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6화
‘그런데 왜 숨을 쉴 수 있는 거지?’
나는 문득 그게 의문스러웠다. 흙 속에 묻혔다면 숨을 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숨을 쉬고 있다. 의문을 가진다는 것. 그것은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찍찍! 찍찍!
나의 물음에 답이라도 하듯 들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쥐구멍이 있다. 저기로 공기가 통하는 거야!’
나는 그제야 구덩이에 묻히고도 죽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살아야 해! 움직여야 해.’
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정말 눈곱만큼의 희망이 생기니 살고자 하는 욕구가 샘솟았다. 나는 그렇게 다시 몸부림을 쳤다.
코로 흙이 밀려 들어왔지만 나는 살기 위해 악착같이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드디어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이건 기적일 거다.
묻히면 쉽게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아마 흙을 팠다가 다시 묻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흙은 땅을 파서 다시 그대로 넣고 묻으면 약간 지면에서 올라간다. 밀도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마 그게 나를 살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쩌어억!
나는 힘껏 지상을 향해 팔을 뻗었다.
푹!
정말 죽기 살기로 뻗은 나의 팔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득 담고 땅을 뚫었다.
“아악!”
비명처럼 기합을 넣는 소리와 함께 흙이 나의 입으로 밀려들어 왔다. 그렇게 처음으로 나는 흙 맛을 알았다.
‘이대로라면 살 수 있어.’
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리고 힘껏 다른 팔을 움직였다. 이제 허리가 움직여진다. 지상으로 나온 나의 팔은 뭐든 잡을 수 있는 것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제 겨우 나온 것은 손뿐이다.
정말 비가 오고 있었다. 손등에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졌다. 저 비가 나를 살린 것이다. 축축하게 젖은 땅이 바닥으로 가라앉으며 그만큼의 틈이 생겼을 것이다.
‘산다. 살 거다! 반드시 산다.’
나는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죽음 앞에서 살고자 하는 의지가 불타는 것이 사람이다.
그리고 끝내 무덤에서 걸어 나온 사람처럼 땅속에서 탈출했다.
쫘아악! 쫘아악!
정말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다. 겨우 흙에서 나온 나였기의 몸은 흙으로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장대비가 흙을 씻어 냈다. 그래도 엉망진창인 것은 여전하다.
“살았다!”
나는 감격에 겨워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 느껴보는 희열이다. 사는 게 이렇게 좋은지 오랜만에 느꼈다.
“살았다! 살았다. 하하하!”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빠르게 추워졌다.
덜덜덜! 덜덜덜!
살았으니 이런 추위도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정말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마약의 유혹, 그런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인간만큼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꺾는 동물도 없을 거다. 그러나 이 순간 나는 살아남으로 인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이제 은혜는 갚은 기다. 없다. 이제. 없는 기다.
나의 귀에 다시 환청이 들렸다.
“은혜라고요?”
-그래. 은혜는 갚은 기다.
나는 예전에 제초제를 먹고 병원으로 왔던 아들과 노모를 떠올렸다.
‘그 할머니의 목소리다.’
자살한 할머니가 나를 깨운 것이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 내 앞에 펼쳐진 거다.
-앞으로 똑똑히 살아라. 알았제.
이건 간곡한 당부처럼 들렸다.
‘제가 이 폐인의 몸으로 똑똑히 삽니까? 전 다시 엉망이 될 겁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떼를 썼다.
-멍청한 놈! 마음만 착해서리, 쯧쯧.
‘살려 주셨으니 살길도 열어 주십시오.’
나는 귀신이 된 할머니의 환청에 부탁했다. 아니 막무가내로 떼를 쓴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나는 간절했다. 그리고 마약 중독은 너무나 그 중독성이 강해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 지금은 새롭게 살겠다는 의지가 불타지만 예전에도 그랬다. 하지만 너무도 쉽게 자신을 포기해 버렸다.
이제 정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안 될 것 같았다.
-오냐! 그래, 이제 네가 나한테 빚이 있다.
할머니의 환청은 그렇게 말했다.
찌우웅! 위이잉!
순간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눈에서 검은 눈동자는 사라지고 흰자위만 가득해졌다.
사지가 비틀어지고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왔다. 또한, 상상할 수도 없는 수많은 기억과 지식이 내 뇌가 담을 수 없을 만큼 노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아아악! 아악!”
비명!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들어 비명을 질러야 했다.
-참아라! 참아야 새롭게 태어나지.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이 밀려오는 그 순간, 조금은 희미해진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 미칠 것 가, 같아요. 아악!”
-온몸이 부서져야 새롭게 만들지. 내 너한테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아아악! 미치겠다고요. 미쳐요.”
-고통 없이 어찌 환골탈태를 하노! 이 멍청한 자슥아!
“환, 으윽! 환골탈태…… 환골탈태라니요.”
-그래! 환골탈태하는 거다. 지금 니는 내 혼을 소멸시켜서 그 대가로 다시 태어나는 거다.
놀라운 일이다.
“할, 할머니…….”
-천지의 조화를 깬 벌은 내가 받는 기다. 내가.
“예?”
-그리 알면 된다. 그리만 알아라. 제발 이제는 사람답게 좀 살아라.
“으윽! 할, 할머니의 혼이 소멸한다고요?”
-그래. 그리 되는 기다.
지이이잉!
그때 고통에 겨워 사지가 비틀어져서 흙바닥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내 눈앞에 강렬한 빛이 뿜어지더니 검은 도포 자락을 입은 존재가 나타났다.
“어디 감히 천지의 조화를 깨는 것이냐?”
그는 우레처럼 소리를 지르며 매섭게 나와 귀신인 할머니를 노려봤다.
“어리석은 혼!”
순간 조금 떨어져 있던 존재가 바로 내 앞에 바짝 달라붙고 또 할머니의 혼에 달라붙어 우악스러운 손으로 할머니의 목을 움켜쥐었다.
“으윽!”
“어디 감히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이런 무모한 짓을 하는 것인가?”
“크윽! 용, 용서하소.”
할머니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저 버둥거리며 용서하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것이 용서되는 일인가? 어찌 이런 무모한 짓을 한단 말이냐? 네 저승으로 가자고 할 때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이 이것이었나? 어리석은 혼이여!”
“크윽! 은혜는 갚아야 하지 않소. 은혜는!”
“그 은혜가 천지의 조화를 깨는 일이냐?”
“용서하오.”
“너는 무간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영원히 구제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저놈도 끝내 그렇게 될 것이다.”
“사자님! 용서하소. 다 내가 한 일이오. 저 아는 모르는 일이오.”
반항조차 하지 못하는 할머니의 혼은 그렇게 목줄이 잡힌 상태에서 애원하듯 말했다. 이 순간에도 난 사지가 비틀어져 고통에 겨워했고 검은 도포를 입은 자는 그런 나를 서서 물끄러미 보다가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천지의 이치를 깨어 이제 어찌 할고?”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할머니의 목줄을 잡고 있던 자를 봤다.
“사형! 이제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혼을 회수해야지. 이미 이놈은 천수를 다한 놈이다.”
할머니의 목줄을 잡고 있던 자의 앞에 고서처럼 보이는 책이 둥둥 떠서 펼쳐졌다. 그 순간 난 고통에 겨운 상태에서도 그 책을 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저, 저승차사다!’
난 저들이 혼을 회수하여 저승으로 안내하는 저승차사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는 내 천수가 다 되었다고 말했다.
‘도망쳐야 해! 도망을 쳐야 해!’
저승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도망을 쳐야 했다. 하지만 내 몸은 할머니의 말처럼 이미 환골탈태가 진행 중이었기에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이대로 끝이 나는 건가!’
어금니가 꽉 깨물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달리 이곳에서 도망칠 방법도 없었다.
“확실하군! 저놈의 천수는 끝이 났다.”
고서를 보던 자가 나를 보며 말했고, 그 순간 그저 손아귀에 잡혀 버둥거리던 할머니의 눈동자가 번쩍였다. 마치 지금을 기다렸다는 듯 그렇게 번쩍이더니 빠르게 손을 뻗어 고서의 한 페이지를 찢어 자신의 입에 넣고 씹어 삼켰다.
“뭐 하는 것이야!”
퍼억!
할머니의 목줄을 잡고 있던 저승차사가 놀라 할머니를 힘껏 집어던지며 버럭 소리를 지르며 찢어진 고서의 한 페이지를 봤다.
“이런 망할! 요망한 것! 네년이 진정 무간지옥으로 끌려가려고 이런 것이냐?”
“어찌하겠소. 은혜를 입은 것을.”
“네년이 지금 무슨 짓을 한 줄 아느냐?”
“왜 모르겠소. 천수록에서 빠졌으니 저 아는 이제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요.”
처음부터 계획적인 일이었다.
“네가 감히 그것을 알면서도 이리 했다는 것이냐?”
“그, 그렇소. 벌은 내가 다 받겠소.”
할머니의 혼은 자신을 희생시켜서 나를 살리려고 한 것이다.
“이제 어찌합니까? 사형!”
“으음…….”
사형이라는 저승차사도 답을 내지 못하고 인상을 찡그릴 뿐이었다.
순간 사형이라는 저승차사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며 누군가의 말을 듣는 듯 표정이 변했다.
“진정 그리하란 말씀이시옵니까?”
사형이라는 저승차사가 고개를 들어 검은 하늘을 봤다.
“명을 받겠나이다.”
사형이라는 저승차사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나와 던져져서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할머니의 혼을 노려봤다.
“할망! 너는 무간지옥으로 갈 것이다.”
“내, 내 알고 있소.”
“그러고 너는!”
저승차사가 나를 봤다.