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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1화 (1/210)

흑막의 신! 1화

꼭 잠겨 있는 방 안.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른 새벽이다.

나는 항상 밤마다 이렇게 잠들지 못한다.

지독한 불면증. 나는 1년 전부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젠장! 죽은 듯이 자고 싶다.’

이 불면증은 나를 미치게 하지만.

자초한 일이니 원망 따위를 할 곳도 없었다.

“내가 멍청하다 못해 병신이었다. 손대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래, 나의 처음은 이 무료한 시골 생활을 잠깐이나마 떨쳐 버리기 위해 장난처럼 시작했던 일이었다.

장난?

하찮은 장난이 사람을 망치는 법이다.

하지만 그 장난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다 못해 벌레처럼 초라하게 만들어 놨다.

나는 춥고 떨리고 아팠다. 그리고 진절머리가 났다.

인간도 분명 쓰레기가 존재할 거다.

그렇게 본다면 난 폐기물이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내가 싫었다.

증오한다.

증오한다!

나는 나를 미치도록 증오한다.

“미쳤다. 정말 미친 거야! 내가 미친 거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내가 싫었다.

“미쳤다. 정말 미친 거야! 내가 미친 거다.”

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깨문 어금니에 피가 배어 나온다. 치아가 거의 다 망가진 거다. 일 년 동안 수도 없이 어금니를 깨물며 자신을 저주했다.

자신을 저주하는 삶!

그 삶 자체가 저주일 거다.

악마의 저주가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악마일지도 모른다.

후회되어 후회하고 후회하였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자신에게 보이는 것은 오직 망가진 자신뿐이다. 그게 증오스러운 나였다.

“나는 나를 증오한다.”

춥다. 점점 더 추워지고 있다.

이제 슬슬 시작이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또 한 번 미칠 것이고 또 한 번 후회할 것이다. 아니, 나는 이미 미쳐 있다. 그래 나는 미친놈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절대 이러지 못한다.

“사, 살려 줘! 미칠 것 같다! 아아악!”

점점 더 약 기운이 떨어진다. 나의 이 지랄 같은 현상은 모두 약 기운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초조했다. 어디선가 나의 귀에 약을 하라는 소리가 환청처럼 메아리쳤다. 미쳐 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젠, 젠장! 아아악!”

내 입에서 터져 나오는 거친 비명이 이 쓰레기장같이 더러운 방에 메아리친다.

느껴지는 감각이 내 것 같지 않다. 어딘가를 보고 있지만 보이는 것이 현실인지 환각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정말 나는 미친 것이다. 나는 멍한 눈으로 숨은 듯 틀어박힌 방 안을 둘러봤다.

책상 위에는 묵직해 보이는 의학 서적이 탑처럼 쌓여 있지만, 한동안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먼지가 고단한 삶처럼 쌓여 있다.

그리고 재떨이 대용으로 쓰인 종이컵들이 지뢰처럼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방바닥에 깔려 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은 냄새의 근원지는 바로 저기일 거다.

그것들 주변으로는 치우지 않은 쓰레기들이 잔해처럼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얼마나 방 안에서 담배를 피워댔는지 벽지는 누렇게 변해 있다.

나는 컴퓨터가 놓여 있는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책상 위로 은밀하게 싸인 검은 봉지가 보인다.

“나는 개새끼다.”

목소리가 떨린다. 시야도 같이 떨린다.

나는 여전히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 물끄러미 검은 봉지를 보다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덜덜덜. 내미는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의지는 거부하고 있지만, 몸의 본능은 간절히 검은 봉지에 매달리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정말 개새끼다.”

다시 한번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검은 봉지에서 작은 알약 몇 알을 꺼내 입에 털어 넣고는 물도 마시지 않고 와작 씹어 삼켰다.

“휴우, 제기랄! 난 내가 싫다.”

슬슬 약 기운이 도는지 초점 없던 눈이 더욱 풀렸다.

몸에서도 힘이 빠진 듯 나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스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한없이 춥게 만들던 한기도 이제는 느껴지지 않는다.

슬금슬금 벌레들이 몸 위를 기어가는 듯했던 느낌도 사라졌다.

약 기운 덕분에 몸은 편해졌지만, 정신은 몽롱해졌다.

나는 파멸을 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킥킥킥! 히히히! 정말 미쳤다.”

그렇게 약에 취해 키득거리던 내 시야에 창문이 보였다.

창밖은 한없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비나 졸라게 쏟아져라. 킥킥킥!”

넋두리처럼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천생 미친놈 꼴이다.

“비, 비나…….”

나는 환각 상태로 지쳐 잠이 들었다. 스르륵 눈을 감는 그 순간부터 한 방울씩 하늘에서 비가 떨어졌다.

두두둑! 두두둑!

장대비다. 저 비는 누군가를 초라하게 적실 것이다.

* * *

추적추적 비 쏟아지는 비포장도로에 있는 버스정류장.

시골이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지나가는 차도 없다. 그저 비만 쏟아지고 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방울은 진탕이 된 물웅덩이에 떨어져 원형의 파장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버스정류장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노모와 아파 보이는 젊은 아들의 모습이 비처럼 처량하다.

얼마나 비를 맞았을까?

두 모자의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젊은 아들은 마치 겨울 한날의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고, 그 아들을 측은하게 보는 노모의 눈가에 깊게 팬 주름은 아픈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만큼 깊기만 하다….

찰나의 순간 노모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노모의 눈빛이 파르르 떨리고 젊은 아들의 입술도 파랗게 질려서 떨렸다.

두 모자는 그저 지랄같이 내리는 비만 말없이 바라보았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젊은 아들은 온몸으로 비를 맞은 사람처럼, 아니, 그보다 더 깊이 떨고 있다. 추위 때문일까? 파르르 떨리는 입술은 더욱 파랗기만 하다.

그리고 그 입술만큼 노모의 한숨은 길었다. 그리고 노모는 끝내 참고 있던 말을 꺼냈다.

“그, 그거 처묵는다고 끝나는 기가?”

한참을 떨고 있는 젊은 아들을 보다가 노모의 주름진 입술에서 원망과 미안함이 담겨 있는 물음이 넋두리처럼 흘러나왔다.

“가난이 웬수제. 가난이 웬수다.”

하지만 젊은 아들은 여전히 대답이 없이 그저 온몸을 바르르 떨 뿐이다. 휑한 눈동자. 저런 눈동자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보이는 눈동자다.

“그래! 가난이 웬수제, 웬수. 네가 뭔 죄가 있노. 살지 못하니까 죽으려는 기제. 휴! 다 부모 잘못 만난 죄다.”

“어, 엄마…….”

“무식한 에미 만나서 어릴 때 네 병 못 고친 게 죄고, 가난한 부모 만나서 해 줄 게 없는 게 죄다. 그래, 그 몸으로 네가 무슨 낙이 있어서 사노?”

“그, 그게 아이다.”

“그래, 네가 시도 때도 없이 지랄 발광을 하는데 너라고 어찌 살겠노.”

“엄마…….”

“그래도 너는 모진 놈의 새끼다! 이제 내는 우짜노, 내는!”

“미, 미안, 미안해요.”

“다음 생에는 돈 많은 집 건강한 개새끼로 태어나라.”

노모는 마치 아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말했고, 그 말에 입술이 파란 아들은 물끄러미 자신의 노모를 봤다.

“나, 나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서 죽고…….”

“내, 내는 그리는 못한다. 보건지소 가자. 금방 차 온다.”

분명 노모의 아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이렇게도 급한 순간 노모는 비가 쏟아지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가난!

아들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택시 하나 부를 돈이 없는 자신이 노모는 저주스러울 것이다. 어쩜 가난은 이렇게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인가 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가난은 정말 누구 하나 어찌하지 못하는 비운의 저주일지도 모른다.

“하, 하지만…….”

“가, 가 보자. 가 보자. 살 수만 있으면 내 눈깔이라도 팔아서 살리야제. 내는 내 아들 가슴에 먼저 못 묻는다.”

“아무리 그래도 나 죽소. 그거 먹고 산 사람 없소.”

“죽으려고 처먹었으니 죽겠제. 그래도 가 보자. 니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남은 내는 우짜노.”

“어, 엄마…….”

“미안타. 내가 미안타.”

노모는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순간 울 수가 없었다. 지금 눈물을 터트리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노모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그때 멀리서 덜컥이며 버스 한 대가 달려와 섰다.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청승맞게 내리고 있었고, 자기 몸 하나 가누기 힘든 노모는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젊은 아들을 겨우 부축해 버스에 올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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