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죽음과 이어지는 추격전
혁련소가 연소민의 영상으로 애를 태우고 있은 시각에 신교주 연유극은 자신을 찾아온 자들을 노려보며 분노를 터트렸다.
“결국 마각을 드러냈군.”
동승이 그를 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어쩔 수가 없었네. 그대가 없어져야만 우리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으니…….”
“웃기는군. 그대들이 진정 중원을 넘볼 힘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분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중원을 말이다!”
염호의 얼굴 근육이 뒤틀렸다.
“우리는 강한 교주를 원했다. 천년신교의 꿈을 실현시켜 줄 그런 교주를 말이다. 하지만 당신은 결코 강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항상 안전만을 도모하며 궁극의 적을 두려워만 하는 그런 당신은 신교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를 죽이겠다?”
“교를 위해서라면…….”
동승과 모두가 검을 뽑아 들었다.
좁은 거처에서 절대고수들이 본격적으로 기세를 드러내자 순식간에 실내는 싸늘하게 변해갔다. 연유극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어야 했다.’
자신이 최후의 수단을 던졌을 때, 이들이 가만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그것도 최악의 상황으로 이들이 만들어갈 줄은 전혀 생각 밖이었다.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자신은 이 자리에서 죽는다.
눈앞의 인물들은 하나하나가 자신과 별반 차이가 없는 고수들, 그런 자들이 넷이다. 결과는 분명 자신의 죽음으로 귀결될 것이다.
스르릉!
연유극이 자신의 애검을 뽑아 들었다.
* * *
쾅!
드드드…….
갑자기 교의 한쪽에서 강력한 폭발음이 일어나며 대지가 흔들렸다. 누워 낮잠을 청하려던 혁련소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뭐지?”
잠시, 그는 귀를 기울였다.
또다시 연속적으로 폭발음이 들렸다. 혁련소가 황급히 시선을 그곳으로 돌렸다. 분명 연유극의 거처가 있는 방향이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는 고수들이 싸울 때나 발생할 법한 소음과 진동이었다.
“벌건 대낮에 어떤 놈들이…….”
그의 말이 여운을 남겼다. 말보다 그의 육신이 더욱 빠르게 거처를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혁련소의 거처를 나와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던 연소민이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부친의 거처가 있는 방향에서 들려온 거친 소음들, 순간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건 싸우는 소리가 틀림없어.’
분명했다.
불안감이 스멀거리며 생겨났다.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며 연유극의 거처로 몸을 날렸다.
* * *
연유극의 거처는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곳곳에 뿌려진 선혈들과 싸움의 흔적들, 연소민은 놀란 눈으로 거처의 곳곳을 살폈다. 불안감이 엄습하며 그녀의 다리에서 힘을 빼앗아 버렸다. 기둥에 기대어 균형을 잡은 그녀는 부친이 평소 이용했던 탁자를 쳐다봤다.
그곳에 부러진 검이 있었다. 그녀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신교를 상징하는 마검(魔劍) 용패(龍覇)의 부러진 파편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젠장!”
거친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혁련소가 거처로 들어섰다. 이미 곳곳을 둘러본 그였다. 상당히 화난 그의 얼굴이 한곳에서 멈추었다. 재빨리 다가가 무엇인가를 잡은 혁련소가 신경질적으로 그것을 던져버렸다.
쨍그랑!
용패의 부러진 날이 요란한 울음을 울리며 거처의 바닥을 뒹굴었다. 혁련소가 창백한 안색으로 간신히 선 연소민을 쳐다봤다.
“짐작 가는 놈들이 있소?”
연소민은 쏟아지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아내며 고개를 저었다.
“놈들이겠지. 개새끼들!”
혁련소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분명 천마대전에 있었던 놈들의 짓이라 확신했다. 그들이 보였던 눈빛을 떠올리자 확신은 더욱 강해졌다.
그때 혁련소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분노로 일그러졌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빌어먹을!”
쾅!
그의 육신이 그대로 벽을 뚫고 어디론가 쏜살같이 날아갔다. 연소민도 그제야 흠칫했다. 그녀의 가녀린 육신이 심하게 흔들렸다.
“오라버니!”
* * *
혁련소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곳 역시 연유극의 거처와 다를 바 없었다. 곳곳에 뿌려진 진한 선혈들과 벽을 파고 든, 검강의 흔적들, 그러나 그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곳은 연무진이 들어있던 관이 있던 자리였다.
없었다.
연무진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강하다는 빙마석이 산산조각으로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가득 흘러내린 선혈,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그것은 연무진이 흘린 것임을 혁련소는 짐작할 수 있었다.
“으…….”
이가 부들부들 갈리며 주체할 수 없는 지독한 분노가 들끓었다. 인연을 맺은 지 고작 한 달이 채 안 되었다. 그 짧은 시간을 생각하면 분노는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
그랬다.
자신이 생각하고 느꼈던 그 이상으로 연무진에 대한 감정이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다. 형제가 없었던 자신에게 지금에 와서야 연무진이 형제처럼 다가왔다.
비록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지만 형제를 잃으면 이렇게 슬프다는 것을 혁련소는 지금에야 알 수 있었다.
부들부들!
꽉 쥐어진 주먹이 요동쳤다. 꽉 깨문 입술이 파고든 이로 인해 붉은 선혈을 흘러냈다. 부릅떠진 두 눈에 차갑고 오연한 사내의 영상이 나타나 있었다.
‘분노해라. 의지보다는 분노가 더욱 너를 강하게 해줄 것이다.’
아버지의 말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주기 위해서, 약한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강해져야 한다던 그 말이 가슴을 적셔온다.
혁련소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냉정을 찾았다.
교주와 무진이 당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소민, 그녀뿐이다. 그리고 자신 역시 그들이 놔둘 리 없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만 한다.’
그가 소민을 돌아봤다. 연이은 충격으로 차갑던 그녀의 모습은 연약한 여인으로 변모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오. 이곳을 빠져나가는 가장 빠른 길을 알고 있소?”
“뒤쪽 천산을 오르는 길이 가장 빨라요.”
연소민도 닥쳐올 사태를 직감했는지 슬픔을 지워내려는 기색이 보였다.
“살아들 있다면 만나게 될 것이오! 일단, 이곳을 나가는 것이 우선이오!”
“알겠어요.”
그녀가 빠르게 앞장을 섰다. 둘은 빠른 속도로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였다. 벌건 대낮이라 은신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최대한 조심스럽게 후진 곳만을 골라서 이동했다.
큰 전각 두 개를 지나자 상당한 높이의 성곽이 나타났다.
바로 천산과 이어진 신교의 성곽이었다. 뒤쪽이 깎아지른 절벽인 탓에 다른 곳과는 달리 경계가 다소 허술했다.
둘의 육신이 빠르게 성곽으로 날아올랐다. 동시에 삐익! 호각소리가 울리며 성곽 위에 사람들이 쭉 늘어섰다.
“젠장!”
들킨 것이다.
혁련소는 다급히 주변을 돌아보고는 우측으로 경공을 펼쳤다.
“저곳으로!”
연소민이 뒤를 따랐다.
쐐액!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수십 발의 암기와 강전이 둘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들이 허공에 몸을 띄우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떨어질 공간까지 계산한 암기세례였다.
따다다당!
혁련소가 검을 휘둘러 날아드는 암기들을 쳐냄과 동시에 호신강기를 펼쳐 주변에 방어막을 쳤다. 연소민 역시 은은한 호신강기를 이미 전신에 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를 더 못 가 그 자리에 멈추어야 했다.
“도망을 하는 길인가?”
초마전주 염호가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상당한 강자들로 여겨지는 장한들이 횡으로 늘어서 염호를 호위했다.
연소민이 싸늘하게 소리쳤다.
“추악한 인간들!”
“후후! 추악해도 좋다. 너희 둘만 죽이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니까.”
혁련소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순간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자신을 암중 호위하는 숙부의 기운이 염호의 뒤쪽에서 느껴졌다.
그렇다면 염호는 죽은 목숨이다. 자신은 느낄 수 있지만 염호는 그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살왕 흑야의 전설이 괜히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하오. 내가 뛰면 함께 뛰시오!]
[놈들을 뚫고 갈 수 있을까요?]
[놈은 곧 죽을 것이오!]
연소민은 내심 놀랐다.
염호는 알아주는 고수다. 혁련소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를 당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혁련소는 전혀 두려운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몰라도 너희 둘이 교를 살아서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순순히 자결을 할 기회를 주마. 아니면 넌 죽을 때까지 무사들의 노리개가 되겠지. 그동안의 정리를 감안한 나의 배려라 생각해라.”
염호가 연소민을 보며 차갑게 말을 뱉었다.
염호의 속내는 진심이었다. 야망의 이면에 조금 남아 있던 양심의 발로였다.
“아주 오랜 후에 저승에서 봅시다!”
혁련소가 염호에게 웃어주고는 벼락같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연소민이 그를 따랐다. 혁련소의 빠르기가 상상을 넘어서자 염호와 장한들은 재빨리 좌우로 몸을 피해야만 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혁련소는 섬전처럼 빠른 속도로 그들의 가운데를 뚫고 성곽을 넘어섰다.
“죽여라!”
염호의 명이 떨어졌다.
그때 혁련소가 남긴 흙먼지 속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번득였다.
“쫓으면 죽는다!”
북해의 겨울바람을 연상시키는 차가운 음성이 그 속에서 흘러나오며 염호의 옆에 섰던 장한 하나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툭! 떼구르르…….
소리조차 없이 잘려진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크게 놀란 염호가 시선을 돌려 그림자를 찾았을 땐, 이미 흙먼지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염호가 고함을 질렀다.
“호각을 불고 놈들을 추격해라!”
삐익!
귀청을 찢는 호각 소리가 마교의 곳곳을 울렸다. 사방에서 고수들이 바람처럼 날아오르며 혁련소와 연소민이 사라져간 곳으로 향했다.
* * *
혁련소와 연소민의 옆에 어느새 나타난 흑야가 함께하고 있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그를 보며 연소민은 크게 놀랐다.
“일행이오!”
“일행이었군요. 역시 이상하더라니…….”
“그건 나중에 따지고 당장은 이곳을 벗어나는 데 주력합시다.”
흑야를 잠시 노려본 연소민은 손으로 우측을 가리켰다.
“저곳을 돌아가면 중원이고, 직선으로 넘어가면 아직 그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세상이 있다고 했어요.”
“천년금역이다.”
흑야의 중얼거림에 연소민이 눈을 동그랗게 했다. 설마 그가 그곳을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그녀였다. 흑야가 눈빛을 발했다.
“중원으로 간다!”
셋은 빠르게 천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인간의 힘으로는 오를 수 없는 곳이 천산이다. 하지만 셋은 어렵지 않게 천산의 중턱을 향해 경공을 펼쳐 올랐다. 그곳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면 중원의 경계에 들어선다.
“놈들이에요!”
연소민이 산 아래를 가리켰다. 새카맣게 몰려오는 인물들이 있었다.
“꽤 철저하게 준비했군.”
흑야가 주변을 살피며 눈을 빛냈다. 대부분이 돌로 이루어진 곳에 적당한 수풀이 있었고 사내는 그곳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먼저 가거라! 곧 뒤따라가마.”
흑야가 숲으로 몸을 날렸다. 혁련소는 지체 없이 연소민을 이끌고 몸을 날렸다.
수림은 북방특유의 침엽수로 가득했다.
능선의 위쪽으로 오르면 절벽과 천년빙설만이 존재했고 그 위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조차 않았다. 흑야는 숲 속에서 추격하는 자들이 들어서기만을 기다렸다.
‘머리만 자르고 가야겠군.’
무리를 이끄는 자를 척살 일순위로 올린 그는 빠르게 다가오는 신교의 추격대를 응시했다. 가파른 비탈을 상당한 속도로 오르는 것으로 보아 모두가 한 가닥 하는 고수들로 이루어진 추격대였다.
선두에 염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좌우를 적포인들이 늘어서 있었고 청색무복을 걸친 자들이 새롭게 합류해 있었다.
‘간격에 들어서면 넌 죽은 목숨이다. 늙은이!’
그는 오직 염호만을 노렸다.
죽이고자 마음먹는다면 지금이라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선 곤란했다. 위치가 드러나면 신교의 전력이 혁련소와 연소민을 노리고 달려들 것이다. 혁련소가 험한 꼴을 당해서 안 된다. 그러면 천하는 끝장이다.
염호가 공격사정권 안으로 들어섰다. 흑야의 눈동자가 광채를 뿜었다.
빛의 속도가 이럴까. 흑야의 검이 소리 없이 염호를 향해 날아갔다. 그것은 흑야를 고금최강의 자객으로 올려놓은 최강의 살인무예였다.
퍽!
비명조차 없었다. 염호의 육신이 어깨에서 허리까지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볼 것 없이 즉사였다. 초마전주라는 거물의 죽음치고는 참으로 어이없고 허망한 결과였다.
“헉!”
염호가 죽는 것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자들이 바닥을 적시는 선혈을 보고는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경고다! 추격은 여기까지다. 더 쫓는다면 너희는 죽는다!]
차가운 음성이 그들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청색무복을 걸친 자들이 일제히 수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무지막지한 기운들이 숲을 향해 짓쳐들었다.
콰지지직!
나무와 흙이 허공으로 치솟으며 시야를 가렸다. 그때 좌측에 섰던 자가 목이 잘리며 바닥을 굴렀다. 그가 죽는 것과 거의 동시에 그 옆의 인물이 허리가 두 동강으로 썰어졌다.
[돌아가서 전하라. 더 이상 추격하면 신교를 세상에서 지워주겠다고.]
“비겁한 놈! 모습을 보여라!”
고수 하나가 고함을 질렀다.
전신을 용맹한 기세로 무장한 그는 대도를 쥐고서 수림을 향해 달려들 태세였다. 순간 그의 옆 공간이 일렁이더니 그의 육신에서 피가 튀었다.
“크악!”
대도를 쥔 오른팔이 작살을 맞은 생선처럼 펄떡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른 자들이 일제히 그쪽으로 칼을 휘둘렀다.
콰콰콰!
팔을 잃은 자의 육신이 동료들의 강기에 의해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며 주변이 강력한 폭발에 휩싸였다. 동료의 죽음에도 아랑곳 않고서 모두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곳을 쳐다봤다.
그러나 동료의 육신조각 외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마음이 바뀌었다. 모두 이곳에서 죽는다.]
차가운 전음과 함께 흑발을 늘어뜨린 사내가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광포함이 이글거리는 그의 눈동자가 자신을 노려보는 신교의 추격대를 쓸어봤다.
“가랄 때, 갔어야지.”
“네놈은 누구냐? 감히 신교를 건들고도 살아남길 바랐더냐!”
여전히 신교의 고수들은 용맹을 잃지 않았다. 사내의 미간에 주름이 생겨나며 차가운 웃음이 입가에 걸렸다.
“죽어서 염라대제께 물어보면 알려줄 것이다.”
“미친 새끼! 죽여주마!”
신교의 고수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흑야의 육신이 환영을 남기고 그들의 가운데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사방에서 핏물이 튀었다. 잘려진 육신이 허공을 날았고 죽어가는 자들이 남긴 비명이 천산의 능선을 울렸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살인미학에 신교의 추격대는 추풍낙엽처럼 속절없이 쓰러져갔다. 서른을 넘어가는 그들이 저승의 문턱을 넘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일 각이었다.
스르릉!
흑야의 검이 제집을 찾아들어가며 나지막한 울음을 냈다.
오연하게 산 아래를 직시하던 그의 눈동자가 지독한 한기를 번득였다. 수백의 고수들이 산 아래를 까맣게 덮으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선두에 꽤나 강해 보이는 자들이 여럿 있었는데 검마전주 적용극도 끼어 있었다.
“하루살이 같은 놈들.”
흑야가 몸을 돌렸다.
시선을 들어 천산의 능선으로 던졌다. 이미 혁련소와 연소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산 아래를 차갑게 응시하던 그는 이내 둘이 달려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 * *
천산을 넘어 중원과의 접경에 이르자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평원이 나타났다. 주변을 아우른 거대한 산맥과는 어울리지 않는 평원은 곳곳에 조금씩 자리 잡은 수풀과 날짐승들이 목을 축이는 작은 물줄기가 고작이었다.
적어도 쫓기고 있는 이들에겐 최악의 조건이었다. 몸을 은신할 만한 곳이 없으니 곧장 평원을 가로질러 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방법이 없군. 최단거리로 뛰는 수밖에…….”
“저 평원을 넘어서면 제법 큰 산이 나와요. 그곳에 이르면 추격을 따돌리기가 수월할 거예요.”
연소민은 상당히 지쳐 있었다. 혁련소가 뒤를 돌아봤다.
먼 곳에서 검은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흑야였다.
“갑시다!”
둘은 이내 빠르게 평원으로 뛰어들었다.
추격자들에게 들킬 확률이 높은 평원이지만 달리기엔 그저 그만이었다. 둘은 날짐승보다 빠른 속도로 평원을 직선으로 갈랐다.
끼아악!
그들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독수리가 포효했다. 연소민의 얼굴이 다소 초조함을 드러냈다.
“교의 전서응이에요!”
“젠장!”
일반적으로 비둘기를 이용하는 타 문파들과는 달리 신교는 독수리를 이용했다. 그 빠르기가 비둘기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독수리의 눈을 벗어날 방법은 전무했다. 더구나 이런 평원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들을 쓸어본 독수리가 북쪽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곳으로 날아간 이유야 뻔했다. 혁련소가 뒤를 돌아봤다.
순간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들의 뒤를 쫓아오는 숙부의 뒤쪽 지평선에 검은 그림자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상당한 수였고 속도 또한 대단했다.
[직선으로 곧장 달려!]
흑야의 전음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어느새 따라붙은 것이다. 상당한 거리임을 감안하면 믿기지 않는 경지였지만 지금 그것에 감탄할 겨를이 혁련소에겐 없었다.
혁련소는 연소민을 돌아봤다. 붉은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뜨거운 입김이 연신 수증기를 만들어내며 흘러나왔다. 상당히 지친 것이다.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연소민이 움찔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손을 통해 뜨거운 기운이 밀려들자 그녀는 혁련소의 의중을 알고는 잡은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지금부터 호위건에 대한 계약이 시작되는 것이오?”
“여유롭군요.”
“울상을 짓는다고 상황이 바뀌지는 않으니, 폼이라도 제대로 잡아야하지 않겠소.”
“좋아요! 저를 지켜줘요. 지금부터…….”
“그러겠소!”
“약속해요. 반드시 지켜주겠다고.”
“손가락이라도 걸어야 믿겠소? 약속하오. 당신을 지켜주겠다고…….”
화악!
연소민은 밀려드는 기운이 갑작스럽게 더욱 강해지자 하마터면 손을 놓을 뻔했다. 혁련소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자신이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혁련소는 대단했다.
“쩝! 이게 마지막 남은 힘이오.”
그녀의 생각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혁련소가 씁쓸함을 비쳤다.
더 이상의 내공을 나눠줄 형편이 못되었다. 평원에 들어선지 제법 긴 시간이 흘렀다. 무림인들의 경공은 어지간한 말보다 빠르다. 그 정도의 속도로 제법 긴 시간을 달렸건만 평원은 그 끝을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쐐애액!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햇빛에 반사를 일으키며 날아드는 암기들이 둘의 전방을 덮었다. 연소민의 팔을 이끌어 빠르게 좌측으로 방향을 선회한 혁련소는 검을 뽑아 검막을 일으켜 주변을 차단했다.
따다다당!
“젠장! 형편없어 보이더니 제법이군.”
전서응이 전한 정보로 신강의 경계지역에 있던 마교의 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콩가루처럼 여겼던 신교의 신속한 대응에 혁련소는 내심 감탄했다. 교주의 딸, 연소민이 있었지만 신교고수들의 공격은 인정을 두지 않았다.
쇠뇌를 먹여 발사된 수백발의 강전들이 둘을 향해 날아들었다. 연소민도 검을 뽑아 검막을 형성하며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쐐액!
둘의 육신을 지나치는 그림자가 있었다. 흑야였다. 그는 둘의 육신을 넘어 앞을 막아선 자들의 가운데로 사정없이 뛰어들었다.
퍽퍽!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동시에 허공을 가득 덮는 붉은 핏물들이 연소민의 눈에 보였다.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죽여라!”
“놈의 허리를 노려라!”
느닷없이 뛰어든 흑야로 인해 신교고수들의 대열이 삽시간에 분열되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의 손짓 한 번에 어김없이 하나의 목이 허공으로 피를 뿌리며 솟아올랐다.
[좌측으로 선회하여 곧장 달려가라!]
혁련소는 흑야의 전음에 고개를 저었다. 이미 그의 육신은 피와 살이 난무하는 전장의 중심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 * *
마교 신강지부를 총괄하고 있는 시팔노마(豺捌努魔) 등신(鄧呻)은 별호가 말해 주듯, 성난 늑대처럼 난폭한 성정으로 소문난 위인이었다.
연소민과 혁련소를 잡으라는 본단의 명령을 받고 수하들을 이끌고 둘의 진로를 막아선 등신은 두 눈을 부릅뜨고서 몸을 떨기에 여념이 없었다. 보고서에 없었던 흑발 사내가 자신의 수하들을 닭 모가지 비틀 듯 도살을 하고 있었다. 제법 강하다는 자들도 어김없이 그의 칼 아래 피를 뿌리며 죽어갔다. 서른을 넘어서던 숫자는 고작 열로 줄어든 상태였고 그마저도 대부분이 위태위태했다.
퍽!
등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나의 목이 다시 잘려나갔다. 이번엔 흑발 사내가 아닌 혁련소에 의해서였다. 난폭하기가 흑발 사내에 못지않은 혁련소의 검이 등신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왔다.
깡!
대도를 세워 공세를 벗어난 등신은 재빨리 수하들의 머리 위를 넘어 흑발 사내를 덮쳤다. 그가 비록 일개지부를 맡고 있었지만 일신에 지닌 무공은 본단의 장로들과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 지랄 같은 성정 때문에 좌천을 당한 등신이었다.
꽝!
등신의 강력한 공세는 흑야의 검에 간단히 막혔다. 탄력을 이용해 뒤쪽으로 날아간 등신이 이번엔 연소민을 덮쳤다. 그 빠르기가 가히 섬전과도 같았기에 연소민은 흠칫했다. 순간의 움찔거림은 삶과 죽음을 좌우한다.
“위험해!”
혁련소가 대경하며 등신을 향해 검강을 날렸다.
등신은 순간 갈등했다. 연소민의 목이 코앞에 있었다. 충분히 썰어낼 거리였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자신도 날아드는 검강에 의해 두 동강이 날 것이다.
등신은 목숨을 바쳐 충성할 위인은 아니었다.
깡!
혁련소의 검강을 쳐낸 그는 방향을 틀어 평원의 뒤쪽으로 질주했다. 도주하는 것이다. 남은 수하들이 그를 보며 욕설을 퍼부었지만 등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평원의 너머로 사라졌다.
살아남은 자들은 고작 여섯, 흑야는 전의를 잃어버린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한 마교의 고수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셋은 다시 빠르게 질주했다. 뒤를 쫓아오는 자들과의 거리가 상당히 좁혀져 있었다. 달리는 와중에 혁련소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투로 물었다.
“숙부! 왜 살려줬습니까?”
“투지를 잃어버린 자들이다.”
“나중에 늑대가 되어 돌아올 놈들입니다.”
“그때 죽여주면 되겠지. 일단 동쪽으로 간다. 조금만 더 이동하면 백정 놈이 올 것이니 조금만 참아라.”
혁련소의 얼굴이 밝아졌다.
“셋째 숙부가 오신단 말입니까?”
“다음 호위가 놈의 순서가 아니냐. 더욱이 지금쯤이면 성에 소식이 들어갔을 것이다. 다른 놈들도 오고 있을 수도 있겠지.”
혁련소가 눈을 빛냈다.
“북궁 숙부가 오시면 이 일은 그냥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왜?”
“그냥… 아무튼 비밀입니다. 숙부!”
흑야는 다소 어리둥절한 빛으로 혁련소를 응시했다.
연소민은 둘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위라니, 그렇다면 지금 저 광포한 사내가 혁련소의 숙부이자 호위란 말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저런 분이 호위라면 저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왔단 말이야.’
그녀는 혁련소가 어디에서 온지 몰랐다.
연무진과 연유극이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소민의 눈동자가 혁련소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위급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의구심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 * *
<연소민이 신강을 넘었음. 섬서를 들어서기 전에 척살요망! 함께 이동 중인 청년은 절대 건드리지 말 것.>
서찰을 손에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짙은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리며 두꺼운 입술은 회한이 담긴 숨을 쏟아냈다.
“결국, 놈들에게 교가 넘어갔단 말인가.”
쾅!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탁자가 박살이 나며 파편이 실내를 더럽혔다. 몸을 일으킨 사내의 육신은 팔 척에 이르는 거구, 그 엄청난 육신이 가공할 기운을 발산했다.
“대주! 소문에 의하면 교주님과 소교주가 모두 당하신 듯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날카롭게 생긴 장한이 사내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사내가 읽은 서찰을 건네준 것도 그 장한이었다. 대주라 불린 사내가 창가로 다가가 섰다.
“송효!”
“명령하십시오! 대주!”
“백마대 전원을 소집하는 데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지?”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사내가 몸을 돌려 송효라는 장한을 쳐다봤다.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눈동자가 기이한 열기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소공녀를 보호한다!”
“역시 대주십니다! 하오면 지금부터 교의 놈들과는 적이 되는 것입니까?”
“반란에 가담한 놈들만 적으로 간주하겠다!”
사내가 벽에 걸린 대도를 집어갔다.
송효는 그의 뒷모습에서 그의 분노를 읽었다. 그는 묵풍마도(墨風魔刀) 철우라는 이름을 지닌 자로서 마교 비밀부대 백마대의 대주였으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극마의 고수였다.
“이 서찰을 전한 전서응은 처리했느냐?”
“목을 잘라 개의 먹이로 줬습니다.”
“우리는 이 서찰을 받지 않은 것이다. 송효!”
“당연합지요.”
철우가 거처를 나와 모종의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송효가 따랐다. 철우의 두 눈동자 깊숙한 곳에는 지독한 분노가 여전히 이글거리고 있었다.
‘감히! 나 철우를 잊고 있었단 말이냐? 동승!’
철우의 뇌리에 사악하고 교활한 장로 동승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 * *
두 번의 추격을 더 뿌리친 셋은 평원을 넘어 산악지대로 접어들었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산악지대는 추격자들에게서 훨씬 자유로운 지리적 이점이 있다. 셋은 가장 빠른 진로를 택해 동쪽을 향했다.
벌써 육 일이 지나갔다.
평원을 빠져나오면서부터 추격은 뜸해졌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끊임없이 상공을 배회하는 독수리들을 보며 연소민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산을 벗어나면 마교의 최종지부인 관서지부가 있어요. 중원과의 접점지역이라 교내에서 십 위권에 드는 고수들만 여럿 있다고 들었어요.”
“초마전의 그 늙은이와 비교하면 어떻소?”
“초마전주나 검마전주보다 강한 고수들이에요. 정치엔 문외한 자들이지만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온 그들이니…….”
흑야가 물었다.
“그대의 부친을 따르는 자들은 없는 것인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동승 장로를 지지하는 자들이 대부분일 거예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뿐입니다.”
“누구지?”
“백마단을 맡고 있는 철대주, 그분은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호위를 청한 것도 그분께 가려고 했던 것이니까요.”
이번엔 혁련소가 물었다.
“강한 사람이오?”
“세상엔 드러나지 않은 분이지만 힘으로만 따지면 교내 최강이라고 보면 됩니다. 극마에 접어든 것이 십 년 전이니까 어쩌면 중원에서 최강이라 손꼽히는 십대고수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면 되겠군요.”
그 정도의 고수라면 엄청난 거물이다.
그러나 흑야와 혁련소는 담담한 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소민이 말을 이었다.
“저를 그분께 데려다주세요. 물론 무사히 도착하면 약조를 지키겠어요.”
그녀의 얼굴에서 간절함을 읽은 혁련소가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관계요? 둘 사이는… 혹시?”
“혹시?”
“아,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
연소민이 차갑게 굳어지며 싸늘하게 대답했다.
“숙부로 모시는 분이세요. 쓸데없는 상상은 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녀는 가볍게 혁련소를 노려보고는 먼저 걸음을 빨리했다. 혁련소를 묘한 시선으로 응시하던 흑야 역시 걸음을 빨리했다.
“쳇!”
연소민을 슬쩍 흘긋거린 혁련소도 둘과 보조를 맞추며 걸음을 빨리했다.
* * *
스스슷!
대낮임에도 빛 한 점 없이 어두운 숲 속을 빠르게 질주하는 인영들이 있었다. 전신을 흑포로 감싼 그들은 어느 지점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선두에 선 자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거대한 독수리가 좁은 반경으로 맴돌고 있었다.
“저곳이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그의 목소리에 복면인들은 이내 우측의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뭇가지 하나 흔들림 없는 상당히 빠르고 은밀한 움직임은 야조를 연상시켰다. 그들이 스며든 숲의 전방에 셋이 모습을 나타냈다.
선두에서 이동하던 흑야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잠깐!]
그의 전음에 둘은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혁련소가 기감을 열어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걸려드는 기척은 전혀 없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흑야를 쳐다봤다.
[여기서 기다려.]
흑야가 소리 없이 좌측 숲 속으로 사라졌다.
‘아직 숙부들에 비하면 형편없군.’
자신이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을 흑야는 느꼈다. 그것만으로 경지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확연히 드러났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여덟 숙부는 이미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괴물 같은 존재들, 비록 그들의 모든 것을 전수받은 자신이지만 따라가려면 십 년 이상을 더 수련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불안하군요.]
연소민이 두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천하만마의 터전에서 살아온 그녀도 견뎌내기 힘들 만큼의 긴장감이 주변을 휘감고 있었다.
혁련소는 순간 연민이 생겨났다. 그토록 차갑고 오만했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혈혈단신, 새 숲으로 들어섰던 흑야가 돌아왔다.
“제법 강한 놈들이 우측 숲 속을 완전히 차단했다.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놀랍군요. 어떻게 우리의 이동방향을 이토록 정확하게 쫓을까요?”
혁련소의 물음에 연소민이 하늘을 가리켰다. 여전히 선회하며 울음을 터트리는 독수리들이 보였다.
“젠장! 저거 하나는 쓸모 있군.”
혁련소가 미간을 찌푸렸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영역에서 실시간으로 보고를 하는 독수리들이 이 순간 무척이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이면 간단하겠지만 그럴 방법이 전무했다.
흑야의 차가운 얼굴이 슬쩍 구겨졌다.
“진천의 환술은 아직 다 배우지 못한 모양이군.”
“쩝! 그걸 다 배웠으면 저놈들을 이미 통구이로 만들었겠지요.”
“돌아가면 수련동에 들어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넌 주공에 비하면 속도가 너무 느려.”
혁련소가 입을 내밀었다.
“고금최고의 기재라는 아버지와 비교할 순 없지요. 그래도 두고 보세요. 제가 아버지를 반드시 추월하고 말 테니…….”
“제발 그래라.”
흑야가 다시 우측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그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만큼 상황에 대한 경계수위를 높게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