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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2화 (2/210)

흑막의 신! 2화

읍내 시골 보건지소.

버스를 탔던 노모와 입술이 파란 젊은 아들이 보건지소 문으로 들어섰다. 우산 하나 없기에 그들은 처량할 만큼 참 많이도 젖어 있었다.

보건지소 안으로 들어선 노모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선상님! 선상님! 의사선상님!”

노모는 삶의 굴곡이 가득 느껴지는 쇳소리로 의사를 불렀고, 처량한 노모의 목소리를 듣고 난 진료실 안에서 급하게 뛰어나왔다.

‘젠장! 무슨 일이야!’

사실 지금 이 순간 나는 막 약을 할 생각이었다. 뭐, 약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마약이라고 할 정도는 아닌 진통제다.

나는 그걸 상습 복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 알이었지만 이제는 한 움큼을 먹어야 약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런 생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방심이, 나를 약쟁이로 만들어 놨다.

사실 나는 군입대 대신에 공중보건의를 선택한 의사다.

“무, 무슨 일입니까?”

나는 긴장을 해서인지 말까지 더듬었다. 그리고 사실 다 늦은 저녁에 비까지 오늘날에 방문한 이 노모와 젊은 아들의 방문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오려면 일찍 오지 왜 진료 다 끝난 뒤에 오는지 짜증까지 나는 거다. 하지만 내색을 할 수는 없다. 어쩌겠는가? 여기는 개나 소나 다 오는 보건지소인 것을.

‘젠장! 왜 온 거야. 짜증 나게.’

사실 환자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의사가 될 자격이 없다. 아니, 약을 처먹을 때부터 나는 의사 가운을 스스로 벗었어야 했다. 의사가 약에 취해 진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약을 끊거나 약물 중독이라는 것을 밝히지 못했다.

아마 그건 두려움과 알량한 자존심 때문일 거다. 그리고 사실을 밝히고 난 다음의 일이 걱정되기 때문일 거다.

고아 출신의 서울대 의대 졸업자.

이건 나에게 경쟁력 있는 간판이었다.

노력하는 사람! 불우한 환경에서 밝은 내일을 준비한 사람! 나는 그렇게 이 사회에서 청년들이 본받아야 할 젊은이로 주가를 올린 적이 있었다.

사실 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지만, 머리가 좋거나 영리한 편은 아니다. 그저 가난한 놈이, 그리고 부모도 없는 놈이 할 수 있는 게 나쁜 짓 아니면 공부였기에 공부만 했을 뿐이다. 한마디로 죽어라 공부만 지독히 한 거다.

그래서 겨우 서울대를 갔다. 불우한 환경으로 신문에 나고 장학금도 받았다.

그때부터 나의 인생은 달라졌다.

하지만 나는 그런 스스로의 모진 노력을 모두 망쳐 버린 거였다.

그래. 나는 절대 자신이 약쟁이라는 것을 밝힐 수 없다.

밝히고 나면 나에게 쏟아질 사회적 냉대가 나는 두려웠다. 그리고 약을 끊을 의지도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멍한 상태로 개 같이 진료를 하는 거다.

정말 나는 스스로를 개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이 상황이 설명이 안 된다.

하여튼 지금 내 앞에 환자가 짜증스럽게 서 있다. 사실 오늘 새벽에 비나 아주 많이 오라고 넋두리를 한 것이 다 이런 이유 때문일 거다.

그렇게 나는 노모에게 말을 걸며 슬그머니 손에 쥐고 있던 약봉지를 의사 가운에 집어넣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어디 아프세요?”

나는 환자도 보지 않고 물었다.

노파는 사실 몇 번 본 환자 보호자다. 돈이 없어 매번 보건지소를 찾는 환자의 노모다. 아들은 파르르 떨며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그 지랄병 환자다.’

나는 지랄병이라고 말했지만, 저 남자는 간질 환자다. 그것도 아주 심한 중증 간질을 앓는 환자였다.

나는 남자를 봤다.

‘젠장! 약이 없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저 남자는 전신 발작 간질이다.

아마 나의 예상으로는 어릴 적에 발생한 소아 간질을 치료하지 못해서 난치성 간질로 변한 것 같았다.

지금 나는 저 두 모자가 얼른 그냥 큰 병원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저 짜증 나기만 했다.

나는 허리가 굽은 노모의 부축을 받는 젊은 아들을 보며 다시 말했다.

“여기서는 간질 치료 못 해요. 여긴 보건지소라고요.”

나의 말에 노모는 물끄러미 여전히 파르르 떨고 있는 자기 아들을 봤다.

“내 아들놈 한번 봐 주라.”

노모의 말에 나는 젊은 아들을 봤다. 이번에 이들이 보건지소를 찾아온 것은 간질 발작 때문이 아니었다. 뭐 사실 간질 발작을 했다면 움직이지도 못하고 심한 경련을 하고 바닥에 뒹굴고 있을 거다.

‘제기랄! 제초제다. 왜 제초제를 처먹고 지랄이야!’

순간 나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욕을 했다.

“내 아들 어떻노?”

내 눈치를 보던 노모가 내 어두운 얼굴을 보고 물었다.

“그, 그…….”

난 다시 젊은 아들을 봤다.

‘처먹으려면 내일 낮에 처먹지.’

병원까지 찾아온 환자를 향해 마음속으로 욕을 한다는 것은 이미 나 스스로도 의사이기를 포기했다는 증거일 거다.

입술이 파랗고 창백한 것을 봐서 분명 독한 농약을 마셨다는 사실을 나는 알 수가 있었다. 저렇게 제초제를 마신 사람은 다 죽는다.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

제초제를 먹으면 살릴 방법이 없다. 당장 위세척을 해서 살려 놓는다고 해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른 장작처럼 몸이 바짝 말라가며 결국 죽게 된다. 그만큼 제초제는 무서운 자살 도구다.

그리고 이 보건지소에는 위세척 장비도 없다. 그냥 저 남자는 이제 죽는 일만 남은 거다.

“내 아들 한번 봐 주라.”

노모는 이 순간에도 나보다 더 여유롭게 말했다. 이미 저 노모도 아들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이런 농촌에는, 그것도 찢어지게 못사는 농촌에는 제초제를 먹고 죽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그래서 제초제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도 사람들은 알고 있다. 난치성 간질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 남자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어쩜 용한 일이다.

“우선 들어가세요. 환자 상태부터 한 번 확인해 볼게요.”

“고맙다.”

나는 노모의 부축을 받는 아들을 직접 부축해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나는 장난스럽게 약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무척이나 친절한 의사 선생님이었다. 돈 몇 푼 없는 이런 시골에서 꼭 있어야 할 의사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머리가 백발이 된 노인들까지 나를 의사 선생님이라 부르며 존경했었다.

그게 꿀이고 독이었다. 나같이 아무 배경도 없는 놈들은 소문이 배경이 되고 평판이 배경이 됐기에 나는 무척이나 친절히 진료했다.

하지만 그 망할 놈의 호기심과 지랄 맞은 약이 나를 쓰레기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진료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진찰을 시작했다.

뭐 사실 진찰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시골 보건지소이다 보니 위세척을 할 장비 같은 것도 마땅히 없다.

하지만 나로서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퉁명스럽게 진료를 거부하면 저 노모는 분명 동네방네 소문을 낼 거고, 그 소리가 보건당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괜한 것까지 걸리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하는 의사.

이건 사회에 매장당하는 짓이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진료하려는 거다. 보건지소에서 구하기도 힘든 마약성 진통제를 구해 먹기도 힘든데 괜한 일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말이 안 나오게 보내야지.’

나는 나쁜 마음을 먹었다.

이런 마음을 먹는 나는 언젠가는 벌을 받을 거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이미 개새끼가 되어 버린 나는 이렇게 나쁜 마음만 먹는다.

그리고 저들을 더 큰 병원으로 가 보라고 내친다면 분명 저 젊은 아들은 치료 한 번 받아 보지 않고 죽을 것이 분명할 거다.

그거 역시 싫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아직은 의사인 모양이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제초제를 먹었군.’

나는 다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난치성 간질 발작, 그것도 소아 간질에서 비롯된 중증 간질은 치료할 수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지랄 발광을 하니 사회생활이, 그러니 찢어지게 가난한 것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어쩌지?’

파란 입술만 봐도 독한 농약을 마셨기에 치료를 해도 생존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살릴 수 있나?”

자기 아들을 진료하고 있는 내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노모가 내게 물었다.

“사, 살릴 수 있나? 와 대답이 없노?”

처음으로 노모의 말이 떨렸다.

마지막까지 놓지 못하는 희망으로 내게 물은 거다. 나는 이 상황에서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나의 몸에 다시 변화가 시작됐다.

이 지랄 같은 순간에 염병할 나의 몸이 더러운 약을 내장 속에 쑤셔 넣어 달라고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손이 떨리고 초점이 흐려졌다. 이 상태라면 진료 자체가 어려워진다.

나는 슬그머니 의사 가운 주머니 속에 있는 약봉지를 만지작거렸다. 진료하면서 슬그머니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흥분한 나의 몸이 진료를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나는 약을 먹는 것을 포기했다.

‘마지막인데…….’

사실 이게 이 병원에 있는 마지막 진통제다. 이것을 먹고 나면 난 다른 보건지소에 전화해서 어떤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진통제를 받아 낼 거다. 하지만 지금은 이게 마지막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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