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안의 마검사-48화 (48/55)

7권

제1장

평원의 대전투

한줄기 섬광이 허공을 가르고 요란의 대군을 향해 날아갔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붉은 핏물이 튀었다.

동시에 선두에서 질주해 들어오던 마법사의 육신이 허공으로 붕 뜨더니 사정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전마들의 말발굽에 짓밟혔다.

퍽! 퍽!

섬광은 이어졌다. 그리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가는 마법사들이 여섯에 이르러서야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격수다!”

“마법사들을 노리는 적의 저격수다!”

소란이 일며 대열이 흐트러졌다. 흐트러진 대열은 곧장 수습하기 힘든 혼란으로 이어졌다. 주춤한 전마들이 뒤쪽에서 달려드는 동료들에 의해 처참하게 쓰러졌다.

“앞쪽에 적이 있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평원을 도톰하게 솟아 있는 능선에 진을 치고 있는 진천 등을 발견했다. 죽은 율튼을 대신하여 요란의 마법병단을 이끄는 케시미르 공작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마법사로서는 최초로 공작의 직위를 받은 그는 검술에도 뛰어난 전형적인 마검사였다.

그가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놈들을 참살하라!”

마법사들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거대한 마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사공진무에게 좋은 사냥감을 선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퍽! 퍽!

또다시 두 명의 마법사가 목을 관통당하고 쓰러졌다.

“도대체 어떤 무기란 말이냐? 저 먼 곳에서 이토록 정확하게 목표물을 명중시키다니…….”

“각하! 폐하의 호위대가 돌진을 하고 있습니다!”

케시미르 공작의 고개가 우측으로 돌아갔다.

대군의 가장자리에서 일단의 기마병들이 바람처럼 앞으로 쏘아져가는 광경이 그의 눈에 잡혔다. 막스 황제가 친히 수련시킨 돌격부대가 그들이었다.

그는 눈앞의 저격수들이 분했지만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내렸다.

“좋다! 우린 저들과 보조를 맞춘다! 이동하라!”

마법사들이 재빨리 돌격해 들어가는 자들을 따라붙었다.

* * *

“흠! 이쯤에서 물러나야겠지?”

진천은 적이 상당히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해 오자 마법병단을 뒤로 물렸다. 동시에 사공진무가 허공으로 뭔가를 던졌다.

펑!

허공에서 폭죽이 터졌다.

그것을 신호로 전차부대가 섬뜩한 굉음을 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흐흐! 나, 도왕 북궁천소의 무서움을 이 세상 놈들에게 보여주마!”

선두의 대형전차에 몸을 실은 북궁천소가 대도를 뽑아 들고 용맹하게 외쳤다.

“돌진한다!”

우아아아!

두두두두두!

그 어떤 전마들보다 육중한 덩치를 자랑하는 전차부대의 전마들이 폭풍처럼 질주를 시작했다. 동시에 좌우에서 담대소천, 조윤이 이끄는 돌격부대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서로 20만에 육박하는 대군들이 평원의 한가운데서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광경은 참으로 장엄하기까지 했다.

흑야와 케니언 크로우기사 단원들은 전마를 버리고 경공으로 적을 향해 날아갔다.

그들의 주요임무는 적진으로 뛰어들어 적 수뇌부를 요격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전마보다는 맨몸이 훨씬 편했다.

양측의 거리가 100미르 정도로 좁혀졌을 때 요란 제국의 앞쪽에 강력한 화염이 연이어 폭발했다. 에이미 공주와 마법병단의 화염공격이 한곳에 집중되자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폭발이 일어난 곳에 떼죽음이 발생했다.

불길에 휩싸인 자들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갔고 그 위를 전마들이 짓밟고 지나갔다.

화염은 홀베른 왕국의 병력 앞에도 폭발했다.

죽어나가기는 홀베른도 마찬가지였다. 수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요란의 마법병단은 무차별 공격을 감행했다.

콰과과과광!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키는 화염들은 선두에서 질주해 들어가던 기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조윤이 어깨에서 창을 내리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직선으로 돌파한다!”

그 어떤 화염으로도 팔왕을 저지할 순 없었다.

그들을 이미 적진으로 난입을 시작하고 있었다.

콰지지직!

그들이 탄 전마와 부딪힌 적의 기병들이 피를 뿌리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내가 창왕 조윤이다!”

조윤의 창이 사방을 휩쓸기 시작했다.

걸려드는 모든 것들이 잘려나가며 흩어졌다. 기사도 전마도 어김없이 두 조각으로 썰어지며 피를 뿌렸다.

담대소천의 청룡언월도는 삽시간에 수백의 사망자를 생산했다. 그 누구보다 파괴적인 그의 도법은 아군조차도 두려움에 떨 정도로 극강의 위력을 발휘했다.

진천과 사공진무도 전마에 몸을 싣고는 이미 적진을 파고들고 있었는데, 사공진무는 그 와중에도 마법사로 보이는 자들만 노려서 죽였다.

그를 노리고 다가들던 적들은 진천이 용서하지 않았다.

각자가 초인을 능가하는 무력에다 드래곤의 뼈로 만들어진 무기를 장착하자 그들은 살아 움직이는 살상병기, 그 자체였다.

그 어떤 것으로도 그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 * *

“저놈들이 진정 인간인가?”

막스 황제는 전장이 내려다보이는 둔덕에서 용맹무쌍하게 자신의 병사들을 쓸어내는 팔왕을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거침이 없었다.

한번 휘두름에 그토록 용맹하게만 보였던 자신의 기사들이 몇 명씩 죽어나갔다. 특히 이 세상에선 처음 보는 거대한 칼을 든 담대소천은 은은한 두려움이 생겨날 정도였다.

막스 황제가 고함을 질렀다.

“어떻게 저런 놈들이 정보에서 누락된 것이냐?”

“저놈들이 바로 율튼 대마법사와 케논 산맥에서 부딪혔던 놈들입니다! 그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습니다!”

레인이 전장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자세로 대답했다. 그는 팔왕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꽉 쥐어진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깨문 입술이 붉은 핏물마저 내비쳤다.

‘팔왕! 이 세상에서까지 우리를 방해하는구나!’

으드득!

막스 황제가 지척에 있었건만 그는 소리 내어 이를 갈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팔왕은 중원에선 적수가 없었던 존재들, 그래서 그들 때문에 자신의 조직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켈베로스의 도움을 받아 이 세상으로 온 것도 자신들만의 세상을 건설하려는 뜻을 이룰 수가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도 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때문에 지금 모든 것이 틀어지려 하고 있었다.

으드득!

‘신마성!’

레인의 부릅떠진 두 눈이 핏빛으로 붉어졌다.

그러나 놀람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갑자기 굉음이 능선 너머에서부터 들려왔다. 어찌나 소리가 컸던지 아비규환의 전장이 조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막스 황제의 옆에 섰던 자가 전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폐하! 적들이 빠져나갑니다!”

“도주하는 것이냐?”

“그건…….”

전투가 벌어진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아 홀베른의 기마병들이 전장을 헤집으며 바깥으로 물러가기 시작했다.

“이 굉음은 또 무엇이냐?”

“소신도 모르겠습니다!”

콰르르르르…….

굉음은 점점 더 커져갔다. 그리고 능선에 깃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모두의 눈이 부릅떠졌다. 거대한 전차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려버릴 정도로 무지막지한 기세가 전차에게서 뿜어졌다.

막스 황제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마주치지 마라! 어서 마주치지 말라고 전하여라! 어서!”

마법사들이 일제히 확성마법을 통해 소리쳤다.

“적과 마주치지 마라! 뒤쪽으로 물러서라!”

그러나 이미 전차부대는 요란 제국의 대군을 향해 짓쳐들고 있었다.

* * *

콰지지직!

“으아아…….”

히히힝!

피와 살이 난무했다.

걸려드는 모든 것들이 갈기갈기 찢기며 날아갔다. 전차의 바퀴에 장착된 거대한 칼날은 전마들의 다리를 썰어내며 바닥으로 떨어진 기사들의 육신을 무참히도 잘라냈다.

전차 위에서 북궁천소의 대도가 번뜩였다.

전차로 뛰어들던 적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갔다. 혁련소의 검은 지독한 마기를 발산하며 대량살상을 목적으로 한 공격을 뿜어냈다.

따다당!

요란의 마법사들이 펼친 공격이 혁련소의 갑주를 때렸다. 불꽃이 튀며 머리카락 몇 올이 잘려 바람에 날아갔다.

“감히!”

혁련소의 눈이 매섭게 돌아가며 전차를 그곳으로 틀었다.

그러나 그가 그곳에 이르기 전에 마법사들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혁련천후가 그곳에 나타났다.

“조심해야지.”

“옙!”

죽은 자들의 육신에 한 번 더 검강을 퍼부은 그는 이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천살강기는 무적의 최종병기다.

금강불괴의 육신을 지닌 고수도 걸리면 그대로 두부처럼 잘라진다. 하물며 기사들의 육신을 보호하는 갑주 따위가 천살강기를 막아낼 순 없었다.

제법 강하다는 천인장 이상 급의 고위기사들이 낙엽처럼 떨어져 날아갔다. 그는 막을 수 없는 폭풍과도 같이 전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마치 이야기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광경이 전장에서 펼쳐졌다.

능선에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10만 병력을 이끌고 전장을 지켜보던 룻거 후작은 전신을 차고 오르는 전율을 만끽했다.

“도대체 저분들의 능력은 어디가 끝인가…….”

저런 싸움은 본 적이 없었다.

붉은색 갑주를 걸친 적의 기사들은 고위기사들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들이 걸친 갑주에는 최상급 실드가 쳐져 있다.

그런 기사들이 갑주 채로 두 조각으로 잘려 날아가고 있었다.

“우와아아!”

능선의 10만 병사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른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자신들의 상왕이 가공할 무위를 선보이며 적을 쓸어가자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다.

“단장님! 적들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진정 놀랍습니다!”

부관이 룻거 후작에게 소리쳤다.

과연 요란의 병진이 양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를 무적의 전사들이 광풍처럼 몰아쳤다. 이열종대로 적진을 휩쓰는 전차부대의 위력은 아군조차도 두려움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전차부대다!”

“으하하하! 완전히 가지고 노는구나!”

기사들이 환호성이 능선을 진동했다.

“요란이여! 그대들의 종말이 보이는구나! 허허허!”

룻거 후작은 기어코 웃음을 터트렸다.

* * *

막스 황제는 썰물처럼 좌우로 주르륵 갈라지는 광경을 보고는 분통을 터트렸다.

“저런 어리석은 놈들! 레인! 어둠의 마법사들을 이끌고 놈들을 제거하라!”

어쩔 수 없이 그는 켈베로스의 가디언인 어둠의 마법사들과 레인을 전장에 투입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레인이 크로우기사단을 소집하고는 전마를 전장으로 틀었다. 어둠의 마법사들도 허공을 날아 전장으로 몸을 날렸다.

[막스…….]

[예! 스승님!]

켈베로스의 사악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막스 황제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저놈들이다! 저놈들이 레인이 온 세상에서 넘어온 놈들이다. 놈들은 이 세상의 강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니 총력을 기울여 놈들부터 제거해야 한다.]

[레인과 어둠의 마법사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이라면 충분히 놈들을 죽여 없앨 것입니다.]

[어리석은! 그들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너도 준비하고 있어라. 기회를 엿보고 틈이 보이면 네 스스로 모든 것을 버리고 그들을 처치해야만 한다.]

막스 황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왜 그러는 것일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냐? 막스!]

[아닙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너의 충성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아이아스의 심장만 얻어낸다면 네게도 불사의 몸을 선물하겠다.]

그 말을 끝으로 켈베로스의 말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허리를 편 막스 황제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흔들리는 눈동자는 그가 상당한 갈등을 보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오직 그만이 알뿐이다.

* * *

“으악!”

전차를 몰아가던 기사의 목이 피를 뿌리며 허공으로 날아갔다.

균형을 잃은 전차가 곤두박질치며 주변에 있던 기사들을 쓸고 지나갔다. 북궁천소의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전마를 버리고 육탄으로 전장에 뛰어든 적들이 보였다. 그들은 빨랐다. 그리고 강했다. 전장에 들어선다 싶더니 벌써 열기 이상의 전차가 쓰러졌다.

기사들이 검을 휘둘러 막아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상대가 되질 않았다. 북궁천소의 미간에 힘줄이 돋아났다.

“이런 개새끼들!”

북궁천소가 전차를 버리고 전장으로 난입했다.

“숙부!”

그것을 본 혁련소도 전차에서 뛰어내려 전마의 엉덩이를 쳐주고는 북궁천소를 따랐다. 전차부대의 사나움이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그러자 뒤쪽으로 밀려가던 요란의 병력들이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모두가 전장에 뛰어든 레인과 크로우기사단, 그리고 어둠의 마법사들 덕분이었다.

퍽!

“끄아악!”

북궁천소의 대도가 크로우기사단 하나의 허리를 자르고 지나갔다. 시뻘건 핏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그는 곧장 다른 자를 덮쳤다.

쾅! 쾅!

크로우기사 단원은 확실히 강했다.

북궁천소의 대도를 막아내고도 곧장 반격을 가해왔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잘린 머리가 빙글빙글 돌며 피를 뿌렸다.

“도왕!”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북궁천소는 등 뒤쪽에서 강력한 기운이 쇄도해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는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허공에서 몸을 튼 북궁천소는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검강을 보았다.

꽝!

어렵사리 검강을 막아낸 그는 허공에서 몸을 한 바퀴 틀고는 바닥으로 내려섰다. 북궁천소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그가 이토록 놀란 적은 단연코 없었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자신을 노려보는 인물을 향했다.

“신교에서 온 놈이구나!”

“그렇다. 신마성의 개!”

레인이었다.

그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상태로 북궁천소를 향해 다가들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만 직접 보니 이거 정말 놀라운걸.”

“더 놀라게 해주지. 도왕!”

“아니! 놀라는 건 이것으로 끝내야지.”

“놈은 내가 맡겠다. 천소!”

혁련천후가 북궁천소의 옆에 내려섰다.

레인의 눈동자가 폭풍을 맞은 듯 심하게 흔들렸다. 북궁천소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는 곧장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너였군. 신교의 장로, 동승…….”

“나를 알고 있었소?”

“배반을 꿈꾸고 있다는 걸 들었었지. 결국 성공했더군.”

“후후! 실패였소. 연 교주와 그 아들은 멀쩡히 살아 있으니까. 물론 중원으로 돌아가면 만나볼 수 있을 거요.”

“전이었다면 내가 그들을 만날 이윤 없다. 다만 지금은 신교의 여식이 내 가족이 되었으니 한 번은 만나야겠지.”

레인의 얼굴이 실룩거렸다.

“소민이 이곳에 있단 말이오?”

“지금 네놈의 동료들을 죽이고 있지. 물론 그 아인 네놈들이 이곳에 왔음을 모른다.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넌, 곧 죽을 테니까.”

치르륵!

혁련천후의 검이 천살강기를 둘렀다.

레인도 검을 들어 그를 겨누며 씹어대듯 말했다.

“신마! 이곳은 중원과는 다른 곳이오. 내 검이 당신의 목을 자를 수도 있소.”

“후후! 기대하지. 죽이기 전에 하나만 묻지. 돌아갈 방법을 알고 있나?”

레인의 눈가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러다 곧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머금었다.

“애석하게도 그걸 모르는 모양이오?”

“애석하게도…….”

“내가 그걸 알려 줄 것 같소?”

퍼퍼퍽!

혁련천후를 향해 달려들던 자들이 핏물로 화해 날아갔다.

그의 전신은 이미 극강의 천살강기로 둘러진 상태였다. 레인은 그 광경에 다시 눈동자가 흔들렸다.

“알려주리라 믿는다.”

“웃기는군. 내가 왜?”

“어차피 네놈 말고도 알아낼 놈은 있어. 다만 네놈이 알려주면 신교의 반역자들은 살려주지. 아니면 돌아가는 그날 모조리 씨를 말려 줄 것이다. 물론, 네놈의 혈육들은 첫 번째로 죽을 거야.”

레인의 얼굴 근육이 심하게 뒤틀렸다.

눈앞의 저 존재는 한다면 하는 인간이다. 비록 정과 마를 초월한 존재라지만 그는 마도에 가까운 존재기에 결코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레인이 잠시 혁련천후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러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요란 제국의 황궁에 중원으로 향하는 문이 있소. 되었소?”

“충분히… 대신 약속은 지키겠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당신을 죽일 수도 있소.”

“좋아! 그래야 신교의 인물이지. 와라! 동승!”

둘이 서로를 향해 마주 달렸다.

동승의 육신이 시커먼 연기 같은 것으로 둘러졌다. 켈베로스와 관련된 자라면 누구나 지니는 암흑마기가 그것이다.

“신마성의 영광을 이계에서 끊어주마!”

콰앙!

둘이 허공에서 정면충돌을 일으켰다.

공간이 울렁거리더니 파생된 기운이 뻗쳐가며 주변의 모든 기사들을 쓸고 지나갔다. 마치 날카로운 칼날같이 뻗어간 그것들은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서로 죽고 죽이는 참혹함에서도 기사들은 둘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피아를 막론하고 멍하니 입을 벌렸던 그들은 이내 서로에게 검을 휘두르며 참혹한 전쟁을 이어갔다.

깡! 깡! 깡

동승의 공격은 매서웠다.

그러나 혁련천후는 그가 살던 세상에서 무적으로 군림했던 존재였다. 아무리 이계라도 동승이 넘어설 순 없었다.

이 세상에선 무적으로 군림했던 동승의 마공은 여지없이 혁련천후에 의해서 막혀버렸다. 그 어떤 것으로도 그를 넘어설 방법은 없었다.

그를 도울 크로우기사단은 이미 전멸한 지 오래다.

동승이 이를 악물고 최후의 힘을 끌어냈다.

“왜! 이곳에서까지 우리를 절망케 하는 것인가? 신마여!”

“우연이었지. 재수가 없다고 여겨라. 동승!”

“속단하지 마라! 아직 신교의 후예들이 요란의 어디에선가 힘을 기르고 있으니, 그들이 그대, 신마를 무참히 꺾어주기를 신께 빌겠다!”

“네 소원을 들어줄 신은 없다. 중원에서도, 이곳에서도…….”

“으아!”

동승이 질풍처럼 달려들었다.

혁련천후의 눈동자가 매섭게 돌아갔다. 함께 죽자고 덤벼드는 동승의 얼굴에서 그는 세상의 모든 악을 보았다.

“죽어서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신교의 배반자여…….”

서걱!

* * *

전황은 조금씩 홀베른으로 기울었다.

크로우기사단의 난입으로 전차부대가 상당한 피해를 입을 때까지는 요란이 우세했지만 흑야를 비롯한 팔왕이 크로우기사단을 몰살한 다음부터는 요란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둠의 마법사들이 뛰어든 전장은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차르르릉!

쇠가 바닥을 구르는 듯한 기묘한 소리와 함께 어둠의 마법사들은 허공을 제비처럼 비행하며 홀베른의 기사들을 무참히 도륙했다.

검으로 내려쳐도 그들은 죽지 않았다.

마법공격이 정통으로 작렬해도 그들은 멀쩡했다. 도저히 방법이 나지 않자 그들과 맞섰던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속절없이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리자 흑야와 사공진무, 진천 등이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들이 나타나자 어둠의 마법사들이 살육을 멈추고 한곳으로 모였다.

“저 귀신들이 또 왔군.”

사공진무가 미간을 찌푸렸다.

엘프의 숲에서 한번 부딪혔던 터라 한눈에 그들을 알아보았다. 어둠의 마법사들은 강력한 기운을 느끼기라도 한 듯 선뜻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난감한데요? 이런 혼란스러운 곳에서 진법을 펼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공진무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흑야를 돌아봤다.

이미 엘프의 숲에서 그들이 어떤 공격으로도 죽일 수 없음을 겪어보지 않았던가. 다행히 사공진무의 진법이 통해서 그들을 영원히 가두어버렸지만 이곳은 적아가 한데 어우러진 전장터, 함부로 진법을 펼쳤다간 아군까지 갇히게 된다.

흑야가 앞으로 나가며 중얼거렸다.

“드래곤의 뼈로 만든 이 검에 특별한 능력이 있기를 바라야지.”

“세상에서 가장 강력했던 괴물이라고 했으니 특별한 효험이 있겠죠? 한번 베어볼까요?”

진천이 장난기 어린 말을 뱉어내곤 곧장 어둠의 마법사들을 덮쳤다.

그들의 말이 현실로 나타났다.

어둠의 마법사들은 셋을 상대하지 않고 몸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처음엔 그 같은 사실을 몰랐던 흑야 등은 그들이 검을 쳐다보며 두려운 기색을 보이는 것을 간파하고는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후후! 드래곤이 과연 영험했던 모양이군. 도마뱀 주제에…….”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들에게 어둠의 마법사들은 더 이상 위협거리가 못되었다. 최초의 소멸자가 생겨났다.

흑야의 검이 목을 자르고 지나가자 연기로 소멸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빠른 시간에 어둠의 마법사들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홀베른의 기사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던 어둠의 마법사들이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소멸되거나 도주하자 전황은 급속도로 홀베른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당초 중간 지점이 전장이었다면 반나절이 지난 시점에서는 막스 황제가 자리한 곳의 근처까지 요란이 밀려난 형국으로 바뀌어 있었다.

막스 황제의 깃발을 본 홀베른의 기사들이 그곳으로 몰려갈 때였다.

둔덕에서 일진광풍이 일며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요란을 위하여!”

“황제 폐하를 위하여!”

막스 황제를 호위하고 있던 10만 병력이 전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때를 같이하여 룻거 후작이 공격명령을 내리자 역시 둔덕에서 배후를 담당하고 있던 홀베른의 10만 대병도 전장으로 구름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 * *

내리는 눈으로 하얗게 변해버렸던 하늘이 갑자기 시커먼 먹구름으로 채워졌다.

슈슈슈슈슈슉!

먹구름이 이상한 소리를 울렸다.

그건 먹구름이 아니었다. 케이론의 대군이 쏘아올린 수십만 발의 화살이었다.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화살들이 지상으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쿠엑!

카아악!

퍼퍼퍼퍼퍽!

몬스터들의 비명이 천지를 흔들었다. 화살이 보통 화살과는 달랐다. 요란 제국의 마나를 두른 화살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두꺼운 가죽을 지닌 트롤도 그대로 관통해버렸다.

꾸에엑!

북진하던 몬스터들은 느닷없는 화살세례에 갈팡질팡하며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그런 몬스터들을 향해 케이론의 기마병단이 좌우에서 돌진해 들었다.

“사정없이 죽여라!”

“오우거와 트롤만 죽이면 된다! 놈들을 노려라!”

칸빌과 카르스 일행이 와이번을 타고 북쪽으로 먼저 날아가 버린 탓에 기사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는 오우거와 트롤 정도였다.

루안의 육신이 전마에서 허공으로 뛰어오르더니 곧장 지상으로 쏘아졌다.

콰아앙!

그가 내려선 곳에서 엄청난 마나의 파장이 발생했다. 순간적으로 주변의 몬스터들을 끌어들인 그것은 일순간 강력한 폭발과 함께 모든 것을 사방으로 날려버렸다.

엄청난 위력에 기사들마저도 입을 벌렸다.

“시간 없어! 어서 죽이라고!”

가공할 위력을 선보인 루안이 낭랑하게 소리치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는 레이나 공주의 주변만을 맴돌며 몬스터를 사냥했다. 레이나 공주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오러를 품은 검이 원형을 그리면 어김없이 오크와 고블린들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간혹 고블린들이 쏘아대는 독침이 그녀의 갑주에 적중했지만 워낙 강력한 마법이 실린 갑주라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핫!”

레이나 공주의 육신이 몇 미르를 뛰어오르더니 기사들을 향해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는 오우거를 향해 돌진했다.

루안이 재빨리 그녀를 쫓으며 호위했다.

퍽!

꾸어어어!

오우거의 어깨에서 핏물이 튀며 거대한 덩치가 휘청거리자 루안의 검이 마무리를 했다. 블랙 오우거가 아니면 제아무리 몬스터의 제왕인 오우거라도 마스터에겐 그저 식후 간식거리에 불과했다.

“놈들이 전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군요. 모두 죽이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상황을 보고 소수만 남겨두고 우린 홀베른으로 먼저 가면 되잖아!”

“좋아요! 그게 좋겠군요!”

서로를 향해 살짝 웃어 보인 둘은 다시 사냥에 돌입했다.

* * *

“끼아아아…….”

창공을 가로지르며 북상하는 와이번의 울음은 언제 들어도 섬뜩함을 안겨주는 것이다.

블러드 와이번 네 마리는 눈발을 뚫고 참혹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홀베른의 대평원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왕이시여! 인간들이 몬스터 군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가장 뒤쪽에서 날아가던 크루즈가 칸빌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칸빌의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카르스를 향해 돌아갔다.

“그대만 나를 따르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크루즈와 폭스를 태운 블러드 와이번이 좌우로 떨어져나가더니 엄청난 속도로 몬스터와 케이론의 기사들이 싸우고 있는 전장으로 날아갔다.

대번에 까만 점으로 변해 사라져버린 칸빌과 카르스를 뒤돌아본 폭스와 크루즈의 눈동자가 사악한 빛을 번뜩였다.

“후후후! 모처럼 인간의 피 맛을 보겠군.”

“크흐흐흐! 더욱 강력해진 나의 힘을 보여주마!”

끼아아아…….

상당히 빠른 시간에 전장까지 도달한 둘은 지상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블러드 와이번의 화염이 몬스터와 한데 어우러진 기사들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앙!

“으악!”

“꾸어어억!”

난데없는 강력한 화염의 폭발에 인간과 몬스터가 동시에 휩쓸려 날아갔다. 사태를 낙관하고 북쪽으로 달리려고 준비하던 루안과 레이나 공주의 고개가 빠르게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돌아갔다.

레이나 공주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저, 저것은……!”

“데스 나이트로군.”

루안의 눈동자가 살짝 적색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그의 육신이 블러드 와이번을 향해 날아갔다. 레이나 공주와 헤론 후작도 기사들을 이끌고 다시 전장으로 돌진했다.

루안의 육신이 허공으로 솟구치며 크루즈를 태운 블러드 와이번을 노리고 떨어졌다. 위험을 느꼈을까? 블러드 와이번의 거대한 동체가 요동치며 왼쪽으로 비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루안이 워낙 빨랐다.

“감히! 마계의 마물 주제에!”

루안의 분노가 실린 검이 블러드 와이번의 날개를 자르고 지나갔다.

크루즈가 막아낼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루안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날개를 잃어버린 블러드 와이번은 구슬픈 비명을 질러대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쿠웅!

미처 피하지 못한 기사들이 거대한 동체에 깔려 죽어나갔다.

“강한 인간이 여기 또 있었구나!”

허공에 몸을 둥실 띄운 크루즈의 붉은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루안도 마찬가지로 허공에 몸을 띄운 상태로 크루즈를 노려보았다.

한편, 폭스를 태운 블러드 와이번은 짧은 시간에 상당한 피해를 케이론에게 안겨주며 여전히 참혹한 죽음을 생산해내고 있었다.

퍼퍼퍼펑!

허공에 수많은 불꽃들이 작렬했다.

되돌아온 마법사들이 한꺼번에 집중포화를 퍼부었지만 워낙 빠른 블러드 와이번을 명중시키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오히려 반격에 소중한 자원인 마법사들 몇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레이나 공주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녀는 루안이 있는 곳을 응시했다.

허공에서 엄청난 격돌이 벌어지고 있었다. 발생되는 빛들로 인해 둘의 육신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마법사들은 궁병들이 발사하는 화살에 마나를 두를 준비를 하세요!”

그녀는 요란 제국의 특기를 이용하기로 마음먹고는 곧장 궁병들에게 빠르게 허공을 선회하는 블러드 와이번의 괘적을 쫓았다.

“놈이 이동하는 앞쪽에 집중포화를 퍼부으세요!”

수천의 궁병들이 화살을 먹이자 마법사들이 양손에 마나를 끌어올리고는 화살이 쏘아지기를 기다렸다.

“지금이에요!”

레이나 공주가 소리치자 수천 발의 마나를 품은 화살들이 허공으로 쏘아졌다.

그녀의 생각은 멋지게 들어맞았다. 어지간한 화살은 와이번의 가죽을 뚫지 못한다. 하지만 마나를 먹은 화살은 차원이 달랐다.

꾸에엑!

온몸에 수천 발의 화살을 고스란히 맞아버린 블러드 와이번이 지상으로 추락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궁병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레이나 공주와 헤론 후작이 마법사들을 이끌고 폭스를 향해 달려갔다.

“저자만 죽이면 홀베른을 도우러 갈 수 있어요! 모두들 힘을 내세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기사들을 내려다보는 폭스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가늘게 옆으로 쭉 찢어지며 그의 입에서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크흐흐흐! 오너라! 허약한 인간들이여!”

* * *

대부분의 전쟁은 치고 빠지고 때로는 물러섰다가 다시 공격하며 장기전으로 흐른다. 거의 모든 전력을 한꺼번에 투입해 단판승부를 벌이는 경우는 결코 국가 간의 전쟁에는 없었다. 그러나 홀베른의 대평원에서 격돌한 홀베른과 요란은 그런 상식을 벗어나고 있었다.

콰아아아…….

측면에서 움직이던 요란의 기마병단에게 드래곤의 브레스를 연상시키는 엄청난 규모의 화염공격이 떨어졌다. 밀집대형으로 움직이던 터라 그 피해는 실로 참혹함을 넘어 저주스러울 정도였다.

“크아아…….”

전신이 화염에 휩싸인 수백의 기사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부르짖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서 죽어나간 기사들은 더욱 많았다. 절규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거친 숨을 토해내며 연방 공격을 퍼붓는 가인과 카츄는 요란의 기사들에겐 악마보다 더한 존재로 비쳤다.

“죽엇! 원수들아!”

속성이 화염계열인 가인의 마법은 살상력이 대단했다.

둘은 오직 밀집대형으로 움직이는 요란의 부대만을 노렸다. 그래야 한번 공격에 더욱 효과적인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요란의 마법사들은 제대로 공격조차 할 수 없었다. 공격을 하면 그다음은 어김없이 보이지 않는 칼에 의해 목숨을 잃어가는 걸 수도 없이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자들은 죽은 자의 갑주를 벗겨 마법사가 아닌 것처럼 위장을 하기도 했다.

서걱!

핏물이 튀며 또 하나의 마법사가 죽어갔다.

죽은 자가 섰던 곳에 흑발을 늘어뜨린 흑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옆에 데얀도 나타났다.

“아직 많이 남았군. 기사로 위장한 놈들이 제법 많으니 마나가 지나치게 강하다고 느껴지면 그냥 죽여라!”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럼 저는 또 사냥을 하러 갑니다! 하하!”

참혹한 전장에서도 데얀은 여유를 보였다.

흑야는 빠르게 전장을 살폈다. 전황은 마법공격의 우위를 바탕으로 홀베른이 조금씩 유리하게 이끄는 국면이었다.

“마차로 간다!”

뒤쪽에서 혁련천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흑야의 눈에 혁련천후와 조윤이 능선으로 몸을 날리는 광경이 잡혔다. 다른 이들은 어둠의 마법사를 상대하느라 전장에서 몸을 뺄 수가 없었다.

흑야도 주저 없이 몸을 날렸다.

따다다당!

그들을 노리고 날아든 화살들은 모조리 호신강기에 부딪혀 튕겨 날아갔다.

혁련천후의 검이 허공에서 그대로 천살강기를 발출했다. 마치 화살처럼 날아간 강기가 마차의 가운데에 솟아 있던 깃발을 그대로 잘라내며 지나갔다.

우지끈!

잘려진 깃대가 마차의 지붕을 그대로 강타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들이 올 것이라 예상을 못 했던 호휘병들이 마차로 뛰어왔다.

조윤이 그들을 막아섰다. 동시에 흑야의 검이 마차의 측면을 후려쳤다.

꽝!

지이잉…….

엄청난 반탄력에 흑야는 하마터면 대도를 놓칠 뻔했다. 검이 작렬한 곳을 보니 살짝 우그러져 있을 뿐 별다른 흔적은 없었다.

천살강기를 두른 혁련천후의 검이 다시 작렬했다.

콰아앙!

이번엔 달랐다.

마차의 측면에 금이 가며 시커먼 연기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호흡을 멈춰!”

혁련천후의 짤막한 말에 흑야와 조윤은 호흡을 멈추었다. 그들을 막고자 달려오던 자들이 목을 움켜쥐며 쓰러졌다.

끄으윽!

괴상한 신음을 흘리던 그들은 이내 한 줌 핏물로 화해 사라졌다. 실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가공할 독성이었다.

“흐흐흐! 정녕 대단한 인간들이구나.”

마차 안에서 사악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차로 다가온 조윤이 창으로 후려치려는 것을 말린 혁련천후는 눈빛으로 뒤로 물러날 것을 지시하고는 자신도 몇 발 뒤로 물러섰다.

연기는 단순한 독이 아니었다. 점점 많은 양으로 흘러나온 연기들은 마차 주변을 감싸며 돌기 시작하더니 이내 거대한 방어막을 형성했다.

스슥!

누군가가 마차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복장은 분명 막스 황제의 그것이었는데 얼굴은 전혀 달랐다. 시커멓게 죽은 피부 탓에 정확한 용모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모두는 그 얼굴이 눈에 익었다.

“중원이라는 곳에서 넘어온 흑안의 마검사라는 놈들이 네놈들이었군.”

“네가 켈베로슨가?”

“후후! 그분을 미개한 족속들이 감히 입에 담다니…….”

“네놈의 주인을 불러내라!”

“나를 넘어선다면 그분께서 친히 네놈들 앞에 나서실 것이다.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미개한 족속들! 후후후!”

혁련천후의 눈매가 매섭게 돌아갔다.

더 볼 것이 없었다. 무조건 죽이면 그뿐이 아닌가.

치르륵!

천살강기가 더욱 강렬하게 요동쳤다.

“이놈이든, 저놈이든 죽을 놈이 헛소리가 많은 건 다 똑같군!”

혁련천후의 육신이 번쩍 빛을 발하더니 막스 황제의 코앞에 다가가 있었다. 동시에 그의 검이 사납게 돌아갔다.

꽝!

막스 황제가 팔을 들어 혁련천후의 검을 막아내자 굉음이 터지며 혁련천후의 육신이 뒤로 튕겨나갔다. 조윤과 흑야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세상에 혁련천후를 튕겨낼 존재가 있었다니…….

“대단한 놈이었군…….”

혁련천후는 어깨까지 찌르르 울리는 걸 느꼈다.

이런 경우는 그야말로 처음이었다. 더구나 드래곤의 뼈로 만든 검으로도 상대의 옷자락 하나를 베지 못했다.

“후후후! 이 세상에 나를 능가할 자 과연 있을까?”

막스 황제는 조소를 흘렸다.

그러나 그는 결코 막스 황제가 아니었다. 그는 이 정도로 강한 자가 아니다. 그때 조윤이 놀라 소리를 냈다.

“테세우드라는 놈과 닮았습니다! 주공!”

“뭣이?”

흠칫한 혁련천후가 유심히 상대를 살폈다. 과연 그는 테세우드 공작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커멓게 죽어버린 피부 탓에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몰라 볼 정도였지만 분명 테세우드 공작이 틀림없었다.

“사술을 부린 모양이군.”

혁련천후는 다시 검에 천살강기를 품고는 다가섰다.

상대가 막스 황제든 테세우드 공작이든 간에 죽여야 하는 것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조윤과 흑야도 강기를 품고는 좌우로 느릿하게 돌아갔다.

[놈에게 시간을 끌어선 곤란하다! 켈베로스, 놈을 끌어내야 한다.]

[동시에 달려들겠습니다!]

셋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천하를 관조했던 절대자들과 테세우드 공작의 영혼이 합쳐진 막스 황제, 그들 간의 본격적인 대결은 혁련천후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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