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의 신-4화 (4/210)

흑막의 신! 4화

“엄, 엄마! 으으윽! 어, 엄마는 오래 살다 오, 오소!”

“망할 새끼! 사는 게 지옥이다.”

나도 그렇다. 나도 사는 게 지옥이다.

지옥!

살아가는 것이 지옥!

저 할머니의 지옥과 내 지옥은 분명 다른 의미이겠지만.

“으으윽!”

젊은 아들의 장이 녹아내리고 있는 거다.

나는 보건지소 출입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장대 같은 비가 저 가여운 두 모자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노모를 향해 힘껏 소리쳤다.

“할머니! 할머니!”

“와?”

“이거 먹이세요.”

나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 노모 앞에 섰다. 그리고 노모의 손에 작은 약봉지를 쥐여 주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약이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적선일 거다.

“이게 뭔데?”

“진통제입니다. 고통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지금 내가 건넨 약봉지에 들어가 있는 진통제는 마약 성분이 들어가 있는 진통제다. 정말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한 마지막 처방으로 주는 약이었다.

‘중독 따위는 걱정 안 해도 되겠지.’

나는 노모를 물끄러미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미 죽어가고 있으니 상관없는 거다.

“고, 고맙다.”

노모는 나를 보며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아파할 때마다 먹이세요.”

“매번 고맙기만 하네.”

“죄, 죄송합니다. 아,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해서…….”

“아니다.”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울먹였다. 이런 상황에서 울지 못한다면 난 정말 쓰레기일 것이다.

“너는 내가 아는 제일 착한 의사 선상님이다.”

노모의 말에 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알싸한 아픔과 함께 입술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이 작은 상처도 이렇게 아픈데 장이 녹아내리고 있을 저 젊은 남자는 얼마나 아플까. 또 그렇게 죽어가는 아들을 보고 있는 노모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지게 아플까. 나는 그들의 고통을 차마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눈물을 글썽이며 그들을 바라보자 젊은 아들이 고통스러울 와중에도 애써 나를 위해 웃어 줬다.

남을 위해서 웃어 줄 수 있는 저런 착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현실이 날 미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정말 이 순간에 죽어야 한다면 내가 되어야 할 건데.

“내 죽어서도 니 은혜 안 잊을 기다.”

그렇게 노모와 제초제를 마신 젊은 아들은 빗속으로 사라졌고, 그 모습을 나는 한없이 비를 맞으며 지켜봤다.

“나, 나는 개, 개 같이 살았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쩜 오늘 저 두 모자의 서글픈 삶이 나에게 새로운 삶의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없이 청승맞고 지랄 같은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지역 TV 뉴스에서 제초제를 먹고 죽은 아들을 따라 자살한 노모의 사연을 봤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내 인생의 시점이 바뀐 것이 바로 그날 이후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이상할 만큼 나의 머릿속에는 환청처럼 노모가 했던 말이 떠나지 않고 자리를 잡았다.

-내 죽어서도 네 은혜는 안 잊을 기다.

마치 약물 중독자가 만들어 내는 환청처럼 그 노모의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리고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군 복무 대신에 한 공중보건의의 의무 기간을 끝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약물 중독자였다.

“제기랄! 난 정말 어떻게 하지 못하는 개새끼다.”

그렇게 혼잣말을 곱씹었다.

* * *

의무 복무를 끝낸 나의 삶은 여전히 위태롭기만 했다. 공중보건의였을 때에는 어떻게, 어떻게 해서라도 약을 구했다.

하지만 일반 병원으로 돌아온 나에게 마약 성분이 있는 진통제를 구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겨우 인턴 주제에 철저하게 통제되는 장소에서 약을 구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그리고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해 많은 약을 먹지 않으면 환각 현상을 느끼지 못했다.

약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 거다.

그래서 손을 댄 것이 바로 마약이었다.

필로폰!

내가 거기에 빠져든 것이다.

필로폰은 히로뽕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약물 중독자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수순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허름한 윤락가 뒷골목에서 마약 판매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하필 항상 이런 곳이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더럽게 싸 보이는 년들이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저들의 시선이 마치 약물에 중독된 나를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저런 부류의 여자들이 싫다. 마치 나처럼 이 세상에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싫다. 하지만 나는 약을 구해야 했고, 이런 곳에서는 나처럼 약을 구하는 중독자들이 많기에 마약 판매상이 이곳을 선택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한번 힐끗 여자들을 봤다.

‘제대로 입은 년이, 하나도 없군.’

정말 당연한 생각을 하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많이 벗은 년들이 이런 곳에서는 돈을 번다.

어쩌면 저런 옷차림이 바로 저들의 경쟁 방식일 거다.

‘천한 거들!’

내가 뭐라고 저 여자들을 욕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저 여자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아주 치열하고 충실하게 자기의 삶을 살고 있는데 말이다.

“오빠! 놀다 가.”

그녀들의 부름에 나는 관심조차 둘 여력이 없었다. 나는 오직 약이 필요했다.

내 입술은 그 옛날 언젠가 봤던 제초제를 마시고 죽어가던 젊은 아들과 다를 것이 없이 파르르 떨렸고, 초점을 잃은 시야는 내게 손짓하는 헐벗은 아가씨들이 하나가 아닌 둘, 또는 셋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미, 미친년들…….”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미 인간성마저 상실해 가고 있었다.

“관심 없어. 꺼져.”

약에 취한 것들은 이렇게 약 기운이 떨어졌을 때, 약 말고는 다른 것에는 관심조차 없어진다.

“꺼지라니까.”

나는 아가씨를 뿌리쳤고,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하이힐을 신은 초짜 아가씨는 길바닥에 벌러덩 넘어졌다.

쿵!

“아야!”

“꺼져.”

나는 물끄러미 넘어진 아가씨를 봤다.

이때까지도 나는 이 상황이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싫다고 했다. 그냥 꺼지라고. 너랑 안 한다니까. 싫어.”

“제기랄 놈아! 싫으면 싫지 왜 밀쳐?”

초짜 아가씨는 막무가내로 소리를 질렀다.

역시 다가오는 조폭들을 의식한 게 분명하다. 그렇게 초짜 아가씨는 바닥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터벅터벅 걸어오는 조폭들을 기다렸다.

“손님, 뭡니까?”

조폭 하나가 내 어깨를 잡고 돌려세우며 나를 노려봤다. 무섭게 인상을 구기면 보통 남자들은 겁을 집어먹고 슬그머니 도망을 친다.

그럼 조폭들의 일은 끝이 나는 거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지금 이성은 마비되어 있고 감성은 극대화되어 있다. 그리고 사고 능력은 제로다. 한마디로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는 상태라는 말이다.

“너도 꺼져.”

“삼촌! 저 새끼 미친 새끼야!”

조폭이 와서인지 초짜 아가씨의 악다구니는 더 커졌고, 그 모습에 조폭은 인상을 찡그렸다.

“넌 어서 가게로 들어가.”

“저 새끼가 나 밀쳤다고.”

눈치 없는 초짜 아가씨는 소리를 질렀고, 조폭은 험상궂게 인상을 찡그렸다.

“어서 들어가라고.”

조폭이 소리치자 초짜 아가씨는 바로 일어섰다. 역시 막가는 여자도 조폭은 무서운가 보다.

“아, 알았어. 삼촌! 내가 잘, 잘못했어.”

초짜 아가씨는 바로 일어섰다.

“너는 나중에 보자.”

“잘못했어.”

여자 아가씨는 나를 죽일 듯이 한번 노려보고 가게로 들어갔다.

나는 그 모습이 역겨워 피식 웃었다.

이게 발단이 됐다. 원래 엄청난 일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거였다.

“웃네? 미쳤어?”

조폭이 나를 노려봤다. 하지만 나는 두려울 것이 없다. 아니 위험하고 두렵다는 본능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이 새끼 눈깔 왜 이래?”

다른 조폭 하나가 나를 뚫어지게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형님 저 새끼! 약쟁이 같습니다.”

“약쟁이?”

“예. 눈깔에 초점이 없습니다.”

“누가 보기 전에 저 새끼 치워.”

조폭은 나 같은 약쟁이는 상대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다.

나 같은 놈과 시비가 붙어서 경찰이라도 출동을 하게 된다면……. 물론 그런 일은 이런 곳에서는 없겠지만 만약 출동이라도 하게 된다면 일이 커지게 된다.

아마 며칠 동안 장사를 하지 못하게 될 거고, 그럼 손해가 어마어마했다. 그러니 나 같은 마약 중독자가 이곳에 기웃거리는 것이 달갑지 않은 조폭들도 있었다.

그래서 포주를 하는 조폭들은 마약쟁이들을 싫어한다.

내가 약쟁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조폭들은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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