섰다. 숙여진 조치양의 어깨는 일어설 줄 모른 채 하염없이 떨렸다. 자신의 주인이 혈육보다 크게 생각하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신교!
그랬다.
신교를 위해서라면 핏줄마저도 포기할 존재가 바로 자신의 주인이었다. 목을 자른다면 그렇게 하고도 남을 성정이기에 뇌어양은 가슴을 채워오는 불안감에 한동안 그 자리를 일어서지 못했다.
* * *
둘은 빠르게 달렸다.
주변의 사물이 ‘휙휙’ 하는 소리를 내며 뒤로 지나갔다. 좌측을 달려가던 연무진이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물어왔다.
“말씀을 전하고 가야하는 것 아닌가?”
“괜찮아.”
“하하! 그러다가 그분에게 신강이 작살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군.”
“날 기분 나쁘게 하지 않으면 된다.”
혁련소의 농 섞인 대답에 연무진은 크게 웃었다.
천하의 신교가 어쩔 수 없어하는 존재, 그 존재의 핏줄이라면 무조건 최고의 대접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웃음이 나오는 것은 그러한 존재를 벗으로 둔 것이 좋아서 그런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자신만의 생각일 뿐이었지만…….
“비밀로 해. 번거로운 건 질색이니까…….”
“그러지. 알려지면 교 전체가 시끄러워질 테니.”
“신교가 시끄러워지는 것은 괜찮아. 내가 잡혀가는 것이 문제지…….”
“잡혀가다니? 누구에게?”
“성!”
“하하! 혹시 몰래 가출한 것은 아니냐?”
“……!”
“하하하하!”
연무진은 눈물까지 머금고서 크게 웃었다. 가볍게 일그러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던 혁련소가 씁쓸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연무진은 자신이 이렇듯 통쾌하게 웃어본 지가 언제인지를 새삼 떠올렸다. 철이 들어 세상을 알아버린 이후론 처음이었다.
“알았다! 내 입에 주술을 걸어서라도 절대 너의 신분을 말하지 않겠다. 으하하하!”
“젠장! 그만 웃어라.”
구겨진 혁련소를 보며 연무진은 더욱 크게 웃었다.
* * *
둘은 산 하나를 넘어 또 다른 산의 초입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산동에서 신강까지는 엄청난 거리다. 며칠 사이에 호북을 가로지르고 있는 그들은 한 달 남짓 안에 신강까지 가야 했다. 연무진의 극마전 참가 때문이다.
잠시 말없이 질주하던 혁련소가 눈빛을 발했다.
“누가 우릴 기다리는군.”
“응?”
연무진이 그를 돌아보며 의아한 빛을 보인다.
자신에겐 아무런 기척이 들리질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발했다. 전방의 숲 속에서 느껴지는 기운, 수십 명으로 보이는 일단의 무리들이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연무진이 혁련소를 돌아봤다.
‘대단하군.’
자신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무리들의 기척을 감지한 그의 경지가 새삼 놀라웠다. 감탄의 빛을 품은 연무진의 귓속으로 전음이 들려왔다.
[그냥 지나치는 것이 좋겠군. 약한 자들이야.]
연무진은 고개를 돌려 길을 막아서고 있는 무리들을 보았다.
하나같이 흉험한 빛을 품고 있는 그들의 기운이 그다지 대수롭지 않아 보이자 고개를 끄덕였다.
[산적들로 보이는군. 좋아! 그냥 지나치자고.]
그의 전음에 혁련소가 이채를 발했다.
신교의 인물이라면 자신들을 막아선 무리들을 도륙을 내는 것이 정상이다. 그가 연무진에게 전음을 보낸 것은 쓸데없는 살육을 염려해서인데 의외로 연무진이 쉽게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니 조금은 의아했다.
‘확실히 의외군.’
신교의 소교주라는 지위에 걸맞지 않은 연무진의 심성은 여전히 그에게 낯설었다. 역시 사람은 겪어보기 전엔 절대 평가해선 안 된다는 선인들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질주하는 둘과 길을 막아선 자들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들었다. 무리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손짓을 하며 뭐라고 떠드는 것이 혁련소의 눈에 보였다.
‘산적이라도 눈은 제대로 박혔군.’
무리들의 대화를 들은 혁련소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고수다 도망가자.’ 라고 떠들던 우두머리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달려가는 속도를 보고서 알아본 모양이다. 산적치고는 상당한 경험이 있는 듯 보였다. 무림인들을 터는 산적들은 대부분이 숫자상의 우위를 믿고 덤벼들다가 몰살을 당한다. 저 정도의 빠른 반응이면 적어도 한 두 번은 그런 일을 겪어본 자들이 분명했다.
숲 속으로 황급히 사라지는 무리들을 보며 연무진이 웃음을 지었다.
“산적치고는 보는 눈이 제법이군. 하하하!”
“그러게.”
파앗!
바닥을 차고 오른 둘은 순식간에 무리들이 섰던 곳을 지나 산의 깊숙한 곳으로 내달렸다. 돌아가는 것보다는 산을 가로지르는 것이 훨씬 시간이 단축되기에 둘은 쉬지 않고 산의 능선과 협곡들을 가로질렀다.
* * *
반나절을 더 달린 그들은 작은 고을의 초입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상당한 거리와 시간을 달렸던 둘은 조금의 지친 기색도 없이 고을의 객잔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평화로운 고을이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연무진이 중얼거렸다.
인가라곤 고작 스물 정도가 전부로 보이는 고을은 초저녁을 맞아 밥 짓는 연기를 곳곳에서 뿜어내고 있었고 좁은 길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얼굴과 손이 흙먼지로 검게 더렵혀진 아이들은 혁련소와 연무진을 보고서는 신기한 눈초리로 뒤를 쫓아오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러다가 그들이 돌아보면 걸음을 멈추고 두려운 얼굴을 하곤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둘의 뒤를 졸졸 따랐다.
“객잔이 없겠지?”
“그냥 작은 고을이라 당연히 없겠지.”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산에서 짐승을 잡아 노숙을 해야겠군.”
연무진의 말에 혁련소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을의 정취를 감상했다.
강호의 험난함과는 거리가 먼 고을의 평화로움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얼굴을 간질이는 연기와 가끔 자신들을 보고는 몸을 숨기는 동네아낙들의 모습에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어디 술이나 얻어 볼까?”
연무진의 말에 혁련소는 흥취에서 깨어났다.
자그마한 집이 전부인 고을에서 그나마 제법 규모가 있어 보이는 집을 발견한 연무진이 눈을 찡긋하고서는 대문을 두들겼다.
끼이익!
대문이 열리며 초로의 노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뉘시오?”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한 노인은 연무진을 보며 두려운 듯 움츠린 기색으로 물었다.
“지나가는 객입니다. 고을에 객잔이 없어 혹 술을 담아 놓으신 것이 있으면 살까 하고 이렇게 문을 두드렸습니다.”
연무진의 환한 표정에도 노인은 두려운 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술이라뇨, 저희는 절대 술을 담그지 않습니다. 그럼.”
황급히 문을 닫아버리는 노인, 연무진이 머쓱한 표정으로 혁련소를 돌아봤다.
묵묵히 지켜보던 혁련소는 노인의 태도에 뭔가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걸음을 놓았다. 뒤를 따라오던 연무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흠! 이상하군. 뭔가에 잔뜩 겁을 먹은 듯 보이는군. 그렇지 않나?”
“혹시 모르지. 관가에서 금주령이라도 내렸는지…….”
“금주령? 다른 객잔에선 모두 술을 팔았으니 그건 아닌 거 같고… 흠! 이거 술도 없이 밤을 보내게 생겼군.”
혁련소는 주변을 돌아봤다.
역시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주민들은 자신과 눈이 마주치면 숨기 바빴다. 모두가 두려움에 가득한 눈빛이다. 곳곳을 둘러보던 연무진이 다가오며 고개를 저었다.
“짐작이 가는군. 나 때문인 거 같은데? 사람들 시선을 좀 봐. 모두 나를 먼저 흘긋거리고는 자네를 보잖아.”
“그게 어때서?”
연무진이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복장을 내려다본다. 신교의 무사들이라면 누구나 어깨와 가슴 부근에 신교의 문양이 들어간 옷을 입는다. 지금 자신이 입은 옷도 마찬가지였다. 혁련소도 그제야 주민들이 극도의 불안감을 보이는 이유를 짐작했다.
“신교를 두려워하는군.
“그래, 신교야. 그만큼 나쁜 짓을 많이 했다는 반증이지.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이런 시선을 받게 될 줄은 몰랐군.”
“네가 교주가 되어 제대로 하면 되겠지. 문파란 적어도 자신의 권역에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야 해. 하물며 무림과는 상관없는 일반 백성들은 더더욱 그렇지.”
연무진이 씁쓸한 표정으로 깊은 숨을 내쉬었다. 혁련소는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것에 고뇌하는 신교의 소교주라니…….
‘웃기는 친구야. 확실히…….’
* * *
섬서는 예로부터 천하의 또 다른 세상인 강호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정파의 연합체인 정도맹이 그곳에 있었고 천하구파의 핵심세력인 화산 또한 그곳에서 거대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곳이 섬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선하는 존재가 그곳에 있다. 그 존재 때문에 섬서는 강호인들에게는 성역과도 같은 곳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거대한 백색의 성!
하늘의 높음을 시기라도 하듯 성의 첨탑은 구름을 두르고 오연하게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간이되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초인의 대지는 오늘도 세상의 정점에서 그 위대함을 고고하게 뿌려댄다.
성의 뒤쪽 능선에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거대한 잔디밭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는데, 그곳에 한 사내가 우뚝 서 있었다.
사내의 입이 뜨거운 숨결을 토해냈다.
강렬한 시선은 자신의 검 끝을 주시하며 흔들렸다.
“훅!”
땀으로 번들거리는 상체는 주변공기와의 온도차로 인해 안개 같은 수증기를 뿜어내었고 육신을 가득 채운 수많은 부상의 흔적들이 뱀처럼 꿈틀거린다. 검을 직시하던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림을 멈추었다. 동시에 눈동자를 채우고 있었던 강렬한 기운도 사라졌다. 세상을 담은 듯 고요하고 깊은 사내의 눈동자에 한 인물의 영상이 나타났다.
“됐군.”
솟아나듯 나타난 인물이 사내의 검을 받아들었다. 검을 받아든 인물이 뒤로 물러나자 다른 인물이 나타나 사내에게 물을 내밀었다.
“그놈은 아직 소식이 없느냐?”
차가운 음성이 사내에게서 흘러나오자, 물을 내민 인물이 허리를 꺾으며 대답했다.
“태산에서 신교의 소교주와 싸움을 벌였다고 합니다.”
“신교?”
“그렇습니다. 우연히 싸우게 되었나 봅니다.”
“죽였나?”
자신의 아들을 믿는 것일까. 아니면 신교의 소교주를 우습게 여긴 것일까. 대뜸 죽였는지를 물어온다. 허리를 굽힌 인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자신의 주인은 언제나 저러했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다.
“죽이지는 않았습니다만 함께 신교로 가셨다고 합니다.”
사내의 시선이 그제야 인물에게로 돌아갔다. 세상을 담은 듯 고요하고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엔 아무런 감정조차 떠올라 있지 않았다.
“신강으로 갔단 말이냐?”
“벌써 지척까지 들어섰다고 전서가 전해왔습니다.”
“이유는?”
“그것까지는… 어쩌면 비슷한 성정으로 인해 벗이 되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신교의 소교주와 놈이 비슷한 성정을 지녔단 말이냐?”
“소주의 성정이 주공을 닮지 않으셨습니까. 신교의 작은 주인이라면 당연히 패도를 추구할 것이고 그렇다면 두 분이 비슷한 성정이 아니겠습니까? 해서 짐작해봤습니다.”
“내가 패도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나?”
“당연합지요. 다만 그 대상이 너무 커서 소인이 감당키 어려운 것이 문제입지요.”
“궤변이군.”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허리를 숙인 인물의 시선이 사내를 좇는다.
“돌아오면 수련동에 가둬!”
몸을 일으킨다 싶은 순간 사내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허리를 편 인물이 그때야 한숨을 내쉰다.
“소주에 대한 믿음이 이제야 생기셨나 보군.”
전귀들의 대지, 신강으로 들어선 것에 대한 걱정 따위는 손톱만큼도 보이질 않는다. 자신도 소주인에 대한 걱정은 없다. 무적의 호위무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시 지켜보고 있으니 신교라도 자신의 소주인을 어찌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인물은 사내가 사라져간 방향을 응시하며 가볍게 웃었다.
“허허! 수련동이라…….”
그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가란다고 고분고분 들어갈 혁련소가 아니다. 무사들을 두들겨 패고 다시 도망치지만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머리가 아파오자 손으로 머리를 툭 치고선 휘적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네놈도 수련을 더 해야겠구나. 세 번은 들켰다 이놈아! 쯧쯧쯧!”
그가 허공에다 대고 핀잔을 주고서 걸음을 옮기자 공간이 흔들리며 사람의 형상이 쑥 튀어나왔다.
“젠장!”
인물이 사라져간 방향을 보며 인상을 구긴 청년은 고개를 숙이고서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 번 걸렸으니 삼일 동안을 수련동에 갇혀야 한다.
그곳이 얼마만큼 힘든 곳인지 잘 알고 있는 청년은 눈앞의 인물이 귀가 밝음을 저주했다.
“백 년을 더 산 노인네가 귀도 밝지. 쳇!”
앞서가던 인물이 움찔하는 것이 보이자 청년은 흠칫하며 자신의 입을 막았다. 청년에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을 둘 꼽으라면 눈앞의 노인과 무단가출을 한 작은 주인이다. 이유는 그만이 알 뿐이다.
“흑영아! 삼 일이 아니고 육 일로 방금 늘어났다.”
“크윽!”
* * *
연무진은 자신의 뒤를 느릿하게 따라오는 혁련소를 돌아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첫 패배를 안겨준 그였지만 벗의 따뜻함이 느껴지자 연무진은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좋은 적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때? 한 잔 하고 갈까?”
“좋지.”
“저 산을 넘어가면 꽤 괜찮은 객잔이 있으니 그곳에서 내가 한 잔 사지.”
연무진은 눈앞에 펼쳐진 장대한 산을 바라보았다.
천년빙설이 정상을 덮고 있는 장대한 산은 자신의 고향이자 모든 것이 존재하는 곳, 그러나 연무진의 얼굴은 이내 어둡게 가라앉는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부친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자신을 노리고 칼을 가는 존재들의 모습 또한 부친의 얼굴과 어우러져 함께 나타났다.
‘빌어먹을! 극마전!’
자신보다는 부친의 모든 것이 되어 버린 그것을 위해 자신은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권력과 영광, 그리고 가문의 자존심이 자신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수백 년을 이어온 극마전의 역사에서 자신의 가문은 단 한 번의 패배조차 없었다. 그 역사를 자신이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젠장!’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싫었다.
연무진은 고개를 돌려 혁련소를 다시 돌아봤다. 여전히 그는 하늘을 보며 느릿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달리자!”
말과 동시에 연무진은 바람처럼 움직였다.
* * *
맹독을 지닌 독사(毒蛇)를 독한 화주에 넣어 십 년을 묻어놓으면 독과 주정(酒精)이 어우러져 기막힌 맛을 낸다. 그것을 꺼내 천산의 빙설과 섞어 마시면 그야말로 천하제일의 명주로 탄생하니 사람들은 그것을 가리켜 빙설로(氷雪露)라고 불렀다.
천산 인근에서만 구할 수 있는 빙설로는 연무진이 가장 좋아하는 술이었다.
천산객잔이라는 곳을 찾은 연무진과 혁련소는 빙설로를 벌써 다섯 병째 마시고 있었다.
“역시! 최고야.”
연무진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기 바쁘다.
빙설로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는 산양을 저민 육포를 한입한 연무진은 마주앉은 혁련소를 보며 물었다.
“그곳은 어때?”
“뭐가?”
“사람들 살아가는 것 말이지. 모든 이들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무척 궁금한데?”
혁련소가 피식 웃는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별거 있나?”
“솔직히 그곳을 한 번이라도 구경하고 싶은 것이 내 소원이지. 군림천하를 이룬 사람들의 생활이 어떤지 무척 궁금하거든…….”
“똑같아. 수련하고 또 수련하고… 그러다가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더 강한 것을 얻기 위해 또 수련하고… 죽을 맛이지.”
말을 하는 혁련소의 눈동자가 슬쩍 주변을 살폈다. 마침 연무진은 술잔에 술을 채우던 중이라 그것을 보지 못했다. 혁련소의 눈가에 슬쩍 주름이 잡혔다. 웃을 때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가 왜 웃는지는 오직 그만이 알 뿐이다.
‘지금쯤 나를 잡아오라는 명이 떨어졌겠지?’
도망쳐 온 자신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을 호위무사들이 떠오르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 * *
신교주, 연유극의 얼굴이 다소 밝아졌다.
지난 밤 그토록 애를 태웠던 아들이 돌아온 것이다. 오자마자 인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쾌함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저 돌아온 것이 좋을 뿐이었다.
“이틀을 남겨놓고 돌아오다니, 괘씸한 놈!”
입은 그렇게 말을 했으나 얼굴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조치양이 고개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내색은 못 했지만 속하, 십 년은 더 늙은 것 같습니다.”
“놈이 극마전을 승리하면 보상이 되겠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조치양이 확신하자 연유극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초마와 검마의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극마동(極魔洞)에서 수련 중이라 들었습니다. 극마전이 이틀이 남았으니 오늘쯤이면 교주님을 뵈러 올 것입니다.”
연유극의 눈동자가 섬광을 발했다.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아이들을 배출했다고 하더군. 힘든 승부가 되겠지?”
“소교주를 믿으십시오. 비록 여린 마음이 걸리기는 하지만 누구보다 뛰어나신 분입니다. 분명 교주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야겠지.”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으며 턱을 쓰다듬는 연유극, 지켜보던 조치양이 고개를 조아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벗을 한 분 데리고 오셨습니다.”
“벗이라니?”
“중원에서 만나신 듯합니다.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 않으니 그냥 모른 척하시지요.”
연유극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정파의 아이라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자칫 상대에게 꼬투리를 잡힐 수도 있지 않느냐?”
“곤란한 일이 생기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으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연유극의 안면 근육이 실룩거렸다.
“놈! 한 번도 그냥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군.”
“젊음이 그래서 좋지 않습니까?”
“그대는 그게 탈이다.”
연유극은 조치양의 저러한 모습이 불만이었다. 언제나 연무진을 감싸고도는 그 때문에 버릇은 물론이고 소심하고 나약하게 변했다고 여겼다.
연유극이 몸을 일으켰다.
“놈에게로 가겠다.”
“모시겠습니다.”
둘은 빠른 걸음으로 연무진의 거처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