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의문의 기운
걸음을 옮기던 흑야가 고개를 돌렸다.
따라오던 둘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여전히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
흑야의 눈이 날카롭게 주변을 살피며 돌아갔다.
‘분명 기척이 있었는데…….’
갸웃거린 그가 다시 몸을 돌려 걸음을 놓았다. 혁련소도 뒤를 돌아보고는 이내 뒤를 따랐다. 셋은 한참을 걸었다. 절벽 아래에 이토록 넓고 긴 공간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나타나 있었다.
“진법이군요!”
혁련소가 뭔가를 짐작한 듯 물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흑야가 좌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금을 더 걸어가자 커다란 바위가 나타났다. 흑야가 손을 들어 바위의 어딘가를 툭 쳤다.
그러자 놀랍게도 바위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엇!”
“내 발걸음만 따라와.”
흑야가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둘도 조심스럽게 그가 밟은 곳만을 따라서 밟고 걸었다. 그러기를 일 각 정도가 흘렀을까. 혁련소와 연소민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벌렸다.
거대한 전각이 구름을 두르고 우뚝 솟아 있었다. 도저히 천 길 낭떠러지 안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전각은 크고 웅장했으며 높았다.
혁련소는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저곳이 본 혁련가의 본가였구나.’
말로만 들었던 선조들의 고향에 자신이 온 것이다. 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곳에 왔다는 자체만으로 흥분되었다.
“놀랍군요. 도대체 저 전각은…….”
연소민이 신기하면서도 놀랍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흑야가 전각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는데, 순백색의 비둘기였다.
“전서구를 지니고 다녔습니까?”
“만약의 경우를 위해서였지, 지금이 그 만약의 경우이고…….”
천 조각에 뭔가를 쓴 그는 전서구의 다리에 그것을 묶고는 하늘로 날려 보냈다. 날아가는 비둘기를 쳐다보던 혁련소가 배를 쓰다듬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뭐, 먹을 것 좀 없습니까?”
피식!
흑야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그가 턱으로 구석진 곳을 가리켰다.
“저쪽에 가면 건량이 있을 거다. 꽤 먹을 만하다.”
그 말에 연소민이 눈을 반짝였다. 긴장감이 풀어지자 시장기가 엄습했던 까닭이다. 혁련소가 부리나케 달려가 손에 뭔가를 잔뜩 집어 들고 돌아왔다.
“흠!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이런 비상식량이 있을 줄은 몰랐군요. 혹시 가끔 이곳에 들르시는 것, 아닙니까?”
“가끔씩…….”
“예? 정말요?”
“돌아가면서 이곳엘 들렀지. 지켜야 할 것도 있고 확인해야 할 것도 있어서…….”
“그게 뭡니까? 아니, 왜 저만 그걸 모르고 있었죠?”
혁련소가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건량 하나를 입에 넣은 흑야가 뒤로 몸을 누이며 말했다.
“나중에 때가되면 다 알게 된다. 그래서 미리 말해 주지 않았지. 섭섭하면 주공께 따져! 젠장!”
뒤로 눕던 그가 튕기듯 일어섰다. 잘못 몸을 움직여 상처 부위가 도로 터져버린 것이다. 천을 풀어 금창약을 더 바르고는 단단히 동여맨 그는 조심스럽게 몸을 누였다.
“적당한 곳에서 눈 좀 붙여.”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연소민이 눈짓을 하며 혁련소를 잡아끌었다. 수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둘은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 * *
“이곳과 관련이 있었군요.”
“쩝! 가문이 선조들이 계셨던 본가라오. 물론 나도 오늘 처음 온 것이지만…….”
“놀랍군요. 이곳은 천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았던 적이 없다고 알려진 곳인데, 이곳에 가문이 존재했었다니, 정체가 뭐예요?”
연소민의 얼굴은 궁금함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아직도 혁련소가 신마성에서 온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을 알기엔 지나치게 빨리 연유극과 연무진이 화를 당한 탓이다. 혁련소가 건량을 씹으며 우물거렸다.
“그냥 무진의 친구요. 딱히 내세울 만한 것도 없소.”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요? 당장 저분만 하더라도 오대세가의 가주들보다 더한 분이거늘, 빨리 말해 줘요. 누구신가요? 아니, 어디서 왔어요?”
당차게 물어오는 그녀에게 혁련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해 봤자 득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모두가 신마성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특히 마도나 사파의 인물들은 오히려 이를 갈며 때를 기다릴 정도로 신마성을 증오한다. 물론 그 이면엔 항거할 수 없는 공포도 공존했다.
신교주의 딸이었던 연소민이다. 당연히 그녀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적당히 둘러댈 게 필요했던 혁련소는 머리를 굴렸다. 마침 적당한 구실이 떠올랐던 그가 대답하려고 입을 열 즈음,
“응!”
혁련소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전각의 입구에서 뭔가 흐릿하게 사라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연소민도 마침 그것을 보았는지 건량을 문 표정 그대로 전각의 정문 쪽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뭘까요? 분명 뭔가 지나갔는데…….”
“가봅시다!”
혁련소가 재빨리 그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예감이 좋지 않았던 연소민이 만류할 시간도 없었다. 그녀도 건량을 뱉어버리고는 혁련소의 뒤를 따랐다.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쓸어보던 혁련소의 눈에 또다시 뭔가가 잡혔다. 20여 장 거리 밖에서 시커먼 천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뒤집어쓴 인영이 자신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주변 경치와 어우러진 광경은 무척이나 섬뜩했다.
“저자야. 저자의 기운이었어.”
“느낌이 안 좋아요.”
“기운이 그다지 강한 자는 아니요. 잡아서 물어봅시다.”
몸을 날리려는 혁련소를 연소민이 붙잡았다.
“왠지 느낌이 불길한 자예요. 차라리 저분을 깨워 함께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흠! 나도 꽤 강한 고수라오. 자는 분까지 깨울 필요야 있겠소.”
“그래도…….”
그녀가 말을 잇기도 전에 혁련소의 육신은 그녀의 손을 빠져나가 빠르게 천을 뒤집어쓴 자에게로 날아갔다. 그녀도 어쩔 수없이 그의 뒤를 쫓아 몸을 날렸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것인지 그녀는 손에 연검을 말아 쥐고 있었다.
* * *
“흐흐! 걸려들었군.”
천 아래에서 섬광이 번득였다.
몸을 날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혁련소를 보며 그는 사악하게 웃었다. 뒤를 보니 자신의 오감을 자극했던 흑발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가 혁련소의 육신을 빠르게 살폈다.
“역시 그자들과 같은 기운을 지녔군. 그런데 왜 저렇게 약한 거지?”
그는 수백 년 동안 이곳을 지켜왔던 존재들을 떠올렸다. 인간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강대했던 그들과 혁련소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같은 기운을 지녔다면 같은 일족이 분명할 터인데, 그는 그 점이 다소 걸렸다.
“상관없다. 그저 이 저주받은 곳을 벗어나 나의 세상으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사악한 빛으로 번득이던 그의 눈동자가 이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팟!
유령처럼 사라지더니 이십 장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잘 따라오너라. 결코 나의 마법에서 헤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의 말처럼 혁련소는 쉬지 않고 그를 쫓아 몸을 날려 오고 있었다.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몇 번에 걸쳐 반복하자 그들은 진법이 펼쳐진 입구에까지 다다랐다.
“안 돼요! 더 이상은…….”
연소민이 혁련소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수상한 놈이오! 그냥 보낼 순 없소!”
그러나 혁련소는 그녀를 뿌리치고 또다시 몸을 날렸다. 상당히 서두르는 것이 평소의 혁련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위기상황에서도 결코 위축되지 않고 다급함도 보이지 않았던 그였는데 지금은 그러질 못했다.
‘들어오는 방법을 모르잖아.’
그렇다.
저곳을 벗어나면 진법을 헤치고 들어올 방법을 몰랐다. 그녀는 정체불명의 인물을 쫓아가는 혁련소를 응시하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전각 안에 있는 흑야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별일이야 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녀도 몸을 날려 바위를 넘어섰다.
“거기 서라!”
자꾸 도망만 가는 인영을 향해 혁련소가 검강을 날렸다.
쾅!
그자가 섰던 곳이 박살이 나며 자욱한 먼지를 피워냈다. 내공을 끌어올려 속도를 높인 혁련소는 허공에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신출귀몰한 신법 탓에 연속적인 공격도 무위로 돌아갔다.
쐐액!
빛을 발하는 무언가가 연소민의 손을 떠나 도주하는 인영을 향해 쏜살처럼 날아갔다. 허공에서 그 인영이 움찔했다.
“맞혔다!”
혁련소의 신형이 바닥을 차고 섬전처럼 쇄도해 들어갔다. 그러나 움찔했던 인영은 빠르게 절벽을 돌아 사라졌다. 둘의 육신이 빠르게 절벽을 돌아갔다. 그리고는 이내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헉!”
* * *
“뭐지?”
눈을 감았던 흑야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기감을 열어 바깥의 흐름을 살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공기가 느껴졌다. 주변을 돌아보니 혁련소와 연소민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불길함을 느낀 그는 눌러놓았던 용수철이 튕기듯 밖으로 쏘아져 나갔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소!”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불렀지만 혁련소는 나타나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사내의 눈에 초조함이 담겼다.
“빌어먹을!”
쾅!
바닥을 차고 오른 그의 육신이 빛살처럼 어디론가 날아갔다.
* * *
신교의 중앙지부장 살소마객 무겸은 지부 앞을 늘어선 마차와 전마들을 보고는 험악한 인상으로 수하들을 다그쳤다.
“저놈들은 뭐 하는 놈들이냐? 감히 본교의 인물들 앞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다니, 당장 무릎을 꿇릴 일이지, 뭣들하고 있는 게야!”
무겸의 옆에 있던 수하 하나가 허리를 굽혔다.
“지부장님을 만나겠다고 해서…….”
“뭐야! 내가 그리 한가하게 보였느냐? 이런 머저리 같은 놈을 봤나.”
“그게…….”
수하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상아귀고리를 한 사내가 무겸을 보며 말을 몰아 성큼 다가왔다. 무겸의 눈동자가 그의 전신을 오만하게 훑었다.
“네가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무겸이라는 놈이냐?”
무겸의 험악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천하에 자신을 두고 저렇듯 하대를 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물론 신교의 수뇌부가 전부였는데, 느껴지는 기운은 형편없고 덩치만 커다란 놈이 자신을 지나가는 개를 보듯 쳐다보자 대번에 살심이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이 새끼가 뒈지려고 환장을 하였구나!”
챙!
무겸이 자신의 대도를 뽑아 들었다. 다가오던 사내의 눈동자에 새파란 광망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 칼, 어지간하면 도로 넣는 게 좋아. 안 그러면 그 칼로 네놈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
씨익!
사내가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 속에 깃든 광포함은 신교 중앙지부의 모든 이들에게 지독한 공포감을 빠르게 심어주었다. 무겸도 다를 바 없었다.
‘뭐야? 이게 아닌데…….’
지독했다.
손과 발이 저절로 떨려올 정도로 사내가 뿜어대는 기운은 엄청났다. 뽑아 든 칼이 무색할 정도로 마겸은 당황했다. 수하들이 보고 있었다. 여기서 칼을 도로 집어넣는다면 그야말로 개쪽이었다.
‘젠장! 이판사판이다!’
무겸은 며칠 전부터 앓았던 감기몸살의 후유증이라 여기고 대뜸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죽어! 새끼야!”
“웃기는 놈이군.”
사내가 슬쩍 손을 휘둘렀다. 동시에 허공을 날았던 무겸의 육신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용수철이 튕기듯, 뒤로 한참을 날아갔다.
한참을 구른 후에야 마겸의 육신이 멈추었다. 다른 자들이 창백하게 질린 채,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마겸을 한 방에 보내버린 사내가 전마에서 내려서며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으…….”
신교의 고수들은 이를 심하게 요동치며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자석에 붙은 듯, 발이 떨어지지 않아 도주하지도 못했다. 그들의 코앞에서 걸음을 멈춘 사내가 씩 웃었다.
“곱게 대답할래? 아니면 몇 대 맞고 대답할래?”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누군가가 용케 대답했다. 사내의 광포한 시선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좋아! 너 때문에 모두 살았다. 나중에 이놈에게 술이라도 사줘라! 알겠나?”
“예!”
모두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신교의 본단으로 보낼 전서구가 있지?”
“있습니다!”
“좋아! 가서 몇 마리 가져 와.”
뒤쪽에 섰던 하나가 황급히 지부로 들어가더니 비둘기 몇 마리를 손에 쥐고 돌아왔다.
“적어!”
“옛?”
“받아 적으라고, 자식아!”
“예! 불러주십시오!”
사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본인이 신교를 방문하고자 한다. 그때까지 그대들이 쫓았던 아이를 데려다 놓기 바란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그날로 신교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받아 적던 신교의 고수가 멍한 얼굴로 사내를 쳐다봤다. 그의 입장에선 한마디로 개소리라고 밖엔 할 수 없는 말을 사내가 지껄인 것이다.
그러나 사내의 뒷말은 모든 이들의 혼줄을 빼버렸다.
“발신인에 신마성주라고 멋지게 적어라.”
“헉!”
“시, 시, 신마성!”
“으갸갸!”
수십에 달하는 신교의 고수들이 오금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전서를 적던 자도 붓을 떨어뜨리고는 손을 덜덜 떨었다.
“적어!”
붓을 주운 자가 입이 시커멓게 변하도록 침을 적셔가며 적어갔다. 떨리는 손으로 용케도 받아 적은 그는 비둘기의 다리에 천을 묶는 데만 제법 시간이 걸렸다. 오한이 든 것처럼 심하게 떨어댔으니 제대로 묶일 리가 없었다.
푸드득!
전서구가 힘차게 서북방향으로 날아오르자 신교의 고수들은 모두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건 도저히 어떻게 해볼 대상이 아니다. 그저 그가 자신들의 목숨만을 살려주기만을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 뿐이었다.
“경고하지. 어지간하면 이 시간 이후부터 신교에서 탈퇴하는 것이 좋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신교의 신자만 붙어도 모조리 씨가 마를 수도 있는 비극이 벌어질 수도 있다.”
사내가 전마에 몸을 실었다.
마차와 전마들이 서서히 방향을 바꾸어 서북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신교의 고수들은 그저 넋 놓고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귀, 귀고리 봤냐?”
누군가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상아로 만들었던… 어억! 그, 그럼!”
“으아! 저, 전왕 단리극!”
다시 공포가 몰아쳤다.
전설의 싸움꾼, 전왕 단리극. 그가 방금 자신들과 말을 나누었던 바로 그 사내였다. 대도를 뽑으면 산천초목 진동한다는 무적의 초인이 바로 전왕이었고 그는 세상을 관조하는 위대한 절대자, 신마성주 혁련천후의 여덟 호위 중 하나였다.
* * *
여인은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사내를 보며 가벼운 숨을 내쉬었다.
“언니! 이것 좀 드세요.”
과일을 집어 건네는 손이 무척이나 하얗다. 여인은 그 손을 가볍게 쥐어주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입맛이 없어.”
“소 때문이라면 그만 신경 꺼요. 천하에 누가 그 아이를 어쩐단 말에요. 게다가 얼음아저씨까지 있는데…….”
“그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아. 직접 두 눈으로 그 아이를 보기 전엔 말이야.”
천하명공이 정성을 기울여 조각을 한 듯,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여인의 아미가 곱게 찌푸려졌다. 그녀는 여전히 팔짱을 하고 눈을 감고 있는 사내를 흘긋거리고는 마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엇!”
달리는 와중에 마차의 문이 열리자 주변을 달리던 존재들이 놀랐다. 마부석에 앉았던 화산의 인물이 여인을 보고는 황급히 고삐를 당겨 마차를 세웠다.
“누가 저하고 자리 좀 바꿔요.”
“나도!”
뒤이어 다른 여인도 마차 밖으로 나섰다. 선두에서 전마를 몰아가던 인물이 말을 돌려 마차로 다가왔다.
“속이 답답하십니까! 이봐! 진청, 주모님께 고삐를 드려라!”
화산의 인물이 고삐를 여인에게 공손히 건넸다. 진청의 옆에 있던 인물도 다른 여인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둘은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언니! 신나게 달려요!”
마차는 다시 질주를 시작했다.
그녀들 때문에 속도를 줄였던 마차였지만 막상 그녀들이 직접 마차를 몰자 속도는 무척 빨랐다. 마차 안에서 간간이 비명이 울렸다. 고르지 않은 길을 엄청난 속도로 달리니 안에 있는 사람들이 꽤나 곤욕이었다.
“주모님! 우측으로 방향을 트십시오! 그곳이 신강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갑주를 걸치고 청룡언월도를 든 장수의 외침에 마차는 먼지를 일으키며 우측으로 선회했다.
두두두두두!
육중한 마차가 지나간 길 위는 바퀴자국과 솟아오른 흙먼지들로 자욱했다. 간혹 돌이라도 걸리면 심하게 요동쳤지만 사내의 감겨진 눈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 * *
“욱!”
혁련소는 가슴을 움켜쥐며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흘렸다. 연소민은 이미 실신 직전의 상태였다. 그들의 앞은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의 가운데, 천을 뒤집어쓴 인물이 두 팔을 혁련소를 향해 뻗은 채,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그만 해!”
혁련소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그는 지금 움직일 수 없었다. 육신을 조여드는 거대한 압박에 극한의 내공을 끌어올려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이었는데, 창백하게 변해가는 연소민이 눈을 찔러왔다. 자신을 보며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가 서서히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 그만 하란 말이다!”
쾅!
공간의 압박을 뚫어낸 혁련소가 연못의 가운데로 몸을 날렸다. 주술 같은 것을 읊어대던 인물이 흠칫하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그 앞에 거대한 빛의 장막이 생겨나며 혁련소의 육신을 막아냈다.
“으윽!”
쾅!
혁련소의 육신이 반탄력에 휘청거렸다.
“생각보다 대단한 인간이군! 감히 나의 마법을 이토록 오랫동안 버티다니…….”
인물의 사악한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그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흑발 사내가 오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내야 했다.
“그자가 오면 당하는 것은 나다. 서둘러야 한다.”
치르륵!
그의 양손이 빛줄기를 뿜어내며 혁련소의 육신을 감고 돌았다. 마치 포승줄에 묶인 것처럼 혁련소는 육신이 제압당했다.
부글부글!
연못이 들끓기 시작했다.
동시에 강력한 소용돌이가 혁련소가 떠 있는 바로 아래에서 생겨났다. 주술의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다.
“마신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어둠의 문이여! 신의 피를 이어받은 인간의 기운을 그대에게 제물로 바치나니! 문을 열어, 케베로스를 영접하라!”
콰오오오!
소용돌이가 광포한 움직임을 보이며 거대한 물줄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엄청난 인력이 생겨나며 연소민의 육신이 그곳으로 이끌려 들어왔다. 끝까지 버티던 혁련소의 육신도 서서히 소용돌이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지켜줘요…….]
연소민의 음성이 그의 가슴을 흔들었다.
[약속해요. 나를 지켜주겠다고…….]
“으으윽! 그만 해, 개새끼야!”
목청이 터지며 핏물이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러나 빨려드는 속도는 더더욱 빨라졌다. 절망의 그림자가 혁련소의 얼굴에 드리웠다. 이미 반쯤 소용돌이에 잠겨드는 연소민의 얼굴이 무척이나 슬프게 다가왔다.
“지켜주겠다.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주겠다!”
절규를 뒤로하고 연소민의 육신은 소용돌이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혁련소의 의식도 서서히 꺼져가기 시작했다.
“아버지…….”
또르륵!
눈가를 타고 흐르는 맑은 액체가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졌다.
“멈춰라!”
흑야의 고함이 들려옴과 동시에 혁련소는 아득한 나락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 * *
바람처럼 질주하는 마차를 향해 전서구 한 마리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선두에서 질주하던 사내가 팔을 내밀자 전서구는 방향을 바꾸어 그에게로 날아가 앉았다. 그가 손을 들어 마차를 세웠다.
“흑야의 전서가 왔습니다!”
전서구의 다리에 묶인 천을 끌어 마부석의 여인에게 건넸다. 전서를 읽어가던 여인이 마차를 향해 고개를 돌리려고 할 때, 이미 그녀의 뒤에 사내가 서 있었다.
“그곳에 있다고 하는군요.”
그녀가 전서를 건네며 말했다.
전서를 받아 쥔 사내의 시선이 북쪽으로 던져졌다. 신강의 하늘이 지척에서 그 높음을 뽐내며 펼쳐져 있었다. 상아귀고리를 한 사내가 말을 몰아 그에게로 다가오며 소리쳤다.
“신교를 그냥 두실 생각입니까?”
“개소리! 깨끗이 쓸어버려야지!”
전신에 각종 병기를 주렁주렁 두른 사내가 거칠게 대답했다. 갑주를 두른 장수가 묵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곧장 본가로 가시겠습니까? 신강을 들렀다 가면 하루 정도면 됩니다만…….”
그 말은 신교를 부수는데 하루면 된다는 것, 실로 놀랍고도 광오한 말이었다. 사내의 미간에 슬쩍 주름이 잡혔다. 횡으로 그어진 흉터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가 창을 어깨에 두른 사내에게 물었다.
“연무극이 실각을 했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동승이란 자가 교주의 위에 올랐습니다.”
“그를 그곳으로 끌고 와라.”
“그놈만 말씀입니까?”
“놈의 태도 여하에 따라 신교의 존속여부를 결정하겠다.”
“순순히 따라올 놈이 아닙니다. 그냥 목을 잘라버리는 게…….”
신교 교주의 목숨이 이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난다.
“죽여도 좋다.”
사내가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창을 두른 사내가 화산의 인물들을 돌아봤다.
“너희들은 주공과 주모님들을 모시고 금역으로 가라. 자! 우리는 신강으로 간다!”
마차를 제외한 전마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서북방향으로 질주했다. 멀어져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화산의 인물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쳇! 신나게 싸울까 싶었는데…….”
“저 인간들 눈에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어린아이로 보이는가 보다.”
“더러워서! 강해지든가 해야지. 젠장!”
투덜거리는 둘의 뒤쪽으로 하얀 그림자가 쓱 나타났다.
“다 일러준다.”
“으갸갸!”
둘이 기겁을 하고 돌아봤다. 아름다운 얼굴이 자신들을 보며 눈을 찡긋거리고 있었다. 세상은 그녀를 백선녀라 부르며 그 아름다움을 칭송했지만 이들에겐 공포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그녀다.
진청이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못 들은 것으로 해주시면…….”
“흠! 맨입으로?”
“이번엔 또 뭐가 필요하십니까?”
“음… 화산파의 태청단이 그렇게 효능이 뛰어나다며?”
순간 둘의 얼굴이 참혹하게 구겨졌다. 그녀가 원하면 무조건 줘야 한다. 안 그러면 삶이 고달프게 변한다.
“끙!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출발해 볼까?”
그녀가 마부석의 고삐를 잡으며 앉았다. 마차를 몰던 다른 여인은 마차 안에 들어가고 없었다. 날카롭게 생긴 화산의 인물이 난처한 기색을 보인다.
“저기, 마차는 저희들이…….”
“왜? 내가 몰면 안 돼?”
“그게 아니라, 저희들이 어떻게 저 안엘 들어갑니까?”
“그런가? 흠! 그래, 그럼 너희들이 몰아.”
그녀가 마차를 응시하며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마부석에 오른 그들은 서로의 입을 원망하며 말의 궁둥이를 걷어찼다.
* * *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인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했다.
목숨처럼 사랑하는 아들의 묘연한 행방에 그녀는 주변을 돌아보며 교구를 떨었다. 감정이 실리지 않는 얼굴로 본가의 곳곳을 느릿하게 쓸어보던 사내의 눈이 섬광을 발했다.
‘천살강기를 사용했다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고수가 이곳에 있었단 말인가.’
천살강기의 미세한 기운이 느껴졌다.
천살강기는 여타 다른 무공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무적의 살인강기! 사용했다면 적어도 보름이 지나기 전에는 자신의 오감에 여지없이 걸려든다. 오직 자신의 핏줄만이 지닌 능력이다.
사내의 시선이 협곡의 동쪽으로 던져졌다.
“저곳이다.”
차갑게 중얼거린 그가 발걸음을 옮기자 여인들과 화산의 인물들이 뒤를 따랐다.
* * *
연못은 고요했다.
그토록 광포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던 것이 마치 거짓인 듯 명경처럼 잔잔했다. 사내의 시선은 연못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연못에서 천살강기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설마 저곳을…….’
절대 뛰어들어선 안 될 곳이 저 연못이다.
천 년을 이곳에 살면서도 자신의 선조들이 밝혀내지 못한 비밀이 저 연못에 깃들어 있다. 사내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아들의 안위에 대한 불안감이 가슴 속에서부터 솟아났다. 마음만 먹는다면 세상의 그 누구도 죽여 버릴 수 있는 무적의 호위가 아들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도, 그도 보이지 않는다.
“엇!”
진청이라 불렸던 화산의 인물이 연못을 가리키며 놀란 소리를 냈다. 모두의 시선이 연못으로 향했다. 순간 사내의 육신이 연못으로 날아가더니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런 그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는데, 상아를 연결하여 만든 목걸이였다.
“아!”
여인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목걸이는 자신이 손수 만들어준 아들의 것이었다. 지독한 불안감에 사내의 눈동자가 심하게 요동쳤다. 그때 다른 화산의 인물이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굳은 얼굴로 사내를 보며 머리를 조아렸다.
“전혀 흔적이 보이질 않습니다.”
협곡의 모든 곳을 살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사내의 시선은 오직 연못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아들의 목걸이를 쥔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분명 무슨 일인가가 벌어졌다. 어쩌면 세상에 하나뿐인 아들은 생각해선 안 될, 아니 일어나선 안 될 일을 당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일인지, 알 도리가 없자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불안감을 뚫고 스멀거리며 생겨났다.
그가 몸을 돌렸다.
“신교로 가겠다.”
흐느끼던 여인이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소는 어떡하고요?”
“찾아낸다. 반드시…….”
“그 아이가 이곳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어요. 다시 찾아봐요!”
다른 여인이 주변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있어봐야 찾아낼 도리가 없음을 그녀라고 모를까. 그러나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질 않아 차마 일어서질 못하고 있었다. 사내의 얼굴에 지독한 한기가 피어오른다.
“내가 살아 있다면 그 아이도 살아 있다. 살아 있으니 찾아낼 것이다. 세상을 뒤집어서라도…….”
그가 걸음을 놓았다.
여인들도, 화산의 인물들도 고개를 숙이고 그의 뒤를 따랐다.
* * *
전신에 병기를 주렁주렁 걸친 사내는 앞을 막아선 신교의 고수들을 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막아선 자들은 백이 넘어가는 숫자, 하나같이 날카로운 예기를 풀풀 풍겨내는 꽤나 강한 고수들로 보였다.
그러나 사내를 비롯한 다른 존재들의 얼굴에는 험악함, 그 외에는 그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무리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초로의 노인이 존재들을 보며 날카롭게 외쳤다.
“감히! 본교를 들어와 이렇듯 방자한 태도를 보이다니 죽고 싶어 안달이 난 놈들이구나! 어디서 온 뭐 하는 놈들이냐?”
“아주 지랄을 해라. 새끼! 지금부터 너희들은 절대 입을 열어선 안 된다. 오직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한다. 말대꾸를 한다거나 지금처럼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면 두 조각으로 썰어주겠다. 알아들었나? 앙!”
사내는 어깨에 둘렀던 은색대부를 손에 쥐고서 신교의 고수들을 향해 성큼 걸어갔다. 그 광오한 말과 태도에 신교의 고수들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머금었다.
“건방진… 크악!”
입을 놀리던 자의 목이 허공을 날아 동료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썰어준다고 했을 텐데…….”
“헉! 이, 이게…….”
“이럴 수가!”
그 같은 상황에 신교의 고수들이 경악했다. 그들은 사내가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니 느끼지도 못했다. 뭔가 바람이 스쳐간다고 느끼는 순간, 동료의 목이 피를 뿌리며 날아가는 것만 보았을 뿐이다.
놀란 얼굴들은 이내 지독한 살기를 게워내며 사내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괜히 신교의 고수들인가. 용맹하기로 따진다면 세상의 그 누구보다 용맹무쌍한 자들이 신교의 인물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투쟁이란 글자를 새기고 나온다.
그러나…….
* * *
서걱!
연무극을 몰아내고 교주의 위에 올랐던 신교주 동승은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며 불신과 경악으로 치를 떨었다.
오른팔이 삭둑 잘려 날아갔지만 고통보단 불신이 그의 뇌리를 잠식했다. 세상에 이럴 순 없었다. 자신을 이토록 압도적으로 제압할 고수가 있으리라곤 생각조차 못했던 그는 오연하게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내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흑발을 늘어뜨린 얼음 같은 사내, 동승을 내려다보는 사내의 눈동자엔 지독한 분노가 채워져 있었다.
“왜 그랬지?”
“무, 무엇을 말이냐?”
“그 아이를 왜 쫓았는지 물었다.”
“젠장! 누굴 말하는 것이냐!”
동승이 발악하듯 소리쳤다.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동승은 지금껏 모르고 있었다. 다짜고짜 들이닥친 7명의 고수들이 교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더니 나중에 모습을 드러낸 눈앞의 사내는 신교 최강의 고수들이라는 사대전주들과 장로들을 여지없이 쓸어버린 것이다.
신교가 생겨난 이후, 이런 치욕은 처음이었다.
동승의 발악하는 모습을 차갑게 노려보던 사내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쓸어봤다. 이미 주변은 완벽하게 제압된 상태, 모든 신교의 고수들이 전의를 상실하고서 망연자실 넋을 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는 7명의 존재들이 팔짱을 하고서 철벽처럼 서 있었다.
사내의 시선이 7인의 존재들 중, 창을 어깨에 두른 인물에게 시선을 주었다. 눈빛을 받은 그가 사내에게로 다가왔다.
“성의 율법으로 처리해.”
“알겠습니다.”
그때 동승의 육신이 벼락을 맞은 듯,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성이라는 단어 하나가 엄청난 양의 정보를 그의 머릿속에서 떠오르게 만들었다.
“으… 시, 신마성!”
* * *
마차에 오른 사내는 수하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곳으로 뛰어 들어야 하나…….’
현재로선 방법이라곤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나을지는 스스로도 모른다.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워졌다. 아들을 위험에 빠트린 신교를 부수었지만 그것으론 아무런 위안이 되질 않았다.
“진천에게 물어봐요! 그라면 분명 뭔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여인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그럴 생각이오. 안 되면…….”
차마 의문의 연못으로 뛰어들겠단 말은 하지 못했다. 그때 바깥에서 기척이 들려왔다. 수하들이 나온 것이다. 사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모두 처리했습니다.”
“누구에게 맡겼느냐?”
“포중삭이란 인물에게 맡겼습니다. 눈빛이 믿을 만했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사내가 금발을 멋들어지게 늘어뜨린 인물에게 시선을 던졌다.
“네가 수고를 좀 해야겠다.”
“하하! 무엇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주공!”
“모두들 금역으로 간다.”
일행들은 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북쪽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