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안의 마검사-39화 (39/55)

제8장

두 번째 해후

막스 황제와 레인의 속도는 혁련천후도 쉽사리 따라잡기 힘들만큼 매우 빨랐다. 레인이야 그렇다고 해도 막스 황제의 그러한 점은 매우 놀라웠다.

그는 테세우드 공작처럼 무력이 강한 군주가 아니라 전략, 전술에 뛰어난 인물이었기 때문난 . 대륙에 막스 황제는 익스퍼트 급의 검술을 지녔다고 소문나 있었다.

하지만 뛰는 속도만큼은 초인을 능가했다.

그에겐 대마법사의 마법보다 더욱 강력한 존재의 마법이 걸려 있는 까닭이었다.

참혹한 전장이 조금씩 멀어졌다.

조금을 더 질주하자 죽어가는 자들이 질러대는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휙! 휙!

주변 사물이 엄청난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혁련천후는 둘의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빠르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오늘 넌 죽는다.’

그는 요란의 황제를 죽이고자 결심했다.

개인적인 원한이야 없었지만 어차피 고룡, 트로이안의 심장을 얻으려면 그와 부딪혀야 한다. 그전에 죽일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 상당한 이득인 것이다. 물론 그전에 사로잡아 물어볼 게 많았다.

고룡, 트로이안의 심장에 관한 것인데, 황제라면 분명 모든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는 질주하면서도 주변을 살폈다. 좌우는 울창한 숲이었고 전방은 탁 트인 넓은 평원이었다.

막스 황제가 숨을 곳은 없었다. 만약 숲으로 숨으려 든다면 방향을 트는 순간 자신에게 따라잡힐 것이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행동을 할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오직 전방으로 도주하는 것뿐인데 자신의 무한한 내공이라면 그들을 놓칠 까닭이 없었다.

쾅!

바닥을 차고 오른 그의 육신이 쏘아진 강전처럼 전방으로 질주해 들어갔다. 순식간에 거리는 좁혀졌다. 사위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바닥을 찰 때마다 선연한 불꽃이 피어나며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무적의 살인강기, 천살강기의 위력이었다.

그때였다. 혁력천후의 눈매가 슬쩍 가늘어졌다.

“뭐지?”

전방에 희미한 불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막스 황제와 레인의 도주하고 있는 방향의 정가운데였는데 불꽃이 점점 밝아지는 것으로 보아 이쪽으로 뭔가가 다가오고 있음이 분명했다. 워낙 빠른 속도로 달리는 터라 불꽃의 정체는 금방 드러났다.

분명 사람이었다. 매우 뚱뚱해 보이는 사람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혁련천후의 눈에 잡혔다.

‘하나가 아닌 둘이다!’

그랬다.

뚱뚱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둘이었다. 한 명이 한 명을 품에 앉은 모습이었다. 그때 정체불명의 인물 뒤쪽에 또 다른 인영이 엄청난 속도로 질주해 들어오는 것도 보였다.

쾅!

막스 황제와 레인의 앞쪽에 화염이 떨어지며 폭발을 일으켰다. 둘의 육신이 휘청하며 좌우로 갈라졌다. 그 사이로 누군가를 품에 앉은 인물이 섬전처럼 쏘아져왔다.

혁련천후와 괴인영의 시선이 부딪혔다.

“비켜!”

“고약한 놈이군!”

섬뜩한 음성이 울리며 화염이 뿜어졌다. 혁련천후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화염을 향해 돌진했다. 여기서 속도를 멈추면 막스 황제와 레인을 놓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나 그대로 베고 돌파할 것을 작정한 것이다.

천살강기를 품은 그의 검이 광포한 불꽃을 피워내며 괴인영의 목을 향해 뻗어갔다. 괴인영의 눈에 경악의 빛이 어리는 것을 본 혁련천후는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머금으려다 눈을 부릅떴다.

‘소민!’

그랬다.

괴인영의 품안에 안긴 사람은 연소민이었다. 혁련천후는 전력을 다해 발출했던 검을 회수했다. 그러나 워낙 빠른 데다가 강력한 힘을 담고 있어서 방향을 틀어서 공격을 멈출 수가 있었다.

쾅!

우지끈!

혁련천후의 육신이 좌측 숲으로 떨어지며 나무들이 차례로 부러져 내렸다. 다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혁련천후의 육신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볼 것도 생각할 것도 없이 그는 방향을 틀어 칸빌을 쫓으려고 했다. 연소민 때문이다.

그때 뒤쪽에서 차가운 음성이 울렸다.

“비켜!”

휘이잉!

혁련천후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은발을 휘날리며 공간을 갈라오는 청년, 순간 시간이 멈추었다. 사위가 순백의 공간으로 변화되며 오직 청년의 얼굴만이 혁련천후의 시야에 들어왔다.

육신이 떨려온다.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급격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호흡은 청년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미 거칠어져 있었다. 분노로 일그러진 아들의 얼굴이 눈앞을 지나 저 멀리로 사라져갔다. 그제야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육신은 혁련소를 쫓아 사라졌다.

* * *

대마법사 율튼은 전장을 돌아봤다.

몬스터들은 거의 전멸직전에 이르러 있었다. 제7강습여단의 기마병들이 사방으로 도주하는 몬스터들을 쫓아 학살하고 있는 광경에 안도의 숨을 내쉰 그는 막스 황제가 주둔한 능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막스 황제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퇴각하는 요란 제국의 기사들이 보였다.

“퇴각이라니… 케이론에 무너졌단 말인가?”

그는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막스 황제가 직접 나선 전투에서 패퇴라니…….

그때 그의 눈에 광포한 움직임을 보이는 테세우드 공작이 잡혔다. 전장을 휘젓는 그로 인해 수많은 기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져가고 있었다.

어둠의 마법사들이라는 자들이 그를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광포하게 날뛰는 테세우드 공작은 거침이 없었다.

“저자가 저토록 강했단 말인가?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지…….”

제아무리 초인이라도 어둠의 마법사들을 당해내진 못한다. 그들은 초월적인 존재의 직속들, 그들 넷이 힘을 모으면 대마법사인 자신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강력한 존재들이다.

그런 그들이 전부 달려들었음에도 테세우드 공작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쾅! 쾅!

측면에서 전해져온 강력한 진동이 그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율튼의 고개가 저절로 그쪽으로 돌아갔다.

“황태자!”

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랬다.

실종되었던 황태자 카르스가 그곳에 있었다. 그가 지금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상대가 율튼의 심장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어억!”

괴상한 신음이 터졌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존재들 중, 하나가 카르스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 어떤 존재보다 율튼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었던 흑발의 사내들 중 하나가 분명했다.

“위험합니다!”

율튼의 육신이 바람처럼 전장으로 날아갔다. 카르스의 육신이 휘청거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 * *

카르스에게 맹공을 펼치던 흑야는 우측에서 강력한 기운이 날아들자 공격을 멈추고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동시에 그의 앞에 율튼이 내려섰다.

“네놈이었군. 늙은 마법사…….”

그의 눈동자가 매섭게 빛났다. 언제나 가슴속에 품었던 증오의 대상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율튼은 카르스를 등지고 소리쳤다.

“전하! 어서 자리를 피하십시오!”

몬스터 토벌을 끝낸 강습여단의 기마병들이 먼 곳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율튼은 그들이 어서 오기를 기다렸다. 자신 혼자만으로는 눈앞의 흑야를 이겨내지 못할 거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흑야의 눈동자가 슬쩍 흔들렸다. 그것을 본 율튼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흑야의 눈빛은 분명 놀랐을 때 나타나는 것이었다.

‘저자가 왜 놀라는 거지?’

그것이 율튼의 마지막 의문이었다.

퍽!

율튼의 육신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의 가슴을 뚫고 나온 검이 진득한 핏물을 흘려내고 있었다. 율튼은 밑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왜……!”

그건 카르스의 검이었다.

“후후! 고맙게도 네가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는군. 늙은 마법사…….”

율튼은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순식간에 자신의 모든 마나가 카르스의 검을 통해 흡수되는 것을 느꼈다. 그게 율튼이 느낀 마지막 감각이었다.

털썩!

율튼의 노쇠한 육신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일세를 풍미했던 대마법사 율튼의 최후는 이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크흐흐! 이토록 빨리 흡수되다니…….”

카르스가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며 괴소를 흘렸다. 흑야의 눈동자에 짜증이 생겨났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빌어먹을 늙은이, 죽으면서까지 성질을 건들고 가는군.”

카르스가 조금 전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해졌음을 그는 직감했다. 대마법사 율튼의 힘을 모조리 흡수한 것도 깨달았다.

결국 율튼 때문에 일이 제대로 틀어져버린 것이다.

“크하하하하!”

카르스가 고개를 젖히고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그 웃음 속에 깃든 지독한 마기에 상당한 거리 밖에 있던 기사들이 귀를 막으며 휘청거렸다. 도주하지 못하고 기사들과 난전을 벌이던 몬스터들이 갑작스럽게 흉포하게 변해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마병들에 쫓겨 사방으로 흩어졌던 몬스터들이 다시 전장으로 꾸역꾸역 몰려들기 시작했다. 능선으로 이동하던 제7강습여단의 기마병들은 졸지에 앞뒤가 차단되며 고립된 상황에 몰렸다.

“크아아…….”

몬스터들의 흉포한 괴성이 천지를 흔들었다. 가장 두려웠던 상대인 블랙 오우거와 블러드 와이번들은 이미 모두 소멸된 상태였지만 수만에 달하는 오크들과 간간이 섞인 오우거, 트롤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돌파하라!”

제7강습여단의 수장인 루턴 후작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마병들이 일제히 질풍처럼 내달렸다. 그들은 뒤쪽은 포기하고 오직 전방으로만 돌진했다. 전방을 막아선 몬스터들을 뚫어내고 능선으로 가야만 했다.

급격하게 밀리는 아군을 돕기 위해서였다.

콰지지직!

철갑을 두른 전마들이 몬스터들을 정통으로 돌파하자 천지가 뒤흔들렸다. 몬스터들의 피와 살이 시야를 자욱하게 가렸다.

“능선으로 간다! 쫓아오는 몬스터들은 상대하지 말고 무조건 전진하라!”

5만에 달하는 강습여단의 기마병들은 몬스터들의 가운데를 뚫어내면서 직선으로 달렸다. 그들은 오직 앞을 막아서는 몬스터만을 베어가면서 능선으로 향했다. 사방에서 몰려든 몬스터들이 그들을 쫓아 능선으로 향했다.

“요란의 기마병들이다!”

“몬스터다!”

케이론의 병사들은 난데없이 몬스터들이 전장으로 난입하자 허둥대기 시작했다. 게다가 요란 제국의 강습여단까지 몰아치자 전장은 이내 진흙탕처럼 변해갔다.

“케이론의 개새끼들! 죽여라!”

“테세우드의 종자들을 모조리 죽여라!”

요란 제국의 병사들에게 마땅한 작전이란 있을 수조차 없었다. 수뇌부가 사라진 탓이었다. 퇴각도 용이하지 않았다. 케이론의 기마병들이 삼면에서 짓쳐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뒤쪽에서 몰려든 몬스터들로 인해 그야말로 적아의 구분이 사라진한 죽음의 육박전 양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들은 용맹했다. 기마전에서는 케이론의 기마병들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몬스터와 케이론의 1차 저지선을 뚫어낸 그들은 어렵사리 능선까지 전진할 수 있었다.

능선으로 올라선 제7강습여단은 압도적으로 밀리는 아군을 바라보고는 경악했다. 저 멀리 이어진 평원에 케이론 제국의 기마병단에 쫓겨나는 아군의 처참한 모습은 그들이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루턴 후작이 주변을 돌아보며 부르짖었다.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거냐? 황제는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이냐!”

“각하! 퇴각명령이 내려진 모양입니다!”

“퇴각이라니! 황제께서 친히 출전하신 전쟁에 퇴각이라니!”

“각하! 서둘러 퇴각하셔야 합니다! 적들이 삼면에서 몰려들고 있습니다!”

“닥쳐라!”

막스 황제와 수십 년 동안 전장을 누비면서 단 한 번의 패배조차 몰랐던 루턴 후작의 얼굴이 서서히 광기로 물들었다. 그의 광기 어린 눈동자가 테세우드 공작을 발견했다.

“으드득! 케이론의 광견! 테세우드…….”

루턴 후작의 검이 테세우드 공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테세우드를 잡아라! 놈의 목을 쳐라!”

“테세우드를 죽여라!”

5만의 기마병단이 먼지를 일으키며 테세우드 공작만을 노리고 돌진했다. 그 와중에 측면으로 파고든 몬스터들에 의해 상당수의 기사들이 죽어갔지만 루턴 후작의 검은 오직 테세우드 공작을 향하고만 있었다.

* * *

테세우드 공작은 점점 마나가 줄어들고 있음을 느꼈다.

‘시간이 더 흐르면 위험해진다.’

그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전황은 압도적으로 자신들이 유리했다. 아쉽다면 황제 막스를 베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도 곧 있으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가문의 비기를 펼쳐 압도적으로 전장을 누볐지만 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 우측에서 천지를 울리며 돌진해 들어오는 요란의 기마병단을 보았다.

“루턴!”

선두에서 광기에 물든 얼굴로 전마를 몰아오는 루턴 후작이 보였다. 그 와중에 어둠의 마법사들이 그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테세우드는 여전이 광포한 빛을 두르고 있었다.

공격은 오히려 반사되어 요란 제국의 몇 남지 않은 기사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내가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쉐인 경!”

“예! 각하!”

어둠의 마법사들과 난전을 펼치던 대마법사 쉐인이 그에게 다가왔다.

“퇴각명령을 내리십시오!”

“각하! 조금만 몰아치면 대승입니다! 퇴각이라니요?”

“아닙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대승입니다! 서두르세요!”

그의 단호함을 엿본 쉐인은 어쩔 수 없이 나팔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전장에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자 당황한 것은 케이론의 기사들이었다. 대승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퇴각이라니…….

“카티르 평원으로 물러간다!”

“카티르 평원으로 돌아간다! 전군은 회군하라!”

마법사들이 마나를 담고 소리쳤다. 기사들은 불만에 가득 찬 시선으로 능선을 바라보았지만 한번 내려진 퇴각명령은 신도 돌릴 수 없는 것이다.

“젠장! 돌아간다! 회군한다!”

케이론의 병력이 전장에서 빠르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도주하던 요란 제국의 기사들을 추격하던 기마병단도 말머리를 카티르 평원으로 돌렸다.

한순간에 전장은 예상 밖의 상황으로 흘렀다. 케이론의 물러나자 전장엔 몬스터들과 요란 제국의 제7강습여단만이 남았다.

테세우드 공작이 텔레포트로 사라져버리자 루턴 후작은 분노의 창끝을 다시 몬스터로 겨누었다. 살아남은 마법사들과 기사들이 그를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그러자 대번에 10만을 상회하는 대군으로 불어났다.

“각하! 몬스터들이 더욱 흉성을 부립니다! 이대로 철군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루턴 후작의 부관이 광란의 몸짓을 보이는 몬스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끓어오르던 분노를 몬스터들에게 풀려고 했던 루턴 후작은 몬스터들의 몸짓이 전과는 확연히 달라 보이자 어금니를 깨물었다.

“놈들이 갑자기 저러는 이유가 무엇이지?”

“저자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카르스를 가리켰다. 카르스가 등을 돌린 자세로 있었기 때문에 루턴 후작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저자가 몬스터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데스나이트가 틀림없습니다.”

“데스나이트가 몬스터를 부린단 말이냐?”

“이유는 모르겠으나 틀림없이 저자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 저 둘은 무엇인가?”

루턴 후작이 흑야와 조윤을 가리켰다. 그들은 카르스와 폭스 후작, 그리고 크루즈 백작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싸움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격돌을 일으킬 때마다 대지가 은은하게 울렸다.

“도대체 저들이 누구이기에 이토록 강력하단 말인가? 설마 숨은 초인이라도 된단 말인가?”

루턴 후작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도 마스터다. 비록 초인엔 한참을 모자라는 실력이지만 그래도 요란 제국에선 소문난 강자가 그였는데, 그런 루턴 후작의 눈에도 흑야와 조윤, 그리고 그들과 어우러진 셋은 두려움을 자아내게 할 만큼 강력함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때 뒤쪽에서 마법사가 다가왔다.

“후작! 어둠의 힘이 다가오고 있소.”

그는 전신을 시커먼 천으로 두른 마법사였다. 놀랍게도 그들은 20명 전부가 생존해 있었다. 테세우드의 광포함에도 단 하나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루턴 후작은 자신에게 말을 건넨 마법사에게 가볍게 허리를 굽혔다.

“어둠의 힘이라면…….”

“감당키 어려운 강력한 존재가 이곳으로 오고 있소. 서둘러 이곳을 떠나야 하오. 후작!”

“……!”

마법사는 평원의 끝을 응시했다.

어둠이 밀려든 그곳은 전장의 참혹함과는 거리가 먼 고요함이 깔려 있었다. 그곳을 바라보는 마법사들의 눈이 은은한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결정을 망설이는 루턴 후작에게 그가 다시 말했다.

“우린 켈베로스 님께 가야 하오. 그럼 먼저 가겠소.”

그가 몸을 날리자 다른 마법사들도 뒤를 따라 북쪽으로 사라졌다.

“각하! 두려움을 모른다는 저분들이 저렇게 말씀하셨다면 속히 퇴각하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각하! 몬스터 토벌은 더 이상 무의미합니다. 퇴각해서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 케이론과의 다음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좋다! 본토로 퇴각한다!”

부관들이 다급하게 재촉하자 루턴 후작은 어쩔 수없이 퇴각명령을 내렸다. 마법사가 거론했던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여기서 몬스터들과 싸우면서 전력을 손실하면 그 자체로 막대한 손해라고 판단한 것이다.

10만에 달하는 대군이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몬스터들은 여전히 그들을 향해 포효를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퇴각명령이 내려졌지만 몬스터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이 요란 제국의 본토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밀집대형으로 중앙을 돌파한다!”

기마병단이 거대한 창날의 모양으로 진형을 이루며 돌진해 들어갔다.

제7강습여단의 진정 위력적이었다. 만약 그들이 몬스터들과 싸우느라 전장에서 이탈하지만 않았다면 케이론 제국과의 전투는 승패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파괴력은 상상을 불허했다.

* * *

쾅!

파츠츠츠…….

흑야와 카르스의 격돌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조윤은 폭스 후작의 목을 베고 크루즈 백작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목이 날아갔던 폭스 후작이 다시 일어나 그에게 달려들었다. 벌써 수차례, 같은 현상이 반복되자 조윤은 서서히 지쳐갔다.

카르스도 마찬가지였다. 흑야의 검이 목을 베고 지나가도 그는 멀쩡했다. 흑야 역시 내공의 한계점에 이르고 있었는지 호흡이 다소 거칠어져 있었다.

“빌어먹을 새끼들! 불사의 몸을 지녔단 말인가?”

“그런 모양이다!”

[이쪽으로 피하세요.]

둘의 귓속으로 아름다운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에이미 공주의 목소리였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둘은 강력한 공격을 퍼붓고는 뒤쪽 숲으로 빠르게 물러났다. 카르스 일행은 잠시 그들을 쳐다보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저들은 암흑마갑에 영혼을 봉인한 어둠의 기사들이에요. 암흑마갑을 파괴시켜야만 저들을 소멸시킬 수 있어요.]

[젠장! 진즉에 알려줄 것이지…….]

[……!]

[마갑을 파괴하는 방법은 알고 있느냐?]

[저들의 심장 부근을 보세요. 그곳에 마계의 꽃이 새겨져 있어요. 그곳을 부수는 것만이 저들을 소멸시킬 수 있어요.]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고쳐 잡은 둘은 다시 카르스와 둘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조윤이 뒤쪽 숲을 돌아봤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거냐? 힘 좀 보태지?”

쑥!

“죄송해요.”

에이미 공주가 숲에서 나왔다. 손에 쥐어진 작은 검에서 아름다운 빛이 발산되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카르스가 흠칫했다. 조윤이 크게 호흡을 하면서 셋을 향해 이죽거렸다.

“개자식들! 이제 다 뒤졌어.”

“저놈부터 처치하지. 살려두면 꽤 골치 아픈 놈이 될 거야.”

흑야가 카르스를 가리켰다.

“어디서 저런 엄청난 놈이 튀어나온 거야?”

“조금 전까진 허접한 놈이었어. 늙은 마법사의 힘을 먹기 전까진 말이야.”

“조심하세요. 지금 저자의 힘은 죽은 기사들의 왕이라는 킹 데스나이트에 버금가니까…….”

“그러니까, 왜 지금껏 그런 걸 알려주지 않았냐고. 숨어서 구경만 하니 재밌더냐?”

“죄송해요.”

* * *

카르스와 룻거, 크루즈의 영혼이 깃든 데스나이트들이 조금 이상했다. 흑야와 조윤이 다가오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북쪽으로 시선을 던져놓고 있었다.

흑야의 눈초리가 매섭게 올라갔다.

“그럴 여유가 없을 텐데?”

그래도 그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죽여 달라고 목을 내미는군.”

흑야가 검을 움직이려고 할 때, 조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저게 뭐지?”

그가 북쪽을 가리켰다. 어둠이 완연하게 깔린 북쪽 평원에 불꽃이 나타났다. 불꽃은 엄청난 속도로 그들이 선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불꽃이 나타나자 평원 곳곳에서 몬스터들의 괴성이 울렸다. 제7강습여단의 기마병들과 난전을 벌이던 몬스터들의 몸놀림이 더욱 광포하게 변해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죽은 몬스터들이 벌떡 일어서고 있었다. 그중엔 크로우기사단들에 의해 죽어버린 블랙 오우거와 블러드 와이번도 포함되어 있었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 요란 제국의 기사들은 경악했다.

블랙 오우거와 블러드 와이번이 살아난다면 퇴각은 고사하고 목숨마저 위태롭게 되는 것이다.

그때였다.

카르스와 폭스 후작, 그리고 크루즈 백작의 육신이 날아오는 불꽃을 향해 쏘아졌다. 돌연한 상황에 조윤과 흑야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에이미 공주의 뾰족한 음성이 둘의 귓속을 울렸다.

“상왕 전하가 오셨어요!”

“뭣이? 주공께서……!”

“저기, 저기 오시는군요!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구죠?”

그녀는 불꽃과 혁련천후의 중간지점을 가리켰다. 둘의 눈에 그때야 혁련천후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앞을 달리는 혁련소의 모습도 보였다.

“닮았어요! 상왕 전하와 무척 닮은 사람이군요.”

그때 그녀의 옆에서 광풍이 일어났다.

쾅!

그녀는 광풍이 휩쓸고 지나가자 가녀린 육신을 휘청거렸다. 흑야와 조윤이 엄청난 속도로 혁련천후를 향해 날아가고 있음을 본 에이미 공주는 흐트러진 머릿결을 고치고는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대마법사나 가능할 법한 순간이동으로 사라진 것이다.

[흑야, 조윤! 소민이 놈에게 잡혀 있다. 놈을 잡아라!]

공간을 가르며 질주하는 흑야와 조윤의 귓속으로 혁련천후의 전음이 울렸다. 둘의 육신이 허공에서 급격하게 방향을 틀더니 불꽃을 향해 돌진했다.

[에이미! 은발청년의 움직임을 저지할 수 있겠느냐?]

눈 깜빡할 사이에 흑야와 조윤의 곁을 날아가던 에이미 공주의 귓속으로도 혁련천후의 전음이 울렸다.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능력으로 파악된 혁련소의 힘은 엄청났다. 자신의 특수한 능력으로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혁련천후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저 아이는 내 아들이다! 그의 움직임을 묶어라! 에이미!]

에이미 공주의 큰 눈이 더욱 커졌다. 재고 말 것이 없었다. 그녀의 가냘픈 육신이 이내 빛으로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눈부신 빛은 이내 평원 전체로 번져갔다. 빛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치열하게 싸우던 몬스터들이 눈을 가리며 뒤로 물러나기에 급급했다.

요란 제국의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빛을 정면으로 받은 전마들이 넘어지는 바람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사들도 속출했다.

“비켜! 비키란 말이다!”

분노에 찬 혁련소의 음성이 평원을 울렸다.

혁련소의 육신이 빛으로 뛰어들었다. 아니 그가 질주하는 방향을 에이미 공주가 막아선 것이다.

번쩍!

한순간 평원 위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의 폭발이 일어났다.

「흑안의 마검사」 6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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