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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3화 (3/210)

흑막의 신! 3화

“우, 우선 위세척부터 해 봐야 하는데요. 보건지소라 위세척 장비가 없는데 어떻게 하죠?”

“큰 병원에 가면 살릴 수 있나?”

“큰 병원에 가서 우선 위세척부터 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노모의 눈이 너무 서글펐다.

사실 나는 그런 말을 해 줄 용기도 없었다.

그 순간 머릿속이 윙윙거리고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변해 가는 상태에 나는 여기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망할 새끼! 조금만 참아! 조금만 참으면 목구멍에 약을 쑤셔 넣어 줄 테니까.’

나는 다시 스스로에게 욕지거리를 했다.

‘이런 내가 싫다. 그리고 이런 순간이 싫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살릴 수 있나?”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본 노모가 다시 나에게 물었다. 노모는 썩은 벌레와 같은 눈을 하는 나를 하느님처럼 우러러보고 있다.

자기 아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능력이 없는 썩은 벌레일 뿐이다.

‘미, 미안해요.’

나는 노모에게 사과했다. 나쁜 마음을 먹었던 것이 부끄러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나도 아직 사람인 모양이다.

“살릴 수 있나? 의사 선상님. 너는 의사니께 살릴 수 있제?”

노모는 내게 마지막 희망을 거는 것 같았다. 나는 이럴 때가 제일 지랄 같다. 분명 누구도 저 젊은 아들을 살리지 못할 것이다.

환자에게 ‘당신 아들은 가망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제일 힘이 든다. 어쩜 난 의사라는 직업 자체를 잘못 선택한 걸지도 모른다.

“할머니…….”

“그것만 말해도. 살릴 수 있나?”

“우선 위세척부터 하시죠.”

“나 돈 없다.”

이 순간 나는 해머로 머리를 크게 한 대 후려 맞은 느낌이 들었다.

‘다, 다 돈 때문이란 말이지…….’

노모 물음의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었다. 물론 노모와 젊은 아들이 보건지소를 들어설 때부터 나는 그들에게 치료받을 돈이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직접 귀로 들으니 충격 그 자체였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 하지 않습니까.”

나는 이 순간을 이겨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약을 갈망하기에는 이 순간이 너무 서글펐다.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는 이 순간.

나는 여전히 부질없는 쾌락을 갈망한다는 사실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스스로 자신을 개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 순간만큼은 완전한 인간이었다.

“나, 돈 없다 했다.”

노모의 말투는 담담하지만, 그 한마디 한마디는 지금 노모의 심장을 한없이 생채기를 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돈 걱정은 나중에 하시고요. 아드님부터 살리셔야죠.”

“사, 살릴 수만 있으면 내 눈깔을 뽑아서라도 살리고 싶다. 살릴 수 있나?”

노모는 나를 보며 울먹였다.

“그, 그게…….”

“못 살리는 거제? 선상 얼굴 안 좋은 거 보니 안 되는 기제?”

“하, 할머니.”

“내 아들 그냥 죽는 거제? 내 눈깔 뽑아도 안 되는 기제?”

난 노모를 봤다. 자꾸 자신의 눈을 뽑아서 아들을 살리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눈 이야기는 뭡니까?”

“이, 이거…….”

노모가 내게 작은 명함 한 장을 내밀었고, 난 그 명함을 보고 기겁을 했다.

‘장기매매! 신장 5천, 간이식 4천, 망막 8천…….’

그리고 마치 정상적인 거래를 하는 듯 인천시에 있다는 약도까지 자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것만 봐도 세상은 나만큼 미쳐 있는 거다.

난 다시 노모를 봤다.

“이거, 어디서 나셨습니까?”

“못 살리는 기제?”

“할, 할머니, 이거…….”

“내 아들 살리나, 못 살리나?”

노모가 내게 소리를 질렀다.

“그것만 말해도. 의사 선생!”

“어, 어렵습니다. 제초제를 마셔서, 자, 장기가…….”

“그럴 줄 알았다. 그래, 그것 먹고사는 놈 못 봤다.”

내 한마디에 노모는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렸다. 아마도 노모는 포기가 빠른 삶을 살았을 거다. 가진 것이 없으니 어쩜 무엇 하나 바라지 않은 삶이었을 거다.

희망 자체가 없는 삶에 저기 죽어가는 아들이 마지막 끈과 같은 희망이었을 거다.

그런데 그 아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제 저 노모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절망만 존재하는 것이다.

포기가 빠른 삶!

가난이 뼛속까지 사무치는 삶.

이런 어미들이 이 대한민국에는 너무 많다. 난 노모를 물끄러미 봤다. 그 순간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 순간에 느껴지는 이 감정이 아직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마지막 증거 같았다.

‘제, 젠장!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노모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며 아들을 봤다. 나 역시 그를 봤다. 그는 애써 고통을 참고 있는 듯했다.

“내 아들 그냥 죽는 거제?”

노모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며 아들을 봤다.

“가자. 집에 가고 싶다며. 집에…… 집에 가자.”

젊은 아들 역시 자신이 치료를 받아도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듯 자리에서 겨우 일어섰다. 죽을 작정을 하고 맹독의 제초제를 마신 걸 거다.

그래서 저 젊은 아들은 죽는 거다. 무엇이 저 젊은 남자로 하여금 제초제를 들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의 대한민국.

무엇이 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스스로 죽게 만드는 것인가?

난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할머니! 그냥 가시면 안 됩니다. 그러다 정말 아드님 죽습니다.”

“우짤 기고, 돈이 없는데…….”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나는 항상 이런 상황이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분명 저기 파랗게 떨고 있는 젊은 아들은 보건지소 밖을 나서면 하루를 넘기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래도 저는 못 보냅니다.”

나는 노모의 앞을 막아섰다. 죽어가는 저 젊은 아들은 분명 나보다 더 살 가치가 많은 남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순간에 누군가가 죽어야만 한다면 그건 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돈 없다. 비키라. 못 살린다며. 저번 약값도 못 줬다. 그게 난 의사 선상, 너한테 미안타!”

나는 한 번 서울에 갔을 때 모교를 찾아 임상용 간질약을 가져다준 적이 있었다. 물론 부작용도 많은 임상용 약이었지만 그래도 그것을 먹고 한동안은 간질이 없다고 무척이나 좋아했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보니 나는 착한 의사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쓰레기가 된 것일까? 다 그놈의 약 때문일 거다,

“할, 할머니, 그 약값은 안 주셔도 돼요.”

“비키라! 못 살린다며. 빚만 지고 산 세상이다. 죽어서도 빚지고는 못 간다.”

“하, 할머니…….”

“비키라 캤다. 우리 아들 객사시킬 기가! 난 돈 없다. 돈 없다고!”

가난한 삶의 모든 원망을 토해 내듯 노모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마 가난한 어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원망의 몸부림일 거다. 살릴 수만 있다면 자신의 눈을 팔아서라도 살리고 싶은 아들일 거다.

노모 역시 이미 이 보건소를 들어설 때부터 아들이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정말 그래도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일 수는 없는 어미였기에 이렇게 죽어가는 아들을 이끌고 보건소까지 온 거였다.

“으으윽!”

지금까지 모질게 참고 있던 아들이 짧은 신음을 흘렸다. 아플 거다. 아니, 고통에 겨워 몸부림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참고 있었다. 아들의 고통이 살아갈 어미의 한이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 집에 가자.”

노모는 나무껍질 같은 손으로 아들의 등을 살포시 두들겨 줬다. 그렇게 노모는 내 만류도 뿌리치고 진료실 밖으로 나섰다.

“하, 할머니!”

“고맙다.”

“예?”

“아주 고마웠다고.”

“하, 할머니! 가, 가지 마세요.”

나의 부름에도 끝내 노모는 죽어가는 아들을 데리고 보건소 밖으로 나갔고.

나는 멍하니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봤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가운 주머니에 들어있던 약봉지를 힘껏 움켜쥐었다.

“젠장…….”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끼이익!

진이 다 빠졌는지 보건소 출입문을 여는 것조차 힘겹게 느껴졌다. 여전히 비는 우라지게 쏟아졌다.

터벅! 터벅!

노모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머, 먼저 가 있그라. 금방 간다.”

노모는 죽어 가는 젊은 아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고하듯 말했다. 이것이 가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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