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안의 마검사-4화 (4/55)

제4장

신교 풍운

쾅!

탁자를 내려치는 연유극은 상당히 화가 나 있었다. 붉어진 얼굴에 수염까지 부들부들 떨었다.

“감히! 그런 노골적인 태도를 보이다니…….”

“이러다가 제가 조사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혁련소가 불만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상당히 짜증스러울 것이다. 하기도 싫었던 대타출전에 조사까지 받아야 한다니…….

“적이 많으시군요. 바깥에선 교주께서 철권통치를 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조금은 놀랍습니다.”

“놈들은 항상 본좌의 가문과 대립을 했던 가문의 후예들이다. 놀랄 것도 없다.”

“이렇게 체계가 없어서야…….”

“닥쳐라!”

“뭐, 무진이 걱정돼서 그럽니다. 어차피 놈에게 돌아갈 교주자리가 아닙니까? 한데 잡아먹지 못해 안달난 자들이 저리도 많으니…….”

연유극의 불길이 솟는 눈동자를 혁련소에게서 거두었다. 대전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한 분노가 좀처럼 가시지 않았던 그는 한참을 화를 다스린 후에야 다소 얼굴이 풀어졌다. 그때 문이 열리며 향긋한 사향 냄새가 실내를 진동했다.

연소민이었다.

천하절색의 미녀가 들어서자 혁련소의 두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연유극이 그녀를 보더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따지듯 물었다.

“어딜 갔다 이제 왔느냐.”

“첨탑에서 모든 것을 보았어요. 축하드려요. 아버지!”

무척 쌀쌀맞은 어조였다. 혁련소가 연유극을 응시하며 그녀가 누군지 눈빛으로 물었다.

“인사해라! 무진의 친구다. 이쪽은 무진의 동생이네.”

“혁련소라고 합니다.”

혁련소를 물끄러니 쳐다본 그녀가 꽃잎 같은 입술을 놀렸다.

“오라버니를 대신하여 가문에 승리를 안겨준 것에 감사드려요.”

역시나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였는데 절색의 용모와 그것이 어우러져 매우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동생이 있다고는 안 했는데… 엄청난 미인이군.’

혁련천후는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노골적인 그의 시선에 아미를 살짝 찌푸렸던 그녀는 연유극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이내 나가버렸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로 보기엔 지나치게 쌀쌀한 태도에 혁련소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하나라도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군. 꽤나 힘들었겠어…….’

그는 문득 연무진에 대한 측은지심이 들었다.

지금껏 신교에 들어와 느꼈던 감정은 한 마디로 아니올시다! 그것이었다. 이렇게 복잡하고 골머리 썩는 곳인지 알았다면 무진이 무슨 말을 했더라도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측은지심과 괘씸함이 동시에 생겨났다.

‘제대로 꼬였군. 이거 이러다가 아버님께 작살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항상 저렇듯 나를 대하는 아이라네.”

연유극이 낯빛을 찌푸리며 자리에 앉았다. 언제나 철혈의 강인함을 느끼게 했던 그의 각진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씁쓸함으로 가득했다. 부친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던 혁련소는 그를 지그시 응시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연유극이 머리를 한손으로 짚으며 말을 이었다.

“실망했느냐?”

“뭐가 말입니까?”

“나에 대해 묻는 것이다. 신교의 대종사가 고작 이 정도일 줄은 몰랐겠지?”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연유극이 그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디 ‘아닙니다.’ 이런 말이라도 해주면 좀 좋을까. 그 유들유들함에 은근한 부아까지 치밀어 오른다.

“수고했으니 푹 쉬어라! 장로회의에서 자네를 부르려면 사흘 정도는 지나야 할 것이니 그동안은 맘껏 즐기도록 해!”

바람을 일으키며 나가버리는 연유극을 혁련소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혀를 찼다.

“언제 어디서 날아들지 모를 암습을 즐겨야 할 판이 되었군. 꼬여도 제대로 꼬였어. 그나저나 숙부님은 어딜 가셨나?”

언제나 지근거리에서 자신을 호위하는 숙부, 그에게 작금의 상황에 대한 해법을 물어보고 그의 말을 따르기로 작정한 혁련소는 그대로 침상에 벌렁 드러누웠다. 푹신한 느낌에 팔을 뒤로 해 머리를 얹은 그는 천장을 응시했다.

한기를 풀풀 뿜어내는 차가운 미녀의 얼굴이 그곳에 나타났다.

‘흠! 제법 예뻤어.’

* * *

혁련소는 다음 날 해가 중천에 오를 때까지 늘어지게 잠을 잤다.

신교 내의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는 그저 모든 것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어차피 적당한 시기에 교주자리는 연무진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섬서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물론 연무진이 깨어나야만 가능한 일인데…….

혹시나 연무진이 깨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재수 없는 생각을…….’

자신의 머리를 툭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있는 힘껏 기지개를 편 그는 배를 어루만지며 거처를 나섰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질 않았던 그다. 시장기가 돌자 연유극이 이용하는 식당으로 걸음을 놓았다. 여전히 낯설기 만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식당에 도착한 혁련소는 뜻밖의 인물이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눈을 반짝였다.

짙은 감청색 장포를 걸친 초로의 노인이 식당의 구석진 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혁련소는 그에게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기운을 느꼈다.

‘분위기 한번 더럽군. 그런데 언제 본 적이 있었던 양반인가?’

그랬다.

노인과 자신이 초면은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도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평범하게 생겨서 그렇겠지.’

노인을 힐끗 쳐다본 혁련소는 장대한 체구의 노인과 식사를 하는 연유극을 발견했다. 형형한 안광이 인상적인 노인은 들어서는 혁련소를 보더니 연유극에게 눈짓을 보냈다. 등을 돌리고 앉았던 연유극이 고개를 돌려 혁련소를 보았다.

“교주님도 이곳에서 식사를 하시는군요.”

“지금껏 잔 모양이군.”

“꽤 피곤해서 말입니다.”

연유극의 얼굴이 어제와는 다르게 제법 밝았다.

“왔으면 얼른 식사하고 오후에 거처로 오너라! 전할 말이 있으니…….”

“전할 말이라니요?”

“나중에 거처에서 얘기하마.”

연유극은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잠시 후, 요리가 탁자에 놓였다. 제법 먹음직한 돼지고기를 볶은 요리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국으로 배를 채운 혁련소는 인사도 없이 식당을 나섰다.

‘무진놈에게 가볼까?’

연무진이 있는 비밀거처로 걸음을 돌린 혁련소는 조금 걷다가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길의 가운데에 연소민이 있었다.

“오라버니에게 가는 길인가요?”

여전히 차갑고 냉랭한 태도였다.

“그렇소만, 낭자도 무진에게 가는 길이오? 그곳은 극비로 알려진 곳이라고 하던데…….”

“제가 남인가요?”

“하는 짓이 남보다 못한데.” 라는 말을 목구멍에서 겨우 참아낸 혁련소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오! 혹, 낭자에게조차 비밀로 했는지 그게 궁금했을 뿐이오. 같이 갑시다.”

“전, 가지 않아요. 대신 부탁이 있어요.”

“부탁? 무슨 부탁?”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물어오는 혁련소를 그녀는 잠시 고요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말했다.

“제가 가고자 하는 곳까지 제 호위를 맡아주세요. 보수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것으로 하겠어요.”

‘호위?’

혁련소는 내심 무척 놀랐다. 교주의 딸이 호위를 청해오다니… 속내와는 다르게 담담함을 유지한 그가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아직 우리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이지 않소? 뭔가를 부탁하고 들어주기엔 지나치게 먼 사이로 생각하오만…….”

“연소민이라고 해요.”

“혁련소! 꽤 멋진 이름이지 않소?”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곱게 아미를 찌푸린 연소민이 예의 차가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신이 교주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음을 알고 있어요. 오라버니도 곧 깨어날 테고, 하니 내 부탁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라요.”

“그 가는 곳이 어딘지는 알아야지 않겠소?”

“중원이에요.”

“고작 중원을 가고자 하는데 내 호위가 필요하단 말이오? 이곳에도 당신의 호위를 자처할 자들은 넘쳐날 듯한데…….”

“내일, 의사를 물으러 오겠어요. 그럼!”

그 말을 끝으로 연소민이 몸을 돌려 사라졌다. 혁련소의 눈빛에 떠오른 흥미로움이 더욱 짙어졌다. 연소민의 관능적인 뒤태를 감상하던 그는 몸을 돌려 연무진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놓았다.

“꽤 재밌게 돌아가는군. 이렇게 되면 가출을 한 보람이 생긴 것인가?”

* * *

연무진은 수정으로 만든 관 안에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그 옆을 백발의 노인과 노파가 지키고 서 있었는데, 그들은 혁련소가 들어서자 허리를 굽혔다. 꽤나 정중한 태도였다.

“아직 멀었습니까?”

“조금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소.”

노인의 음성은 꽤나 묵직했다. 혁련소는 노인의 전신을 흘긋거리며 내심 탄성을 발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결코 교주 연유극에 못지않았다.

‘놀라운 노인네야. 이 정도면 중원에 나가면 꽤나 시끄럽겠지.’

당대 천하를 주름잡은 자들이 열,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십대고수니 뭐니 하며 떠받들고 있었는데 결코 노인은 그들의 아래가 아니라고 여겼다. 물론 자신의 성에 웅크리고 있는 존재들을 제외한 서열이다.

‘이 정도의 고수가 고작 연무진의 관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니, 확실히 이곳은 재밌는 곳이야.’

혁련소가 싱긋 웃으며 노파를 응시했다.

“깨어나면 괴물이 되어 있겠군요. 빙마석을 깔고 누웠으니…….”

순간 두 사람의 눈이 섬광을 발했다.

“빙마석을 알고 있었소?”

“뭐, 상식에 꽤 능통했다는 소릴 많이 들었지요. 놀라실 것까지야…….”

“그대가 극마전을 통과한 신분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서 우리는 그대를 죽였을 것이오. 그만큼 빙마석은 극비사안이니 추후, 그대의 입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스스로가 더 잘 알리라 믿소이다.”

‘흠! 신임교주에게 이런 태도를 보일 정도로 대단하단 말이지?’

혁련소가 짐짓 놀란 몸짓을 했다.

“어이쿠! 그거 너무 살벌한 말씀이 아닙니까? 하하하! 뭐, 입단속은 제대로 할 테니 그런 눈빛은 다시는 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하기 나름이지요.”

노파의 음성은 무척이나 자애로웠다. 그러나 그 안에 숨어 있는 지독한 살기를 깨닫지 못할 혁련소가 아니었다. 그가 장난기를 지워버리고 정색으로 두 노인을 쳐다봤다.

“나는 나를 죽인다는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둘 정도로 성격이 좋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리고 난 죽어서도 안 될 존재임을 말해 주고 싶군요. 내가 죽으면 천하도 죽습니다.”

셋의 눈길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순간 무거운 침묵이 주변을 싸늘하게 굳혔다. 그러나 짧은 침묵은 혁련소가 해소했다. 이내 가벼운 표정으로 돌아온 그는 두 노인에게 생긋 웃어주는 것으로 돌아섰다.

“수고들 하십시오! 놈이 깨어나면 그때 다시 들르겠습니다! 하하하!”

돌아서는 혁련소를 둘은 차갑게 응시했다.

그가 완전히 석실에서 모습을 감추자 노인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가벼워 보이나 실상 가슴속엔 한 마리 잠룡을 품은 자로다! 천하에 저 정도의 인재를 길러낼 곳이 있었단 말인가?”

“잠룡이라 표현함은 다소 그를 낮춰보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그는 이미 승천을 준비하는 황룡으로 보는 것이 옳겠지요? 오라버니!”

“어쩌면 그럴 수도…….”

노인의 안색은 무겁게 경직되어 있었다. 노파가 가볍게 웃으며 노인을 응시했다.

“우리 무진도 충분히 자격이 있는 아이이니 너무 심려치 마세요. 깨어나면 우리 둘의 모든 것을 무진에게 쏟아 붓는다면 천하에 이 아이를 당할 자, 결코 열을 넘어가지 않음을 아시잖아요.”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향후 십 년 안엔 천하제일의 성좌에 무진이 올라설 것이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교주의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았소.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오!”

두 노인의 목소리가 석실 안을 울렸다.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던 연무진의 눈꺼풀이 살짝 움직인 것도 그때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두 노인은 그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 * *

“옛?”

혁련소가 어이가 없어 눈을 크게 했다. 그 앞에 연유극이 다소 침중한 기색으로 앉아 있었는데, 그런 연유극을 향해 혁련소가 물었다.

“지금 저를 감금한다고 하셨습니까?”

“감금이 아니라 잠시 신변을 제어한다는 소리지. 물론 내 뜻이 아님을 알겠지만…….”

“그게 그 말이 아닙니까? 장로회의의 결정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

혁련소의 얼굴에 지독한 짜증이 묻어났다. 천장을 보며 어이없는 한숨을 내쉰 그는 연유극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무진이 깨어날 때가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군요.”

“교를 나가겠단 말이냐?”

“당연한 말씀을… 여기서 감시받으며 며칠을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거, 은근히 화가 나는군요. 무진, 놈을 대신해서 싸워주고 이겨주니 고작 돌아오는 것이 감금이라니요. 교주께서 발 벗고 막아주셨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연유극은 대답을 못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그러나 그럴 능력이 자신에게 없었다. 장로회의는 교주의 권한을 넘어서는 절대적인 권한을 지닌 집합체였다. 그것은 수백 년 역사에 불문율처럼 내려오는 신교의 철칙이었다.

혁련소가 몸을 일으켰다.

연유극의 시선이 그를 쫓았다.

“어딜 가는 게냐?”

“말씀드렸듯, 당장 나갈 생각입니다. 친구고 뭐고 다 귀찮아졌습니다!”

“그자들이 가만히 내버려둘 것이라 여겼느냐? 그들은 본좌도 어쩌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혁련소의 미간에 주름이 생기며 눈동자에 은은한 분노가 담겼다.

“할 수 없지요. 막아서면 벨 수밖에…….”

“놈! 그들은 강자다! 하나가 노부를 능가하는 괴물 같은 자들이 모두 열에 이른다. 네가 어찌할 범주를 벗어난 경외의 존재들, 경거망동 마라!”

연유극의 얼굴에 그답지 않게 초조함이 나타나 있었다. 혁련소가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해할 수 없군요. 교주를 좌지우지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도 그렇고, 이런 골치 아픈 곳을 왜 그토록 집착하시는지 또한 도저히 이해되질 않습니다.”

“나중에 모든 것을 말해 주마! 단, 나의 뜻에 따라주면 안 되겠느냐?”

“교주님의 뜻대로 따르자니 그것을 반대할 분이 계셔서 말이지요. 그분의 말은 설사 하늘이라도 거역해선 안 되는 것이기에…….”

연유극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잠시 혁련소를 지그시 쳐다보던 그가 물었다.

“그분의 혈육인가?”

혁련소가 대답을 않고서 연유극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 흘렀다. 역시 이번에도 혁련소가 그 침묵을 깼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어쨌든 저는 지금 마교를 나갈 생각이고 그것을 바꿀 마음은 조금도 없고, 그러면 나를 막아설 자들이 있다는 소리니 그들과 싸워야 할 뿐이고……. 뭐, 제 머리도 꽤나 복잡합니다.”

“내겐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진정 그분의 혈육이냐?”

“어느 정도 예상하고 계셨지 않습니까?”

예라고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혁련소의 대답은 연유극의 질문에 수긍하는 것으로 여기기에 충분했다. 연유극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놀랍군. 같은 성씨에 그 나이에 엄청난 경지라 예상은 했다만 설마 사실일 줄이야. 네가 이곳에 온 것을 그분도 알고 계시겠군.”

“당연하지요. 지금 교주님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알고 계실 겁니다. 사랑이 지나치다고 봐야겠지요. 솔직히 그 부분이 조금 짜증스럽기는 합니다.”

몸을 일으켰던 혁련소가 제자리에 도로 앉았다. 그는 연유극을 빤히 응시하며 지나치게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제 신분이 왜 교주님께 중요한가요?”

“본좌보다는 그들에게 더욱 중요하겠지. 네 신분을 알게 되면 극마전의 모든 결과는 없었던 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너의 처리를 놓고 고심하게 되겠지. 자칫 네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몽땅 본교가 그 죄를 뒤집어쓰게 됨을 그들도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게 교주님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습니까?”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극마전을 다시 치르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네 신분에 대한 요구를 해온 것이지. 물론 너의 신분이 정파의 일원임이 밝혀진다면 모든 것은 쉽게 수습될 것이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말이지. 하지만 네가 그 신분을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면 그들도 어쩔 수 없게 된다. 다만 그렇게 되면 조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공식적으로 네 신분이 증명될 때까지 너는 이곳에서 머물러야 한다.”

“참! 그게 짜증나서 나간다고 했잖습니까?”

혁련소가 다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말이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자 짜증이 솟구친 것이다. 연유극이 눈빛을 발하며 혁련소를 똑바로 쳐다봤다.

“소민을 네게 주겠다!”

순간 혁련소의 전신이 얼음이 되었다. 연유극의 눈동자에 순간 아픔의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혁련소의 눈에 의아함이 새겨졌다. 연유극의 눈빛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예쁜 따님을 저 같은 놈에게 주겠다니요. 설마 제 신분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리신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꽤 실망입니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이겠지.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너와 그 아이가 엮어지면 네 신분에 아무런 하자가 없게 된다.”

“그러니까, 제가 소민 낭자와 혼인을 하면 제가 설사 정도맹주의 자식이라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혁련소가 어이가 없어 웃었다.

“외형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교주될 자의 내면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우습군요. 천하의 신교가 이 정도로 허술했다니 말입니다.”

“이곳은 패도를 추구하고 숭상하는 자들의 집합체, 당연히 그러한 자가 없다고 확신한 자신감에서 만들어진 규칙이다. 결코 그들의 자신감이 잘못된 것이라 볼 수는 없지. 지금껏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것을 교주께서 깨버리려고 하시는군요. 교도들이 알면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것은 차후 문제, 당장은 너를 극마전의 승자로 결정짓는 것이 우선이다.”

혁련소가 다시 물었다.

“그냥 포기하고 편한 삶을 사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다른 아이가 차기 교주의 위에 오르면 천하는 돌이킬 수 없는 피바람에 잠기게 될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이토록 집착하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보지 않을 분이 계심을 아시지 않습니까?”

“나는 알지만 그들은 무시한다. 그래서 문제지.”

“설마 그들이 그분을 넘어설 자신이 있다고 보십니까?”

혁련소는 자신의 부친과 괴물 같은 숙부들을 떠올렸다. 세상에 그들을 넘어설 자, 단연코 없다고 확신하는 그였다. 그것은 천하인, 모두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것은 나중에 말해 주마! 일단 내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급하다.”

혁련소는 내심 갈등이 생겨났다. 연소민의 아름다운 자태가 순간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녀를 얻을 수 있다면 뭐를 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웃기는군. 그녀는 호위를 부탁하고, 그 아버지는 혼인을 부탁하고, 그만큼 뭔가가 있다는 것인데… 젠장! 골치 아프네.’

그는 즉답을 못했다.

자신의 삶의 목적이 자신의 어머니처럼 예쁜 여인과 결혼하는 것이었다. 그 꿈이 눈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승낙하기엔 왠지 찜찜했고 안 하자니 무척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난처함에 빠졌다.

“만약 제가 따님과 혼약을 한 후, 무진이 깨어나면 교주의 위를 물려주고 떠나는 것은 문제되지 않습니까?”

“그건 문제없다! 극마전은 당대를 끝으로 영원히 사라진다. 그것이 없어지면 교주가 차기교주를 임의로 추대해도 문제되지 않는다.”

“그럼! 좋습니다! 교주님의 부탁을 들어주지요. 뭐, 저야 예쁜 색시도 얻고 천하의 안녕을 위해 일조를 하는 것이니 그다지 손해 볼 건 없군요. 다만 따님이 찬성할지 그게 걱정일 뿐입니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승낙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혼인은 차후, 따님과 제가 결정하는 것으로 하지요. 뭐, 저도 따님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 아이는 천하에 누구와도 견주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아이다. 어쨌든 부탁을 들어줘서 고맙구나! 이 일은 결코 잊지 않겠다!”

감사를 표하는 연유극에게 미소로 화답한 혁련소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연유극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눈을 빛냈다.

“이젠, 그들도 어쩌지 못할 것이다.”

그는 사사건건 자신의 발목을 잡아온 사대전주들과 장로들을 떠올렸다. 교주인 자신보다 더한 세력을 보유한 그들은 엄청난 야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 야망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야망으로 인해 자신의 모든 것과 같은 신교가 어떤 희생을 치르게 될지 또한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신들의 야망 때문에 본교가 희생될 수는 없지! 내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는 한, 그대들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쥐어진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꽉 깨문 입술과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연유극의 신념이 어떠한지 대변해 주었다.

* * *

“남아 있기로 했단 말이냐?”

혁련소는 뒤쪽에서 들려오는 차디찬 목소리에 돌아보지 않고서 웃으며 답했다.

“꽤 괜찮은 조건 아닙니까? 어디서 그런 미녀를 얻겠습니까. 얼음숙부!”

“주공이 아시면 불호령이 떨어질 수도 있다.”

“에에! 아버지도 어머니 때문에 꽤 속 썩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설마 같은 사나이로서 아들의 이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까요?”

“두 분의 사랑은 세상을 울린 지고지순한 것이었다. 너처럼 이런 막돼먹은 것은 아니야!”

혁련소가 미간을 좁히며 몸을 돌렸다.

“숙부!”

흑발을 늘어뜨린 차가운 사내, 흑야는 혁련소를 보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혁련소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곳이 사실 꽤 복잡하더군요. 교주가 저를 끝까지 잡으려고 하는 이유가 재밌기도 하고… 뭐, 다른 세력들이 교를 장악하면 그들이 아마 중원으로 진출할 것 같더군요. 연 교주는 그것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듯, 보이는데 제가 도와주면 신교의 중원진출도 막아주고 겸사겸사 좋은 것 아닐까요?”

“중원엔 신교 따위가 설 자리는 없다!”

흑야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야 당연하지요. 하지만 야망에 들뜬 자들이 그런 것을 생각할 리 없지요. 그들은 아버님도 넘어설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한다고 하더군요. 뭐 웃기는 말이기는 하지만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 아버님과 숙부들이 버티고 있는 중원을 넘보는 것 아니겠어요?”

“지금 내가 신호를 올리면 이곳은 일주일 안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 너도 알지 않느냐?”

“일주일씩이나 걸립니까?”

“이곳까지 오는데 육 일이 걸린다. 쓸어버리는 시간은 고작 반나절이면 충분해.”

광오했다.

천하의 신교를 반나절 만에 쓸어버린다니, 하지만 혁련소는 흑야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숙부들 몇 명과 돌격부대 두 개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었고 그것은 확신에 가까운 믿음이었다.

“그 아이가 네게 호위를 부탁한 사유는 알고 있느냐?”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게 더 궁금하거든요. 느낌으로 보아 그녀는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듯했거든요. 왜 그런지 알아봐야겠는데…….”

말끝을 흐린 혁련소가 사내를 묘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사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부터는 모든 일에 공짜는 없다.”

“에헤!”

“하나씩 네 부탁을 들어줄 때마다 뭔가 내놓지 않으면 해주지 않을 생각이다.”

“숙부 맞습니까?”

“숙부를 종처럼 부려먹는 너보다는 낫다.”

그 말을 끝으로 흑야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연소민의 가출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사라진 것임을 알고 있는 혁련소는 침상에 벌렁 누웠다.

천장에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후후! 어머니보단 못 하지만 뭐, 그 정도면 가히 천하제일이 아닐까? 흐흐! 역시 이번 가출은 꽤 보람이 있어.’

입이 귀밑까지 벌어졌다.

한참을 혼자 희희낙락거리던 혁련소가 잠이 든 것은 만월이 하늘의 가운데 떠오른 때였다.

* * *

“휴…….”

장미 잎을 붙여놓은 듯, 붉디붉은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한숨을 흘러냈다.

만월의 빛을 받으며 창가에 선 연소민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먼 곳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고고한 만월의 빛에 반사된 그녀의 얼굴은 마치 밤하늘을 가르는 선녀의 그것을 보듯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재밌는 사람이야.’

문득 그녀는 혁련소를 떠올렸다. 차가운 얼굴과는 달리 장난기 어린 그의 행동과 분위기를 떠올리자 그녀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는 웃음이 걸렸다. 그러나 이내 예의 우울함으로 돌아온 그녀는 만월을 바라보며 뭔가를 골몰히 생각했다.

그때였다.

만월의 한가운데 시커먼 점이 나타났다. 서서히 커지기 시작한 그것은 이내 사람의 형태로 변해갔는데 연소민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 인영이 자신을 향해 직선으로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인영의 전신에서 뭔가 번쩍하는 것이 보였다.

‘암습!’

순간 그녀의 육신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거처의 지붕을 뚫고 올라갔다. 동시에 그녀가 섰던 자리에 수십 발의 암기들이 박혔다.

챙!

자신의 허리띠를 풀자 그것이 곧 검으로 변했다.

“누구냐!”

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의 앞에 떨어진 인영을 노려봤다. 전신을 흑포로 두르고 두 눈만을 내놓은 인영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웃고 있는 것이다.

“역시, 신교주의 딸답군. 지금껏 나의 암습을 피해낸 계집은 네가 처음이구나.”

“네놈의 암기술을 자랑하려고 나를 찾은 것은 아닐 테고, 뭐 하는 놈이냐?”

“어리석군. 물어보면 대답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흣흣!”

“당연히 대답해야지.”

차가운 음성이 복면인의 뒤에서 들려왔다. 복면인의 고개가 벼락같이 뒤로 돌아갔다. 그곳에 흑발을 늘어뜨린 사내가 우뚝 서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대답할 거라 여기고 물었냐?”

놀란 것은 연소민도 마찬가지였다. 저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접근하도록 전혀 기척조차 느끼지 못한 것이다. 흑야의 차가운 눈동자가 연소민을 향했다.

“너를 좋아하는 놈 때문에 왔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나를 좋아하는 놈?’

연소민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흑야를 다시 쳐다봤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이미 복면인을 향하고 있었다.

“운이 없다고 생각해라. 하필 내가 있을 때 암습을 생각하다니.”

“기고만장이 지나친 놈이군. 그 입이 조금 후에도 놀려지는지 두고 볼까?”

복면인의 손이 벼락같이 앞으로 뻗어졌다. 그러나 흑발 사내의 육신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서걱!

섬뜩한 소리가 들리며 복면인의 육신이 기우뚱거렸다. 주인을 잃은 몸뚱이가 힘없이 쓰러졌다. 연소민은 입을 가리며 나오려던 비명을 간신히 막았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이야 무림인인 그녀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흑야가 보여준 수법은 비명을 지르기에 충분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그녀가 물었다.

“교의 인물은 아니군요. 누구신가요?”

흑야의 눈동자에 슬쩍 이채가 나타났다.

‘사는 곳과는 달리 꽤 깨끗한 눈을 지니고 있었군. 저 정도면 놈이 반할 만도 하겠어.’

그의 눈에도 연소민은 무척 아름다웠다.

젊은 날, 자신의 주모보다는 못 했지만 당대에 최고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미모였다.

“누구신가요? 대답하지 않으면 침입자로 간주하겠어요.”

“침입자?”

“당연히 제게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침입자로 봐야지요.”

“널 도와준 사람에게 지나친 것 아니냐?”

“도와준 것은 감사해요. 하지만 당신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가 험한 꼴을 당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하군요.”

흑야의 눈가에 슬쩍 주름이 잡혔다. 이 여인, 누군가를 무척 닮아 있었다. 잠시 생각했던 그는 닮은 대상을 떠올리고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렇군. 둘째 주모와 그 성격이 똑같아. 이거, 이러면 말려야 되는데…….’

천하최강의 말썽꾼이자 사고뭉치를 떠올린 그는 혁련소를 말려야 한다는 엄청난 강박관념이 생겨났다.

“너, 혹시 싸움 좋아하는 것 아니냐?”

“적들이라면 결코 피하지 않죠. 물론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도 당신과 싸우겠지요.”

당당했다. 흑야는 더더욱 말려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안 돼! 이런 여인은 무조건 사고뭉치다.’

확신은 확고한 신념으로 이어졌다. 그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연소민을 보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아름다운 꽃치고는 가시가 너무 많군.”

“뭐예요?”

“바쁜 일이 생겨서 그만 가봐야겠군. 신분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밝히도록 하지.”

스슥!

그가 사라졌다. 연소민은 두 눈을 뜨고도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놀랍도록 대단한 경공술에 연소민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분명 외부인이었어. 어쩌다가 본교가 이렇듯 쉬운 꼴이 되어 버렸지.’

이곳은 신교의 가장 중심이 되는 지역이다.

외부인이라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곳이 이곳인데 흑발 사내는 제집처럼 왔다가 그냥 사라졌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교를 위해 자식마저 돌보지 않는 그가 죽도록 미웠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진한 슬픔이 올라왔다. 모든 것이 싫어 교를 떠나려고 마음먹은 자신이 지금은 왠지 나쁘다고 여겨졌다. 고개를 들어 만월을 바라보았다.

만감이 교차하며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지긋지긋해. 이런 삶은… 떠날 거야.’

* * *

날이 밝았다.

혁련소는 연유극과 함께 천마전을 찾았다. 미리 나온 자들이 있었는데 초마전과 검마전의 전주들과 장로들이 굳은 얼굴로 대전을 들어서는 둘을 응시했다.

“교주를 보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하극상이 아닙니까?”

혁련소가 작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연유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장로회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그 정도의 예외는 가능한 법이다.”

“흠! 개떡 같은 법이군요.”

혁련소의 그 같은 발언에 연유극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반대로 다른 자들은 노기를 드러내며 혁련소를 죽일 듯 노려봤다.

“아직 그대가 공식적으로 교의 주인이 된 것은 아니다.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음을 명심하라!”

염호의 음성은 지독히도 차가웠다. 혁련소의 눈가에 묘한 빛이 떠올랐다. 그는 좌중의 인물들을 느릿하게 쓸어보며 입을 열었다.

“난 아주 소심한 놈입니다. 지금 그 말, 잊지 않고 담아두지요.”

다분한 협박성 발언이었다.

모두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혀버렸다. 염호가 발끈하며 일어서려는 것을 장로 한 명이 말렸다. 머리를 꼬아 좌우로 늘어뜨린 노인이 자리에서 일었다.

“장로 동승이 교주와 차기 교주께 한 말씀 올리겠소.”

“말씀하시오.”

연유극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당대 신교에서 가장 큰 세력을 지닌 인물이 바로 동승이었다. 그런 동승은 연유극의 가장 큰 경쟁자이기도 했다. 연유극과 혁련소를 보며 입가에 웃음을 떠올린 동승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로회의에서 결정되었던 사안에 대한 교주의 대답을 듣고 싶소. 그리고 차기교주의 신분에 대한 증명 또한 듣고 싶소이다.”

연유극이 잠시 그를 차갑게 직시했다.

모든 이들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나타나 있었다. 그들은 연유극의 뜻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가 선뜻 혁련소의 신분에 대한 확증을 내놓지 못하는 것을 혁련소의 신분이 극마전의 율법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연유극이 입을 열었다.

“극마전의 율법에 현 교주의 직계와 차기 내정자의 혼인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이라 적혀 있소. 모두들 그것을 인정하시오?”

순간 천마전이 술렁거렸다.

그들은 연유극이 그런 말을 늘어놓는 저의가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연유극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본좌에게 과년한 여식이 있음은 모두들 잘 알고 있으니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있겠소?”

“설마, 저 친구와 여식을 혼인시키겠단 말이오?”

동승이 다소 격앙된 투로 물었다.

“안 될 거라도 있소?”

“교주!”

염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뿐이 아니라 모두가 일어섰다. 혁련소가 그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 혼사도 당신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동승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지독한 살기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장로 노지명이 어이가 없다는 빛으로 연유극에게 물었다.

“교주께서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오? 교주의 위를 떠나 그것은 본교가 수백 년 동안 지켜온 자존심과 같은 것이오. 그것을 교주의 대에서 깨버리겠단 말이오?”

노지명은 꽤나 격앙되어 있었다.

모두가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특히 동승과 초마전주 염호, 그리고 검마전주 적용극이 보여준 태도를 보며 확실히 그들이 연유극과 함께할 수 없는 자들임을 혁련소는 깨우쳤다. 모두의 맹렬한 반기에도 연유극은 냉철함을 잃지 않고서 그들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결코 너희들의 뜻대로 신교가 놀아나진 않을 것이다.’

연유극은 자신의 신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더 이상 극마전의 결과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자는 교의 법규에 따라 무조건 처벌을 받게 될 것이오. 물론 비공식적으로 불만을 표하다 적발되면 교의 교란행위로 여겨, 목을 자른다는 것쯤은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알고들 계실 것이오.”

“흐흐! 당신이 그렇게 나오는 것을 보니 저놈의 출신성분이 정파임이 틀림이 없는 모양이군. 교주! 당신이 뭔가 착각하고 있음을 아시오? 신교는 패를 추구하고 숭상하는 무인들의 성역과도 같은 곳, 교주의 자리에 연연하여 적을 끌어들여 손을 잡는 당신을 교인들은 결코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오.”

동승이 협박성이 다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말투도 내일부터는 처벌대상이 될 것이니 유의하시기 바라오.”

연유극은 여전히 냉철함, 그대로였다. 동승이 이를 갈며 연유극과 혁련소를 노려봤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이 자리에서 둘을 죽이고 싶었지만 어디 세상이 생각대로 살 수 있는가. 분을 삭인 동승이 자리를 박차고 대전을 빠져나갔다.

다른 모든 이들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독 지금껏 말이 없던 장로 조무백이 대전을 빠져나가는 자들을 응시하며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느릿하게 연유극을 돌아봤다.

연유극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서 똑바로 쳐다봤다.

“교주…….”

“말씀하시오. 조 장로.”

“무엇 때문이오. 자칫 잘못되면 교의 분열을 불러올 수도 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 아니오. 그럼에도 강행을 하려는 뜻을 알고 싶소.”

연유극의 눈썹이 슬쩍 꿈틀거렸다.

교내의 장로들 중, 유일하게 자신에게 호의를 지닌 인물이 바로 조무백이었다.

“내가 하는 이 일이 교의 분열을 불러올 수 있다면, 저들의 집권은 교의 멸망을 초래할 것이오. 조 장로도 저들의 야욕이 어떤 것인지 대략은 짐작하고 있을 것이오.”

“야욕을 조금만 달리 보면 본교의 천년염원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로 볼 수도 있소이다. 물론 그들이 표방하는 것이 그것이라오.”

“천년염원이라 하셨소? 그게 가능하리라 믿소이까? 중원을 나가기 이전에 빙궁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소. 지금의 전력으로 빙궁과 붙는다면 우리가 필패 하리라는 것쯤은 교의 문지기들도 아는 사실이오. 하물며 그런 빙궁을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처럼 여기는 존재가 저 중원에 있소이다! 괴물 같은 존재들의 호위를 받으며 천하를 내려다보는 그 존재를 감히 넘어서겠다고? 허!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오. 설혹 그들이 중원의 일에 관여를 하지 않는다는 희망을 가져 봅시다. 그렇다고 쳐도, 지금 교의 힘으로 중원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넘어설 수는 없소이다. 전쟁을 벌이면 지는 것은 백에 백, 본교가 될 것인데, 교를 멸망의 구덩이로 몰아넣는 것을 그것을 천년염원이라 할 수 있소!”

지금껏 냉철함을 유지했던 연유극이 분노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렸던 그다. 어쩌면 하나뿐인 딸까지도 자신을 위해 수단으로 삼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의 목적이 거론되자 지금까지 겪었던 수모가 분노로 바뀐 것이다. 어쩌면 자신,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것일 수도 있었다.

“허허…….”

조무백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연유극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혁련소를 향해 돌아갔다.

“그만 돌아가자!”

“그럴까요?”

머쓱한 표정을 지은 혁련소는 조무백을 흘긋거리고는 연유극의 뒤를 따랐다. 둘이 바람처럼 대전을 빠져나가자 조무백의 노안에 아픔과도 같은 빛이 떠올랐다.

“허허! 알고 있소. 교주가 왜 그런 무리수를 두는지… 하지만 말이오. 솔직히 모두가 너무도 긴 기다림에 지쳤다오. 당신 말처럼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검을 뽑아 달려가고 싶은 심정은 무사의 본능이라오. 그 본능을 감추고 산 지가 오십 년이 지났으니 그들의 그러한 심정을 어찌 강제할 수 있으리오.”

조무백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

대전에서 돌아온 연유극은 술을 물처럼 마셨다.

붉어진 얼굴은 그가 상당히 분노했음을 알게 했다.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려다 끌려온 혁련소는 멀뚱한 표정으로 술잔을 꼼지락거렸다.

“빌어먹을!”

연유극이 평소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시선을 한곳에 두지 못하고 술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깨진 술잔만 벌써 열이 넘어갔다.

연유극이 충혈된 눈으로 혁련소를 똑바로 쳐다봤다.

“너의 눈에는 본교의 이런 모습이 우습게 보이겠군.”

“글쎄요.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군요.”

“그분의 눈에는 본교가 어떻게 보였느냐?”

그분, 혁련소의 부친을 뜻하는 것이다. 혁련소가 가볍게 웃었다. 슬쩍 연유극을 쳐다본 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분은 전쟁을 좋아하세요. 그 누구든 쳐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실 수도 있겠지요. 그분이 왜 전쟁을 좋아하는지 잘 한 번 생각해 보시면 교주님의 지금 이와 같은 모든 행동들에 대한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겠지요,”

혁련소가 그 말을 남기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전율!

연유극의 육신에 소름이 돋아났다. 전쟁을 좋아한다면, 누가 쳐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전쟁을 일으키고 쳐들어온 자들은 그가 직접 나설 것이고 결과는…….

‘무조건 막아야 해.’

연유극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 * *

혁련소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녀가 암습을 받았단 말입니까?”

찻잔을 기울인 흑야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혁련소가 다시 물었다.

“암습을 한 놈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죽였다.”

“아니, 그냥 죽였단 말입니까?”

“그럼 살려둘까?”

“숙부!”

혁련소가 다소 어이가 없는 투로 언성을 높였다.

“내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 그건 그렇고 너, 생각 다시 하는 것이 좋겠더군.”

“그게 무슨 말입니까?”

“둘째, 주모!”

혁련소가 순간 멀뚱한 표정이 되었다.

“갑자기 작은 어머니는 왜요?”

“둘째 주모를 무척 닮았더군. 연소민이라는 그 아이…….”

“뭐가 닮아요. 비슷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던데, 솔직히 작은 어머니 정도만 되었으면 벌써 사단을 냈을 겁니다. 모르죠. 납치를 해서 어디 산속에 꽁꽁 숨었을 수도 있을 테지요.”

흑발 사내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찻잔을 잡은 손이 가볍게 떨렸다.

“아무래도 다음 호위는 천소, 놈을 붙여야겠군. 아무리 봐도 넌 좀 맞으며 살아야 할 것 같다.”

“흘흘! 전 숙부가 제일 좋습니다. 한 일 년쯤, 기한을 연장하셔 저하고 오붓하게 노는 것이 어떻습니까?”

“며칠 안 남았다.”

혁련소의 얼굴이 구겨졌다.

여덟 숙부들 중, 가장 무섭고 사나운 인물이 방금 흑야가 거론했던 인물이다. 말보다 주먹이 먼저인 그는 혁련소뿐만이 아니라 성의 모든 사람들이 마주치길 꺼려할 정도로 무서운 존재였다.

그가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고 생각하자 혁련소는 벌써 골치가 지끈거렸다. 그 모습에 흑야의 눈가에 슬쩍 주름이 생겨났다.

“그건 그렇고, 분위기가 제법 심상치 않습니다.”

“반대하는 자들 말이야?”

“예. 느낌에 오늘 내일, 아마 뭔가 벌어져도 크게 벌어질 것 같습니다. 이거, 저를 죽이러 떼거리로 몰려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탁!

흑야가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창가로 걸어갔다. 창문을 열어 밖을 응시하던 그가 이채를 발했다.

“그 아이가 오고 있군.”

혁련소가 재빨리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려다보았다. 비단을 하늘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이곳을 향하는 연소민이 보였는데, 표정이 꽤 화가 난 듯 보였다. 혁련소가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화가 잔뜩 난 듯, 보이는데 내가 뭘 잘못한 거라도 있나?”

“그 소식을 들었겠지. 너와 혼인을 올린다는 것.”

“에이 설마요. 연 교주가 그녀에게 말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했겠습니까?”

“그 설마는 항상 어디서나 일어나는 법이다.”

흑야가 몸을 일으켰다.

“가시게요?”

“원하는 거, 아니었나?”

“흠! 뭐 계셔도 됩니다.”

“간다!”

그 말을 남기고 그는 사라졌다. 언제나 봐왔지만 그의 신법은 그야말로 귀신같았다. 혁련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한 뒤, 자리에 앉아 연소민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연소민이 들어섰다.

그녀는 차가웠다. 그리고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웃기는 말을 들었어요.”

“뭐가 말이오?”

“당신과 나의 혼인!”

“그게 왜 웃기는 말이오?”

연소민의 고운 아미가 사납게 올라갔다. 그녀는 허리에 손을 얹고 혁련소를 똑바로 쳐다봤다. 혁련소도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아버지나 당신에겐 별일 아닐지 몰라도 난, 달라요. 내 인생을 추악한 권력싸움에 저당 잡히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어요!”

“사실, 나도 의외였소.”

“지금이라도 철회하세요.”

혁련소가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되면 교주님이 무척 곤란해질 것이오. 당장 아침에 그 늙은이들과 그 일을 가지고 한바탕 소란을 피웠는데 말이오.”

“상관없어요! 어차피 당사자인 당신의 뜻이 중요한 법! 철회해 주세요.”

“……!”

의외의 상황에 혁련소는 순간 당황하고 있었다.

책이나 옛날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정략적인 결혼은 거의 대부분이 이루어졌었다. 간혹 애절한 사랑이야기로 전이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어쩔 수 없이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가게 되는 것으로 결말이 났었다.

지금처럼 눈에 불을 켜고 철회해 달라는 경우는 그 어떤 책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난 그저 당신 부친의 뜻이 너무 간곡해서 수락했을 뿐이오.”

“당신 마음이 어떤지 내 알바 아니에요. 공식적으로 당신과 나의 혼인이 교내에 알려지는 것이 용납할 수 없을 뿐이지요. 그러니 당신이 스스로 철회를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내겐 중요한 일이니 그렇게 해주세요.”

연소민은 단호했다.

혁련소는 그녀를 보며 내심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 그녀가 자신과의 혼인을 이토록 강경하게 반대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그녀의 말처럼 공식적으로 철회를 한다면 연유극이 무척 곤란해지리란 생각에서다.

‘거, 되게 매몰찬 여자군. 그냥 슬쩍 눈감고 지나가면 될 것을…….’

그는 잠시 말없이 연소민을 응시했다. 한기를 풀풀 풍기는 그녀를 보니 문득 연무진이 떠올랐다. 교의 생활을 무척이나 힘들어 했었던 그가 다시 한 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혁련천후가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내가 무진에게 교주의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그때까지는 소저의 뜻을 따를 수 없소. 물론 그날이 오면 자연스럽게 그대와 나의 혼인은 없었던 것으로 될 것이오. 무진과의 짧은 인연이 내겐 제법 컸나 보오. 그가 힘들어지는 것이 싫어서 이러는 것이니 그 얘기는 그만 합시다.”

연소민이 여전한 눈빛으로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고운 그녀의 아미가 살짝 꿈틀거렸지만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몸을 돌려 밖으로 걸음을 놓았다.

“호위건은 지금도 유효한 것이오?”

연소민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물론이에요. 내가 내건 조건 역시…….”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준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혼인을 원한다면 어쩌시겠소?”

연소민이 빠르게 몸을 돌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내가 원하는 기간 동안 나를 호위한다면 물론 들어주겠어요. 단, 그 기간 안에 내가 무슨 일을 당한다면 당연히 무효가 되겠지만…….”

“그 기간이 어느 정도요?”

“그건 당신이 수락을 한 뒤, 알려주겠어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유심히 쳐다보던 혁련소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숙부님 말씀처럼 가시가 너무 많아. 게다가 너무 날카롭고 뾰족해. 내가 다칠 수도 있을 만큼 말이야.”

침상에 벌렁 누웠다. 천장에 차가운 연소민의 얼굴이 떠올랐다. 요즘 들어 이런 증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고개를 흔들어 지우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젠장…….”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